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다. 스토리도 그리 땡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고 싶었던 단 한가지, 이민기.

꽤나 마음에 드는 배우다.

가장 큰 이유는 엉뚱소의 박무열! 이지만, 그 이전에 단막극에 (태능선수촌 말고) 나왔을 때부터 눈길이 좀 갔었던!
결론은 애정 가는 배우라는 사실이다. 


영화관에서 보고 온 친구들이 그냥 정신 없이 시간이 가며,

지루할 틈은 없고, 그냥 생각 없이 웃기 좋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보니, 그렇다.

정말 차들이 뒤집어 지고, 부딪히고, 폭탄 펑펑 터져주시고.

뭐 지루할 틈은 확실히 없는 듯.

내 생각에도 엔터테인먼트 영화로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민기가 좋으니까. 하핫.


그런데 이 영화의 압권 및 인상 깊은 점은, 오히려 에필로그였다.

스턴트맨의 모습들. 다치고 깨지고, 입원한.

그 모습을 보는 내내 <우린 액션배우다>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다.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웃고 울었던지.

지금 내가 스턴트맨이라고 쓴 것도 고쳐야 하는데.


그런데 에필로그에 그 모습을 담은 게 잘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우리 영화 만드느냐고 이렇게 힘들었습니다생색 내는 것 같아서,

숨은 곳에 이렇게 고생한 사람들이 있다고 그 노고를 치하(?)해 주려는 것이겠지만,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졌다.


배우들은? (물론 배우들이 직접 액션 씬을 촬영하다 다친 것도 보여주긴 했지만, 스턴트맨들과는 비교가 안 되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병원에 입원한 스턴트맨들을 배우들이 찾아가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그게 진심인 팀워크였다고 하더라도,

그걸 메이킹 필름도 아닌 영화 에필로그에 삽입함으로서 만들어진 감동이라는 느낌을 살짝 받게되었다.


. 영화 내용보다도 에필로그로만 이렇게 얘기를 하다니.

하지만 그 영상이 너무나 내게는 충격이 컸다? 인상이 깊었다? 가슴이 아팠다?

, 대충 그랬다.


 

<스크랩 헤븐>. 카세 료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였다. 카세 료를 좋아하게 돼 그의 흔적을 찾아 다닐 무렵,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영화가 몇 개가 있었다. <안테나> <스크랩 헤븐> <패신저>였다. <안테나>는 쉽게 구했는데(그러고 어렵게 봤다. 어찌나 우울하고, 암울하던지), 이상하게 <스크랩 헤븐> <패신저>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얼마 전에 둘 다 소장 완료! 일단 <스크랩 헤븐>을 보기 시작했다.

 

<스크랩 헤븐>은 화장실에 있는 오다기리 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더 명확히 얘기하자면 그 화장실에 들어가서 오다기리 조에게 놀림을 당하는 영화와는 전혀 상관 없는 한 회사원의 모습을 시작하지만), 카메라 앵글도 그렇고 화면 구성도 그렇고(막 오다기리 조를 거꾸로 놓고, 옆으로 놓고 그런다) , 오다기리 조는 멋...

 

사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접하기 전에는 오다기리 조를 좋아할 뻔 했다. 워낙 국내에서 팬이 많았고 <메종 드 히미코> <유레루> 등은 나도 재밌게 봤으니까. 그리고 스타일이 좋으니까 사실 관심이 갈 수 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유명해서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된 것보다는, 상대에 대한 정보 없이 스스로가 좋아지게 된 게 더 좋은 것 같다. 카세 료처럼. 후훗. 결론은 좋아하게 될 뻔한 오다기리 조를 보면서도 나는, 내가 그가 아닌 카세 료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는 거.

 

영화 속에서 캐릭터는 확실히 오다기리 조가 맡은 테츠가 멋있다. 나라도 테츠 같은 사람을 만나면 지금의 나의 삶이 왜 이토록 평범한지 자책하며 변하고 싶어할 테니까. 그래서 카세 료가 맡은 신고가 테츠를 만나 변해가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그게 사회적인 문제로 퍼지자 계속 속으로 그러니까 엄마가 나쁜 친구 만나지 말랬지?”라는 말이 떠올랐다는 거. 테츠가 내 눈에는, 당시의 신고의 눈에는 분명 멋있는 사람이지만 사회에서 바라봤을 때는 괴짜에 불과하며, 사회 부적응자, 심하게 말하면 테러리스트(, 이건 너무 심한 거 같다)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까.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범상치 않다. 독특하다. 특이하다. 그 영화의 큰 주인공은 3명의 남녀다. 화장실 청소부로 신고에게 복수를 대신 해주는 일을 제안하는 테츠(오다기리 조), 경찰서 서무과에서 형사계로 옮겨가고 싶어하나 너무나 소심하고 유약한 신고(카세 료), 그리고 약사인 항상 안경을 쓰고 있는, 약을 제조할 때 거기에 초콜렛을 집어 넣는 여자.(쿠리야마 치아키 솔직히 누군지 모르겠다. 남자 배우에 대한 얘기는 미친 듯이 늘어놓고, 여자 배우에게는 이토록 무관심 하다니).

 

그 세 명이 버스 인질극에 휩싸이게 되는데, 정말 여기가 압권이다. 특히 그녀와 신고. 우리 카세 료를 어찌하면 좋을까. 경찰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그래서 그녀가 절망에 빠져 도움의 눈길로 그를 바라봤을 때, 고개를 돌려버린 신고. (, 정말 카세 료는 그대로 그 배역이 되는 것 같다.)

 

이 일은 신고에게도 일종의 충격이 되고, 그는 변하고 싶어진다. 지하철 역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양아치 녀석들을 눈감고 지나쳐버린 후 지하철 안에서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장면. , 대박이야. 그리고 카세료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만 역시나 그들을 막아서는 게 쉽지는 않다.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을 때 등장한 테츠. 그 둘은 그렇게 재회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사람들의 복수를 해주는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복수라는 게 참 재미있다. 정말 심각한 살인청부 업체나 이런 게 아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엄마를 벌 줘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의료 미스를 저지르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의사를 괴롭히는 것들. 그런 일들을 시작하며 소심하고 유약했던 신고는 점점 변해간다. 이 영화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상상력’. 세상에는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 라고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귀 속에서 걸려 머릿속을 맴맴, 맴돌았다.

 

그리고 그 복수의 방법에 있어서는, 살짝 <붕대 클럽>이 생각났다. 복수라고 했지만 사실은 붕대 클럽에서 그들이 붕대를 감아 사람들의 상처를 위로했듯, 그들도 복수를 가장해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엔 3명의 인물이 갖고 있는 상처와 아픔이 너무나 컸다. 특히나 테츠와 그녀. 테츠의 아버지와 폭탄을 만들어야만 했던 그녀의 상처와 슬픔이 조금씩 갈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결국 테츠와 신고가 했던 복수는 또 다른 사건을 발생해버렸고, 그 원인 제공자가 된 신고는 결국 테츠를 외면한다.

 

두 사람이 취조실에서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은 뭐랄까.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와 이병헌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과 같은 긴장감을 갖기도 했고, 서글픔을 갖기도 했다. 나약함을 그대로 드러낸 신고를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선 테츠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신고의 살아남기를 선택해준 영화에게  감사해야하다고 해야할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좋았지만, 신고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상상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 위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았던 영화였다. 내가 테츠를 나쁜 친구라 말했지만, 그것은 사회의 시선일 뿐. 테츠와 같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 하지만 그 다음은, 신고처럼 나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선택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신고의 모습을 한 나는 신고를 비난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

 

주연 3명의 연기가 고루 훌륭했다. 물론 우리의, 아니 나의 카세 료 역시, 아하하. 아주 가끔은 이 영화를 꺼내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패신저>는 살짝 맛 보기로 살펴만 봤는데, 내용은 아직 잘 모르겠으나 카세 료의 비주얼이 장난이 아니다. 젤 잘생기게 나오는 듯. . 카세 료가 나오는 <도쿄 오아시스>도 꼭 영화관에 가서 봐야겠다.

 



언론 매체를 통해서 DJ DOC의 음악들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남자 여자에게 즉석 만남이 가능하게 하는 부킹석을 만든 공연이 있다는 뉴스도 봤다. 그리고 아는 동생이 <스트릿 라이프> 초대표를 준다기에 무슨 공연인지도 모르고 덥석 을 외치고 찾아보니 그 모든 게 같은 공연이었다.

 

사실 주크박스 뮤지컬에 대한 큰 기대는 없으나, (<올슉업>은 재밌게 보기는 했으나, 사실 국내의 노래를 가지고 만들었다가 피를 본 창작 뮤지컬 <매직카펫라이드>를 기억하고 있어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사실 <광화문 연가>는 안 봤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DJ DOC의 음악에 대한 약간의 믿음이 있었다. 평상시 즐겨 듣지는 않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또 살짝 궁금하기도 했다. 거의 힙합인 그들의 음악을 어떻게 공연으로 녹여냈을까.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하던 세 남자가 클럽에서 음악을 하고 되고, 연예 기획자에게 발탁되어 메이저에 데뷔를 하게 되지만 결국, 상업적인 이익만 당하고 나온 뒤 다시 스스로의 힘으로 재기한다는, 3줄로 설명되는 줄거리. 거기에 조금 덧붙이자면, 사랑 이야기 조금 나와주시고, 가족 이야기 살짝 나와주시고.

 

솔직히 뮤지컬에 그리 큰 스토리텔링을 기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 식상했다. 물론 노래들과는 아주 잘 맞아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 허전하고 아쉬운 스토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할런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저 이야기가 정말 DJ DOC의 실화일까 (아마 일정 부분은 그런 걸로 알고 뮤지컬을 봤었다. 당시에) 하는 궁금증으로 호기심이 일기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무대는 아주 마음에 들었으나 이야기와 이야기가 연결되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흐름이 딱딱 끊기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음악이 워낙 좋고, 배우들의 춤사위(?)가 너무나 현란하고 훌륭해 보는 즐거움, 듣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꽂히는 배우 한 명 발견! 리더의 여자친구를 짝사항하는 걸로 힘들어하는 수창 역할의 정원영! 진짜 춤을 출 때 그 몸짓도 매력적이지만 표정이 너무 좋다. 익살꾼 같으면서도 그 환하게 웃을 때의 미소. 솔직히 내 시선은 무조건 그분을 따라! 이렇게 마음에 드는 배우를 발견하면, . 보는 즐거움이 배가 되니까.

 

하지만 좋아하는 배우로도 감출 수 없는 아쉬움. 리더 어머니의 죽음. 위에서도 언급했듯 너무 식상한 갈등 구조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어디서든 가장 손쉽게 사용되는 도구라는 사실이 사실 보는 이로 하여금 진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그래서 관객은 슬프지 않은데 배우들만 무대에서 미친듯이 슬퍼하는 그런 장면이 탄생하는 것이다. 특히나 무대 뒤편에서 살풀이(?), 승무(?)를 추는 사람이 등장했을 때는 솔직히 정말 놀랐다. 그게 나올 분위기도 아니며, 의미도 아닌데. 그걸 통해서 무얼 말해주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 방식대로의 추모에서 멈추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극 전체와 어우러지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거부감을 줄 정도.

 

별로 공연을 많이 보지 않는 정말 일반 대중인 친구와 함께 했는데, 그 친구는 그래도 재미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아는 노래들이 많았기 때문에, 뮤지컬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가서 보기에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말 콘서트장 처럼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함께 뛰며 노래하는 것도 신났다고 하고. 나만큼이나 황당해하거나 어이없어하지는 않았기에, 한편으로는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전히 그 장면은 이건 아니잖아.”이다.

 

그저, 앞으로는 정원영에 주목하고 싶다는 생각뿐. 하핫.


201111023 / 메가박스 씨너스 센트럴점

 



우리 엄마 아빠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아마 아빠는 육십 평생 영화관에 가본 횟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엄마는 그래도 내가 함께 살때는 아주, 정말 아주 가끔 함께 보러 가기는 했으나 따로 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 엄마는 더빙이 되지 않은 외국 영화의 자막은 좀 힘들어 하신다.
그래서 가급적 외국 영화는 피하고, 한국 영화 중에서도 자알~ 골라야 한다.
너무 폭력적이어도 안 되고,
공포도 안 되고,
너무 야해도 안 되고,
너무 욕이 많이 나와도 안 되고,
너무 드럽게 웃겨도 안 되니까.
그렇게 까다로운 엄마와 봐도 좋을, 아니 보고 싶은 영화가 바로 이 <완득이>였다.
, 실제로는 혼자 봤지만.

! 그리고 이 영화 보러 갔다가 시사회에 온 소지섭을 봤다는 <완득이>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도 살짝.
, 소지섭. 간지남이기는 하더라.
블랙 수트에 블랙 모자, 선그라스를 썼는데 완전 대박 엄청 멋있었다.
(
,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로구나. 하하.)

 

<완득이>는 제작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왜냐하면 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었다.
의도치 않게 서점에서 서서 <완득이>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한 권을 완독해버렸다.
멈출 수가 없어서.
그 때부터 <완득이>는 내가 참 좋아하는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완득이>가 연극으로 상연되었을 때, (사실 연극은 보지 못했다)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좋은 컨텐츠는 원소스멀티유즈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구나.
그래서 영화화가 된다고 했을 때도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유아인에 대해서는 사실 호불호가 명확하게 있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사실 요즘 대세이고 매력적인 것 같기는 하여 살짝 기대감이 있었다.
예고편도 꽤나 재미있었고.
사실 김윤석 님의 연기는 뭐, 두 말하면 입이 아플 테니까.
사실 책을 읽은 지 하도 오래 돼서 세세한 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화는 꽤나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스토리도 그렇고,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너무 감동 모드나 교훈 모드로 흐르지 않는다.
이 부분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그냥 덤덤하게, 하지만 아름답게 그려낸다.

김윤석 님의 연기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솔직히 말하면 유아인의 연기는 100%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
성균관 스캔들> 등을 통해 나도 모르게 유아인의 기대치를 높게 갖고 있었나 보다.
나쁘지는 않았으나, 그 무엇, 그 이상을 보지는 못한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결말이 조금 심심한 느낌이 살짝 있었지만, 크나큰 아쉬움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그 정도의 적당한 따뜻함이 온 몸을 감싸 안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를 생각하고 내 주변을 생각하고 세상을 생각하고.
조금은 나도 예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을 잘 살아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을까.



20111127 / 서강대 메리홀



솔직히 조금 많이 아쉽다.
그 이유는 내가 너무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극 초반의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작과 끝에 받은 느낌의 간극이 너무나 커 이 아쉬운 마음을 감추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고전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모든 이야기들의 원형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은 어렵고 난해하며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이유들이 나를 <갈매기>로 이끌었다. 

 

아마 첫 번째 이유는 10아시아에 나온 박해수 배우의 기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배우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데 <39계단>이라는 연극을 봤을 때 그 이름 석자를 기억하게 되었다.
뭐 등장한 배우가 4명 밖에 없었기에 외우기가 조금은 수월했지만. 
그 때 그 공연을 너무나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배우에 대한 믿음도 그냥 자연스럽게 UP!
하지만 역시나 무언가에 미친듯이 빠지지 못하는 나의 성격은 그저 그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 반가워하는 정도이지 꼭 보는 수준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기사를 보고 나니 왠지 그의 연극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의 전작이었던 <됴화만발>의 경우에도 보고 싶다 여기고 못 봐서, 그런 아쉬움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희곡 <분장실>.
그곳에는 등장하는 여배우들이 안톤 체홉의 <갈매기> '니나'를 연기하는 장면이 나온.
왠지 <갈매기>를 봐야 좀더 <분장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갈매기>는 내게 한번은 봐야만 하는 연극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이었다면 사실 그토록 기대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좀 웃긴 인과 관계이지만 <
오이디푸스>가 문제였다.
<
오이디푸스>에 심하게 빠져버려 "그래, 고전도 어렵거나 심오하지 않고 재미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해버린 것.
게다가 연출가도 한 몫을 했다.
사실 예전에는 공연 선택의 기준이 무조건 감이나 촉, 느낌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극장을 보게 되고 배우를 보게 되고 제작진을 보게 되고.
이번 <갈매기>의 경우, 연극 <레드>를 연출가였던 오경택 님이 연출했다는 게 나를 더 자극해버렸다.
연극 <레드>가 마음에 들었으니, <갈매기>도 좋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 이렇게 이야기 하니 공연이 엄청 안 좋았던 것 같은데, 사실 그건 아니다.
그저 나의 높은 기대에 충족되지 않았을 뿐.
내용에 관해서는 거의 정보 없이 갔는데,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리플렛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 그런 말들이 쓰여있었다. 

 

"연극 <갈매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갈매기는 비극이다? 

갈매기는 코미디다!

 

갈매기는 어렵다?

갈매기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갈매기는 심각하다?

갈매기는 5개의 삼각관계에 얽힌 삼류 연애극이다!

 

갈매기는 115년 전 러시아 이야기다?

갈매기는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래, 이게 문제였다.
이것 때문에 ", 생각보다 웃기겠구나. 로맨스이구나." 생각했는데,
결국 <갈매기>는 비극이었으며, 사랑 이야기만큼이나 예술이란, 예술가란 질문을 던지는 어렵고도 심각한 연극이었다.

 

사실 도입부는 무척이나 신선했다.
아직 정시가 되기 전부터 배우들이 나와서 무대를 만든다.
연기를 한다.
객석으로 들어오는 관객들이 깜짝 놀라며 시계를 바라보던 장면을 훔쳐보는 것은 꽤나 재미있었다.
공연 안내 멘트를 적절히 연결한 것도. 

 

1막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맞다
웃음 포인트가 많았다. 무대도 좋았고.
근데 약간 심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산만함.
배우들이 어느 정도는 연기로 커버를 해주기는 했으나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한 배우의 경우에는 웃기려고 그런 건지 어쩐 건지 모든 게 어색해 보이기도 했고.
그게 웃기기 위한 계산된 설정이었다면 왠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그리고 배우들의 라이브 연주와 춤에 대한 것도 리플렛에서 읽고 살짝 기대했는데,
처음에 색소폰 불 때는 솔직히 너무나 어우러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라이브의 효과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그 이야기와 춤과 음악의 상징성을 찾는 게 어려웠다. 

 

무대는 좋았다는 느낌과 조금 과했다는 느낌이 공존한다.
니나가 떠날 때의 무대 같은 경우에는 너무 멋있었는데(특히나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과 그 조명),
배우들 전원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도. 단순히 종이만으로 표현하는 무대도 좋았다.
하지만 의자와 술잔 등이 사용된 누대는 조금만 정리를 해줬다면 더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도 그렇다.
물론 사랑이 이 연극의 핵심 소재이자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뜨레플레프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파멸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아니라 충족되지 않은 예술에 대한 갈망이, 혼란이, 절망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아닐까. 

 

이 연극에서는 마치 사랑과 예술이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그 질투가.
그 열망이.
그 욕망이.
그래서 나는 차라리 <레드> 처럼, <예술하는 습관>처럼
예술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좀더 초점을 맞췄더라면(이라고 쓰면서 든 생각은
이미 <갈매기>는 그 모든 것 다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사랑과 코미디'라는 홍보 포인트에 사로잡혀 좁은 눈으로 공연을 바라보고 아쉬웠다 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니나를 둘러싼 뜨리고린, 뜨레플레프의 삼각관계보다는 마샤의 외사랑이 참 아팠고,
엄마이자 여배우인 아르까지나와 아들인 뜨레플레프의 관계가 더 흥미로웠고,
마샤를 사랑하는 메드베젠꼬의 캐릭터가 참 좋았다.

 

연기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모두 훌륭했던 것 같다.
특히 영화로만 뵈었던 이문수 님을 직접 연기에서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목소리 진짜 진짜 진짜 좋으신 거 같다.
, 나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목소리에 반응하다 보다.
그리고 엄마 아르까지나를 연기하신 우현주 님도 그 복합적인 캐릭터를 정말 잘 연기하신 거 같고(근데, 중간에 입고 나오신 그 블랙 수트는 좀 너무 큰 것 같다ㅠ ),
최근 TV에서 종종 봤던 뽈리나를 연기한 황영희 님. 정말 멋있으셨다.
정말 어색하지 않은 웃음을 유발하는 연기력.
도른을 맡은 김태훈 님도 마찬가지이고.
사실 이 커플의 이야기도 참 좋았었는데.


 

13명의 배역이 나오는 연극이다 보니 할 말도 많아진다.
멋진 무대를 봐서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 이상을 보지는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앞에 박해수 님에 대해 미친 듯이 나열해 놓고, 막상 공연 후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속상하기는 하다. 커튼콜 때 조금더 연기의 감정선을 갖고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어차피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이기에 꼭 필요하지는 않은 
너무 독단적인 나의 생각이며 이기심이지만,
커튼 콜에서 너무 빨리 뜨레플레프에서 벗어난 배우 박해수의 모습이 보여서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P.s 공연 관람 후 하루가 지나서, 희곡 <갈매기>를 읽어보았다.
물론 정독 및 완독은 하지 못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구절들이 많다.
아마 이번 계기를 통해,
나는 다시 어딘가에서 <갈매기>가 무대에 오른다면 또 그곳으로 향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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