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글은 어디에다 분류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 글의 주제가 '만화'가 되었던 적은 없으니.
<자학의 시> <실종일기>처럼 지류에 그려진 만화였다면 그래두 '작은 서점'에 넣었겠지만,
오늘 내가 하고픈 이야기들은 웹툰으로 보게 된 만화에 대한 것이니.

사실, 나 스스로에게 굉장히 안타까워 하는 부분 중 하나가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이것은 잘못된 표현인 듯 싶고
만화를 돈을 주고 빌려보거나 직접 사서 읽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자린고비 부모님으로부터 만화는 나쁜 거라는 세놰를 받아왔으니.

그래도 남들이 빌려주는 만화책이나 누군가의 집에서 발견한 만화책은
목숨을 걸고 보기는 했다.
성인이 되어 조금은 자유롭게 접하게 된 만화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만화책을 좀더 어렸을 때부터 봤더라면 조금더 상상력이 가득한 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주 아주 아주 아주 허망하고 쓸데 없는 생각.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주변으로부터 <목욕의 신>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옆에서 큭큭 대며 웃는 친구를 보고 (원래도 웃음이 많은 친구이긴 하지만) 얼마나 재밌길래 하는 생각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이게, 이게, 이게, 이게 대박일세.

사실, 그가 구사하는 유머도 유머이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스토리였다.
분명 풍부한 스토리는 아닌데, 어쩌면 조금은 어디서 본듯한 식상할 수 있는 갈등 구조인데
그 소재를 '목욕관리사'에서 찾았다는 것이 너무나 훌륭하게 느껴졌다.
'목욕관리사'라는 소재를 통해 의미를 갖으면서도, 스토리로는 대중성을 확보하는.
특히나 '꿈'에 관한 부분은 너무나 당연한데, 당연해서 더 좋은 뭐 그런 것.

그렇게 시작한 <목욕의 신>은 결국 3일동안 그의 작품을 다 찾아보게 만들었다.
나란 인간이 원래 좀 그렇다.
하나가 좋아지면 끝을 보고 싶어하는
(처음에는 주위의 인기 때문에 그냥 '좋다'라고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패션왕>도 살짝 봤는데 그건 내 취향이 아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좋다고 해도)
그런 성격. 

그래서 <안나라수마나라> <두근두근두근 거려> <3단 합체 김창남> <삼봉이발소> <보스의 순정>까지 다 보았다.
(단편집 <코끼리 애교>에서의 'BEGONIA LOVES ME'와 글만 쓴 <육식공주 예그리나> <히어로 주식회사>는 아직 보지 못했다.)

두번째로 본 게 <안나라수마나라>였는데, 나는 위에 언급한 작가님(만화가)의 작품 중 이게 제일 좋았다.
솔직히 그림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뭐라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데...
가끔 사람이 종이 인형처럼 표현된 게 있는데, 그것도 좋았고...
일등이의 얼굴이 소시지 같았다가 감정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부분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들의 '이야기'였다.
모든 작품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좋다.

누군가는 너무 식상한, 누구든 말할 수 있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알면서도 잊고 사는 게 '꿈'이고 '희망'이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절망'하고 '좌절'하게 되는 게 인간이다.
하일권 작가의 작품에는 이런 인간의 가장 누추한 곳들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추해서 숨겨버리고 싶었던 나의 본 모습을 들키게 된다.

그.리.고.

위로받는다.

결.국.은.

위로받아 버린다.

<안나라수마나라>를 보면서는 애니메이션 영화 <일루셔니스트>가 많이 생각났다. 그냥 마법사를 다룬다는 소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멀쩡한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는 세상을 보면서는.... 그냥 현실을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
꽃밭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런 생각.

그냥, 세상이 많이 무서웠고 나는 그래서 더욱 따뜻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근두근두근 거려>의 경우, 남장여자는 많이 봤지만 여장남자 스토리는 처음이라 신선했다.
또한 수구라는 소재도 참신했던 듯.
그냥 이 작가는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래도 남들이 무심히 지나갈 수 있는 부분들,
혹시 모르고 지나쳐버릴 수 있는 아주 '작고'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물론 <두근두근두근거려>의 내용은 사회적인 부분보다 (물론 그런 점도 있었지만)  청춘 로맨스에 가깝지만.
<두근두근두근 거려>를 보면서는 솔직히 일본의 학원물을 많이 생각났다.
이야기는 조금 가벼웠지만, (수영복에 대한 집착이 모성에 관한 부분이었다던지 아버지와의 관계는 솔직히 조금 식상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말 한마디 말 한마디가 가슴에 와서 박혔다.

"그래
질 수밖에 없는 경기는 없어.
질 수밖에 없는 인생은 없어.
결과가 정해진 인생 따윈 없어."

인간보다 더 따듯한 로봇 이야기 <3단 합체 김창남>.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에 위트를 섞어 넣을 줄 아는 그의 재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삼봉이발소>는 너무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은 덤덤하게 봤던 것 같고, 원작자가 따로 있었던 <보스의 순정>은 김종학 프로덕션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는지... 대중적인 냄새가 너무 폴폴~ 풍기는 것 같았다. 일단 재미는 있었지만 <보스의 순정>을 먼저 보았더라면, 이토록 그의 작품을 찾아보는 팬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3일동안 너무 휘몰아쳐서 그의 작품을 본 탓인지.... 제일 처음에 봤던 <목욕의 신>은 다시 한번 보고 싶고. <안나라수마나라>는 소장하고 싶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의 글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내 지친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기에, 나는 그가 아주 많이 매우 부러워졌다. 

P.S 사실 '하늘보기'에 넣을 정도는 아닌데. 처음에는 '밤새 보기'에 넣었다가...... 쓰는 동안 마음이 변해버렸다. 
      뭐, 앞으로 좀 더 지켜보자구. 하하하..!!
 


 


생각해보면 장진 대장님을 좋아한다고 말해놓고 막상 대장님의 작품은 그리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영화 말고 연극) 돈이 없었던 건지 마음이 부족했던 건지. 분명 대장님이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인데.  

 


실제로 장진 감독님의 무대를 본 것은 2002<웰컴 투 동막골>. (처음 장진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99 12 24 EBS ‘예술의 전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연극 허탕을 통해서) 진실과 거짓의 비율을 적절히 섞은 이벤트용 사연으로 공연 티켓을 선물로 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공연을 보기 위해 대전에서 서울에 올라갔다. 티켓 2장을 받았지만 남자 친구가 없는 관계로, 서울로 올라가는데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친오빠와 함께. 녹음기도 아니고 공테이프를 넣은 워크맨으로 공연을 녹음을 하기도 했고(나쁜 짓입니다!), 역삼역 지하철 역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떼오기도 했다. 그 녹음 테이프는 솔직히 내 웃음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서울에 오면 정말 장진 대장님의 작품을 많이 볼 줄 알았는데. 필름있수다 건물 앞에서 죽치고 앉아 일거리를 구걸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또 그렇게 다른 길을 걷고 다른 삶을 꿈꾸고. 잊고 살다 겨우 보게 된 공연이 장진 대장님의 극작품이 아닌 연출작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그 공연장에서 대장님을 보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릴 것 같이 떨렸던 그 순간들. 하지만 또 잊고 살고. 

 


이렇게 구구 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장진 대장님의 작품 <리턴 투 햄릿>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12년 차 팬이라고 말하기가 너무 무색하게 실제 무대로 본 3번 째 작품. 솔직히 장진 대장님의 작품은 어떠한 코멘트를 하는 게 힘이 든다. 내가 대학로 검정치마(극 중에 배우들의 대사에 등장하는 비평가)도 아니고. 물론 중얼중얼거리는 블로거 정도는 되겠지만, 그냥 대장의 작품은 머리로 판단하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좋았던 점, 좋지 않은 점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 그저 마음으로, 마음으로만 마주하고 싶다.   

 


라고, 말하고 나는 아마도 할 말은 다 할 것이다. 우선! 초반에는 너무 진지한 감이 있었다. 연극에 대해, 배우에 대해, 예술에 대해, 산업에 대해. 진지한 성찰들. 분명 코미디일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 진지함이 나쁘지는 않다. 예상 외라서 그렇지. 요즘 보는 연극들이 왜 이렇게 예술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예술 하는 습관> <레드> <갈매기> 그리고 오늘 <리턴 투 햄릿>까지.

 



(여기까지 쓰고 한참을 또 그냥 그대로 백지 상태로 두었다. 공연을 본지 보름이 지난 후 다시 이 글을 끄적인다)

 


캐스팅 조차 모르고 갔는데, 일단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기분 좋게 반겼다. 대령 님.(순간 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살짝 고민했다.) 역시나 처음으로 본 건 <웰컴 투 동막골>과 이후 장진 감독님의 영화들. 약간 한재석을 닮은 듯 느끼할 수 있는 얼굴이나, 나는 그런 얼굴이 좋은 걸. 후훗. 그래서 인상 깊게 봤었다. <웰컴 투 동막골>을 보고 난 후에 사진을 오려서 다이어리에 붙여 놓기도 했었고, 장진 감독님 팬 카페에 대령 님! 너무 좋아요!”라고 썼다가 대장 님이 아니구요?” (장진 감독님의 팬 카페에서는 감님을 대장이라고 부른다) 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었다. 그렇게 내게는 인상 깊은 배우 김대령.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진짜 이번 <리턴 투 햄릿>에서는 장난이 아니었다. 역시나 시간은 허투루 흐르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모 뿐아니라 그분의 연기도 반짝 반짝 빛이 났다. 멋있었다. 그리고 배역도 좀 좋았다. 대학교 때에는 주인공이었으나 연극배우를 고수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예인이 되어버린 친구에게 햄릿 배역을 빼앗겨야 했던 재영 . 그 친구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것. 그건 비단 질투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연극을, 무대를 친구가 더 이상 최고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두 사람이 무대에서 검투를 하는 장면, 그리고 그 장면이 끝나고 난 후. 한 유행가 가사처럼 연극이 끝난 후나누는 대화들.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키사라기 미키짱> 때문에 미칠 듯이 좋아했던 김원해 아저씨. , 역시나 멋있다. 진짜 이 분은 앞으로도 매우 매우 아주 아주 많이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어린이 공연을 하고 재연 배우를 하는 연극판에서는 꽤나 짬밥을 먹은 베테랑 배우. 여배우와 결혼했으나 아내에 비해 잘 나가지 못하는 남편. 어린이 공연을 하고 분장도 지우지 못한 채 분장실로 온 그들을 일부 배우는 비난한다. 아내 생각도 하라면서, 연극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라는 등. 하지만 그를 이해하는 한 사람. 무대감독. 무대 감독은 한 때 배우를 꿈꿨으나 무대 감독으로 전향을 한 인물이다.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또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객석에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또 생각하게 되었다.

 


13
. 침대 위에서 엄마를 마주보고 내가 연극 배우가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라고 묻던 나를 떠올린다. 엄마는 언제나 그러하듯 단정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때 가봐야 알지.” 반대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묻는 내 마음 속에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가난한 딴따라 따위 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28살의 나는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연극 배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 지 혼란스러워 한 채. 그렇게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잠시 감정적이어지긴 했지만 이건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초반 30. 살짝 당황을 했다. 웃길 줄 알았던 공연은 나를 이렇게 과거 어느 순간으로 데려다 줄만큼 진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나 장진감독님은 장진감독님이다. 햄릿을 마당극처럼 변환하여 극 중 극 형식으로 보여주면서 빵빵 터지기 시작하는데

 


그렇데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짚고 가야 할 부분이 또 있다. 극 중 배우들이 말한다. 햄릿 등의 고전이 연극적으로 의미가 있으면 뭐 하냐고.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는데. 연기를 하면서도 어려운 데, 관객들이 어떻게 공감을 하고 웃을 수 있겠느냐고. <산불>을 보면서 했던 고민들이 떠올랐다. <오이디푸스>를 보면서 느꼈던 환희가 떠올랐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언제나 그러하듯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어려운 공연을 의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예술적으로, 비평가들의 구미에 맞게 하는 것이 과연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했었다. 예술가들의 자기 만족은 아닐까. 결국 관객이 없다면 그 공연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얼마 전에 본 <오디이푸스>가 너무 좋아서 또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웃기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잖아. 왜 연극이라는 게, 공연이라는 게, 무대라는 게 가벼워야지, 웃음이 있어야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대중은 그 공연을, 연극을 즐길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야 하고.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 공연이 천편일률적인 필요는 없으니까. 이런 공연도 있어야 매력적인 게 아니겠어, 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아무튼 마당극 햄릿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햄릿을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 라는 감탄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관객 참여도 꽤나 있었고. 사투리 쓰는 햄릿이라,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희극적인 부분이 너무 많기는 했지만 서양 고전을 마당극과 믹스한 것은 참신하고도 새로워서 너무나 좋았다. 물론 죽음과 탄생의 교차점이라는 마지막 부분이 너무 따뜻해서 조금, 아주 조금 아쉽긴 했지만(나는 왜 이렇게 너무 따듯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지 모르겠다. 현실이라는 게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라고 생각하나 보다.) 연극이라는 것에 대해서, 배우라는 것에 대해서, 또 공연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많이 생각하게 된 작품이었다. 내가 좋아한, 비주류였던 장진 감독님이 어느새 주류가 되어 계신다. 나는 그게 가끔, 때때로 조금은 슬프다가도 아직은 내가 그 분을 좋아하고 있음이 행복해진다.


 


그냥, 내게 그 분은 꿈이었다. 그냥, .

가장 강력한 스펙은 스토리라고 말하는 그분이 좋다.

그분을 수식하는 수 많은 단어 중 이야기꾼이 가장 좋다는 그분이 나도 좋다.

정말 오랜만에 장진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한 번쯤은, 아니 기회가 된다면 여러 번 이 작품을 다시금 꺼내어 보고 싶다.

 


배우열전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 때문에 알게 된 배우 이엘. (영화 <황해도>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는데, 그 영화는 보지 않았기에 딱히 할 수 있는 코멘트가 없다) 그녀의 연기를 실제로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 잘 한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울리는데 있어서는 무리가 없었다. 약간 어설프지만 나름 귀여웠다고 해야 할까.

 


여일(왕비)배역의 김지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 솔직히(나는 솔직히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단어를 붙이지 않은 모든 말들이 거짓말인 것처럼, 그 단어 붙인 말들만이 진실인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은 아니데, <지하 생활자들>에서 인상 깊게 본 배우였다. 참 예쁘고 참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푼수(?) 같은 캐릭터도 어울리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배우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대 감독 역의 배우.(‘김슬기였던 것 같은데 확신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또 솔직히!) 연기가 가장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칼을 뒤집어 쓰고 나와서 구성지게 사투리를 구사할 때는 왜 저 사람이 저 무대에 서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살짝, 아주 살짝 그녀가 부러워졌다.

 


마지막으로 마당극에서 변사(?) 역할을 했던 배우.(이 배우도 이름에 대한 확신이 없다) 참 구성지게 연기 잘 하시더라. 아주 매우, 인상 깊었다. 이지용 배우님과 박준서 배우님은 별 다른 코멘트는 하지 않으리. 그저 이지용 님은 <퀴즈왕> 생각이 많이 났고, 박준서 님은 <아는 여자>. 웃기는 거지만 보는 내내 제가 도둑이라서 잘은 몰라요. 그래도 사랑하면 그냥 사랑 아닙니까. 무슨 사랑 저런 사랑 그런 게 어딨습니까. 그냥 사랑 아닙니까. 제가 도둑이라서 잘은 몰라요”(정확하지는 않음)라는 대사가 내내 떠올랐다.



 


드디어 스킵을 하지 않고 <안테나>를 다 봤다. 최근 다시 카세 료 홀릭인 탓도 있고, 이 영화를 처음 소장했을 때에 비해서 내가 편안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꽤나 우울했는지, 이 영화를 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당시 스킵을 해 가면서 이 영화를 봤던 느낌은, 어렸을 때 없어진 동생(마리에) 때문에 엄마는 미신 등에 기대고, 동생(유야)은 미쳤고, (유이치로, 카세 료)는 자해와 SM에 빠지고. 이런 콩가루 집안? 이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 장면 한 장면, 대사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다시 보니, 꽤나 슬픈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이 가져오는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아마 그 아픔과 고통의 깊이를 상실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거라고. 갑자기 딸이, 동생이 사라졌다. 임신 상태인 엄마는 어린 유이치로를 다그친다. 왜 옆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냐고. 유이치로는 동생이 사라진 날 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게다가 집안에서 함께 숙식하던 삼촌의 자살 장면까지도 목격을 하니, 어린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16살 때부터 유이치로는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그걸 견딜 수가 없어서. 그리고 엄마는 마리에가 사라진 해에 태어난 아들 유야를 마리에와 동일시 한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유야는 안테나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과 마리에게 돌아온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아마도 마리에가 돌아온다는 것은 유이치로의 기억 속에서 마리에가 복원되고 있다는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테나는 (미신 같지만) 촉이나 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파장. (교감과 교류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철학이라곤 해도 제가 연구하는 건, 인간의 육체적인 측면을 근거로뭐랄까그러니까 인간의 고통에 직접 맞딱뜨려서 거기서부터 고통이라는 것을 고찰하고, 그런 고찰을 통해서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뭐 그런 것인데요. 이해가 되시나요?”

 


유이치로가 SM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여성을 찾아가서 했던 말들이다. 하지만 그녀를 찾아간 게 비단 연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학대(?)를 당하며, 고통을 겪으며 유이치로는 잊어버렸던 옛 기억들을 되찾게 된다. 꼭 성적인 부분이 들어가야만 했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기억을 되살린 유이치로가 꿈 속에서 마리에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장면은 꽤나 가슴이 아팠다.

 


솔직히 100%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영화였지만, 나쁘지 않았다.(카세 료의 영향이 크리라) 얼마 전에 봤던 영화 <평범한 나날들>이 많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는 상실의 고통이 왜 폭력과 성적으로 변태스러운 것들로 표출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 놓고, <안테나>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는 내가 있어서 참 아이러니했다.

 



P.s
카세 료는 정말 멋있는 것 같다. 그의 연기도 그렇고. 앙상한 그의 몸이 너무 좋다.(, 나야 말로 너무 변태적인가.) 정말 욕조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리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친구가 굉장히 좋아하는 연극 <인디아 블로그>. 친구가 말하기 전에도 예매 사이트에서 꽤나 눈에 띄는 연극이었다. 일단 인도라는 곳에 어느 정도의 관심과 흥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반복되는 추천에 오늘 드디어! <인디아 블로그>를 보러 갔다.

 

인도.

중학교 때, ‘뽀미라 불리는 선생님이 있었다. 나쁜 말이긴 한데, ‘뽀글뽀글 미친X’의 줄임말이었다. , 근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 선생님이 방학이면 인도에 다녀오셔서, 그 이야기를 해주셨다. 인도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곳인데, 선생님은 그곳에 가면 정말 삶이 치유가 되고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단지 열흘, 보름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아파트를 구해 한 두 달 생활을 하고 오셨다. 좋아하는 선생님은 아니었는데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이상하게도 나도 인도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된 인도.

그리고 20대 초반, 부천국제영화제에서 봤던 인도 영화 <하리옴>. 프랑스 여자가 인도 택시 기사 남자와 함께 다니며 사랑에 빠진다는, 인도 남자 배우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몰입하기가 어려웠던, 하지만 그 인도 곳곳의 풍경과 그 배경 음악에 반해버린 그런 영화였다. 로드 무비 같은 그 영화를 보며 또 한 번 나는 인도를 꿈꿨다.

 


그 이후로도 인도 여행을 갔다가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신 분의 이야기, <슬럼독 밀리언네어><세 얼간이> <김종욱 찾기> 등의 영화로 인도를 느꼈다. 그런 내가, 인도를 다룬 연극 <인디아 블로그>를 보게 되다니. 순수하게 인도를 여행한 두 남자의 이야기. 그러니 일단 먹고 들어갈 수밖에.

 


서문이 길었지만, 하고픈 말은 어쨌든 기대가 되는 연극이었다는 거다. 공연장에서 그곳이 자신의 집인 듯 익숙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역시나 이 공연을 여러 번 본 포스가 느껴진다.) 친구가 일단 문 앞에서 나눠주는 인도 전통차 짜이를 마시라고 했다. 두 남자가 인도 차 짜이를 내게 건넸다. 근데, 웃긴 건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이 배우인 줄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배우들은 암전 후 조명이 짜잔 하고 켜지면 등장하는 게 관례인데, 로비에서부터 관객을 맞이하는 배우들이라. 신선했다. 객석이 오픈 되고 나서도 배우가 무대를 어슬렁거리며 객석에 계속을 말을 건넸다.

 


커플이세요?”

자녀분과 어머님이세요?”

이거 들고 있다가 이따가 좀 해주세요

 


등등등.

도대체 관객을 얼마나 활용하려고 이런 사전 조사를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친구는 키스 타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흘렸다. 그리고 친구가 나를 앉힌 자리에서도 뭔가의 이벤트가 펼쳐진다고 했다. 가방까지 내려 놓으라면서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데,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닥칠지 궁금하기도 했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설마 춤을 추라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친구에게 엄포를 놓았다. 이상한 거 시키는 자리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공연은 시작되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게 개인적인 이야기(라 여겨지는 것들)로 시작된다. 동물원을 좋아하는 이야기. “군자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을 가봤냐고. 자신이 군자에 산다고. (, 나도 얼마 전까지 군자에 살았는데, 그 어린이 대공원을 못 가봤네.) 그리고 과천에 동물원도 좋아한다고.(, 나 내일 거기 동물원 가는데.) 코리끼 열차 타고 중간에 리프트 타고 올라가면 호랑이 나오고, 그 밑에는 블라 블라 블라. (, 나도 내일 저 코스로 움직여야겠다.)”

 


사실 별거 아닌데, 내가 내일 가려고 하는 곳이 배우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 왠지 같은 정서(?)를 갖은 것마냥 기분 좋았다. 연극의 내용은 대충 그러하다. 사랑을 잊어버린 남자, 찬영과 사랑하는 여자가 인도로 떠났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찾아 떠나는 한 남자, 혁진의 여행기로 그려진다. 혁진의 그녀가 바로 성은인데, 그 이야기를 하면서 혁진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내가 앉은 그 자리가 바로 성은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였던 것. 공연 중간 중간 끊임없이 혁진은 성은의 눈을 보며, 성은에게 말을 건다.

 


처음에는 친구가 말한 이벤트 석이라는 게 이런 걸지는 생각도 못했기에 너무나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어젯밤 꿈이 생각이 나면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사실 어젯밤에 꿈을 꿨다. 꿈 속에서 난 어떤 연극을 보러 갔다. 두 번째로 관람을 하는 연극이었는데, 배우랑 미칠 듯한 아이 컨텍을 하는 중이었는데(나는 배우랑 눈싸움을 할 때 져서는 안 된다는 그런 강박관념이 살짝 있다) 갑자기 나를 향해 윙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뭔 상황인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처음으로 공연을 보고 난 후 블로그에 그 리뷰를 올렸는데(꿈 이야기이다!) 그 리뷰를 읽고 내 얼굴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공연을 보러 가니, 리뷰를 잘 읽었다는 표시로 알은체를 한 것이다.

 


사실 꿈 속의 그곳은 내가 현실에서 얼마 전에 입사 지원을 했다 서류 통과 조차 하지 못한 곳의 연극이었다. 근데 꿈 속에서 그들이 다시 내게 일을 해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현실 속에서 1차에 나를 떨어트린 이들이 꿈속에서 다시 내게 함께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그 꿈이 생각났을 때 너무나 심난했다. 떨어졌을 때, 괜찮은 줄 알았다. 그리고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꿈속에서 나는 다시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안 괜찮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모르는 척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 온종일 심난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들이 날 성은이로 연극에 참여시켰다. 나는 온전한 관객이 아니었다. 그들에 의해서 나는 어쨌든 그 연극을 만들어가는 일부가 되었다.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내가 진짜로 원하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연극을 보는 내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배우들의 땀과 열정은 언제나 나를 전율하게 만든다. 내 눈을 보고 말하는 연극 속 혁진도 좋았지만 배우 역시 좋았다. 이 연극 <인디아 블로그> 참 좋더라.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다. 어디에 포인트를 맞출 지는 관객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여행이라는 것이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사랑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사랑에는 조금은 무심하지만 여행에 관심이 많은 나. 그런 나에게 연극은 지금 떠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 사랑에 무심하다 했지만 나도 여자인지라 사랑 이야기도 꽤나 가슴이 아프게 다가왔다.

 


특히나 사랑을 잊어버린 남자 찬영의 이야기. 사실 친구의 장례식 후 다시 인도를 찾았다고 했을 대 그 친구가 누구일지 대충 예상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펐던 것. 사실 연극을 보러 가는 길 버스에서 한 남자의 통화를 엿들었다.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들려왔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전화. 수화기 넘어 사람에게 울지 말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가 얼마나 사람의 심장을 아프게 하는지 뼈져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연극에서도 누군가의 죽음을 만났다. 보았다. 살아남은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정확히 뭐가 슬픈지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다. “사랑이 다했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는 청춘이지만, 떠남을 알고 있고 외로움을 알고 있고 사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이 연극이 많이 좋았나 보다.

 


아무래도 길을 나서야 겠다.

그리고 언젠가 꼭 이루고자 했던 사막에서 많은 별을 보면서, 응아를 싸겠다던(?) 다짐을 지켜야겠다.

 


길을 나섰지.

어린 왕자를 닮은 넌 혼자서 사막에 가고 싶다고 했어.

사막여우를 보고 싶다던 너의 꿈을 그땐 왜 웃었을까?

길은 사막으로 나를 안내해 줄거야.

별을 따라 가면 되겠지. 모래바람이 불어올거야.

두려움은 모래가루에 섞여 흩어지고

니 웃음소리에 내 발은 떠오를거야.

이 글 끝에 니가 있겠지.

 

오랜만이야.

 

              - <인디아 블로그> -

 

 


P.s )

주저리 주저리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냈지만 연극적으로도 너무나 좋았다.

멀티맨이 들려주는 음악과 라이브 연주.

배우들의 노래. 관객을 참여시키는 것.

2인극이지만 무대를 꽉 채우는 연출.

영상을 통해 연극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것.

그리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장면.

연극은 정말 매력적이다.

바다를 가져오지 않아도, 아주 작은 몸짓 하나, 표정 하나로 바다를 만든다.

그런 연극이 난 참 좋다.



원래는 오늘 친구와 동물원에 가기로 했는데, 취소가 되었다. 살짝 날씨가 추워서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추운 날씨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만약 취소가 된다면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는 <치코와 리타>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

 

씨네큐브에서 3시에 <치코와 리타>, 6시쯤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이 있다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젠장. 상영 시간 간당 간당하게 도착했더니 <치코와 리타>는 이미 매진이 된 것이다. 씨네큐브에서 매진된 영화를 보기는 처음이다. 또 다시 불타오르는 승부욕(?). 조만간 <치코와 리타>는 꼭 봐야겠다.


 

여하튼 6시까지 기다리기는 좀 싫어서, 황급히 미로스페이스의 시간표를 검색해보았다. 3 10분에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이 있는 것! 정말 빛의 속도로 씨네큐브에서 미로 스페이스로 이동. 인테리어만 보면 미로 스페이스가 더 내 스타일인데, 이상하게 같은 영화를 상영해도 나는 꼭 씨네큐브로 가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오랜만에 찾는 미로스페이스였다.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이 보고 싶었던 이유.

일단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희망에 가득 찬 느낌이 들지 않는가.

게다가 포스터에 떡하니 박혀있는 오다기리 조의 모습도 관심을 끌기에 좋았다. 그렇게 관심을 갖고 보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원래는 이 감독의 영화 중 <아무도 모른다>만 본 줄 알았었다. 근데 내가 꽤나 재미있게 본 <공기 인형> <걸어도 걸어도>도 이 분의 작품이었다는 것! , 역시나 무심하다. 무심해. 무튼 이 세 작품이 모두 그 감독의 연출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이 더욱 보고 싶었다.

 


영화는 참 예뻤다. 우리 나라에는 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영화를 아이들만의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해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느꼈다.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노인의 모습. 그리고 변해버린 가족(의 형태, 부모님의 이혼)을 바라보는 아이들.

 


부모는 헤어졌고, 형은 엄마를 따라 외갓집으로 갔고 동생은 인디 음악을 하는 아빠와 함께 산다. 형의 소원은 다시 네 식구가 모여 사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화산이 폭발해서 이사를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신칸센이 개통되고, 그 기차가 스쳐 지나갈 때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고, 그곳을 향해 간다. 수많은 기적을 기대하고 그 곳으로 향하는 형제와 그들을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변의 사람들. 정말 소소한 이야기들인데. 그 소소함이 어찌나 귀엽고 따뜻하게 느껴지던지. 다들 소원을 말할 때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한 형. 참 따뜻하더라. 그러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들의 그 기적을 위한 여행이 결국은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위한 여행처럼 느껴져서.

 


하지만 형이 변한 게 나쁜 방향이 아니듯 모두들은 그 여행을 떠나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여 선생님과 결혼하는 기적을 빌겠다고 말했던 녀석이 기차가 지나갈 때 숨겨왔던 진짜 소원을 말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짜 소원. 그게 참 가슴 뭉클했다. 그리고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소원에서 죽은 강아지를 살려달라는 소원으로 바꾸고 그곳을 찾아간 또 다른 친구 녀석.

 


어쩜 그들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마음을 간직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달려나가는 것.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보는 것. 그래서 기억하는 것. 간직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었을지도.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 예쁘다. , 따뜻하다. 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빠랑 같이 살고 있는 둘째 녀석의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음악들도 좋았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살며시 나에게 말해본다.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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