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 2011년 11월 22일
공연장 : 명동예술극장



SNS 바이럴 마케팅에 넘어간 걸까. (공연을 보기 전에 한 문장 쓰고, 공연을 보고 나왔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가슴이 너무 벅차서 <꽃미남 라면가게 7화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이다. 지금, 바로 지금 적어 내려가지 않으면 또 이 마음이 무뎌질까봐. 결론은 엄청 좋았다는 것.) 사실 <오이디푸스>가 별로 보고 싶던 공연은 아니었다. 일단 신화와 고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해하기에 식견이 짧은 탓이다. 게다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어찌 되었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도 흥미를 끌지 못하는 한 요소였다. 근데 그 놈의 리트윗! 리트윗! 리트윗! 

 

아침에 눈 뜨면, 버스에서, 잠들기 전에, 할 꺼 없으면 만날 들여다보는 게 트위터인데, 그놈의 <오이디푸스> 리뷰가 리트윗으로 얼마나 많이 올라오던지. 그것도 호평에 호평만. 물론 관계자가 리트윗하는 것이니 당연지사 좋은 평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공연이기에 이렇게 평이 좋은 걸까. 게다가 올해 명동예술극장에서 본 공연이 나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고. 결국 리트윗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어디 한 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인터파크 티켓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이번 주 일요일이 막공인데 모든 날짜가 예매불가였다. "매진? 아니면 오류야?" 하면서 생기는 도전의지. 결국은 명동예술극장 사이트까지 가서 예매를 하고 말았다. 사람 마음이 너무 간사한 게 오늘도 와서 보니 대기자 명단이 사람들 이름이 쫙 써져 있는데, 그냥 내가 막 대견하고 기특하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무대는 꽤나 단순했다. 객석을 마주보고 언덕처럼 되어 있는 삼각형 무대는 경사져 있었고, 오른쪽에는 벽이 있었다. 쇠파이프(?)가 튀어 나와있는. 검은 색 무대. 그 외에 특별한 무대장치가 없었다. 혼자 멍하니 있다 뒤에 앉은 남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얼핏 엿들었다. 아니, 그냥 들렸다.  "배우들은 어디서 등장해? 왜 양 옆에 드나드는 문이 없어?"  "아니, 알아서들 하겠지."   "걱정돼서."  그들의 대화가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 공연을 어떻게 볼까 궁금해졌다. 암전이 되기 전 무대 왼쪽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여러 개의 국악기가 놓여 있었다. 요즘 이렇게 실제로 연주를 하거나 무대 전환시 BGM 등을 실제 노래로 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오늘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던 듯. 정말 멋있었다.   

 

그런데 오늘 공연에서는 멋있는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일단 그 벽에 시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연기, 그들의 몸짓, 그들의 대사, 그들의 호흡, 앙상블. 정말 멋있었다. 그 벽 파이프 몇 개에 의존해 걸터앉거나 아예 걸려 있거나 엄청 힘들 자세에도 디테일 넘치는 모습에 어느 누구한테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노래도 아니면서 오이디푸스를 부르거나 떼창을 할 때 그 하모니. 누구 하나 어긋나거나 튀는 사람 없이 몹시 조화로웠다. 

 

아쉬웠던 것은 내 자리가 오른쪽이어서 오른쪽 벽에 있는 그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거. 그리고 어쨌든 그들은 왼쪽을 향해 있기 때문에 소리의 감이 좀 멀게 들렸다는 거. 이 공연은 진심 중앙이나 왼쪽에서 봐야 할 듯. 오늘 가장 슬픈 부분이었다. 내 자리.  절대 오른쪽은 피해야 한다. 마지막에 그 벽 한 가운데에서 크레온이 등장하는데, 그 것도 하나도 안 보였다. 젠장.

 

시민 중 시인 역할을 하신 분이 있었는데 말투하며 호흡하며 너무 좋았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 한 번은 그 분의 연기를 본 적이 있을 것만 같았다. 뭔지는 명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분의 연기 스타일이 너무 좋았다. 약간 화자의 역할(?), 변사의 역할(?)을 하는 듯 하는데 무거울 수 있는 극에 유연함을 주면서 장면과 장면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나중에 나와서 프로그램 북을 보며 제일 먼저 그 분을 찾아봤는데 김은석. 그리고 눈에 띄는 세 글자, <다락방>. 그 분이 거기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연기 스타일이 대한 기호이자 개인의 취향인 듯싶다. 그 분 위에 <주인이 오셨다>에 출연하셨다는 배우 분의 프로필도 보았는데, <오이디푸스>에서 연기를 잘 하신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디서 봤다는 생각은 못했다.)  - 다시 한번 김은석 님을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돍날>에도 나오셨다. 이제 명확하게 기억이 난다. 그 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하하하. -

 

사실 주인공이나 중요 배우들에 대해서도, 극 자체에 대해서도, 무대나 연출에도 대해서도 할 말이 너무너무 많은데,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으나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림을 그리신 분도 그렇지만 춤 추시던 분. 커튼콜을 할 때 따로 인사를 하시는 걸 보니 아마도 무용을 하시는 분 같다. 나는 진짜 연극배우(사실 이런 걸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기는 하지만)인 줄 알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그 몸짓은 정말 멋있었다. 특히 그 벽 가장 위에서 내려오실 때. 그리고 특히 예언자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인간인지 새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그것을 연기하신 분.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오늘 가장 인상 깊은 배역, 혹은 배우, 혹은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분을 뽑을 것이다. 어느 배우 하나 모나는 부분 없이 훌륭했지만 (솔직하게 어떤 한 분이 극에 동화되지 못하고 조금 겉돌고 있는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극이 너무 좋았던 관계로, 한 분 정도야 그냥 모두 잘했다라고 말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한 분도 개인적으로 놓고 봤을 때는 부족함은 없으셨다.) 정말 그 분의 몸짓하며, 새 소리는 뭐라고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오이디푸스>는 첫 장면인 벽을 타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도 인상 깊었지만, 아무래도 몰입도가 생기는 장면은 오이디푸스와 눈 먼 예언자가 만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박정자 배우님의 연기도 너무나 훌륭했는데, 뭐 배우들에 대해 자꾸 말하자니 타자를 치는 내 손가락이 아플 터. 물에 오이디푸스의 얼굴을 비추는 장면이 무대 뒤 배경에 생긴 그림자와 함께 더욱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 음향이나 노래 소리도 그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 시켜주었다. 나중에 새가 벽으로 올라가고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조명이 나와 그 새를 비춰주는 장면도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것 같다.

 

배우들이 객석에서 등장을 하는 것도 좋았는데, 특히 양치기가 등장하는 장면은 웃음 포인트가 되어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완화시켜주었다. 어찌나 능글맞게 연기를 잘하시던지. (, 배우 분들에 대한 칭찬은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정말 글을 끝낼 수 없을 듯) 그리고 소소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손바닥에다 가루를 묻혀서 스모그나 안개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준 연출도 좋았고, 시민 역할을 하던 배우들이 얼굴에 천을 뒤집어 쓰고 돌을 던지던 연출도 좋았다. 질서정연하면서도 혼란스러운 그 모습. 얼마나 디테일한 부분까지 연출되었는지, 그리고 배우들의 합이 얼마나 좋은지 느낄 수 있었다.

 

극은 이야기 상으로도 그렇고, 연출상으로도 그렇고 뒤로 갈수록 더 흡입력을 얻는 것 같다.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결론을 알고 있음에도 긴장감을 멈출 수가 없다. 솔직히 오이디푸스가 두 눈을 잃는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었는데, 깜짝 놀랐다. 그의 고통과 슬픔이 극대화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단지 색으로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질감을 살렸다는 점도 좋았다. 그 깨진 조각들을 밟고 걷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은 더 서글프고 안타까웠으니까. 마지막에 바닥에 흰 색으로 사람 모양을 그리는 것도 꽤나 인상 깊었다. (여기서 한 가지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마지막에 오이디푸스의 독백은 마이크 에코(?)를 뺐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녹음한 건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녹음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약간 몽환적이거나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마이크의 에코를 사용한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으로 조금은 그 분위기에 방해를 받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나는 <오이디푸스>가 이렇게 슬픈 이야기인지도 몰랐고, 이렇게 비극적인 이야기인지도 몰랐고,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인줄도 몰랐다. 워낙 신화나 고전에 관심이 없는 인간인지라,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트윗에서 번안극이라서 조금 어려웠다는 글도 본 지라 약간은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조금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연극이었다. 인간의 이성과 지혜, 그리고 신이 정해주신 운명의 대립. 그 이야기도 좋았지만 신화 속 그들이 현대의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오이디푸스가 파멸한 이유는 신탁, 그 이유 하나뿐이었을까. 자신의 앞날을 모르는 무지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아닌 거 같다. 물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그를 파멸을 이끈 가장 크나큰 이유이지만 크레온의 마지막 연설이 나는 또 다른 부분을 의미한다고 본다.

 

크레온이 시민들에게 연설을 하는 장면은 꽤나 이 시대와 닮아 있다. 전통으로 지키겠다고? 이방인을 배척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방인에 대해 배타적인 현실처럼. 그리고 선대의 왕들이 그러하였으니, 이성과 지혜를 믿는 오이디푸스에게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그 모습. 그리고 크레온이 이 나라가 자신의 아버지의 피로 세워지고 자신의 누이가 왕비로 있는 자신의 나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인간의 이기를 엿보았다. 나라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크레온이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을 때, 겉으로는 환호를 외치고, 그 뒤에서 냉소를 보이던 시민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재앙의 근원이 오이디푸스임이 밝혀졌을 때, 그에게 보이던 멸시와 비난 사이에서 그를 위로하는 한 여인네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내게도 위로가 되어주었다.

 

공연을 보면서 조금은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뭐가 슬픈지는 알 수 없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도록 신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어 놓았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 아닐까. 하지만 그 가혹한 운명에서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의지를 찾고자 했던 오이디푸스. 그의 몸부림. 그것이 사람의 가는 길. 그 길이 비극일지라도. 꿋꿋하게 걸어나간 그가 많이 아팠고, 많이 슬펐다. 좋은 대사들이 너무 많아서, 그걸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머리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내 신체에 녹음기 기능이 있어 공연을 보고 나왔을 때는 모든 걸 다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대본을 찾아서 읽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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