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헤븐>. 카세 료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였다. 카세 료를 좋아하게 돼 그의 흔적을 찾아 다닐 무렵,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영화가 몇 개가 있었다. <안테나> <스크랩 헤븐> <패신저>였다. <안테나>는 쉽게 구했는데(그러고 어렵게 봤다. 어찌나 우울하고, 암울하던지), 이상하게 <스크랩 헤븐> <패신저>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얼마 전에 둘 다 소장 완료! 일단 <스크랩 헤븐>을 보기 시작했다.

 

<스크랩 헤븐>은 화장실에 있는 오다기리 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더 명확히 얘기하자면 그 화장실에 들어가서 오다기리 조에게 놀림을 당하는 영화와는 전혀 상관 없는 한 회사원의 모습을 시작하지만), 카메라 앵글도 그렇고 화면 구성도 그렇고(막 오다기리 조를 거꾸로 놓고, 옆으로 놓고 그런다) , 오다기리 조는 멋...

 

사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접하기 전에는 오다기리 조를 좋아할 뻔 했다. 워낙 국내에서 팬이 많았고 <메종 드 히미코> <유레루> 등은 나도 재밌게 봤으니까. 그리고 스타일이 좋으니까 사실 관심이 갈 수 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유명해서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된 것보다는, 상대에 대한 정보 없이 스스로가 좋아지게 된 게 더 좋은 것 같다. 카세 료처럼. 후훗. 결론은 좋아하게 될 뻔한 오다기리 조를 보면서도 나는, 내가 그가 아닌 카세 료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는 거.

 

영화 속에서 캐릭터는 확실히 오다기리 조가 맡은 테츠가 멋있다. 나라도 테츠 같은 사람을 만나면 지금의 나의 삶이 왜 이토록 평범한지 자책하며 변하고 싶어할 테니까. 그래서 카세 료가 맡은 신고가 테츠를 만나 변해가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그게 사회적인 문제로 퍼지자 계속 속으로 그러니까 엄마가 나쁜 친구 만나지 말랬지?”라는 말이 떠올랐다는 거. 테츠가 내 눈에는, 당시의 신고의 눈에는 분명 멋있는 사람이지만 사회에서 바라봤을 때는 괴짜에 불과하며, 사회 부적응자, 심하게 말하면 테러리스트(, 이건 너무 심한 거 같다)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까.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범상치 않다. 독특하다. 특이하다. 그 영화의 큰 주인공은 3명의 남녀다. 화장실 청소부로 신고에게 복수를 대신 해주는 일을 제안하는 테츠(오다기리 조), 경찰서 서무과에서 형사계로 옮겨가고 싶어하나 너무나 소심하고 유약한 신고(카세 료), 그리고 약사인 항상 안경을 쓰고 있는, 약을 제조할 때 거기에 초콜렛을 집어 넣는 여자.(쿠리야마 치아키 솔직히 누군지 모르겠다. 남자 배우에 대한 얘기는 미친 듯이 늘어놓고, 여자 배우에게는 이토록 무관심 하다니).

 

그 세 명이 버스 인질극에 휩싸이게 되는데, 정말 여기가 압권이다. 특히 그녀와 신고. 우리 카세 료를 어찌하면 좋을까. 경찰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그래서 그녀가 절망에 빠져 도움의 눈길로 그를 바라봤을 때, 고개를 돌려버린 신고. (, 정말 카세 료는 그대로 그 배역이 되는 것 같다.)

 

이 일은 신고에게도 일종의 충격이 되고, 그는 변하고 싶어진다. 지하철 역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양아치 녀석들을 눈감고 지나쳐버린 후 지하철 안에서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장면. , 대박이야. 그리고 카세료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만 역시나 그들을 막아서는 게 쉽지는 않다.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을 때 등장한 테츠. 그 둘은 그렇게 재회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사람들의 복수를 해주는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복수라는 게 참 재미있다. 정말 심각한 살인청부 업체나 이런 게 아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엄마를 벌 줘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의료 미스를 저지르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의사를 괴롭히는 것들. 그런 일들을 시작하며 소심하고 유약했던 신고는 점점 변해간다. 이 영화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상상력’. 세상에는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 라고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귀 속에서 걸려 머릿속을 맴맴, 맴돌았다.

 

그리고 그 복수의 방법에 있어서는, 살짝 <붕대 클럽>이 생각났다. 복수라고 했지만 사실은 붕대 클럽에서 그들이 붕대를 감아 사람들의 상처를 위로했듯, 그들도 복수를 가장해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엔 3명의 인물이 갖고 있는 상처와 아픔이 너무나 컸다. 특히나 테츠와 그녀. 테츠의 아버지와 폭탄을 만들어야만 했던 그녀의 상처와 슬픔이 조금씩 갈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결국 테츠와 신고가 했던 복수는 또 다른 사건을 발생해버렸고, 그 원인 제공자가 된 신고는 결국 테츠를 외면한다.

 

두 사람이 취조실에서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은 뭐랄까.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와 이병헌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과 같은 긴장감을 갖기도 했고, 서글픔을 갖기도 했다. 나약함을 그대로 드러낸 신고를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선 테츠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신고의 살아남기를 선택해준 영화에게  감사해야하다고 해야할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좋았지만, 신고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상상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 위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았던 영화였다. 내가 테츠를 나쁜 친구라 말했지만, 그것은 사회의 시선일 뿐. 테츠와 같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 하지만 그 다음은, 신고처럼 나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선택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신고의 모습을 한 나는 신고를 비난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

 

주연 3명의 연기가 고루 훌륭했다. 물론 우리의, 아니 나의 카세 료 역시, 아하하. 아주 가끔은 이 영화를 꺼내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패신저>는 살짝 맛 보기로 살펴만 봤는데, 내용은 아직 잘 모르겠으나 카세 료의 비주얼이 장난이 아니다. 젤 잘생기게 나오는 듯. . 카세 료가 나오는 <도쿄 오아시스>도 꼭 영화관에 가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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