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연

                                                     박찬세

여름감기에 걸리면 책상위에 죽어가는 매미를 올려 둔다
날개를 접고 떨고 있는 매미의 다리에 한기를 옮겨 심는다
-외로울 것, 그리워하다 죽어갈 것

구부러진 나무 아래서
죽어가는 매미를 주워 붓 끝에 올려 두었다는 남자와
붓이 되기 위해 떨림을 멈추었다는 매미를 생각한다.

빛을 향해 구부러지는 나무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꿈꾸는 남자는 같은 외연을 배회하다 간다
구부러지며 더 많은 그늘을 거느린다는 점에서 그늘은 유전이다
하여, 나무는 반듯해지기 위해 관이 되고
사람은 반듯해지기 위해 관에 눕는다.

그런데, 어떤 마음이 관 속에서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것일까
남자는 죽은 매미의 날개를 먹물에 적셔 나무를 그렸다고 한다

비가 내린다.
여름의 외연이 끓는다
체취의 시점에서 비와 매미와 감기는 일인칭일 것이다
체취를 벗어나기 위해 그늘 속에서 울다 가는 사람이 있다

그믐달이 구름을 벗어나는 찰나 그리운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의 꿈을 입을 수 있다는데
너의 이름은 어느 구름을 앓고 있는지
매미의 까만 눈이 청동에 이르기까지
눈물을 닦을 때 떨어진 너의 눈썹을 매미의 더음이로 읽는다

언제나 인간은 인간에게 외연이었다


::
시작은 그러했다.
팔로잉을 한 문인이 두 사람을 소개하는 트윗을 올렸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시인이었으며, 한 명은 작가였다.
트윗을 살펴보니, 관심이 생겨서 그 두 명을 모두 팔로잉하였다.
그 중 유일하게 맞팔을 해주신 분이 박찬세 시인이었다.
그리고 고향이 공주인 듯 하여 더 흥미가 갔다.
그놈의 지연.

하지만 팔로잉 해서 그들을 글을 볼 뿐
뭔가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기 때문에 멘션 한번 보내본 적이 없다.
그저 그들이 올린 트윗을 읽고, 그들의 대화를 훔쳐볼 뿐.

그러던 어느날 팔로워가 한 명 줄었다.
뭐 늘상 있는 일이고, 팔로워에 그리 목숨을 걸지 않으며,
원래도 없는 팔로워 한 명 줄었다고 뭐 그리 대수일까 싶어 그냥 무심히 넘어가려다,
갑자기 궁금해진 것이다.
그래서 살펴보니, 이 분이 없어지셨다.
언팔을 하셨나하고 들어가보니 아예 계정 자체가 삭제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 어차피 말 한마디 걸어본 적 없는 분인데
뭔지 모르게 허전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 분은 어디로 갔을까.

한 번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의 시를 읽게 되었다.
그 분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윗의 글들만 읽었지 시를 읽어봐야겠다고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140자에 얽매여서, 다른 것은 보려하지 않는 내 모습이 순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 분이 쓰신 시를 여러 편 찾아 읽었지만
굳이 이 시를 가장 먼저 남기는 이유는,
지금은 여름이며, 오늘은 비가 왔고, 나는 인간이며, 
"-외로울 것, 그리워하다 죽어갈 것"
이라는 구절이 가슴에 박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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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퀴즈 시즌 1> 왜 보지 않았을까?
기본적으로 메디컬 드라마나 범죄 수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아마도 당시 텔레비전에는 케이블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반드시. 케이블이 나왔더라면 내가 이런 드라마를 안 봤을리가 없어.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나 류덕환이라는 주연배우라면 분명 혹 했을테니까. 내가 <신의 퀴즈 시즌 2>의 예고편을 본 것만으로도 첫 방영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가급적 본방사수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시즌 1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조금은 관심을 가졌었고, 꽤나 호평을 한 기사를 많이 읽었었다.

그래서 시즌 2는 꼭 챙겨보자 마음 먹고 시작했는데 이거 이거 보통이 아니다. 우선 원래도 갖고 있던 류덕환이라는 배우에 대한 호감이 급 상승했다는 것이다. 능글맞고 장난기 가득하며 모든게 가벼워 보이는! 하지만 잘난 척 마저도 밉지 않은 천재 한진우 박사의 역할을 어찌나 잘 해주시는지. 첨에는 너무 어려보이고, 특히나 러브 모드를 형성하고 있는 강경희 형사랑 넘 나이 차이가 나 보여서 좀 그랬는데, 이게 한 사람에게 애정이 깊어지니 모든 게 오케이! 그렇게 배우에 집중하다 4회 정도 지나니 드라마 자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꽤나 재밌고 훌륭했다. 결국 시즌 1을 시작! 3일만에 전편을 모두 섭렵하고야 말았다.

이를 어째.
난 사랑에 빠져버렸다.
한진우 박사를 연기한 배우 류덕환 군과 드라마 <신의 퀴즈>에.
우선 류덕환에 대한 고백부터 시작!

류덕환이란 배우를 떠올리면 우선 몇 개의 작품이 생각난다. 요즘 폭풍 성장이라 하여 인터넷에 떠도는 <뽀뽀뽀> 요런 거 말고, 2002년 연극 <웰컴투 동막골>에서의 동구. 많은 이들이 <웰컴투 동막골>에서의 류덕환이라 하면 영화 속 인민군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연극에서 꼬마 동구 역으로 무대에 올랐었다. 당시 류덕환 뿐 아니라 그 연극 자체와 출연한 모든 배우를 좋기는 했지만...! 무튼 류덕환은 그 당시부터 나에게 영원한 동구가 되었다.
그 다음은 MBC 베스트 극장 중 <Do 야 Love Me>. 디테일한 부분은 생각나지 않지만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고 착각한 청소년이 자살을 시도했다가 엄마의 사랑도 깨닫고 기발한 방법으로 죽음도 피해간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꽤나 재밌었다. 그 후 류덕환은 차근 차근 배우로서의 자신의 역량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필름있수다 소속이며 장진 사단의 일원이기에 나에게는 무조건적인 배우기는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말 그 모든 것에 상관 없이 점점 멋있어진다.
<아들>이나 <퀴즈왕> 등 뭐 장진 감독님 작품에서는 그렇다치고(이 놈의 무한 애정^^;;;) <천하장사 마돈나>나 <우리동네>에서 대박이었으니까. 매력이 정말 철철 넘친다. 그 무렵 그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정말 거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살이 좀 빠지면 조승우의 느낌도 나고 살이 조금 찌면 박해일의 느낌이 난다. 물론 '류덕환'만의 느낌도 충만하지만! 최근 본 <세상에서 사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는 조금은 더 내공이 쌓이면 더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쨌든 그는 멋있다.

특히 이 <신의 퀴즈>는 그의 매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었다. 영화에서만 봤는데 아무리 케이블이지만 한 시즌을 이끌어나갈 주역으로서의 무게감이 충분히 느껴진다. 귀여운 모습에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분노하는 모습에 사랑에 빠진 모습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물론 지금 당장 <신의 퀴즈>에 심하게 심취해 눈에 뵈는 게 없는 것도 있겠지만! 나처럼 눈에 뭐가 씌이지 않았더라도 분명 누가봐도 류덕환은 주연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정말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키ㅠ 조승우의 신장을 생각하면 충분히 커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요즘 여배우들의 평균 신장이 워낙 크다보니. 흐흙. 무튼 멋지다. 류덕환.


두번째. 이 드라마에 대한 고백. 일단 나는 <싸인>도, 그 유명한 <CSI> 시리즈도 보지 않았다. 수사물, 범죄물 등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배우와 시즌 1에 대한 호평으로 본 드라마였다. 하지만 일드를 좋아했을 때 봤던 법의학을 다룬 <보이스>를 봤기 때문에 (물론 그것도 마지막까지 다 보지는 못했었다. 소재도 소재였지만 일본 특유의 에피소드식 구성이 좋지 않았다.) <신의 퀴즈>의 소재가 조금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찌됐던 1시간이 넘지 않는 방송 시간이나 10회 완결이고 시즌제가 가능한 드라마. 일본 드라마들과 꽤나 많이 닮아 있다. 뭐 꼭 일본 드라마가 좋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국내에서는 새로운 시도니까.

사실 시즌제를 시도한 많은 드라마들이 있었다. 하지만 성공한 것은 <막돼먹은 영애씨>나 <별순검> 뿐. 사실 둘 다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몇 몇의 기사를 읽어본 결과 그 드라마들이 시즌제 드라마의 기틀을 잡았다면 <신의 퀴즈>는 심화 발전하여 정착과 성공의 가능성을 높였다고 한다.

사실 지상파에서도 시즌제 드라마를 염두하고 제작됐거나 훗날 그 가능성에 대해 언급된 작품들이 있었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그래도 시즌 3까지는 나왔는데 너무 시트콤의 성향이 강했고, <소울메이트>나 <옥션하우스> <라이프 특별조사팀> <비포앤애프터 성형외과>는 결국 시즌 2를 만나볼 수 없었다. 근데 지상파에사 어려웠던 시즌제 드라마가 케이블에서 시도되고 정착되기 시작한 것.

지상파는 시청률 10% 미만이면 완전 망한 드라마인데, 케이블은 2,3%만 나오면 그야말로 대박. 수치로 보면 케이블 드라마가 별 볼일 없지만 사실상으로 그렇지 않다. 케이블 드라마, 그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 이보영, 신하균 주연의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톱스타들의 출연으로 주목받았다. (꽤나 챙겨 봤는데 사실 마지막까지는 못 봤다.) 지금도 <로맨스가 필요해> 등 어느 정도 인지도와 스타성을 가진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가 있고, 유이의 <버디버디>도 결국 케이블로 편성이 되었다고 하니 케이블 드라마의 선전을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그 연장선상에서 <신의 퀴즈>는 일단 그 소재에서 흥미를 끈다. 법의학을 다루는데, <신의 퀴즈> 원조 팬들이 <싸인>을 국내 최초 메디컬 범죄수사물이라 표현한 것에 있어 굉장히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뭐, 나는 <싸인>을 안 봤기에 딱히 뭐라 할 말은 없는데 기사로만 판단해본 차이가 있다면 <싸인>은 좀더 거대한 권력과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고, <신의 퀴즈>는 희귀병을 소재로 개인에 집중하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고루고루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즌 2에서는 한진우 박사의 병과 관련하여 왠지 의학계의 권력이나 음모에 대한 부분이 나올 것 같기도 하지만 분명 <싸인>과는 좀 다를 듯! 매회 에피소드도 기대되지만 일단 그 커다란 이야기 줄기도 흥미로워서 좋다. 시즌 1에서 마지막 타나토스와의 결투인 2회 분량을 위해 그 전회에도 꾸준히 힌트와 암시를 남겼으니까. 시즌 1의 결말에서는 한진우 박사가 왜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게 됐는지 밝혀졌고, 시즌 2에서는 어떻게 진행이 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우리 한 박사님이 죽지 않기를. 그래야 시즌 3를 기대할 수 있으니. 참, 알 수 없는 질병과 싸운다는 점에서는 일드 <블러드인 먼데이>도 조금, 약간 떠올랐다는 쓸데 없는 이야기.
 
아! 그리고 한국 드라마에서는 전문직 드라마가 많지 않은데 모든 이야기들이 러브스토리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직 드라마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만 있을 뿐 결국 알맹이는 멜로 드라마. 근데 일드는 조금 다르다. 찐한 멜로일 때는 신파조 한 가득이지만, 아닐 땐 아쉬울 적으로 감질나게 무드만 형성해 놓고 결국 뜨뜻미지근하게 마무리 짓는다. 궁금하게시리. 근데 <신의 퀴즈>도 비슷하다. 한 박사와 강 경사의 감정선은 줄굳 이어가며 감상 포인트를 주되 그 러브모드를 중심 내용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물론 마지막에는 그래도 결론을 내주어 좋았지만. 이런 부분이 <신의 퀴즈>의 또 다른 매력인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신의 퀴즈>는 배우들의 연기도 죽음이다. 시즌 1의 1화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 김태우의 등장으로 깜짝 놀랐고 <살인의 추억>의 영원한 향숙이 아저씨도 반가웠다. 얼굴이 낯설은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도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솔직히 깜짝 깜짝 놀랐다. 에피소드마다 바뀌는 배우들인데, 그 연기력을 보고 있으면 제작진이 얼마나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 느껴진다. 시즌 1에 마지막 에피소드 '타나토스'. 사실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단어이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 이 단어를 정확하게 인지한 것은 일드 <러브셔플>을 통해. "왜 죽고 싶니?"라는 질문에, 타나토스에 휩싸인 사람들은 되묻는다. "그럼 왜 살고 싶은데요?" 그게 참 인상 깊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그러니까 왜 죽였느냐고."
"사람이 태어나는 데는 이유가 없잖아요. 그럼 사람이 죽는 데도 이유가 없을 수 있죠."

물론, <러브셔플>의 타나토스와 의미도 다르고 풀어나가는 방식도 다르지만 다시 한 번 '타나토스' 자체에는 관심이 생겼다.
여하튼 이건 중요한 얘기는 아니고, 그 에피소드의 주요등장인물로 한 박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타나토스를 연기한 배우가 안용준이다. EBS <비밀의 교정>, <경성스캔들>을 통해 관심을 가졌는데 <주몽>으로 확 뜬데다가 사적인 스캔들 때문에 호감은 사그라들었다. 그냥 나에게. 그러다 류덕환과 대립하는 안용준을 보니 사실 생각보다는 연기를 진짜 잘하는데, 조금은 과한 부분도 있고 기복이 좀 심한 듯한 느낌도 있었다. 이런 결론을 내기가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야 덕환이가 좋다. 무튼 연기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드라마다. 아! 시즌 1에서는 잠깐 잠깐 나온 박도준 형사(추승욱). 시즌 2에서는 아예 한자리 꿰차셨는데 연기를 진짜 잘하시는 것 같다. 약간 사투리를 쓰는데 정말 리얼하다고 해야할까?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 조화가 잘 이뤄지는 작품인 듯 싶다.

그리고 마지막. 음악이 너무 좋다. 시즌 2의 음악도 좋았는데, 시즌 1도 매우 좋다. 물로 한 에피소드(8화: 마지막 선물)는 음악이 너무 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적절한 음악들이 이 드라마를 빛나게 해주는 것 같다. 부디 시즌 2가 끝날때까지도 이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드라마를 발견해 기분이 너무 좋은 나날들이다.

+)
시즌 1, 10편을 한꺼번에 뭉뚱그려 리뷰하려니 글이 너무 길어졌다. 아하하하하^^;
읽다 지치겠다. 근데, 좋은 걸 어찌하누.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20110619 / 아트하우스 모모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류현경과 안내상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었다는 것.

류현경과 안내상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는 사실.
그리고 영화제에 나왔던 작품들에 대한 이유 모를 믿음과 신뢰.
이렇게 허술하고도 엉성한 이유로 보고 싶다 생각한 영화였다.
 
<일루셔니스트>를 먼저 보고 나서,
<굿바이 보이>도 볼까 말까 고민을 했다.
영화 팜플렛을 보는데, 생각보다 꽤나 우울하고 어두운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소년의 얼굴,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였다는 노홍진 감독이
결국 이 영화를 예매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유쾌했다.
팜플렛만 보면 정말 암울할 것 같았는데.
그렇게 슬프거나, 비참하거나, 아프지만은 않았다.

가정사를 돌보기는 커녕, 선거철만 되면 바람이 들어서 살림살이를 거덜내면서도
큰소리 치는 아버지(안내상)
그리고 그런 아버지 곁을 떠나려고 짐을 싸들고, 매번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오는 어머니(김소희).
그런 아버지를 견딜 수 없어, 말끝마다 동생에게 '너희 아버지, 너희 아버지'하는 누나(류현경)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를, 누나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나, 진우.(연준석)

이 영화의 화자는 진우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기르던 개를 잡아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우의 시선으로부터 시작하는 영화.
사실, 이 영화에서 무엇에 집중해서 봐야 하는 지 잘 모르겠다.
뭐, 이것 저것 영화 평을 보면 폭력과 억압이 가득했던 80년대의 문제의식을 나열해 놓았으며,
아버지로 상징되는 무능하고 폭압적인 권력이 어둠의 중심이라는데...
솔직히 나는 그저 한 소년의 성장기에 주목했을 뿐이다.

그런 아버지라도 소년은 미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시대상을 배재하더라면 남자만들의 연대기 혹은 공감대일지는 몰라도,
소년은 누나와 달리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죽으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겠다고 호언 장담하며,
자신이 울거든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을 해달라던 누나는
길거리에서 객사한 아버지의 무덤 앞에 오열을 한다.
그 때 나지막이 읊조리는 동생의 나레이션은...다름 아닌, '욕'.
아, 이런 센스.

뭐, 이런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역시 그렇다.
매번 집을 나가지만 다시 돌아오는 어머니.
세 들어 사는 대학생의 기타로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며,
어머니와 데이트를 하던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은,
조금 손발이 오글거리기는 하나 솔직히 아름다웠다.
어머니 아버지의 잠자리를 옆에서 지켜보는 자식들의 상황도 꽤나 예쁘게(?) 만들어 놓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진우가 어머니를 돕기 위해 간 신문보급소에서 만나는 친구, 창근(김동영)과의 관계가 가장 흥미롭다.
진우는 무법자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창근을 통해 담배를 배우고, 배신을 배웠고, 의리를 배웠다.
하지만 그런 창근이 무너졌을 때. 
폭력에 무릅 꿇고 말았을 때, 진우는 말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창근의 멋진 모습이 만들어진 허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아니, 소설과 같은 허구라고 이야기했었나?
기억을 잃은, 지능을 잃은 창근을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듯 목욕탕에 데리고 가 씻겨주며,
환상과 현실은 절묘하게 뒤 섞인다.
트럭 뒤에 타고 이사를 가는 진우를 미친 듯이 따라오는 창근의 자전거.
그렇게 멀어지는 창근.
그렇게 멀어지는 Boy, 진우.

창근의 세계가 어떠했는지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독고다이 처럼 그렇게 홀로 살아갔을 뿐이다.
창근이 못된 놈들에게 맞은 것은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다 군인에 짓밟혀 사라져간 셋방에 살던 대학생과는 다른 이유였을 테니까.

진우는 자신을 구타하는 신문 보급소 사장의 모습이
그 여대생을 구타하던 군인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그 순간을 참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의리도 성숙도 아닌, 
그저 혼란과 광기였을 뿐이다.

한 소년의 성장은 그러했다.
무엇 하나 명확한 것은 없었다.
그저 그 시대를 살아냈을 뿐이고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정의를 위해 사는 어른이 되지도 못했고, 창근의 옛 모습처럼 자신만을 위해 독고다이 처럼 사는 어른도 되지 못했다.
그저 그 시대를 바라봤고,
그 시대를 잊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그 시대는 아팠다.
우리는 아픈 시대를 살았다.
그 시대를 살아낸 소년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저 이 사실만 생각하며 이 영화를 봤다.
그저 기억하는 것이, 온전한 자신의 몫인냥 말이다.

+)
붙임말로, 진우 역을 맡은 연준석 군도 연기를 생각 이상으로 잘 했지만
창근 역을 맡은 김동영 군이 요즘 계속 눈에 띤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죽은 진수 역으로 등장했는데,
짧은 등장이었지만, 이 드라마 자체가 좋아서 그런지 꽤나 인상 깊게 남았다.
그리고 챙겨 보지는 않지만 스쳐가듯 보는 <빅히트>에서도 반갑게 느껴지고.
피부 때문에ㅠㅠㅠ 그리 잘 생겼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꽤 매력있고, <굿바이 보이>에서는 연기를 정말 잘 했다.
한 번 기대해보고 싶을 그런 배우가 아닐까 싶다.


 


20110702 / 정보소극장




생각보다 너무 슬펐다.
작년 이맘때 쯤이었을까? 그냥 대학로를 돌아다니다가, 아니 솔직히 명확히 기억난다. 동숭아트센터에서 하는 <오빠가 돌아왔다>를 보러갔다가 이 연극의 전단지를 보게됐다. 만화처럼 구성되어 있는 디자인에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이란 제목이 왠지 마음을 끌었다. 적혀 있던 글들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꼭 보고싶다 생각하고 놓쳐버렸다. 그리고 최근 다시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는 소리를 듣고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 겠다 생각했고 오늘 보게 된 것.

2인극, 스릴러?
백과사전을 팔기 위한 능란한 영업사원과 순진한 만화가의 점심식사?
백과사전을 팔았을까? 팔지 못했을까?
점심을 맛있게 먹었을까? 먹지 못했을까?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 보게 된 연극. 우선 너무 앞자리였다. 가장 첫 열에 것두 중앙. 예약순이었기에 내가 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넘 앞자리에 한 번 헉! 하지만 이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고.

2인극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두 배우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사실 두 사람의 숨겨져 있는 관계는 반전이라 할 틈도 없이 초반부터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처음에 아마 조금은 기대하고, 희망하고 있었나보다. 그들의 가정식 백반이 마치 한국판 <심야식당>처럼 그들의 엇갈링 인연을 다시 이어주고 상처를 위로해주고 존재가 될 것이라.

하지만 연극은 나의 작은 희망을 무참히 짓밟고, 아니 '심야식당'을 떠올린 게 무색할 만큼 '미저리'로 흘러간다. 두 사람의 관계도 관계지만 역시나 난 '꿈'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 알돈자가 부르는 노래 줄 이런 가사가 나온다.
"당신은 내게 꿈같은 환상을 얘기해.
허나 택도 없는 꿈 꿔서 뭐해
날 짓밟고 지나간 수많은 놈중에 당신이 제일 잔인해.
당신은 나를 절망으로 가득채웠지,
분노만있었던 이 자리에.
날 짓밟고 가는건 참을 수 있으니
꿈꾸게 하지 좀 마"

만화가가 영업사원에게 이야기한다. 불쌍한 개구리에게 밥도 떠 먹여주고 반찬도 떠 먹여준 나무꾼. 하지만 개구리가 자꾸 따라오자 도망을 가 버리고 훗날 개구리는 그 나무꾼을 잡아 먹는다고. 하지만 나쁜 건 나무꾼이라고. 도망을 갔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개구리에게 막대기를 던지고 침을 뱉었어야 한다고.

싸구려 동정. 싸구려 위선.

만화가가 너무 안타까웠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추억이 없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그 마지막 추억 하나마저 거짓이란 걸 깨달았을 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의 아픔을 내가 고스란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상처로 얼룩진 삶과 예술가의 조건(?)이 어우러져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 것 같다. 그가 원했던 그 가정식 백반의 마지막.

희망을 갖는다는 것. 그래서 꿈 꾸게 된다는 것. 꿈꾸게 하지 않았더라면. 잘 모르겠다. 요즘 들어서 그런 말과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잘 모르겠다는. 꿈이 너무 아프다. 말 한 마디가 너무 슬프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20110702 / 아트원씨어터 2관





꽤나 보고 싶은 연극이었다. 이 연극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 희곡론 수업을 통해서였다. 몇 개의 희곡 중 하나를 골라서 짧게 공연을 해야 했다. 이 희곡을 재밌게 읽어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작품이 선택되고 말았다. 그 뒤로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내용이 명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몇몇 장면과 연극으로 올린 것을 보고 싶다는 열망(?)만 남아있었다. 그런 작품이 무대 위에 오른다니. 게다가 출연진에 왠지 익숙한 이름. 서현철 배우님과 정승길 배우님. 놓치지 말고 꼭!!!! 보고 싶어졌다.

서현철 배우님은 <오빠가 돌아왔다> <너와 함께라면>을 통해 얼굴을 익히게 되었는데....그 자연스러운 연기...! 너무 좋았다. 그리고 정승길 배우님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내 심장을 쏴라>를 통해. 사실 '무궁화'에서는 그 이름까지는 못 외우고, 그저 그 분이 나왔던 에피소드가 제일 좋았을 뿐이었는데, '내 심장'에서 굉장히 낯익은 얼굴. 연기도 너무 너무 좋은. 내가 분명히 이전에 봤던 배우라는 생각을 하며 프로그램 북을 들쳐보니 '무궁화'의 그 분이셨던 거다. 그 뒤로 이름을 외우고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돐날>을 통해 두 분을 함께 뵙게 되다니.

연극은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게 시작된다. 웃음 포인트도 좋고. 첨에 사진사가 관객을 향해 돌 사진을 찍는 아기한테 하듯 웃어보라고 하는데 객석은 빵빵 터질 뿐이고. 특히나 미선 역을 맡은 황정민 배우님. 정말 어쩜 그리 익살(?)맞고 능청스러운지. 정말 관객에게 웃음 선사를 톡톡이 해주셨다.

정숙은 아기의 돌 잔치를 위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친구 신자와 미선에게 도움을 청한다. 곱게 옷을 차려입고 온 미선은 일은 커녕 어울리지 않응 꽃꽂이나 하며 수다를 떨고 이혼녀인 신자는 묵묵히 정숙을 돕는다. 컨디션이 영 좋지 않은 정숙은 아기의 울음소리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화장실로 달려가버리고, 미선은 그 이유가 정숙의 남편인 진호와 정숙의 친구인 경주가 삼각관계였고, 오늘 그런 경주가 오기때문이라고 한다. 기름에 넘어진 미선이 옷을 빨러 간 사이 정숙과 신자가 하는 대화가 참 서글프면서고 아팠다. 빨간 구두 이야기. 자기 신은 검고 불편한 구두라고 말하는 정숙에게 맨발 보다는 낫다거 말하는 신자. 결혼 생활에 갖게 된 회의감이나 이혼이라는 꼬리표 뒤에 살아가야 하는 감정에 대한 비유가 너무나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하다가도 또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흐름도 좋았다.

아이는 사라진 채, 어른들만 남은 돌 잔치. 지호의 친구들의 술잔치, 외설적인 농담, 화투판. 뭐랄까. 리얼리티가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서현철 님이 맡은 역은 돈을 꽤나 벌고 인맥을 쌓으려고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친구에게 논문 대필을 부탁하는 성기인데, 이전에 가볍고 코믹한 연기만 보아와서 그런지 왠니 낯설었지만 정말 연기를 잘 하시는 듯 하다. 그리고 시민운동을 하며 다단계로 연명(?)하는 경우 역에 김은석 님. 아- 이 분도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술 취한 연기는 최고!!!

뭐 다시 줄거리로 돌아가보자면 안주가 떨어진 이유로 정숙과 지호의 싸움이 시작되어, 성기의 논문 대필 의뢰 건으로 부부의 갈등은 극대화되어 폭발해버리고 만다. 초반 재밌던 웃음 포인트들이 사라지고 미친듯이 진지해지기 시작.

결국 그 갈등의 근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5개월 된 태아를 지워버린 아내에 대한 원망과 무책임한 남편의 행동에 대해 지쳐간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감정이 폭발할 때 정숙의 친구이자 지호의 옛 연인이었던 경주가 등장한다.

사실, 예전에 희곡으로 읽었을 때 조금 놀랐던 부분이었다. 20대에는 꿈 꾸었으나 나이와 함께 현실에 찌들어버린 불안정한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경주의 등장과 함께 치정극(?)이 된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게 그 당시의 어린(?) 나에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사실 결말은 기억이 안 났었다.

그런데 오늘 이 연극을 보니 내가 기억하지 못한 부분에 결국은 '사랑'이나 '치정'이 아니라 결국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변해버린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트윗에 그런 말을 쓴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뱃 속으로 돌아가자" 근데 이 연극의 마지막 결말이 무의식 중에 남아있었나보다. 내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지호의 대사에서.

마지막 지호와 경주의 난투극은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참 아팠다. 경주가 잠든 정숙에게 말하다, 죽은 엄마에게 하는 말들. 정숙에게는 성공했다 말했지만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자신. 대학생 때는 반짝반짝 빛났으니 지금은 시간 강사로 전전하며 제대로 가장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초라해져 버린 지호.

더럽다. 세상은.
더럽다. 방도.
더럽다. 자신도.
더럽다. 미래도.

그래서 어머니의 뱃 속으로 돌아가자.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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