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예전에 한번, ‘누구세요라는 카테고리에 쿠도 칸쿠로에 대해서 쓰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지금도 임시 저장이 되어 있기는 하다.) 그냥, 오늘 <11명이나 있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살짝 언급을 하고 넘어가야겠다.(살짝이라고 하지만 이래 놓고 엄청나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사실 요즘 일드가 다시 땡기기 시작했는데, <11명이나 있어>는 쿠도 칸쿠로 때문에 보고 싶은 드라마였다. 사실 지난번 <자만 형사>가 그리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쿠도 칸쿠로의 세계가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1명이나 있어>를 다 보고 나니, “그래, 아직 죽지 않았어. 쿠도 칸쿠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뒷심이 많이 부족해진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쿠도 칸쿠로의 시끌벅적함과 따뜻함이 너무 좋다. 그리고 그의 발상이.


 

그를 좋아하게 된 게 아마도 <키사라기 캣츠아이>. 시한부 인생의 남은 삶과 친구들과의 우정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IWGP> <타이거 앤 드래곤> <맨하탄 러브스토리> 등도 참 좋아했던 드라마. 살짝 <자만 형사>에서 그 기세가 꺾였지만, 이번에 <11명이나 있어>로 다시 호감도 UP이다.


 

일단, 정말 소재가 너무 좋다. 7명의 아이를 데리고 재혼을 한 무능력하지만 긍정적인 카메라 맨 아버지. 그 카메라 맨과 혼전 임신으로 결혼을 하게 된 새 엄마. 그렇게 8명의 아이들의 부모. 장남은 아버지를 대신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성실함을 바탕으로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뭐 이 대가족이라는 소재가 좋다는 건 아니고, 생모가 귀신이 되어 등장한다는 점이 너무 기발하다. 게다가 자기 자식들이 아닌 막내, 새로운 아내가 낳은 자식의 눈에만 보인다는 거. 그렇게 두 사람은 비밀스럽게 그들만의 유대감을 만들어나간다. 두 사람의 관계도 참 좋았지만 나중에 귀신까지도 한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 넘치는 가족의 모습도 정말 쿠도 칸쿠로답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장남이 첫 경험으로 상대를 임신시켜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액자식 구성으로 매회 등장하는 또 다른 다이내믹 파파와 마마의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였으나 할아버지로 살아가다 가 커밍아웃과 함께 다시 할머니로 돌아온 역할에 실제로는 남자 배우를 기용한 것.(이 드라마를 안 보고 내 글을 이해하는 사람은 천재일 듯…)


 

아무튼 쿠도 칸쿠로의 세계에서는 불가능이란 없는 것 같다. 캐릭터들이 서로 치고 받는 대사들은 언제나 기대 이상이다. 나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참 좋다. 적당한 따뜻함이 있다. 아무리 남들이 쿠도 칸쿠로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나는 그를 찬양할 것 같다.




컨디션 때문이었을까.

사실 너무나 피곤한 상태에서 공연을 보게 됐다.

내가 정말 싫어하고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몽사몽으로 본 공연.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공연을 보여준 친구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넘버도, 스토리도, 인상 깊은 장면도 없다.

나의 문제였는지, 공연의 문제였는지에 대한 판단도 서지 않는다.

 

일단, <에비타>.

뮤지컬을 볼 당시에는 영화로 본적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영화를 본적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없다. 에비타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영화를 본 줄 알았는데, 체 게바라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안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체 게바라와 에비타와의 관계가 조금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공연을 보기 전에는 에비타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그린 뮤지컬일 줄 알았는데, 꽤나 비판적이고, 그녀에게 대한 판단을 관객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 점도 뭐, 나름 매력적이라고 하자.

하지만, 솔직히 넘버들이 너무 일관성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일관성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ㅠ 이 비루한 단어 구사력.)

체 게바라 같은 경우에는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굉장히 오페라풍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락 스타일이 되는데…(그런 장르가 아닐 수도 있음, 이 소심함.) 그게 굉장히 어색하다고 해야 할까.

사실 배우로서는 조금 욕심이 나는 배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임병근 배우님이 체 게바라 역이었는데, 노래를 못한다는 느낌은 아니었으나 표현력이나 연기에 있어서 조금만 더 해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임팩트가 없었다.



그리고 정선아 배우님은 원래도 조금 호감이 있었는데, 최근 친구가 푹 빠지면서 나도 덩달아 더 좋아진 케이스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 건 <모차르트>에서 모차르트의 아내 역할을 맡았던 것. 꽤나 인상 깊게 봤었다. 역시나 성량이나 옥타브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카리스마. 역시 배우는 무대를 압도하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정선아 배우님이 나왔을 때만, 그나마 공연장을 떠다니던 나의 넋이 제 자리를 찾았었다.

컨디션이 좋았더라면 좋은 공연으로 기억할 수 있었을까.

사실, 자신이 별로 없다.



조금은 아쉬운 그런 공연이었다.





성(聖) 고독

- 천양희

고독이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
내가 그토록 고독을 사랑하사
고(苦)와 독(毒)을 밥처럼 먹고 옷처럼 입었더니
어느덧 독고인이 되었다
고독에 몸 바쳐
예순여섯번 허물이 된 내게
허전한 허공에다 낮술 마시게 하고
길게 자기고백하는 뱃고동소리 들려주네
때때로 나는
고동소리를 고통소리로 잘못 읽는다
모든 것은 손을 타면 닳게 마련인데
고독만은 그렇지가 않다 영구불변이다
세상에 좋은 고통은 없고
나쁜 고독도 없는 것인지
나는 지금 공사중인데
고독은 제 몸으로 성전이 된다



:: 그냥 오늘은 스물아홉 허물이 된 내게, 이 시가 와서 박혔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연극이고.
이미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 연극이다.
그 글을 가지고 제출용으로 다듬은 것.
또 옛날 문서들을 뒤지다가 발견.
또 그냥 그렇게 잊혀지는 게 싫어서 이렇게 남긴다.
흔적을.

+ 헉. <브레인>에 나오는 동승만 선생님이 <내 심장을 쏴라>에 류승민 역을 맡은 이승주 배우였다.
  동승만 선생님을 보면서 연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 심장을 쏘라>를 보며
  "또다른 남주인공 류승민 역을 맡은 이승주 님도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얼굴. 게다가 연기도 꽤나 괜찮았다. " 라고
  적어 놓았었는데. 
  동승만 선생님이었어. 아하하하. 급 반가움이 배가 된다.




살아있는 시체에게 보내는 강력한 한 방!
연극 <내 심장을 쏴라>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청춘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핑크빛 미래를 동반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회색빛으로,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채, 그렇게 뛰지 않는 심장을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 자신의 욕망은 숨겨 놓은 채 그저 세상이 맞춰놓은 잣대에 맞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울하고 불안한, 그래서 살아가기를 포기한, 살아있는 시체가 된 청춘에게 날리는 강력한 한 방의 연극이 있다. 청춘이 될 그대들, 청춘을 보낸 그대들, 청춘인 그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연극 <내 심장을 쏴라>.

그대 이름은 청춘이로구나.

스물다섯. 한창 혈기 왕성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나이의 두 청춘이 각기 다른 이유로 세상에서 고립된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된다. 강원도 산골의 수리희망병원 501호. 이수명(김영민)은 어머니의 자살로 인해 가위에 대한 공황장애 및 정신분열로 6년 간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왔다. 그래서 아버지에 의해 퇴원 일주일 만에 다시 수리희망병원으로 보내졌을 때도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수명에게 있어 정신병원은 오히려 세상보다 안전한 자신만의 현실세계였다.

하지만 가족 간의 유산 싸움에 휘말려 강제로 입원당한 류승민(이승주)이 등장하면서 평온하고도 잔잔한 수명의 세계는 조금씩 흔들리게 된다. 단 한순간도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승민.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던 수명에게 승민은 말한다. 송장과 다른 게 무엇이냐며, 숨지도 견디지도 말고 살자고. 결국 수명은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승민의 마지막 희망이자 자유인 패러글라이딩을 돕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어머니의 자살, 재벌가 사생아, 시력 상실 등 각 주인공이 안고 있는 아픔과 상처는 사실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고, 그들의 마지막 비행에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은 정신병원이 아닌 세상 속에서도 누구든 상처와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춘이라는 이름 앞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정상과 비정상의 대한 구분이 모호해지는 순간. 우리는 정신병원에 갇힌 평범하지 않은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수명이 하늘을 날 때, 승민이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나아갈 용기를 얻었듯이, 우리도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만의 정신병동에 가둬두었던 심장을 꺼내들 수 있을 것이다.

광란의 트위스트에 동참을!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청춘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수명과 승민 외에도 11명에 달하는 정신병자들과 간호사 및 보호사들이 등장한다. 오늘의 운세를 점치는 십운산 선생, 승민에게 업혀 다니는 만식 씨, 떠들지 않으면 참을 수 없어 항상 조잘거리는 김용, 쉼없이 바지를 내리는 거시기 아저씨, 버킹험 공주, 정신병원의 커플 한이와 지은이, 한이 엄마…. 각각의 캐릭터는 정신병동의 모습을 충실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경험해본 적 없는 정신병동의 모습이 상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와 동떨어진 장소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

하지만 몇 개의 에피소드는 그런 그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끼게 만든다. 정신병원의 커플인 한이가 지은이를 잃고 돌덩이가 되어 버렸을 때는 우리는 그들도 사랑을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정신병동 안에도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청소부가 수학문제를 꺼내들어 수명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공부해서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에는 우리는 그들에게도 꿈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사랑도, 꿈도, 희망도 존재하는 정신병원. 어쩌면 그들의 세상도 우리의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 정신병원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압축시켜 놓은 것 뿐일지도. 그래서 그들이 혼란에 빠져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울 때도, 그들의 난동에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함께 아파할 수 있고, 그들이 하모니카 연주 소리에 맞춰 신나게 트위스트를 출 때는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세상 속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워서 출 수 없는 그 춤에 살며시 동참해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대에는 연극적 상상력이 가득!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동명소설을 무대화 한 것으로 연극 '인류 최초의 키스'에서 감옥을 배경으로 유쾌한 연극적 상상력을 보여줬던 극작가 고연옥, 연출가 김광보 콤비의 작품이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스토리 외에도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 활용과 연출이 돋보였다.

정신병원, 신림책방, 수봉산, 유원지 등 소설의 방대한 배경을 연극으로 옮겨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는 꽤나 단순했다. 하지만 조명과 연출만으로 그 단순한 무대를 가득 채웠고 관객은 상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조명만으로 자동차 추격전, 보트 추격전을 만들고, 연기만으로 물속이나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만들어 낸다. 또한 무대 위에서 표현되기 어려운 수명의 정신 분열이나, 승민의 패러글라이딩 장면에서는 흑백영상이 적절히 사용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카리스마 넘치고 젠틀한 역할을 주로 해왔던 김영민은 긴 머리에 어눌한 말투, 세상의 루저 이수명으로 분해 극을 이끌어줬다. 미친 연기가 그토록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외모가 돋보이는 이승주는 공개 오디션에서 선발된 신예로 거침없는 류승민 역을 맡아 김영민과 앙상블을 펼쳤다.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인물들과 이야기.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정신병원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곳이 과연 미친 곳일까? 누가 과연 진정한 병자일까.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채 멈춰버린 심장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의 우리일까? 아니면 세상 밖의 그들일까.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지 말라는, 심장을 쏘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던 두 청년의 외침을 떠올려보자. 그러면 어디선가 트위스트 음악이 귓가를 스쳐올지도 모른다. 세상의 눈에 상관없이 살며시 다리를 흔들어 춤을 춰보자. 그리고 한바탕 신나는 광란의 트위스트가 멈추고 나면 쿵쾅쿵쾅 뛰는 심장의 소리를 느껴보자.




안녕, 안녕, 안녕.
잘 지내고 있어?
니가 2011년 안에 이 글을 확인할 수는 있을까.
아니면, 2012년
스물 아홉에 니가 이 글을 읽게 될까.

이제 며칠 후면 스물 아홉이 된다.
스물 아홉,
20대의 끝자락.
사실, 별로 느낌은 없어.

그냥, 언제서부터인가 새해가 설레지 않기 시작했어.
나는 나이를 먹어도 언제나 내가 원하는 모습에 다다르지 못했으니까.
섣불리 어떤 희망이나 미래, 목표를 말하는 게 두려워졌고,
자신을 갖는게 겁이 났어.

하지만 마음뿐.

밖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여전히 자신만만하지.
아직은 젊다며,
아직은 방황해도 좋다며,
시간이 좀 걸려도 결국은 잘 될 거라며,
나를 주변 사람들을 다독이곤 하지.

그래서 가끔은 나조차도 어떤 게 진짜 나인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심한 사람이었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렇게 소심했다면 어떻게 그렇게 나서는 걸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뭐, 그래서 고민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아.
그냥, 잘 살고 싶다는
잘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할 뿐.

그리고 이렇게 문득 문득
아주 너를 그리워할 뿐.

너도 아직은 가끔씩 내 생각을 하지.
많은 것들이 잊혀지고, 사라져가고 있어.
포기라는 말로, 가끔은 현명한 선택이라는 이유를 붙여서.
하지만,
너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우리의 기억 속에 언제나 10대로 머물러 있다고 해도,
그냥 우리는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어.
어쩜, 참 행복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10대는.

니가 참 많이 보고 싶은 어느날.
지나가버린 메리 크리스마스.
다가올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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