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2 / 아트원씨어터 2관





꽤나 보고 싶은 연극이었다. 이 연극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 희곡론 수업을 통해서였다. 몇 개의 희곡 중 하나를 골라서 짧게 공연을 해야 했다. 이 희곡을 재밌게 읽어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작품이 선택되고 말았다. 그 뒤로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내용이 명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몇몇 장면과 연극으로 올린 것을 보고 싶다는 열망(?)만 남아있었다. 그런 작품이 무대 위에 오른다니. 게다가 출연진에 왠지 익숙한 이름. 서현철 배우님과 정승길 배우님. 놓치지 말고 꼭!!!! 보고 싶어졌다.

서현철 배우님은 <오빠가 돌아왔다> <너와 함께라면>을 통해 얼굴을 익히게 되었는데....그 자연스러운 연기...! 너무 좋았다. 그리고 정승길 배우님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내 심장을 쏴라>를 통해. 사실 '무궁화'에서는 그 이름까지는 못 외우고, 그저 그 분이 나왔던 에피소드가 제일 좋았을 뿐이었는데, '내 심장'에서 굉장히 낯익은 얼굴. 연기도 너무 너무 좋은. 내가 분명히 이전에 봤던 배우라는 생각을 하며 프로그램 북을 들쳐보니 '무궁화'의 그 분이셨던 거다. 그 뒤로 이름을 외우고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돐날>을 통해 두 분을 함께 뵙게 되다니.

연극은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게 시작된다. 웃음 포인트도 좋고. 첨에 사진사가 관객을 향해 돌 사진을 찍는 아기한테 하듯 웃어보라고 하는데 객석은 빵빵 터질 뿐이고. 특히나 미선 역을 맡은 황정민 배우님. 정말 어쩜 그리 익살(?)맞고 능청스러운지. 정말 관객에게 웃음 선사를 톡톡이 해주셨다.

정숙은 아기의 돌 잔치를 위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친구 신자와 미선에게 도움을 청한다. 곱게 옷을 차려입고 온 미선은 일은 커녕 어울리지 않응 꽃꽂이나 하며 수다를 떨고 이혼녀인 신자는 묵묵히 정숙을 돕는다. 컨디션이 영 좋지 않은 정숙은 아기의 울음소리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화장실로 달려가버리고, 미선은 그 이유가 정숙의 남편인 진호와 정숙의 친구인 경주가 삼각관계였고, 오늘 그런 경주가 오기때문이라고 한다. 기름에 넘어진 미선이 옷을 빨러 간 사이 정숙과 신자가 하는 대화가 참 서글프면서고 아팠다. 빨간 구두 이야기. 자기 신은 검고 불편한 구두라고 말하는 정숙에게 맨발 보다는 낫다거 말하는 신자. 결혼 생활에 갖게 된 회의감이나 이혼이라는 꼬리표 뒤에 살아가야 하는 감정에 대한 비유가 너무나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하다가도 또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흐름도 좋았다.

아이는 사라진 채, 어른들만 남은 돌 잔치. 지호의 친구들의 술잔치, 외설적인 농담, 화투판. 뭐랄까. 리얼리티가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서현철 님이 맡은 역은 돈을 꽤나 벌고 인맥을 쌓으려고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친구에게 논문 대필을 부탁하는 성기인데, 이전에 가볍고 코믹한 연기만 보아와서 그런지 왠니 낯설었지만 정말 연기를 잘 하시는 듯 하다. 그리고 시민운동을 하며 다단계로 연명(?)하는 경우 역에 김은석 님. 아- 이 분도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술 취한 연기는 최고!!!

뭐 다시 줄거리로 돌아가보자면 안주가 떨어진 이유로 정숙과 지호의 싸움이 시작되어, 성기의 논문 대필 의뢰 건으로 부부의 갈등은 극대화되어 폭발해버리고 만다. 초반 재밌던 웃음 포인트들이 사라지고 미친듯이 진지해지기 시작.

결국 그 갈등의 근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5개월 된 태아를 지워버린 아내에 대한 원망과 무책임한 남편의 행동에 대해 지쳐간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감정이 폭발할 때 정숙의 친구이자 지호의 옛 연인이었던 경주가 등장한다.

사실, 예전에 희곡으로 읽었을 때 조금 놀랐던 부분이었다. 20대에는 꿈 꾸었으나 나이와 함께 현실에 찌들어버린 불안정한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경주의 등장과 함께 치정극(?)이 된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게 그 당시의 어린(?) 나에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사실 결말은 기억이 안 났었다.

그런데 오늘 이 연극을 보니 내가 기억하지 못한 부분에 결국은 '사랑'이나 '치정'이 아니라 결국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변해버린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트윗에 그런 말을 쓴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뱃 속으로 돌아가자" 근데 이 연극의 마지막 결말이 무의식 중에 남아있었나보다. 내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지호의 대사에서.

마지막 지호와 경주의 난투극은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참 아팠다. 경주가 잠든 정숙에게 말하다, 죽은 엄마에게 하는 말들. 정숙에게는 성공했다 말했지만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자신. 대학생 때는 반짝반짝 빛났으니 지금은 시간 강사로 전전하며 제대로 가장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초라해져 버린 지호.

더럽다. 세상은.
더럽다. 방도.
더럽다. 자신도.
더럽다. 미래도.

그래서 어머니의 뱃 속으로 돌아가자.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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