20110619 / 이대 삼성홀



내가 과연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들의 음악을 미친 듯이 찾아서 듣거나 그들의 앨범 발매일을 손꼽아 기다리거나,
그들 멤버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거나, 그렇지는 못하기 때문. 
그래도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이분법적인 질문으로 묻는다면,
나는 그들을 좋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들의 콘서트표를 기다려가면서까지 예매하지는 않았지만,
표가 생겼다는 친구의 말에,
대전행 일정에서 서둘러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올 정도는 되니까.
트윗에 쉽게 팔로잉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로잉 되어 있는 뮤지션 중 한 명이긴 하니까.

'장기하와 얼굴들'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아마도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에 나온 그들의 동영상을 보고 난 후였다.
사실, 그 동영상이 화제를 모은 것은 그들의 음악성 자체 때문이 아니라
코믹하고 재밌는 안무와 독특한 노래 때문이었다.
(영상에 달려 있던 대부분의 댓글이 그러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인디와 음악에 무지했지만, 내게는 조금은 그의 음악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물론 안무와 음악도 독특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싸구려 커피>의 가사가 정말 미치도록 좋았다.
어쨌든 나란 자체가 조금은 가사에 더 반응하는 인간인지라....
그렇게 '장기하와 얼굴들'을 알게 됐고, 좀더 빨리 그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모습이 웃긴 동영상으로 화제를 모으고 나서야 그들을 알게 된 게 너무나 아쉽기만 했다.

그리고 종종 그들의 음악을 들었고, 그들의 흔적을 느꼈다.
<무한도전>에서 그들의 패러디한 것을 통해 조금은 더 그들이 친숙해졌고,
장기하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노래를 부를 때, 그들이 조금은 더 좋아졌다. 
그렇게 '장기하와 얼굴들'은 조금씩 대중에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다이어트 전후(?) 사진으로 포털 사이트를 장식하기도 하고,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놀러와>에 출연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의 음악을 굳이, 일부러, 찾아서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특별히 그들의 1집 <별일 없이 산다>가 언제 나왔는지도 몰랐다.
1집의 수록곡인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잖어' '별일 없이 산다' '느리게 걷자' '멱살 한 번 잡힙시다'를 들어왔으니까. 
2집은 그래도 트윗 팔로잉을 했기 때문에, 준비 중이고, 발매됐고, 들어야겠다는 자각은 있었다.

2집의 대표곡이었던 2개 <그렇고 그런 사이> <TV를 봤네>만 듣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생겨버린 표!
후배에게 음악을 선물(?) 받아 전곡을 열심히 듣고 공연장에 갔다.
무엇보다, <무한도전> 화환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역시, 어쩔 수 없이 '장기하와 얼굴들'보다 <무한도전>이 더 좋아~~!! 라는 엉뚱한 생각을^^;;;;;;;



공연은 매우 즐거웠다.
그들의 노래르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 좋아하는 곡들이 있었고,
그런 곡을 실제 무대에서 라이브로 듣는다고 생각하니 행복해질 수 밖에.

무엇보다 성과는 베이스를 치는 정중엽 님이다.
아. 멋있어.
장기하 님(왜 이렇게 '님'이라는 표현이 어색한지....!)은 뭐, 솔직히 너무 유명해지셨다.
이상한 심보가 있어서, 내가 좋아했던(?) 비주류라 여겨졌던 사람이(내 마음대로 장기하를 비주류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문제가 좀 있긴 하지만) 주류가 되어버리면, 마음이 멀어진다. 
하튼, 정중엽 님은 뭐랄까. 
굉장히 자유롭게 정말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우선, 맨발.
그 맨발로 노래가 시작되려고 하면 살랑 살랑 몸을 흔드시며, 정말 악기와 하나가 된 것처럼 베이스를 치는데.
아. 멋있어.
그냥 멋있다는 말 밖에는 나오질 않는다.
내가 반하고 버닝하는 포인트가 있는데, 뭐라 설명을 못하겠다. 

장기하는 관객들과 호흡하는 법도 알았고, 관객들도 충분히 그 공연을 즐겼던 것 같다.
하나, 조금 아쉬운 것은 조금은 더 '얼굴들'이 공연에서 많이 강조되어도 좋았겠다는 느낌.
(정중엽 님 때문이 아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콘서트라는 느낌보다는 '장기하'의 콘서트라는 느낌이 강했다.
조금더 어우러져 '노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어도 좋았을텐데.

그리고, 노래는 빠른 템포의 곡들도 좋지만
가만히 앉아서 천천히 부르는 노래들도 참 좋았다.
휘파람 소리가 아름다웠던 <정말 없었는지>도 좋았고,
2집 수록곡 중 좋아하는 <마냥 걷는다>도 정말 좋았다.
노래도 노래지만 장기하의 보이스도 정말 매력적인 것 같다.

<싸구려 커피>는 내게 레전드와 같은 존재이고,
가장 마지막 곡으로 부른 <별일 없이 산다>도 최근 미친듯이 듣던 노래였어서,
실제로 듣는 게 너무나 행복했다.

'음악'이라는 게 그 자체로 갖고 있는 힘이 위대하지만,
 실제로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서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한 차례 뛰고 함께 소리 지르며, 기분 좋은 땀을 흘릴 수 있어서 좋았다.
재미있었다.
좀더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들 아프겠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아프니까 청춘인 거겠지만.

나는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의 아픔에 무관했음 좋겠어.
아니,
세상의 아픔에 눈 돌리는 날,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완벽하게 이기적이지도 못하면서
어설픈 이기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반짝반짝 빛나고 싶어.
아무것도 아닌 나는, 견딜 수가 없으니까.
난 오늘도 그렇게 살아.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사실, 그냥 지껄이기에 넣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작은 서점'에다 쓰고야 말았다.

<AB형 자기 설명서>
처음에는 중요한 책도 아니고, 그저 회사 책꽂이에 있길래
심심풀이 삼아 꺼내 읽었는데.
이게 좀 웃기고 재밌다.

한국인만큼이나 심리나 혈액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데,
맹신하지는 않지만 꽤나 즐기는 편이다.
좋은 건 좋구나, 기뻐하면 되고
안 좋은 건, 믿을 거 뭐 있어 하면서 무시하면 되니까.
통계일 뿐이라는 걸 알긴 알지만,
그렇게 알면서도 뻥 터진 부분이 있었다.

맨 마지막,
기타 시뮬레이션에서 '이럴 때 AB형이라면'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동화 속 주인공들을 AB형이라는 가정하에,
다시 리라이팅을 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처음으로 나온 <헨젤과 그레텔>이 대박인데,

"부모가 깊은 숲 속에 자신들을 버리고 간다.
헨젤과 그레텔이 AB형이었다면?

오   빠 : 넌 어떻게 할래?
여동생 : 글쎄 일단 돌아갈 거야. 길도 아니까.
오   빠 : 그럼, 난 이대로 그냥 가출하겠어. 새로운 일도 좀 해보고 싶고....
여동생 : 그래, 알았어. 그럼 간다.
오   빠 : 그래. 안녕."

AB형 남매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 글인지,
아니면 우리 오빠와 내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 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우리 오빠와 나의 싱크로율 100%라고 해야할까?
오빠에게도 말해줬는데, 미친듯이 웃는다.

그냥 심심풀이 삼아 읽기에는,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혈액형 따위 잘 믿지 않는다고 해놓고,
이런 말 하기가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맞는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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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5살인지 16살이었는지 명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차범석의 <산불>은 본 게. 그저 차범석이라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과 꽤나 야했었다는 느낌만이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산불>의 포스터를 보게 됐다. <산불>을 모티브로해 만들었던 뮤지컬 <댄싱 섀도우> 때문에도(이 뮤지컬을 보지는 못했다) 꼭 다시 한번 이 연극을 보고 깊었는데. 이번 캐스팅이 진정 죽음인 것이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배우, 장영남 언니. 꽤나 좋아했던 배우이나 최근 애정이 조금 식어버린 조민기 님. 관심은 크지 않으나 어쨌든 유명한 배우, 강부자 선생님까지.

정말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티켓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가난한 워킹푸어족인 내게, VIP 7만원, R 5만원, S 3만원은 후덜덜한 금액이고, 그렇다고 1만원의 A석을 보기에는 뭔가.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사실 <산불>보다 더 보고 싶은 연극도 있고해서 살그머니 포기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이 공연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시는 거다. 문화생활과는 담을 쌓고 사는 엄마가, 애써 보여준 <친정 엄마와 2박 3일>도 재미없다고 한 엄마가 이 연극에 관심을 보이다니! (물론 아는 배우가 나와서 겠지만.) 내가 보고 싶어한 걸 엄마도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 꼭 보고 나서 엄마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돈이 없으면 A석이라도 놓치지 말자 하며 예매 사이트를 들어갔더니 헌혈증이 있으면 40% 할인! R석과 S석을 놓고 고민하다 좌석이 나쁘지 않길래 S석으로 결정, 물론 돈도 없고! 예매를 하려고 보니 이번주 일요일(6/26)이 막공이었다. 주말에는 갈 수가 없고 평일에 가자니 사실 요즘 회사 업무상 무리가 있는데, 그냥 저질러 버렸다. 맘은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즐거울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었다.

서두가 길었지만 그렇게 보게 된 <산불>. 헌혈증 뭉치가 이렇게 고마울때가. 헌혈증 한 장을 내고 티켓을 받았다. 최근 헌혈을 꽤나 오랫동안 못 했는데, 조만간 한 번 피 뽑으러 다녀와야겠다. (여전히 서두가 길다^^;;;)

OP석 한 쪽에는 피아노와 마이크가 준비되어있었다. 피아노 연주와 라이브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꽤나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이런. 음이 너무 높아 부르시는 분이 힘들어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암전시 음악이 서서히 커지고, 줄어드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두 없고, 연기할 때 잔잔히 깔리는 맛도 있어야하는데 그것도 없고. 무대 전환을 할 때, 시선을 돌리기는 좋지만 너무 피아노와 가수에 집중되어 오히려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라이브로 갈 꺼면 차라리 보이지 않게 숨어서 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우선 무대는 정말 훌륭했다. 대나무 숲, 초가집 두 채, 그 집으로 내려오는 길, 대나무 숲으로 가는 길. 어디 하나 디테일하지 않은 곳이 없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은 언덕처럼 되어 있어 배우들이 무지하게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약간 들었다. 중간에 남자가 숨어있는 곳으로 바뀌었을 때도 동굴을 너무 잘 표현해놓은 것 같다. 방 안에서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도 방 안에 조명을 켜자 불투명했던 황토벽이 투명하게 변한 것도 참!!! 좋았는데! 다만 기둥 때문에 시야가 방해됐다는 게 좀... S석을 무시하는 건지 뭔지. 근데 그 크고 멋지고 디테일한 무대장치와 달리 가장 많이, 대부분에서 활용된 곳이 앞마당일 뿐이라는 게 조금, 아주 조금 아쉬웠다. 떨어지는 눈 등, 투자도 많이 하고 신경 썼다는 느낌은 충만했지만!

연기는 누구하나 모나게 튀거나 못하는 사람 없이 잘 어우러진 것 같다. 그렇다고 미친듯이 잘 하는 사람도....^^;;; 강부자 선생님은 연극무대에서는 처음 뵈었는데 '역시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물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장영남 언니나 조민기 님은 배역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의 영남 언니는, 멋있다. 조민기 님은 캐릭터 때문에.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조민기 님이 맡은 '선상님(규복)'의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줏대 없이 휩쓸려 산으로 올라가고 거기서 도망나와 여자 하나 잡아서 사랑이 어쩌구 저쩌구 느끼한 멘트를 날려대며 살아남기를 선택하더니 나중에 점례와 사월에게 자신을 이용하고 사육했을 뿐 아니냐며 그녀들을 비난하더니 자신의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기만'하고 개죽음을 당한다. 물론 규복도 시대의 비극이라면 비극이겠지만 중심인물로는 느껴지지 않고 그저 주변 인물로만 느껴진다.


반면 여성의 욕망이라는 부분에서 접근한다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연극임은 확실한 것 같다. 누가 누구를 비난하며, 또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단 말인지. 옳고 그름의 개념없이, 그녀들을 바라봤다. 사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성적인 부분이 아니라 왜 엄마에게 '모성'이 필수인 것일까. '모성'이 없다고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 고립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녀의 죽음으로 끝이 난 게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어렸을 때 봤던 이 연극의 결말이 기억이 나지 않았었다. 나는 사월이 불이라도 지르는 게 아닐까 했었는데. 아무것도 결론이 나지 않은 게 아쉬웠다. 어떤 갈등도 회복되지 않았다. 이념의 대립도, 사랑도, 며느리의 부정을 알아챈 채 불타는 산불을 바라보고 있는 양 씨. 그냥 모든 것이 현재 진행형처럼 느껴졌다. 막이 내리고 난 후의 그들의 삶은 변함없이 '불행'일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연극이란 칭호를 받는데 무리가 있을 것 같다. 특수한 시대상은 끈임없이 우리에게 이야기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으니. 오히려 시대에 상관없는 인간의 본능과 세상사를 말하고 있기에 <산불>이 훌륭한 연극인 거 아닐까. (물론 시대가 더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왜냐하면 이 연극을 보면서 난 지금을 살고 있는 무수히 많은 점례와 사월, 양 씨 등 그 등장인물들을 떠올리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남과 북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줄을 긋고 그 줄을 사이에 두고 싸우고 있으며, 그 싸움 안에 소시민들은 피해를 입고, 그 피해를 입은 와중에서도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굉장히 보고 싶은 연극이었지만, 연극을 보는 내내 설레고 좋지만은 않았다. 우선 조금은 재미가 없었다. (여기서의 재미는 웃음 포인트를 말한다.) 군데 군데 시도때도 없이 '아가야'와 '밥줘'를 외치는 노망난 할아버지와 난리가 난 탓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바보 귀덕(?) 덕에, 그리고 사월을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럽게 연기한 영남 언니 덕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초반은 확실이 조금은 지루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소극장의 웃음 가득한 가벼운 연극에 길들여진 게 아닐까 하다가 어쩌면 너무 많이 반복되고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드'하다는 느낌이랄까. 내 옆에 중년 부부가 앉아 "젊은 애들도 생각보다 많이 왔네."라고 말했다. 그러고 둘러보니 고등학생부터 중년층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층이 와 있었다. 과연 고등학생들이 이 연극을 재밌다고 생각했을까. 중년 부부가 또 말했다. "볼만은 한데 조금 심심하긴 하네. 뮤지컬보다 더 재미가 없는 거 같아." 일행인 뒤에 앉은 중년 부부가 말했다. "좀 자버렸네."

좋은 내용인 것은 누구나 안다. 그리고 세상 연극이 모두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이 좀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는 조금더 재미를 부여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정형화된 웃음 말고. 정말 관객이 웃을 수 있는 웃음. 그러다 감동이 빡 하고 터져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테니. 그리고 거의 주인공이었던 점례 역의 서은경(?) 님. 연기가 나쁘거나 그런 건 아닌데, 입 모양이 꽤나 신경이 쓰였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입 모양. 아,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봐서 기분 좋은 연극.
무대가 멋져서 좋았던 연극.
하지만 이렇게 좋았던 연극을 어떻게 하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좀더 오래(공연기간) 상연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연극.
그런 연극,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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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있습니다!)


당신에게 찾아온 마법같은 순간?희망을 만드는 마술사 <일루셔니스트>?
이 얼마나 모순적인 카피였단 말인지.
가슴 따뜻한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깜빡 속아넘어갈 뻔 했다.
이건 비극이라고, 이건 너무나 기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라고.

몇 명의 트윗에서 이 영화의 제목을 접했다. 내용은 몰랐고, 그저 아는 거라곤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 근데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라도 이렇게까지 대사가 없을 줄이야. 애니메이션도 픽사나 월트디니처럼 헐리우드나 고전 같은 것에만 익숙해졌나보다. 다행이 대사가 없어도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다. 토끼의 행동 등 소소한 재미도 있고,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그림이 참 예뻤다. 정말 움직이는 동화책을 보고 있는 듯.

유행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나이 든 마술사는 스코틀랜드의 시골 마을에 갔다가 자신의 마술이 사실이라고 믿은 순수한 소녀 앨리스를 만난다. 소녀 앨리스는 마술사에 의해 갑자기 나타나는 돈도, 신발도 모두 진짜 마법이라 여기고 떠나는 그를 따라 온다. 마술사는 자신을 따라온 앨리스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 소녀를 위해 마술이 아닌 다른 일을 시도하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옷도, 구두도 모두 마법이면 가능할 줄 아는 앨리스로 인해 마술사는 마법도구도 팔아버리고 쇼윈도에서 세일 물건이나 홍보하는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 시골 소녀는 도시의 여자가 되어간다.

우리에게도 서커스라는 것이 지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소녀가 남자와 함께 다정히 걸어가는 것을 보게된 마술사가 그 모습에 숨어 들어간 영화관처럼, 쇼윈도에서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화면처럼. 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간 사람들은 더 이상 마술에 박수를 치지 않았고 마술사는 잊혀져 갔다.

그런 마술사를 믿어준 소녀가 마술사를 조금은 더 버티게 해준 힘이었으나 결국은 마술사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인정하게 만든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술사의 힘듬은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순수하기만 한 소녀를 보며 난 화가 났다.

왜 소녀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거야.

소녀가 마술은 믿어준다는 것, 그 실이 마술사에게 희망은 아니었다. 일말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었을 거라 해도.
소녀가 마술사로 인해 시골뜨기에서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한 것. 그것 역시 기적이 아니다. 마술사가 사라지고 나면 소녀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할테니까. 소녀에게 기적이란 소녀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마술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소녀를 떠난다. 이제 자신이 아니어도 소녀를 아끼고 지켜줄 사람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을테니까.

마술사가 함께 마술을 해온 성질 나쁘지만 귀엽고, 영화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 토끼를 들판에 놓아주었을 때,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토끼는 자유로워졌을 테지만, 마술사는 미지막까지도 놓아버린 것이다. 더 이상 마술사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돈과 편지를 남기고 마술사는 소녀를 떠난다. 편지에 씌여진 그 글귀.

"마법은 없어."

소녀에게 진실을 알려줘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왔으면서, 막상 그 진실이 마술사에게서 확인되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 확인 사살 같은 편지가 내 가슴을 마구 마구 찔러댔다.

기차를 타고 홀로 떠나던 마술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 아이가 몽당 연필을 흘린 것을 줍는다. 자신의 기다란 연필과 그 몽당 연필을 번갈아 바라보던 마술사는 마술을 부리듯 여자 아이에게 연필을 건넨다. 마법처럼 긴 연필이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깨고 결국은 원래의 몽당 연필. 여자 아이에게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 이상 마술사는 마법을 부리지 않는다. 그 몽당 연필이 '현실'이라는 두 글자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아주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지막에 마술사가 꺼내든 한 장의 소녀 사진. 아마도 자신의 가족이 아니었을까. 딸이라 추측되는 그 딸에게 해주지 못한 걸 소녀에게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수 많은 것들이 잊혀져간다. 복화술을 하던 아저씨의 인형은 중고숍 쇼윈도에 초라하게 놓여져 있고, 공중 묘기를 선보이는 이들은 그 실력으로 커다란 광고판의 색을 칠한다. 공중에서.

잊혀져 가는 것. 이 영화는 '비극'이었다. 잊혀져 가는 것을 붙잡고 있지 말라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현실에 맞춰 '포기'하는 법도 배우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다.

아니, 아마도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이겠지. 기억해달라고. 사라졌어도 그런 순간이 있었음을. 소녀가 마술사를 잊지못할 것 처럼, 사라진 것들을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것일지 모른다. 마술사의 몽당 연필일 그토록 가슴 아팠다면, 그 아픔을 잊지 말고 마술사를 기억해달라고.

기억하자. 사라져간,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을. 그리고 쉽게, 쉽게는 포기하지말자. 아직은 꿈을 꾸자. 아직은 마법을 믿자.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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