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1/백성희장민호극장



 

사실 드라마 작가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극작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문학 시험에 등장할 법한 그런 작품의 작가들을 제외하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극작가에 대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없다. (. 마음이 부족한 게 틀림없다. 좋아한다고 말만 하면서 알려고는 하지 않으니.) 그런 내가 극작가와 연출 때문에 선택하게 된 첫 번째 연극이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의 <주인이 오셨다>이다. (사실, 극작가 중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는 첫 번째는 아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보고 싶었던 작품은 사실 정의신작가의 것들인데, 사실 보고 싶어만 했지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아마 고연옥 작가의 인터뷰를 읽게 된 게 계기였던 것 같다. <주인이 오셨다>의 집필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연쇄살인범이 탄생하는 과정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담았다는 게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일전에 봤던 <내 심장을 쏴라>도 한 몫을 했다. 정유정 소설을 극화한 <내 심장을 쏴라>의 팜플렛에서 고연옥 작가(각색)와 김광보 연출이 콤비라는 글을 봤었다. 고연옥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김광보 연출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때문에 조금은 익숙했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모두 너무나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주인이 오셨다>에도 일말을 기대가 있었다.

 

너무 어둡지는 않을까. 너무 우울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예상 밖으로 재미있고, 웃기기 까지 하다는 트윗 리뷰들이 너무 많이 올라오는 것이다. . 도대체 우울한 소재를 어떻게 녹여낸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막공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있어 또 서둘러 공연을 보러 갔다.

 

우선 백성희장민호 극장에 대해 살짝 언급을 하자면. 왜 그렇게 예쁘게 지어놓은 거야. 솔직히 정말 단순한 건물인데. 특별할 것 없는 모양인데 색을 정말 잘 쓴 것 같다. 서울역 뒤편에 자리 잡은 백성희장민호 극장과 국립극단 판은 건물 3개가 자를 세워놓은 것처럼 생겼다. 그러니까, 입구로 들어가면 건물 하나가 저 멀리 중심을 딱 잡고 있고 그 양 옆으로 아까 말한 백성희장민호 극장과 소극장 판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세 개의 건물이 모두 빨간색인데 단순한 건물이 그 색상 하나만으로도 톡톡 튀는 느낌이 된 것이다.

 

사실 그 근처에서 약 5년이란 시간을 살았는데만약 내가 살았을 때 있었더라면 정말 많이 좋아하는 극장이 되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엉뚱한 곳에 극장이 있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한가지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방음이 좀 안 되는 것 같다.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데, 차 소리가 두어 번 들렸다. 아마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음향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극장에 대해 만족한 것만큼 공연도 만족스러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솔직히 공연은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연쇄살인범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사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드라마를 본 이후로 나를 사로잡고 있는 질문이 있다. “악은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그곳에서 요한의 대사 중 그런 부분이 나온다. “연쇄살인범이 나오면 왜 그의 어린 시절에 관심을 갖는 지 알아? 이유를 알아야 안심할 수 있거든. 알코올 홀릭에 폭력적인 아버지. 성적으로 문란한 어머니. 근데 아냐. 그건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언론이 과장하고 부풀린 소설 같은 거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모두 괴물이 되는 게 아니고, 정상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괴물도 아주 많거든. , 우리 모두는 괴물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지.”

 

그 대사가 내 심장 깊은 곳에 박혔는지 악의 기원에 대해서 나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쇄살인범의 탄생을 탐욕스러운 할머니와 폭력적인 아버지, 그리고 다른 모습에 대한 편견으로 타인을 배척하고 이용하는 사회에 그 이유를 돌리는 <주인이 오셨다>가 나는 조금은 의문스러웠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기 이전이라면 당연히 이해하고, 같이 분노하고, 아파하고, 슬퍼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의문형이 되어버린다. 꼭 그렇다고 악이 탄생하는가. 그러한 악의 탄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어쩜 이 연극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은, 마지막 감옥에서 대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감옥에서 경찰이 주인공에게 던지는 그 말. “그 사실을 알고도 어떻게 널 미워할 수 있겠니.”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 밑에서 자라왔고,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세상의 냉대를 받아 왔고, 그래서 연쇄살인범이 되어버린 사람. 그런 사람을 쉽게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게 쉽게 용서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이 연극에서 정말 나쁜 사람은 아마도 주인공의 할머니일 것이다. 처음에는 힘 없는 흑인 여자를 거둬주는 마음 좋은 아주머니이지만 그녀를 부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결혼을 시키고, 그리고 말을 가르쳐주지 않음으로써 세상과 차단시켜 철저히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다면 그 할머니의 악은 어디서 온 것일까. 솔직히 이 연극을 보면서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연극을 보면서 <억울한 여자> <가정식 백반을 맛있게 먹는 법>도 생각이 좀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그래서 주위 사람을 속 터지게 만드는 <억울한 여자>. 그 여자를 보면서 과연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가, 정말 나쁜 건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여기서도 처음에는 남자 주인공이 <억울한 여자>의 주인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뭐 이야기하려는 바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실제 연극을 볼 때는 조금 생각이 났었다.

 

<가정식 백반을 맛있게 먹는 법>의 경우에는 그 긴장감에 있어서. 외로웠던, 가난했던, 그래서 쓸쓸했던, 사랑 받지 못했던 사람에게 베풀었던 의무적인 호감이 이후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하지만 그 상처가 어떻게 표출되는 지. 긴장감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게 표출되는 결과에 대해서는 <가정식 백반을 맛있게 먹는 법>이 좀더 내 취향에 맞았던 것 같다. 물론, 지향하는 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두 연극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는 게 올바르지는 않다.

 

연극은 리뷰들처럼 웃음 포인트가 꽤나 많다. 특히 연기들을 참 잘하시더라. 감정선도 좋고. 대사에서도 연기에서도 웃긴 부분들이 나와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많이 상쇄시킨다. 하지만 너무 의도적인 부분들은 오히려 반감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노숙자들이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부분은 솔직히 웃겨야 하는 거 같은데 웃기지가 않았다. 배우가 연기를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금은 더 스토리가 강조되고 실제를 반영한 무대장치를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이 연극은 최소한의 무대 장치를 사용해 식당과 가정집을 변경하고, 출연 배우들이 무대 뒤에 있는 게 아니라 무대 사방에 앉아 있는다. 시작할 때도 시작한다는 말도 없이 그냥 배우가 나온다. 뭐 그게 나쁜 건 아닌데, 정말 가정집이나 식당이 실제처럼 무대에 설치되고, 배우들도 안 보이는 곳이 있다가 나오고.. 좀더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강조된 연극이 되었으면 좀더 감정 이입도 쉽고, 조금은 또 다른 연극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이 연극에 대해서는 표현을 하는 게 참 어렵다. 좋다는 평의 리뷰들을 보며 내 안목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훌쩍이던 몇 명의 관객들에 비해 내 감정선이 메마른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고. 내 눈에 자신이 없는 것은 취향과 기호를 좋고 싫음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나는 비판에 대해 어떠한 근거나 대안책, 그리고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


20110929 / 압구정 CGV



 

홍보용 전단지와 예고편에 낚인 기분이다. , 이 마음을 어찌해야 좋으리오.

저번에 <모차르트 타운>을 봤을 때, 이 영화의 홍보용 전단지를 봤다.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외롭게 앉아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쓸쓸해 보이던지 그 전단지만 보고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송새벽이라는 이름만 확인하고 더 이상 전단지를 자세히 읽지 않았다. 그리고 <북촌방향>을 보는 날, <평범한 날들>의 예고편을 봤는데 정말, 송새벽의 눈물이 사람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 이 영화를 꼭 봐야겠구나, 다짐했다.

 

근데, 이게 왠걸. 나는 우선 옴니버스 영화인지 몰랐다. 옴니버스 영화를 그리 싫어하는 거 아닌데 또 뭐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 일단 송새벽이 나오는 Between. 송새벽이란 배우에 대한 호불호도 없었는데, 확실히 연기는 잘하는 것 같다. 표정이 참 좋다는 생각. 처음에는 그냥 일상에 지쳐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트라우마가 있는 한 남자가 그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꾸 자살을 시도하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러다가 중반을 지나가서야 그 남자가 겪은 사건이 무엇인지 눈치채게 되었다.

 

씨랜드 사건 때 아이를 잃은 아버지들의 눈물이 생각났다. 아마 내가 뉴스를 보면서 울었던 두 번째 사건이었을 것이다. 내가 감정의 표현이 서툰 아버지를 두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버지들의 눈물은 항상 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 내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간접 경험을 했기에 나까지도 아팠다. 잠들지 못하거나 죽고 싶어 하는 모습들이. 그리고 그날아침에 쏟아지는 위로 문자들이 그에게 어떤 위로도 될 수 없는 것도. 그래서 그가 내가 널 안아도 되겠니?”라고 말하며 울 때는 정말 많이 슬펐다.

 

아마 내가 널 안아도 되겠니?” 라는 말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근데 내 생각을 확신하기에는 이 영화는 너무 불친절하다. 너무나 많은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명확한 것이 없다. 남자의 상실감이 왜 성적이거나 변태적인 것들로 표출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해는 하면서도 확신은 할 수 없는 나의 첫 번째 의문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 AMONG. 5년간 사귄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한 여자의 이야기다. 포털에 씌여 있는 줄거리를 살짝 빌리자면 실연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다리 부상을 입고 고향에 내려가 요양하며 괜찮은 척하던 그녀가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잠이 오지 않던 밤, 사실은 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 포털의 줄거리를 빌려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 에피소드는 정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어 먹을 수가 없었다. 정녕 내 이해력이 딸리는 것일까? 수없이 자책했다. .

 

여자가 커피를 사러 간다. 그런데 문이 닫힌 커피 집에는 근조라고 적혀있다. 근조. 그때부터 그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이별 통보를 받고,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주위에서는 괜찮다고 한데, 그녀는 죽을 듯 아파한다. 내가 여기서 헷갈리는 게 그녀가 사고와 함께 다리만 다친 건지, 아니면 중절 수슬도 받은 건지 진짜 헷갈린다. 내가 정말 집중해서 영화를 못 본 건가. 정말 모르겠다. , 그건 계속 모르는 채 있는다 쳐도, 정말 서울로 다시 돌아온 그녀가 다리가 아파 움직이지 않는 꿈을 꿨다가 밖으로 나와 길에서 장애인에 대해 비웃는 듯 이야기하는 여고생들을 패는 장면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이해가 안 갔다.

 

그러니까 그녀의 상실이 무엇인지. 자신을 버린 남자친구인지, 오래 전에 자신을 버리고 죽었다는 연락이 온 아버지인지(이것도 명확하지 않다),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아기인지. 그것부터 명확하지 않으니까 내가 그녀의 어떤 아픔이 그런 폭력적인 성향을 불러일으킨 건지 공감하고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미 이야기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나. 그러니 영화가 재미 있을리 만무하다. 그나마 그 여배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예리’. 나는 처음 보는 배우인데 얼굴도 마음에 들고, 연기도 마음에 들고,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그나마 배우를 발견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에피소드는 DISTANCE.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던 한 남자 아이가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외국으로 여행을 갈 준비를 한다. 그러던 중 한 남자를 발견하고 그를 따라간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원인을 제공한 그 남자를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그 남자 아이. 하지만 자신이 때린 남자는 자신이 쫓아간 그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 에피소드의 경우도 이해는 하지만 이해가 안 간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여기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간다. 그런데 그걸 실천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보면 내가 그 고통을 겪지 않았기에 이렇게 편한 게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아픔을 100% 내 것으로 느끼지 않기에.

 

하지만 정말로 상실의 아픔과 고통이 성적인 것, 변태적인 것, 폭력적인 것으로 표출되는 것은, 나는 좋지 않다고 본다. 그럴 수는 있으나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그나마 여기도 배우는 마음에 들었는데, 왜 이렇게 어려보이는 애들을 썼는지. ‘한예리도 그렇고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이주승도 참 어려보인다.

 

몇 몇의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장면은 있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손가락 두 개로 사람이 달리는 장면 같이 연출한 것. 그리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강에서 얼음에 박혀있는 빨간 물고기. 그 얼음 덩어리를 가지고 와서 전자레인지에 녹이는 장면. 하지만 배우와 그 두 장면을 빼놓고는 내게 그렇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처음에는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는데 확실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던 듯 하다.

 

얼마 전에 봤던 <모차르트 타운>도 그렇게 모든 게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영화도 에피소드 식 구성이었다.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나는 옴니버스나 에피소드 식 구성의 영화라도 그런 게 좋다. <평범한 날들>은 첫 번째 것과 세 번째는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두 번째 거는 붕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택시 안의 나뭇잎으로 세 에피소드를 묶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ET 손목 시계가 의미하는 바도 잘 모르겠고. 아직 내가 영화를 보는 눈이 낮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모르는 것 투성이고, 의미를 파악할 수 없어서 조금은 보는 내내 답답했던 영화였다.

20110928 / 압구정 CGV



 

이제 내게 홍상수감독이 갖는 의미는 조금 줄어들 듯싶다. 지금까지는 잘 몰라서 알고 싶고, 궁금하고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고 있는 감독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내게 유명한 감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영화관에서 본 홍상수 감독의 네 번째 영화, <북촌방향>. 내가 처음으로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였다. 솔직히 호불호를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뒤 <하하하>. 정말 재미있게 봤다. , 내가 이 분을 좋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옥희의 영화>. 홍상수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아쉬운 점을 주저리 주저리하고 있을 영화를 내가 홍상수라는 이름 석자만으로 좋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구나, 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이번 <북촌방향>을 보며, 그 깨달음은 이제 확신이 되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그렇게 많이 좋아하게 되지는 못할 것 같다. <북촌방향>이 싫었다거나 나빴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의미는 있었으나 너무 어려웠고, 지루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지켜볼 뿐이다.’. 이상하게 그들의 삶에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시간 구성조차 명확하지 않아 어디가 선이고 어디가 후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사실, 말만 번지르르한 우리의 주인공 성준(유준상)을 보면서 그냥 문득 내 과거의 한 장면이 생각난 것 외에는. 성준이 배우를 하고 있는 여자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서 그녀에게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전에 3개월 가량 집 안에서 쁘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다가 밥을 구하기 위해 나간 거리에서 후배를 만나 일장연설을 하던 내가 생각나서 얼마나 우스워지던지.

 

우연에 대한 이야기들, 반복에 관한 이야기들. 솔직히 <북촌방향>은 너무 철학적이다. 생각하기가 싫다. 감정을 이입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리뷰들을 조금 읽어봤는데, 뭐랄까. 영화가 왜 그렇게 어려워야 하는 거야.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 트윗에서 홍상수 봇을 보는데, 거기에서 올라온 멘션 중에 <북촌방향> 대사들이 좀 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봤을 땐 참 좋았는데 영화 속에서 그런 흐름에서 쓰인 대사라는 걸 아니까 좀 웃겼다.

 

앞으로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기는 할 것 같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을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많은 영화를 보고, 좀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 만 같다.



 


 

나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한국 영화가 좋다. 그냥 옛날부터 그랬다. 꽤나 영화를 챙겨보지 못한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보고 싶은 영화 List만 한가득 적어놓고, 어떠한 것에도 밑줄을 긋지 못했다. 그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던 영화 중 하나 바로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이었다.

 

사실 김명민과 한지민, 그리고 오달수라는 배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였다. 추석을 맞이해 집에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봤다. (그런데 그날 밤인가 그 다음 날 밤인가, 추석 특선 영화로 해줬다. 조금 허무하고 허망한 느낌) 솔직히 그냥 재미있었다. 오락 영화로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김명민에게 그렇게 익살스럽고 능글맞은 역할이 잘 어울릴 수 있구나 조금은 놀라웠다. 어떤 역도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한지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이번 영화를 홍보하면 섹시한 모습을 포인트로 잡았었는데, . 한지민은 아무리 가슴골이 깊게 패여도 청순한 게 어울리는 것 같다. , 연기를 못한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사실 팬이라고 말하고 이런 얘기 하는 게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아직 내공이 부족하긴 한다. 좀더 연기에 깊이가 있어질 필요는 있다. 잘하기는 잘하는데, 분명히 모범생이자 우등생인데 한계점을 넘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냥 아직은 원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오달수. . 이 분은 정말 존재 자체로 빛이 난다. 너무 극찬하는 느낌이 있지만 정말 그냥 자연스럽게 극에 흘러 드는 느낌. 세 명의 배우의 삼박자가 고루 맞아 떨어진 것 같아 좋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뭐 탐정물 같이 사건을 파헤치는 부분인데, 임팩트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흠잡을 게 없다. (이건 칭찬인지 욕인지 잘은 모르겠다.) 다만 종교적인 부분들이 중요한 내용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잘 녹아 드는 것 같지 않았고, 객주와 부인의 관계를 관객이 너무 빨리 눈치챈다는 것. 뭐 살짝 아쉬움으로 꼽자면 이 정도인 듯 싶지만 전체적으로는 무난하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뭐 굳이 다시 몇 번을 반복해서 볼만큼은 아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그냥 생각 없이 보고 있을 수 있는 그런 영화. 하지만 타임 킬링 용보다는 괜찮은 그런 영화.


이번 여름, 통영에 갔을 때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랐다.
전망을 봐야 하건만,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볼 수가 업었다.
정말 백색 스크린을 보고 있는 듯.
그대로 폭 감싸안기면 나를 그대로 포근하게 안아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바람이라도 불면
살짝, 아주 살짝 저 아래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안개로 뒤덮였다.
그게 아쉽기보다는 신기했다.
정말 안개라는 게 무섭고도 신기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그렇다.
무섭고 신기하다.
안개 속을 걷고 있는 듯,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불안한데. 궁금하다.
앞에 뭐가 있을지.
한걸음 내딛으면, 나는 산꼭대기에서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버리는 걸까.
정말 아무 것도 없을까.

요즘 시시때때로 중얼거린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어쩌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게 되어버렸을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지.
눈물이 스며나올 정도로 좋아하는데,
왜 나는 달려가지 못하지.
달려가지 못한다는 건, 내 모든 걸 다 걸지 못한다는 건,
결국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잖아.
그럴까.
나는 간.절.함이 없는 것일까.

이사를 간다.
낯선 사람과 함께 살아야한다.
20살,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이후, 낯선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이제 익숙한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하지만 아무일이 되려고 한다.
내가 선망하던 직업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게 되다니.
나는 무섭고도 두렵다.
내가 선망하던 직업의 사람 앞에서도
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게 될까봐 두렵고,
내가 정말 그 길로 뛰어들게 될까봐 그것도 두렵다.

어떻게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까.
타인이었을 뿐인데.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되었는데.
나는 그 분 앞에서 내 꿈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게 내 꿈이 맞기는 한 걸까.
그 분이 누군지 조차 몰랐던 내가.
그 분의 직업을 선망해왔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은 어디까지 해야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좋아하는 것일까,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일까,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안개가 걷히면, 나는 어느 곳 위에 서 있게 될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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