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본 연극이고.
이미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 연극이다.
그 글을 가지고 제출용으로 다듬은 것.
또 옛날 문서들을 뒤지다가 발견.
또 그냥 그렇게 잊혀지는 게 싫어서 이렇게 남긴다.
흔적을.

+ 헉. <브레인>에 나오는 동승만 선생님이 <내 심장을 쏴라>에 류승민 역을 맡은 이승주 배우였다.
  동승만 선생님을 보면서 연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 심장을 쏘라>를 보며
  "또다른 남주인공 류승민 역을 맡은 이승주 님도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얼굴. 게다가 연기도 꽤나 괜찮았다. " 라고
  적어 놓았었는데. 
  동승만 선생님이었어. 아하하하. 급 반가움이 배가 된다.




살아있는 시체에게 보내는 강력한 한 방!
연극 <내 심장을 쏴라>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청춘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핑크빛 미래를 동반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회색빛으로,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채, 그렇게 뛰지 않는 심장을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 자신의 욕망은 숨겨 놓은 채 그저 세상이 맞춰놓은 잣대에 맞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울하고 불안한, 그래서 살아가기를 포기한, 살아있는 시체가 된 청춘에게 날리는 강력한 한 방의 연극이 있다. 청춘이 될 그대들, 청춘을 보낸 그대들, 청춘인 그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연극 <내 심장을 쏴라>.

그대 이름은 청춘이로구나.

스물다섯. 한창 혈기 왕성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나이의 두 청춘이 각기 다른 이유로 세상에서 고립된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된다. 강원도 산골의 수리희망병원 501호. 이수명(김영민)은 어머니의 자살로 인해 가위에 대한 공황장애 및 정신분열로 6년 간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왔다. 그래서 아버지에 의해 퇴원 일주일 만에 다시 수리희망병원으로 보내졌을 때도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수명에게 있어 정신병원은 오히려 세상보다 안전한 자신만의 현실세계였다.

하지만 가족 간의 유산 싸움에 휘말려 강제로 입원당한 류승민(이승주)이 등장하면서 평온하고도 잔잔한 수명의 세계는 조금씩 흔들리게 된다. 단 한순간도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승민.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던 수명에게 승민은 말한다. 송장과 다른 게 무엇이냐며, 숨지도 견디지도 말고 살자고. 결국 수명은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승민의 마지막 희망이자 자유인 패러글라이딩을 돕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어머니의 자살, 재벌가 사생아, 시력 상실 등 각 주인공이 안고 있는 아픔과 상처는 사실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고, 그들의 마지막 비행에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은 정신병원이 아닌 세상 속에서도 누구든 상처와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춘이라는 이름 앞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정상과 비정상의 대한 구분이 모호해지는 순간. 우리는 정신병원에 갇힌 평범하지 않은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수명이 하늘을 날 때, 승민이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나아갈 용기를 얻었듯이, 우리도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만의 정신병동에 가둬두었던 심장을 꺼내들 수 있을 것이다.

광란의 트위스트에 동참을!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청춘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수명과 승민 외에도 11명에 달하는 정신병자들과 간호사 및 보호사들이 등장한다. 오늘의 운세를 점치는 십운산 선생, 승민에게 업혀 다니는 만식 씨, 떠들지 않으면 참을 수 없어 항상 조잘거리는 김용, 쉼없이 바지를 내리는 거시기 아저씨, 버킹험 공주, 정신병원의 커플 한이와 지은이, 한이 엄마…. 각각의 캐릭터는 정신병동의 모습을 충실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경험해본 적 없는 정신병동의 모습이 상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와 동떨어진 장소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

하지만 몇 개의 에피소드는 그런 그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끼게 만든다. 정신병원의 커플인 한이가 지은이를 잃고 돌덩이가 되어 버렸을 때는 우리는 그들도 사랑을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정신병동 안에도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청소부가 수학문제를 꺼내들어 수명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공부해서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에는 우리는 그들에게도 꿈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사랑도, 꿈도, 희망도 존재하는 정신병원. 어쩌면 그들의 세상도 우리의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 정신병원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압축시켜 놓은 것 뿐일지도. 그래서 그들이 혼란에 빠져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울 때도, 그들의 난동에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함께 아파할 수 있고, 그들이 하모니카 연주 소리에 맞춰 신나게 트위스트를 출 때는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세상 속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워서 출 수 없는 그 춤에 살며시 동참해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대에는 연극적 상상력이 가득!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동명소설을 무대화 한 것으로 연극 '인류 최초의 키스'에서 감옥을 배경으로 유쾌한 연극적 상상력을 보여줬던 극작가 고연옥, 연출가 김광보 콤비의 작품이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스토리 외에도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 활용과 연출이 돋보였다.

정신병원, 신림책방, 수봉산, 유원지 등 소설의 방대한 배경을 연극으로 옮겨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는 꽤나 단순했다. 하지만 조명과 연출만으로 그 단순한 무대를 가득 채웠고 관객은 상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조명만으로 자동차 추격전, 보트 추격전을 만들고, 연기만으로 물속이나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만들어 낸다. 또한 무대 위에서 표현되기 어려운 수명의 정신 분열이나, 승민의 패러글라이딩 장면에서는 흑백영상이 적절히 사용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카리스마 넘치고 젠틀한 역할을 주로 해왔던 김영민은 긴 머리에 어눌한 말투, 세상의 루저 이수명으로 분해 극을 이끌어줬다. 미친 연기가 그토록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외모가 돋보이는 이승주는 공개 오디션에서 선발된 신예로 거침없는 류승민 역을 맡아 김영민과 앙상블을 펼쳤다.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인물들과 이야기.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정신병원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곳이 과연 미친 곳일까? 누가 과연 진정한 병자일까.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채 멈춰버린 심장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의 우리일까? 아니면 세상 밖의 그들일까.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지 말라는, 심장을 쏘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던 두 청년의 외침을 떠올려보자. 그러면 어디선가 트위스트 음악이 귓가를 스쳐올지도 모른다. 세상의 눈에 상관없이 살며시 다리를 흔들어 춤을 춰보자. 그리고 한바탕 신나는 광란의 트위스트가 멈추고 나면 쿵쾅쿵쾅 뛰는 심장의 소리를 느껴보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