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2 / 정보소극장




생각보다 너무 슬펐다.
작년 이맘때 쯤이었을까? 그냥 대학로를 돌아다니다가, 아니 솔직히 명확히 기억난다. 동숭아트센터에서 하는 <오빠가 돌아왔다>를 보러갔다가 이 연극의 전단지를 보게됐다. 만화처럼 구성되어 있는 디자인에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이란 제목이 왠지 마음을 끌었다. 적혀 있던 글들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꼭 보고싶다 생각하고 놓쳐버렸다. 그리고 최근 다시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는 소리를 듣고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 겠다 생각했고 오늘 보게 된 것.

2인극, 스릴러?
백과사전을 팔기 위한 능란한 영업사원과 순진한 만화가의 점심식사?
백과사전을 팔았을까? 팔지 못했을까?
점심을 맛있게 먹었을까? 먹지 못했을까?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 보게 된 연극. 우선 너무 앞자리였다. 가장 첫 열에 것두 중앙. 예약순이었기에 내가 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넘 앞자리에 한 번 헉! 하지만 이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고.

2인극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두 배우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사실 두 사람의 숨겨져 있는 관계는 반전이라 할 틈도 없이 초반부터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처음에 아마 조금은 기대하고, 희망하고 있었나보다. 그들의 가정식 백반이 마치 한국판 <심야식당>처럼 그들의 엇갈링 인연을 다시 이어주고 상처를 위로해주고 존재가 될 것이라.

하지만 연극은 나의 작은 희망을 무참히 짓밟고, 아니 '심야식당'을 떠올린 게 무색할 만큼 '미저리'로 흘러간다. 두 사람의 관계도 관계지만 역시나 난 '꿈'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 알돈자가 부르는 노래 줄 이런 가사가 나온다.
"당신은 내게 꿈같은 환상을 얘기해.
허나 택도 없는 꿈 꿔서 뭐해
날 짓밟고 지나간 수많은 놈중에 당신이 제일 잔인해.
당신은 나를 절망으로 가득채웠지,
분노만있었던 이 자리에.
날 짓밟고 가는건 참을 수 있으니
꿈꾸게 하지 좀 마"

만화가가 영업사원에게 이야기한다. 불쌍한 개구리에게 밥도 떠 먹여주고 반찬도 떠 먹여준 나무꾼. 하지만 개구리가 자꾸 따라오자 도망을 가 버리고 훗날 개구리는 그 나무꾼을 잡아 먹는다고. 하지만 나쁜 건 나무꾼이라고. 도망을 갔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개구리에게 막대기를 던지고 침을 뱉었어야 한다고.

싸구려 동정. 싸구려 위선.

만화가가 너무 안타까웠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추억이 없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그 마지막 추억 하나마저 거짓이란 걸 깨달았을 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의 아픔을 내가 고스란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상처로 얼룩진 삶과 예술가의 조건(?)이 어우러져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 것 같다. 그가 원했던 그 가정식 백반의 마지막.

희망을 갖는다는 것. 그래서 꿈 꾸게 된다는 것. 꿈꾸게 하지 않았더라면. 잘 모르겠다. 요즘 들어서 그런 말과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잘 모르겠다는. 꿈이 너무 아프다. 말 한 마디가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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