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있습니다!)


당신에게 찾아온 마법같은 순간?희망을 만드는 마술사 <일루셔니스트>?
이 얼마나 모순적인 카피였단 말인지.
가슴 따뜻한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깜빡 속아넘어갈 뻔 했다.
이건 비극이라고, 이건 너무나 기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라고.

몇 명의 트윗에서 이 영화의 제목을 접했다. 내용은 몰랐고, 그저 아는 거라곤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 근데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라도 이렇게까지 대사가 없을 줄이야. 애니메이션도 픽사나 월트디니처럼 헐리우드나 고전 같은 것에만 익숙해졌나보다. 다행이 대사가 없어도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다. 토끼의 행동 등 소소한 재미도 있고,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그림이 참 예뻤다. 정말 움직이는 동화책을 보고 있는 듯.

유행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나이 든 마술사는 스코틀랜드의 시골 마을에 갔다가 자신의 마술이 사실이라고 믿은 순수한 소녀 앨리스를 만난다. 소녀 앨리스는 마술사에 의해 갑자기 나타나는 돈도, 신발도 모두 진짜 마법이라 여기고 떠나는 그를 따라 온다. 마술사는 자신을 따라온 앨리스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 소녀를 위해 마술이 아닌 다른 일을 시도하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옷도, 구두도 모두 마법이면 가능할 줄 아는 앨리스로 인해 마술사는 마법도구도 팔아버리고 쇼윈도에서 세일 물건이나 홍보하는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 시골 소녀는 도시의 여자가 되어간다.

우리에게도 서커스라는 것이 지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소녀가 남자와 함께 다정히 걸어가는 것을 보게된 마술사가 그 모습에 숨어 들어간 영화관처럼, 쇼윈도에서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화면처럼. 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간 사람들은 더 이상 마술에 박수를 치지 않았고 마술사는 잊혀져 갔다.

그런 마술사를 믿어준 소녀가 마술사를 조금은 더 버티게 해준 힘이었으나 결국은 마술사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인정하게 만든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술사의 힘듬은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순수하기만 한 소녀를 보며 난 화가 났다.

왜 소녀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거야.

소녀가 마술은 믿어준다는 것, 그 실이 마술사에게 희망은 아니었다. 일말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었을 거라 해도.
소녀가 마술사로 인해 시골뜨기에서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한 것. 그것 역시 기적이 아니다. 마술사가 사라지고 나면 소녀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할테니까. 소녀에게 기적이란 소녀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마술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소녀를 떠난다. 이제 자신이 아니어도 소녀를 아끼고 지켜줄 사람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을테니까.

마술사가 함께 마술을 해온 성질 나쁘지만 귀엽고, 영화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 토끼를 들판에 놓아주었을 때,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토끼는 자유로워졌을 테지만, 마술사는 미지막까지도 놓아버린 것이다. 더 이상 마술사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돈과 편지를 남기고 마술사는 소녀를 떠난다. 편지에 씌여진 그 글귀.

"마법은 없어."

소녀에게 진실을 알려줘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왔으면서, 막상 그 진실이 마술사에게서 확인되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 확인 사살 같은 편지가 내 가슴을 마구 마구 찔러댔다.

기차를 타고 홀로 떠나던 마술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 아이가 몽당 연필을 흘린 것을 줍는다. 자신의 기다란 연필과 그 몽당 연필을 번갈아 바라보던 마술사는 마술을 부리듯 여자 아이에게 연필을 건넨다. 마법처럼 긴 연필이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깨고 결국은 원래의 몽당 연필. 여자 아이에게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 이상 마술사는 마법을 부리지 않는다. 그 몽당 연필이 '현실'이라는 두 글자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아주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지막에 마술사가 꺼내든 한 장의 소녀 사진. 아마도 자신의 가족이 아니었을까. 딸이라 추측되는 그 딸에게 해주지 못한 걸 소녀에게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수 많은 것들이 잊혀져간다. 복화술을 하던 아저씨의 인형은 중고숍 쇼윈도에 초라하게 놓여져 있고, 공중 묘기를 선보이는 이들은 그 실력으로 커다란 광고판의 색을 칠한다. 공중에서.

잊혀져 가는 것. 이 영화는 '비극'이었다. 잊혀져 가는 것을 붙잡고 있지 말라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현실에 맞춰 '포기'하는 법도 배우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다.

아니, 아마도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이겠지. 기억해달라고. 사라졌어도 그런 순간이 있었음을. 소녀가 마술사를 잊지못할 것 처럼, 사라진 것들을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것일지 모른다. 마술사의 몽당 연필일 그토록 가슴 아팠다면, 그 아픔을 잊지 말고 마술사를 기억해달라고.

기억하자. 사라져간,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을. 그리고 쉽게, 쉽게는 포기하지말자. 아직은 꿈을 꾸자. 아직은 마법을 믿자.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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