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30 / 성신여대 CGV  (스포 포함)

 

 

 

 

노출이나 야한 영화로 홍보되고 있는 <은교>. 워낙 사람들에게 관심 영화로 회자되고 있어서 궁금하기는 했으나 솔직히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땡기는 영화는 아니었다. 아마도 내가 스스로 관심을 갖기 전 너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거려서 오히려 '나는 별 관심이 없소이다.'하는 청개구리 심리가 작용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동안 정지우 감독 영화 자체에 크게 감흥을 얻지 못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헤피엔드> <사랑니>는 집중해서 보지 못했었고, <모던보이>는 영화관에 가서 재미있게 보기는 했으나 큰 여운이 남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자 한 이유는,

 

1. 주위 관심과 기대에 대한 궁금함

2. 박해일이라는 배우에 대한 호감

3. 원작의 작가인 박범신의 <외등>이란 소설과 단막드라마를 엄청 좋아했다는 사실

 

이었다.

.  

영화를 보기 전 감상평이나 리뷰들을 잘 보지 않는데, 우연히 본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은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누군가는 은교밖에 보이지 않는 영화라고 했고, 누군가는 박해일이 미스 캐스팅이라고 했다. 일흔의 노인이 여고생을 사랑한다는 것이 대중에게 매우 불쾌할 수 있는데 박해일이 노인 분장을 함으로써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는 있었으나, 결국 관객이 일흔 노인이 아닌 박해일과 은교의 사랑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영화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짚어 본다면 잘못된 캐스팅이라고.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은교가 팜므파탈처럼 행동하면서 젊음과 늙음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들이 그저 치정극으로 끝나버리게 된다고 했다. 그리 나쁜 평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리 좋지도 않았던 평을 듣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우선 영상은 매우 아름다웠고, 홍보되고 있는 것만큼 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배우의 전라나 특정 부위의 노출이 선정적이거나 수치심을 느끼게 표현되지는 않은 것 같다. 은교 역할을 맡은 김고은이라는 배우는 주위 평가대로 정말 적절한 캐스팅이었던 것 같다. 연기도 외관에서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도 꽤 훌륭했다. 그리고 조금은 논란이 되었던 박해일에 대한 캐스팅도 말투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던 부분만 뺀다면 절대 나쁘지 않았다. 중간에 은교에게 헤나를 받으며 젊은 날의 모습으로 그녀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엔 박해일이 노인 분장을 했던 게 최선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김무열. 솔직히 나는 김무열이 맡은 서지우 작가의 캐릭터가 참 좋았는데, 캐릭터만큼의 폭발적인 연기는 없었던 것 같아서 좀 아쉬웠다. 더 돋보일 수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무난 무난 무난했던 느낌이랄까.

 

일단 내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젊음과 늙음에 대한 부분은 좋았다. 서지우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이적요가 축사로 했던 말. 젊음이 상이 아니 듯, 늙음이 벌()은 아니다...(맞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그 메시지는 참 좋았다. 그리고 그리 치정극(?)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은교와 이적요의 사랑 부분에서는 불쾌감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렇다할 감동이나 감흥, 여운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저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 정도!

 

..

서지우와 은교의 격정적인(?) 정사 씬. 그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지우의 차 안에서 두 사람이 키스를 하고 나서 은교가 묻는다. "나한테 왜 이래요?" 나도 궁금했다. 서지우가 은교한테 왜 그러는지. 서지우는 말한다. "외로워서." 나는 그 대답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그런게 그 정사 씬에서 은교가 서지우에게 "여고생이 남자랑 왜 자는 지 알아요?"라고 묻고 "나 좋아해서 그러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서지우에게 "외로워서에요."라고 대답하는데그 대사가 전혀 공감도 되지 않을뿐더러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 전에 이적요의 이마에 키스까지 해주고, 서로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 듯 굴더니, 곧바로 서지우와 격정적인 정사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화 속에서 은교는 단편소설 '은교'를 서지우가 쓴 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예쁘게 표현해준 서지우에게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전개는 너무 급작스러웠다는 느낌이었다. 이적요와 교감했으나 단편소설 은교를 서지우가 쓴 줄 알고, 자신의 감정을 착각했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면 은교의 외로워서요라는 대사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영상도 예뻤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 박해일이 나와서 좋았으나 이렇게 영화를 보고 나자 나는 또 원작이 미칠 듯이 궁금해졌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책 <은교>를 읽기 시작했다. 박범신의 소설은 솔직히 말하면 <외등>밖에는 알지 못했다. <외등> 역시 소설로 먼저 접한 게 아니라 KBS TV문학관을 통해서 영상을 본 후 너무 좋아서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은교>. 중간 중간의 감상평 따위는 다 집어치우고결로만 이야기 하자면 책이 훨씬 좋았다. 물론 책과 영화가 동일할 수 없는 것이며 장르의 특수성을 이해해 별개의 것으로 바라봐야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더 좋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이라는 게 똑 같은 것을 봐도 감동하는 포인트도 다르고,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이나 상황도 다르다. 나는 영화에서도 관심이 갔던 것이 서지우와 이적요의 관계였다. 그들의 파국은 은교라는 여고생의 등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문학 세계와 작품에서 시작이 됐다고 여겨졌다. 예술에 대한 열망과 열등감 등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그들 사이에 있었을 거라고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굉장히 미약하게 표현이 되어 있었는데, 책은 그러한 관계에 좀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부분이, 스승의 작품을 훔쳐져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를 한 서지우가 도둑놈 취급을 받고 몰매를 맞고 나서도 이적요를 다시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이미 균열이 생겨버린 관계이며, 아무리 처음에 자신에게 작품을 준 사람이 이적요라할지라도 스승의 허락 없이 작품을 훔쳐서 발표해버린 제자가 아무 일도 없듯이 다시 스승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인지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소설을 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전개 자체가 이적요의 시인노트와 서지우의 일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은교가 서지우와 이적요가 서로 사랑했다고(성적인 의미의 사랑이 아님) 말하는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그 사이에서 자신이 소외감을 느꼈을 정도라고. 그렇다. 나 역시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나 흥미로웠다. 책을 보다 보면 나의 처녀, 은교라는 문장이 나오는데나는 은교가 여고생 은교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발표되지 않은 이적요의 산문이나 소설 등도 지칭한다고 여겼다. 단지 여성을 사이에 두고 파국을 맞은 게 아니라, 작품이 그 균열의 기반이 되었을 것이라고. 문학과 평단에 대한 성찰적인 부분들도 인상 깊게 다가 왔다.

 

또한 서지우와 은교와의 관계도. 책이 좀더 현실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영화화를 위해 각색을 하다 보면 취사 선택해야 할 부분도 생기고 가공을 해야 할 부분도 생기는데은교와 서지우의 관계는잘 모르겠다. 명확하게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책과 같이 설명을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랬더라면 은교가 그렇게 아름답게만 그려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결국 최종적인 생각은 잘 모르겠다이다. 영화 속에서 은교와 이적요가 나누는 대화 중 뾰족한 연필은 슬프다라는 부분은책에서는 없었는데참 좋았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의 교감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그 연필 이야기가 참 와 닿았기 때문이다.

 

서지우. 친구는 책 <은교>를 읽고 서지우가 너무 찌질해서 싫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책장을 덮는 순간에, 혹은 덮은 이후에도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인물이 서지우였다. 요즘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서지우 같은 인물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시인이 되고 싶고, 작가가 되고 싶어 미친 듯이 애썼지만 결국은 시적 감수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인물이천재가 아닌 범인인 이상에 사람은 다들 서지우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가질 수 없는 무엇인가를 그렇게 원하고 동경하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한 만큼 증오하며. 나는 책에서 서지우가 사람을 시켜 이적요에게 은교 남자친구인 것처럼 해달라고 하고, 나중에 그가 이적요에게 모욕을 줬다는 것을 알고 그를 때리던 장면이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영화와 책이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책이 더 재밌게 느껴졌던 것일 수도 있지만영화보다는 책에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은 <은교>였다.

 

 

 

20120429 / 남산예술센터

 

 

 

공연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 (특히 뮤지컬 마니아들) 동일한 공연을 몇 번씩 반복해서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무대라는 게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라이브이기 때문에 캐스팅에 따라, 혹은 그날 배우의 컨디션, 객석 분위기에 따라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하지만 나는 마니아까지는 아닌 것인지, 단지 돈이 없어서인지 똑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보느니 다른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세상에 봐야만 하는 공연이 얼마나 많은데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공연들이 있다. 작년 5월 경에 본 <푸르른 날에>도 그런 공연 중 하나였다. 올해 무대에 다시 오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번 다시 보고 싶었던 연극. 만원의 행복을 기회로 예매를 하고 남산예술센터로 향했다.

 

사실 이렇게 한번 봤던 공연을 다시 볼 때에는 걱정 혹은 두려움이 앞선다. 처음의 그 감동을 다시 느끼지 못하게 될까봐. 그런데… <푸르른 날에>는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역..나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텔링이며, 내가 좋아하는 연출이며, 내가 좋아하는 연기다. 아무리 인상 깊게 본 공연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게 한계가 있어서, ‘, 이런 장면이 있었구나.’ ‘이런 대사가 있었어?’ 하는 부분들이 있다. 처음 본 것마냥 새롭게 느껴지는 장면과 대사도 있고, 한번 봤기에 흐름을 따라가기 쉬워 처음과 다르게 더 의미가 있게 다가오는 부분들도 있었다. 예전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좋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난번에 그저 지나쳐 갔던 부분이 더 인상 깊게 남기도 했다. 감동하고 느끼는 포인트도 그때 그때 달라지고.

 

처음 <푸르른 날에>를 봤던 작년에는연극 보기를 이 공연으로 다시 시작했었다. 공연 보는 것 자체를 한참을 잊고 살았었는데이 공연을 통해 다시 연극을 보기 시작했고, 그저 내가 객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내용도 좋았지만 연극적인 재미에 푹 빠졌었다고나 할까. 지난번 공연에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와 그로 인한 한 개인의 인생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좀더 푸르른 날에라는 시 자체에 몰입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얼마 전 <불후의 명곡2> 송창식 편을 보다가 임태경이 부르는 푸르른 날에를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작년에 이 공연을 볼 때에는 푸르른 날에가 서정주 시인의 시인 줄도 몰랐고, 송창식의 노래인 줄은 더더욱 몰랐다. 오늘 공연을 보니 심지어 그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불구하고, 그때는 몰랐었다. 불후의 명곡에서 그렇게 이 노래를 드는데 가사가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푸르른 날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아름다운 가사를 보고 들으며, 이 연극이 더욱 생각이 났고, 오늘 보니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이 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아픈 역사와 개인사를 들춰내 의식을 고취하고 인생을 말하고자 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결국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하는 그 한마디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사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공연을 보기 전 걱정이 됐었다. 처음 이 연극을 봤을 때에는 참 많이 웃고, 참 많이 울었다. 그런데 이번에 안 웃기고 안 슬플까봐. 정말 다행이었던 게 우선 자리 자체가 지난 번과 완전 반대였다. 지난 번에는 C구역이었는데, 이번에는 A구역.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 지난 번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어서 일단 기분 좋은 스타트라고 생각했다. 정각이 되기 전 무대에 나와서 절을 하는 여산, 바느질을 하는 정혜, 그리고 객석 사이를 어슬렁 어슬렁거리는 여산의 벗. 특히나 객석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여산의 친구는 솔직히 지난 번에도 그렇게 시작했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나서…. 또 한번 다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연극을 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연극을 도와줄 아이라고 하면서 소품 등을 갖다 주고 치우는 배우를 소개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좋다. 연극과 실제의 경계를 허무는. 리얼리티 넘치는 연극도 좋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지금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연극이 좋아졌다. 특히나 <푸르른 날에>인생=연극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다. 여산과 정혜의 기억 속의 일들이 엉키며 환상과 과거가 마구 교차하는 부분도 좋고, 신파 가득한 이야기를 신파조로 연기하는 부분도 다시 봐도 유쾌하고 웃기다.

 

대부분의 캐스팅이 작년과 같았는데, 주인공인 민호(여산의 젊은 날)의 형, 진호 역할에 뉴 페이스가 등장했다. 작년에는 박윤희 배우님이었는데(연기 참 잘하셨었다), 이번에는 바로 바로 바로 바로 바로 바로 바로 바로 정승길 배우님. 첫눈에 반했던 여자가 동생(민호)의 연인임을 알고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던 민호의 이복 형. 동생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정혜에게서 뒤 돌아서 서서 출가를 하고 나자 그 여인과 아이를 책임져야 했던 형, 진호.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진호는 박윤희 님과 정승길 배우님의 더블 캐스팅이다. 오늘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다시 한번 박윤희 배우님의 연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승길 배우님의 등장과 함께 나는 마음 속으로 환호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가 이름을 외우는 연극배우가 그리 많지는 않은데, 정승길 배우님은 이제 확실히 얼굴과 이름이 매칭이 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내 심장을 쏴라>, <돍날> 등에서 봤던 정승길 배우님을 예상치 못하게 다시 뵙게 돼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한창 공연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살짝 저 형 진짜 웃기지 않니?” 하는 말이 들려왔는데, 왜 내가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지. 하하하.

 

옆에 홀로 이 공연을 보러 온 여성 분은 공연이 시작하자 마자 눈물 바다. 나는 공연 중반부부터 주르륵 주르륵 주르륵 주르륵. 이미 한 번 봤던 공연이라 웃음은 작년보다 덜 한 것 같은데, 눈물은 작년보다 더 한 것 같다. 알고 있어서 덜 슬플 줄 알았는데, 알아도 슬프다.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오고, 어떻게 전개될 지 알고 있으니까 더 먼저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죽는 것이 두려워 살아남기를 선택한 민호. 그래서 자신이 지키지 못한,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죽은 이들의 환영에 휩싸여 미쳐버려야만 했던 민호.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에도 사과드립니다라는 말만 반복한 채 출가하는 길을 선택해야 했던 민호. 그래서 민호라는 이름을 버리고 여산이 되어야만 했던 민호. 다시 봐도 슬프다. 지난 번 자리와는 달라서 뚝뚝 떨어지는 그의 눈물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참 아팠다.

 

스님이 된 여산은 모든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추악했던 자신의 과거를 떨쳐버리려고 하지만 딸이자 조카인 운화의 청첩장을 받아 들고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 결국 이 연극은 큰 스님의 말씀처럼 잊지 못할 것을 억지로 잊으려 하지 말고 보고 싶고 그립다면 그냥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라고 말한다. 여산이 결국 결혼식장에서 운화의 손을 잡고 입장하며, 정혜에게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장면. 사실 작년에 공연을 봤을 때는 이 장면은 그리 인상 깊지 않았었다. 그저 모든 등장인물이 무대에 나와 행복한 듯 춤추며 노래할 때 먼 곳을 응시하며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여산의 모습만이 여운으로 남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알을 남의 둥지에 낳아놓고 남모르는 듯 하는 뻐꾸기의 이야기나 결혼식 장에서 정혜와 마주쳐서 한참 뒤에야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여산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혜가 만들어 준 두루마기를 벗어서 다시 정혜가 전혜주고 스님의 복장으로 돌아가는 여산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이 연극을 보고, 처음에 난 역사의 아픔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본 오늘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간만에 실컷 울 수 있어서 좋았고, 좋은 공연은 언제 다시 봐도 좋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고,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내년에 다시 보고 싶은 공연이 생겨서 좋았던, 그런 연극이었다.

* 연극 <푸르른 날에> (2011) 감상평 바로 가기

 

2012. 04. 11 / 서울극장

 

사실 <인류 멸망 보고서>를 볼 생각은 아니었다. 원래는 조조 영화로 <건축학 개론>을 보려고 했는데인연이 닿지 않는 것인지 자꾸만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오늘도 약간의 늦잠으로 <건축학 개론>의 시간을 맞추지 못했고, 결국 시간이 딱 맞아 떨어지는 <인류멸망보고서>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영화관에 갔다가 <인류멸망보고서>의 포스터를 보고 살짝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전에도 김지운 감독의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 이름에 따른 호기심 내지는 궁금함이 있었다. 포스터만 봤을 때는 사실… B급 정서를 담은 영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판타지나 SF라는 것이 우리 나라에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서는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나름 좋아했으나…. 관객들에게 엄청난 외면을 받아야 했던 <내츄럴 시티>만 봐도 그렇고.

 

그래서 과연 이 영화를 내가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됐고, 과연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선택할까 라는 걱정도 됐다. 그렇게 들어선 영화관. 아주 작은 상영관이었는데, 나는 행여나 혹시나 나 혼자 이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관객들이 꽤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름 충격이었던 것은 선거일이라서 그런지 애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의 관객이나 중년층 이상의 관객이 많았다는 것. 연세가 깨나 있으신 분들이나 초등학생 미만의 아이들이 과연 이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이 영화를 잘 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인류멸망보고서>라는 타이틀이 흐르고 난 후, ‘멋진 신세계라는 소 타이틀이 뜨고 한쪽에 감독 임필성라는 자막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이 영화가 옴니버스 형식인 것을 알았다. 사실 영화를 보러 들어가서도 나는 이 영화가 김지운 감독의 장편 영화인 줄로만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는 그저 대박이라는 두 글자를 외쳤을 뿐이다.

 

 

 

이야기 하나. ‘멋진 신세계

일단 밝혀두자면 나는 좀비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좀비나 호러 영화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런 내가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아보자면 바로 이 멋진 신세계. 사회적인 비판과 웃음 코드가 잘 믹스되어 있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사료로 만들고, 그 사료를 먹은 소가 도축되고, 인간은 바이러스에 걸려 좀비가 된다. 황당무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우리가 뉴스에서 봐오던 이야기와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성욕과 폭력성을 드러내며 좀비가 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90분 토론과 종교, 사회 각층을 대변하는 대사들. 솔직히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일 수 있겠지만, 눈 감아서는 안 되는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부분이 아닐까. 웃으며 영화를 봤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육식을 굉장히 좋아하는 내가, 강하게 고기를 끊지는 못해도 좀 줄여볼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그것이야 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블랙 코미디와 류승범, 고준희라는 배우의 열연이 돋보였고, 고창석 등 감초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좀비 영화였지만 현실과 어우러져 시사하는 바가 컸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야기 둘. ‘천상의 피조물

이 영화가 바로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로 여겨지는 로봇과 그 로봇을 해체하려는 기업의 이야기를 다룬 천상의 피조물’. 아마도 원작이 있는 영화인 듯 싶다. 로봇의 목소리를 박해일이 연기했고, 그 로봇의 상태를 파악해야 하는 기술자를 김강우가 연기했다. 그리고 그 기업의 총수를 송영창 배우가 연기했다. 기업의 총수는 로봇으로 먹고 살면서도 자신들이 만든 로봇이 의지를 갖고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로봇을 해체할 것을 명령한다. 사실 영상미는 훌륭했고, 의미하는 바도 컸으나 사실 말이 너무 많은 영화였다. 로봇이 의지를 갖게 된 것에 대해 논쟁을 할 때에는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종교에서부터 시작해 지배와 피지배에 관한 이야기로까지 확대되는 이야기. 그 수많은 이야기들은 꼭꼭 씹어서 다시 한번 머리에 넣어 놓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이야기 셋. ‘해피버스데이

너무 유쾌했다. 지구가 행성 충돌에 의해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고, 반공호를 지어 피신하는 초등학생인 민서네 가족. 민서는 텔레비전으로 그 행성의 모양을 보다가, 그것이 지구로 날라오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누군가는 너무나 황당무계한 설정이라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민서와 그 행성의 상관관계가 너무나 기발하게 느껴졌다. 사실 지구 멸망이라는 건 어쩌면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 한 번은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대사처럼 이 지구가 너무 썩어서 한 번은 그렇게 다시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결국 모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일 뿐이니까. 종말론자는 아니지만 가끔 때때로 이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 재해와 사건 사고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 잘못 되어 간다는 생각과 함께 무서워진다. 어떻게 해도 좋아지는 게 아니라 결국은 더욱 더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 희망은 없고,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속도를 늦추는 것뿐 결국 한번은 모든 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 내가 너무 우울할 미래를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단 기간은 아니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아닐 테지만 나는 언젠가는 세상이 미쳐갈 것만 같아서 무섭다. 그러니 이 영화가 내게 더 다가올 수밖에.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는 지금 삶이 핑크빛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위험 신호, 혹은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나는 <인류멸망보고서>가 참 좋았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두둥.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찾아본 감상평에는 대부분이 혹평이었다. 나는 특히나 임필성 감독의 작품이 좋았는데, 다른 이들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만 So So의 평을 주고 나머지에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움을 표했다. 여기서 나는 또 혼란. 내 취향이 이상한 것인지. 물론 마니악할 수 있는 영화였고,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불편할 수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혹평을 들을 정도로 나빴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르의 다양성과 시선의 다양성이 조금은 더 인정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좋았으나, 나만 좋아해서조금은 서글픈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2012. 04. 18 / 성신여대CGV

 

 

개봉 전부터 보고 싶은 영화였다. 30대 초중반의 대리님께 대리님 나이대가 보면 엄청 아른할 그런 영화래요.”라고 말했다가 맞을 뻔 한,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연령과는 무관하게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20대 후반인 내 친구들이 보고 와서도 현재 남자친구랑은 절대 보러 가지 말 것’” “꼭 볼 것등의 평들을 쏟아냈다. 결국 볼 것이기 때문엔 친구들의 평이나 주변 리뷰들은 딱 그 정도 수위까지만 듣고 더 이상은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호평의 호평 일색만 듣다 마지막으로 너무 과대평가된 부분이 있다. 기대만큼은 아니었다라는 평을 보게 되었고, 기대치를 조금 낮춘 후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이 말했다. “조정석이 원래는 진짜 멋있거든.”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닌데.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봐.” “결론이 마음에 안 들어. 둘이 되야 하는 거 아니야?” . 하지만 나의 생각은? 들려오는 사람들의 의견을 전부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좋았다.’ 이다. 영화를 장르나 국가를 구분한다는 게 무의미하긴 하지만 일본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그 중에서도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 <러브레터> <무지개 여신>의 느낌이랄까.

 

미래의 이야기보다는 과거 이야기가 참 아련하면서도, 누군가에게 한번쯤은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사실 홍보 포인트나 카피를 참 잘 정한 것 같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면 첫사랑이 현재 사랑이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이루지 못한 사랑’.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을까. 물론 무스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등 시대적인 배경 자체가 사람들을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여자인 서연도 아니고 승민에게 심하게 빙의 해버렸다. 특히나 과거의 승민.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 하나 고백하지 못하고, 진짜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뒤돌아서 가버린 그를 찌질하다고 했지만, 나는 사랑이 마음이 고백이 쉽지 않았던 그가 절절히 이해 갔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그런 사랑도 있는 거니까.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성인이 된 서연과 승민이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 엄태웅, 한가인이라는 배우는 힘을 빼고 연기를 한 것 같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굉장히 편하게 느껴졌다. 연기를 잘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말도 안 되는 이유이지만 한가인이 너무 예뻐서 살짝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한가인도 사람이긴 하지만 너무 예쁘다보니 뭐랄까. 이 영화의 현실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자연스럽고 평범한 것이 매력인 이 영화에서 한가인의 외모가 너무 빛이 났다. (이건 뭐, 칭찬인지 욕인지.)

 

배우들 모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잘 해주었지만, 역시나 여성인 나로서 워너비는 이제훈. 그 후줄근한 패션마저도 어찌나 멋있으시던지. 그리고 조정석은솔직히 <건축한 개론>에서만 봤다면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잔잔한 영화에서 웃음 코드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것에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튈 수밖에 없는 역할이니까 사실 특별히 더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더 킹 투 하츠>에서의 캐릭터와 상반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은 것 같다. <더 킹>에서는 너무 멋있으니까. 하하하.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결론이 좋았다. 그게 맞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냥 더 현실적인 것 같아서. 그래야 오히려 그들의 사랑이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화는 개개인의 소소한 감정을 건들임으로써 힘을 받는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된 정릉. 정릉 주민이 된지 반년을 향해 가고 있는데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괜히 동네를 걸어보고 싶어졌고, 과거 누군가가 참 많이 보고 싶어졌다.

 

2012. 04. 18 / 서울극장

 

 

포스터를 보고 꽤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이상하게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른 영화들에게 조금씩 밀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차선이 되어 버린 영화. 그러다 얼마 전 친구가 이 영화에 대해 난 그런 영화가 좋아요. 슬프지 않고 잔잔하고.”라고 트위터에 적어 놓은 글을 읽고,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오프닝부터 너무 좋았다. 모든 게 지루한 듯, 표정을 잃은 한 남자(필립)가 조수석에 앉아 있다. 운전석에 앉은 흑인 남자(드리스)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높인다. 그런 그들의 뒤를 경찰차가 쫓아오고, 운전을 하던 남자는 내기를 건다. 그들을 따돌리는데 100유로. 하지만 붙잡히고, 남자는 다시 내기를 한다. 경찰들의 에스코트를 받는데 200유로.

 

결국 그들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게 되고, 무표정하기만 하던 조수석 남자의 얼굴에는 다시 표정이 생긴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운전을 할 때, 흐르며 그들이 신나게 따라 부르는 노래. ‘Earth, Wind & Fire’‘September’! 원래도 조금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그들이 부르는 모습과 잘 어울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가진 것은 돈밖에 없는 목 이하로는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는 전신 마비인 상위 1%의 귀족남, 필립과 그를 돌보게 된 가진 것이라고는 튼튼한 몸밖에 없는 하위 1% 무일푼 흑인 남자, 드리스의 우정을 다룬 영화. 감동적이고 잔잔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예상을 뒤엎고 신나는 오프닝에, 심하게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절대 지루하지 않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를 간호하겠다고 나서는 많은 지원자들을 뒤로 하고, 생활 보조금을 받기 위해 거절 사인을 받으러 온 무례한 드리스를 선택한 필립.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의 입장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드리스를, 다른 사람들은 위험한 인물이라며 멀리하라고 했지만 필립은 말한다. 나를 일반 사람처럼 대해줘서 좋다고.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전화기를 내미는, 그의 장애를 동정하지 않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드리스이기에배경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두 사람의 우정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심리적인 부분이나 감정적인 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돈은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필립. 그의 생일 파티 때, 깜짝 파티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친척들이 확인하기 위해는 오는 것일 뿐이라던 그의 말. 하지만 드리스가 있어서 그의 생일 파티는 특별해진다. 생일 파티는 또 이 영화에 음악이 잘 활용된 장면이다. 필립은 자신이 듣는 음악을 드리스에게 들려준다. 클래식 중에서 드리스가 좋아할 만한 빠른 템포의 곡들은. 드리스는 그 음악을 듣고 자신이 듣는 음악들을 필립에게 들려주며 춤을 춘다. 아마도 그 집안에서 이란 것은 금지된 행위였을 것이다. 누구 하나 추지 말라고 한 적도 없건만 필립에 대한 어설픈 배려로 누구도 쉽게 할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을 집안. 그 집안을 그렇게 드리스가 바꾼 것이다. 드리스의 춤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하는 집안 사람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필립. 나는 그 때 그 필립의 표정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활발하게 움직이는 다리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듯한 표정은 이내 행복한 미소로 바뀐다.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아플까.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시금 그 모습을 즐기며 행복해지기를 선택하는 그의 표정.

 

그리고 필립의 사랑을 도와주는 모습도 그렇다. 장애를 갖게 된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서 펜팔만 하며 다가가지 못하는 필립. 드리스는 그런 필립이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음대로 전화를 걸어서 바꿔주기도 하고. 그녀에게 사진을 보내야 할 때 장애인이 된 후 찍은 사진을 보내자는 드리스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사고 이전의 사진을 보내고, 결국 그녀 앞에 나서지 못하는 필립. 그런 필립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어서 참으로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런 필립과 드리스의 이야기 외에 필립의 딸과 드리스의 이야기나 드리스가 좋아하던 여 집사(?)와의 이야기 등 소소한 재미가 있는 영화였다. 특히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나 재미있었다. 필립이 하얀 배경에 빨간 물감이 튄 것 같은 작품을 비싼 돈에 사는 모습을 보고, 드리스가 그림을 그리고 그걸 필립이 자신의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서 파는 내용.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차이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그것보다 더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많이 웃었고. 극적이고 스펙터클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이야기. 거기에 음악이 함께 해 더더욱 행복한 영화였다.

 

영화의 마지막, 이 영화가 실화라는 자막과 함께 실제 필립과 드리스의 사진이 나온다. 실화이기에 더 감동적이라기 보다, 그냥 픽션이든 실화이든 세상에 곁에 저런 친구와 우정이 있다는 게 부럽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