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읽지 않은 책이기에 '지껄이기'에 끄적여야 할지, '작은서점'에 끄적여야 할지
살짝 고민을 했다.
근데, 그냥.
'앞으로 읽으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이곳에 남긴다.
<표백>에 관한 내용은 한줄도 없음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컴퓨터를 정리하다 '타이밍 리'라고 되어 있는 메모장을 하나 발견했다.
뭘까, 하고 열어보니.
제16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표백>의 장강명 작가의 글(?)이었다.

그러자 문득 기억이 났다.
친구가 앞뒤 없이 네이트온에 툭 던져 놓았던 저 길고도 길었던 글.
어디서 발췌한 글인지 그 출처는 알 수 없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꽤나 자극이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나의 나태함을 반성하기도 하고.
(물론 곧 잊어버렸다는 문제가 있지만)
글을 보내준 벗에게 타이밍 하나 죽인다면서, 그 글을 복사해 메모장에 붙여 넣은 뒤
'타이밍 리'라는 제목으로 저장을 한 것이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가 한겨레 문학상에서 수상을 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그것보다 반성해야 할 내 모습이 거울에 비춰진 듯 마음이 참 많이 쓰라렸다.
뭐, 그 후로도 '노력'이라는 건 잘 하지 않지만.
오래간만에 꺼내본 이 글을 잊지 않고 싶어서.
그리고, <표백>은 조만간 읽지. 뭐.

* 아래는 친구가 네톤으로 전해줘 내 메모장에 저장되었던 강장명 작가의 글이다.


"시간을 어떻게 냈어요?"

한겨레문학상 당선 이후 후배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마음이 반으로 갈렸다.
"운이 좋아서"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반이고, "결국 시간 다 나게 되더라"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두 가지 대답이 다 맞다.

운이 좋았다는 측면에서는 우선, 아이가 없다는 점이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유리했던 점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아이가 생기면 과연 글 쓸 시간이 있을까에 대해 나는 지금도 다소 회의적이다.

입사 전부터 한 애인을 계속 사귀어오고 있는 것도 시간을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새로 이성 친구를 사귈 때에는 주말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지 않을까.
특히 내 경우에는 애인이 3년간 호주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그 기간에 매 주말마다 달리 할 일이 거의 없었다.

나머지는 '시간은 결국 나게 돼 있다'에 관한 얘기들이다.
그 정도 시간은 낼 수 있고, 꾸준히 하면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식의 얘기가 아니라, 막상 해보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나는 취미도 여러 가지다.
마라톤도 하고, 알토 색소폰도 불고, 영화도 1년에 수십 편씩 보고, 한 시즌 이상을 다 본 미국 드라마도 여러 편이다.
주말에 빈둥빈둥 웹 서핑하거나 그것도 안 하고 멍하니 보내는 시간도 많다.
글쓰기를 포함해 여러 취미 생활 중 특별히 휴식 시간을 축내거나 잠을 줄이면서까지 열심히 한 것은 없었다.

색소폰을 배우면서 평소 거의 연습을 안 하고 주말에만 학원에 가서 레슨을 받았다.
레슨 시간이 연습 시간의 전부였던 만큼 당연히 실력이 늘지 않았고, 매번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어느 날 하도 부끄러운 마음에 "제가 배우는 속도가 좀 늦죠, 제 실력이 지금 어느 정도나 되는 수준입니까"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지금 우리 학원에서 색소폰 배우는 사회인이 모두 6명인데 그 중 장강명 씨가 제일 잘한다"며 "취미로 색소폰 배우는 사람 중에 장강명 씨처럼 2, 3년 넘게 학원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다.

글쓰기도 색소폰을 배우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 '장편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2006년 정치부에 있을 때였다.
여당팀 말진은 바쁘다.
아침 일찍 출근해 조찬 간담회나 당정협의를 챙겨야 하고, 시내판 마감 때까지 기자실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잦다.
그러니 글은 거의 주말에만 쓸 수 있었는데, 그래도 약 1년 만에 장편소설 하나를 쓸 수 있었다.

이게 대단한 속도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토요일에만 200자 원고지 20매씩 쓴다 해도 채 1년이 되기 전에 장편소설 한 권(200자 원고지 1000매) 분량이 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소설 문장을 쓰는 것이 기사를 쓰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신문 기사만큼 압축적이고 밀도가 높은 글은 거의 없다. ‘
한 4, 5매 정도 되는 분량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머리 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풀어나가면 예상보다 훨씬 양이 많았다.
하루에 원고지 50매 분량을 쓴 적도 있었다.
게다가 전업 작가라면 따로 발품을 들여야 했을 취재 과정이 필요 없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내 경우 입사 뒤 처음으로 썼던 장편소설의 주인공은 사회부 기자였고,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대학생, 고시생, 정부 부처 공무원, 주간지 기자 등이었다.
그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기에 글을 쓰는 데에만 집중하면 됐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전업 작가의 길로 나선 문학도가 문장미(文章美) 등에 있어서 더 나은 점이 있겠지만, 기자는 기자 나름대로 유리한 점이 있지 않을까.
 
2006년에 시도했던 첫 번째 장편소설은 다 쓰고 나니 너무 엉망이어서 어디에 응모할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글쓰기를 멈추지는 않았고, 이후 3년 동안 두 편의 장편소설을 더 썼다.
어느 한 편을 먼저 쓴 게 아니라 두 편을 동시에 썼는데 그 중 한 편은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됐고, 다른 한 편은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본심에 올랐다
년여 동안 장편소설 3편을 썼고, 5년째 정식 등단을 하게 된 셈이다. '가늘고 길게'라는 모토로 꾸준히 쓴 결과였다.

4, 5년이라는 시간의 길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짧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너무 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는 짧다고 보는 편이다.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것.
당연해야할 그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
그 요즘 사람 중에 하나인 '나.'
하지만 나는 아직 부모님을 너무나 사랑한다.

아니, 이것은 거짓말인가.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없다.
심지어 아버지와의 관계를 평생가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라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 순간,
부모님에게 느끼는 이 감사한 마음.
내가 부모님의 딸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이게 사랑이 아닌면 무엇이겠는가.

오늘,
일기장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릴 수도, 스마트폰의 SNS에 글을 쓸 수도 없었다.
그 이야기를 적어내려갈 수 있는 곳은,
종이와 펜 뿐.

하지만 집에 있는 일기장을 순간 이동 시켜 내 앞으로 가져 오게 할 수는 없었음으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 순간 떠오른, 정말 특별한 나만의 일기장.
그 이름은, '엄마'.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일기장이 아니면 적어내려 갈 수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물론 엄마라는 일기장에도 적지 못하는 일들도 있지만)
엄마는 무조건적으로 내편을 들지 않았다.
이게 내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엄마는 편을 들지 않은 자신 때문에
내가 더 답답해지지는 않았는지 걱정하셨다.
이게 내가 엄마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하지만 내가 엄마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문장 때문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너한테 듣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네가 실제로 느끼는 것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엄마 생각은 이래."

내가 쏟아내는 이야기들 뒤에 따라온
내 앞날에 대한 우려와 걱정들.
부모님이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나를, 내 상황을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내 선택이기에 존중하고 언제나 끝없는 인내로 기다려주신다.
그리고 아주 가끔,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서두로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다.
그리고는 그런 마음 조차도 '부모의 욕심'은 아닌지,
자신의 말이 자식에게 상처가 된 건 아닌지 걱정하신다.
단 한번도 내 삶을 강요한 적이 없는 나의 부모님.

그런 부모님이 말씀하신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은 더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번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엄마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엄마에게도 대답했다.
100% 맞는 생각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 엄마의 생각이 옳다고.

나는 지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나 역시 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라는 걸 해야만 한다.

오늘 엄마의 말이 너무나 따뜻해서,
너무나 좋아서,
나는 생각이라는 걸 하려한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 나의 부모님을 만난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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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24를 돌아다니다가,
<박한별's 팁스토리>라는 책의 서평단 모집 보았다.

사실, 연예인에 책에 그렇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연예인이라는 이름만으로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이들, 혹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들에 비해
너무나 쉽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하는 연예인 책들을 보면,
솔직히 아주 약간은 빈정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부러움이자 시기 그리고 질투였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실용서가 아닌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이들을 보면.
(솔직히 그렇다고 그들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에세이 분야라도.)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언제가 한번쯤은 내보고 싶다는 꿈을 꾸듯,
조금은 특별한 삶을 살아나가는 그들이라면,
당연히 그런 욕구가 더 강렬하지 않을까.
그러니 그들의 글이, 책이 단지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상업 추구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어쩌면 '언젠가는'이라는 네 글자로 간직해온 '꿈'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함부로 비웃어서는 안 된다고.

일부에서는 실용서에 비중된 그들의 책을 보고,
과연 전문가가 아닌 그들이 얼마나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우려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라면,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그들이 실용서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리고 이제는 그들 역시도 경쟁이다.
연예인들의 책이 등장했던 초반과는 다르게 이름만으로
'베스트셀러'를 보장 받지 못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연예인 책들과 대중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 역시 좋은 컨텐츠를 생산해내야만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감동을 받으려는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을 함께 공유하기 위함도 있다.
다른 세상을 책을 통해 만나보고,
다른 사람의 삶을 꿈꿔보고.

그래서 모든 책들은 다 소중하다.
내가 연예인 책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 <박한별's 팁스토리>를 집어든 이유이다.



오늘 여기 이렇게 배우 신하균에 대한 이야기를 끄적거리게 된 데에는 아주 많은 이유들이 있다. 신하균이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인 메디컬 드라마 <브레인>을 시청 중이라는 것도 있고, 나는 카세 료를 보면 이상하게 신하균이 떠오르는데, 며칠 전 카세 료가 나오는 <스크랩 헤븐>을 본 것도 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는 '10아시아'의 '10 LINE'이다.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디어 매체 '10아시아'. 사실 거의 맹신하는 수준까지 이르려다가 요즘 살짝 애정도에 브레이크가 걸린 매거진이다. (<브레인>의 경우에도 10아시아의 평이 젤루 좋지 않는 듯 하다. 흐흙.) 무튼, 10아시아의 10 LINE의 주인공이었던 신하균. 제목만 보고도 몇 명의 인물들이 연상되었다. 장진 감독님 계실테고, 정재영 배우님 계실테고. 그냥 당연한 듯 클릭을 하고, 첫 소개글 읽었다.



신하균 :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공동경비구역 JSA>, <킬러들의 수다>, <묻지마 패밀리>, <복수는 나의 것>, <서프라이즈>, <지구를 지켜라>, <화성으로 간 사나이>, <우리 형>,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 <예의 없는 것들>, <더 게임>, <박쥐>, <카페 느와르>, <페스티발>, <고지전>
- 신하균이 지난 10년간 출연한 영화들. 그리고 연기하고, 연기하고, 연기하면서 살아온 어떤 배우의 연기 이야기.

그렇게 그의 작품들을 하나 하나 나도 함께 곱씹어 보았는데, 이거 웬걸. 저 18개의 작품 중 보지 않은 것이 2개 밖에는 없었다. <서프라이즈>와 <카페 느와르>. 솔직히 <서프라이즈>는 기억 조차 나지 않는 영화이지만 <카페 느와르>는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한 영화이다.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봤는데, 드라마와 영화를 다 따졌을 때 보지 않은 작품이 5개도 채 되지 않는다) 그 동안도 신하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을 이토록 많이 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마도 그건 저 작품들을 선택했던 이유가 온전히 신하균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킬러들의 수다> <묻지마 패밀리>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는 장진 감독님때문에 본 것이고,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 당시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 때문에 (그 좋아하는 배우들은 이병헌, 김태우, 신하균이었던 것 같다. 송강호도 있었는지는...;;;), <복수는 나의 것> <박쥐>는 박찬욱 감독 때문에 봤고.

물론 나머지 영화들의 경우, '신하균'이라는 배우가 그 영화를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겠지만, 무조건 '그 때문에'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출연했던 대부분의 영화를 봤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 그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게 되었기 때문 아닐까. 그는 매 작품 단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가 하는 작품이라면' 하는 보이지 않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믿음을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막힌 사내들>에서 자살을 꿈꾸지만 계속 실패하는 추락 역의 신하균. 연극 <허탕>에서 임신한 채 감방에 들어온 화이를 사랑하게 된 젊은 죄수 달수 역의 신하균.(사실 신하균이 이 캐릭터를 연기한 건 사실이나 내가 본 게 신하균이 맞는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죽여야 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 킬러 정우 역의 신하균. <공동경비구역 JSA>의 순수하고 정 많지만 조금은 유약한 정우진 역의 신하균. 이때까지만 해도 매력있는 배우로 그를 인지하게 되었을 뿐이었는데.

정말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류와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의 영훈, <더 게임>에서의 민희도, <박쥐>에서의 강우는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멋지다. 특히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장기 밀매자들에게 장기만 빼앗긴 채, 알몸으로 길가에 버려져 있을 때. (사실 이 장면이 특히나 카세 료와 오버랩이 된다. 아, 순서상으로는 신하균이 먼저인데.) 그리고 송강호에게 강가에서 죽임을 당할 때. 그리고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는 취조실에서 거짓말 탐지기를 달고 차승원과 대립할 때. 유리벽을 치면서 하는 대사들. <더 게임>은 솔직히 잘 기억이 안나는데, 봤던 당시 쓴 일기에는 노인(변희봉)의 기억(영혼)이 들어간 젊은 화가 희도의 연기를 너무나 잘했다고 쓰여져 있다. 그리고 <박쥐>는 큰 배역이 아니었지만, 정말 짧은 장면에서 그의 진가는 너무나 빛이 났다. 



그리고 최근 <브레인>을 보며 그가 얼마나 디테일이 살아있는 배우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그냥 내가 참 오랜 시간 (지켜보는지도 모른 채) 지켜봤던 배우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니, 그가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멋진 배우였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가 앞으로도 멋진 연기를 보여주길, 더 좋은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제라도 그의 작품을 나도 모르게 보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길... 바라본다.


 

 

<주인이 오셨다>를 예매하려다 <지하생활자들>과 묶여 있는 패키지 상품을 보게 되었다. 인간의 심리라는 게 참 얄궂은 구석이 있어서, 1+1이나 패키지를 보면 한번쯤은 눈이 돌아가게 된다. <주인이 오셨다>를 기대하는 많은 이들이 김광보, 고연옥 콤비의 전작인 <지하생활자들>을 높게 평가하고 하고 있었고, 그들의 또다른 작품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먼저 보게 된 <주인이 오셨다>가 기대와는 다르게 내게 애매모호한 작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실망까지는 아니었지만, 크나큰 감동이나 재미, 의미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지하생활자들>에 대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재미가 없으면 어쩌지?”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며, 기대치를 낮추고 극장을 찾았다. 공연장은 <주인이 오셨다>의 백성희장민호극장과 마주보고 있는 소극장 판이었다. 역시나 다시 봐도, 참 예쁜 극장이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자 무대와 객석의 구조가 마치 마당극처럼 되어 있었다. 특별히 단으로 되어 있는 무대도 아니고, 그저 무대를 빙 둘러 여러 가지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무대를 바라보며 자를 세워놓은 듯한 구조로 객석이 있었다. 자유석이었기에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은 마치 풍물놀이를 하듯, 국악기를 연주하며 민요 같은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이 등장으로 시작한다. 공연은 나의 우려와 걱정을 비웃듯이 너무 좋았다.


 


사실 커다란 정보는 알지 못하고 봤는데,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한 여자가 말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자신을 찾아 떠난 길에서 그 여자는 뱀 사내를 만난다. 얼굴엘 뱀 비늘이 그려져 있는 한 남자. 그 남자는 다른 다는 이유로, 특별한 사람으로 인지되어 승승장구 하다 어느 날 모든 것의 허망함을 느끼고(?), 지하로 지하로 지하로 지하로 들어간다. 그는 높고 높을 것만을 바라보는 것에 지쳐서 땅 속으로 숨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신격화하고 의미를 부여해 또 그곳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려 한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던 사람이 잠든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 그리고 밝혀지는 그와 그녀의 관계.

 

사실, 어떻게 보면 <지하생활자들>은 꽤나 복잡한 연극이다. 꿈과 환상, 현실이 뒤섞여 있다. 시공간도 명확하지 않는다. 특별한 무대 없이 버스정류장’ ‘지하등의 단어 적혀 있는 깃발이 등장하면, 무대는 그 장소가 된다. 그런데 그게 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것 같다. 큰 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걸 구현하는데 있어서 적절히 신화와 환상, 그리고 현실을 이용해 표현했다는 것.

 

이 공연을 보면서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많이 생각났다. 연극과 음악극을 함께 보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봤던 <컨텍트>라는 공연도 생각이 났는데,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대사나 노래는 없고 대부분이 춤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 공연을 보면서 재미는 있었지만 왜 이걸 뮤지컬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무용극이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지하생활자들>을 보니 공연에 있어서 장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연은 풍자나 비판 등 사회적인 의미도 크다. 하지만 나는 그저 여자와 뱀비늘 사내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춰 기억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스토리 구성 상으로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은 등장처럼 노래를 부르며 줄지어 밖으로 나간다. 밖에서 계속 악기를 연주하며 일렬로 서서 관객들을 배웅하는데, . 너무 멋있었다. 나도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쉬운 것은, 고개 숙인 인사가 아니라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나왔어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철판이 안 된다. 흐흙. 국악과 연극의 절묘한 조화가 이뤄진, 우리 나라의 마당놀이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 그래서 국악이 참 좋다는 걸 깨닫게 해준,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지만 현실에 대한 풍장을 잃지 않는 스토리텔링이 참 좋았던, 좀 멋있는 공연이었다.

 

  관객 열전  


살짝, 공연과 상관없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보자면, 객석 왼쪽 면에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공연 시작 전, 극장 관계자들이 그 할머니와 이야기를 면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께 무언가를 설명해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한참을 이야기하던 직원은 직책이 더 높으신 분을 모시고 다시 와서 또 면담(?). 멀리 있었기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상하게 궁금하고 신경이 쓰였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티켓 없이 무작정 들어오셨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알 수 없는 밀담이 끝나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여자 주인공이 대사를 치기 시작하는데 그 할머니가 뜬금없이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누가 봐도 박수가 나올 타이밍도 아니었는데. 흐름이 끊긴 배우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공연을 이어나갔다. 배우의 지인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뭐 확인할 바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러던 할머니는 채 공연이 반이 지나가기 전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렇게 끄적이고 보니, 공연은 안 보고 꼭 할머니만 관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하.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정체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공연장에 본 또다른 관객열전 2. 이번에는 왼쪽 객석에 앉아 계셨던 모녀, 혹은 사제 지간으로 추정되는 분들이다. 여자분과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단정한 이미지의 소녀이다. 공연은 마치 연극과 음악극이 하나가 된 듯, 노래의 비중도 크다. 마치 민요를 부르듯, 창을 하듯. 구성지게, 그리고 신명나게. 또 이런 우리의 국악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추임새’! 하지만 솔직히 일반 관객이 추임새를 넣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다. , 나만 그런가. 무튼, 그런데 그 중년의 여성분이 너무나 열심히 추임새를 넣는 것이다. “얼쑤!” “그렇지!”. 그러니까 그 옆에 앉은 소녀도 따라서 추임새를 넣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았다. 그들도 극을 만들어가는 배우가 된 듯해 보여서, 사실 조금은 부러웠다. 처음에는 그냥 딸이 이런 쪽을 공부하는 아이가 아닐까 생각했다가 나중에는 음악 감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내가 정체가 궁금했던 두 번째 분들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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