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국
                                 김영승


모든 국은 어쩐지
괜히 슬프다

왜 슬프냐 하면
모른다 무조건

슬프다

냉이국이건 쑥국이건
너무 슬퍼서

고깃국은 발음도 못하겠다.

고깃국은......

봄이다. 고깃국이.

::
7호선 사가정 역에 써 있는 시.
지하철 역에 써 있는 시 중 꽤나 괜찮은 것들이 많다.
오늘은 이 <슬픈 국>이란 시가 내 발길을 붙잡는구나.
이런 전개가 조금 당황스럽긴 할테지만 슬퍼도 좋으니 국 좀 먹고 싶다.
아, 다이나믹 듀오의 <어머니의 된장국>이 생각나는구나.
이 황당한 연상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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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2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
연극 <푸르른 날에> 중간에 나온 시다.
그냥 잊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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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친구가 되고 싶다

매일 밤 내일의 만남을 기다리는 친구가 되고 싶다.

목소리를 바꿔서 장난전화를 해도 누군지 금방 알아차리는...

조금은 유치한 장난이라도 네가 하고 싶다면
기꺼이 함께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

네가 나쁜길로 빠질때
서슴치 않고 너희 뺨을 때려줄 친구가 되고 싶다.

네가 짝사랑을 할 때 그 사랑을 둘로 만들어 줄 친구가 되고 싶다.

네가 누군가와 하나가 되는 그때
너의 하얀 드레스를 잡아줄 친구가 되고 싶다.

간호사가 너의 아기를 데리고 오기 전에
헝클어진 너의 머리를 조용히 빗어줄 친구가 되고 싶다.

마흔이 넘고 쉰이 넘어 갱년기가 된 그때에 출렁이는 처진 배를 안고 함께 에어로빅을 배우러 갈 친구가 되고 싶다.

만약 네가 먼저 하늘로 떠나간다면
내 너를 그리워하면서 시집한권을 낼 친구가 되고 싶다.

만약 내가 먼저 하늘로 떠난다면
내 비록 네가 그리워도 하늘에서 너를 기다리며
나의 옆에 있는 너의 별을 닦아 줄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
2002년 4월 14일.
벗의 생일에 적어준 시.
절대 자작시가 아니었으나,
작자 미상인 관계로 지은 이를 기재하지 않았던니
친구는 내가 쓴 시인 줄 알고 엄청 감동을 받았다가 훗날 엄청 실망했던 에피소드가 있는 글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다시 이렇게 읽어보니 여전히
참, 좋다.
누군가에게 저런 친구가 되고 싶다.
저런 친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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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 청량리 롯데시네마





난 하나가 좋으면 열이 좋은가보다.
어쩔 수 없이.
사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우려와 걱정이 앞섰다.
원작과의 비교,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희소성의 문제였다.
아무리 원소스 멀티유즈의 시대라 해도,
이 이야기가 너무 많이 소비된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1996년에 드라마를 통해서 봤었다.
13살의 나이에도 엄청나게 울면서, 가슴 아프게 봤던 기억이 난다.
정확하게 모든 것이 다 떠오르진 않지만,
몇 장면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리고, 작년이었나?
연극을 통해서 다시 이 작품을 만났다.
연극은 확실히 원작에 비해 많이 빈약했던 것 같다.
무대로 옮기려다 보니, 당연히 이야기가 집약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또 엄청 울었지만.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는, 꼭 봐야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연극이 그러했듯, 처음의 감동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런데, 캐스팅을 보는 순간.
아, 이건 봐야겠구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의 총집합이다.
일단, 김지영 님, 배종옥 님, 류덕환 님이 무지하게 좋고,
김갑수 님, 유준상 님, 서영희 님, 엄청 믿음직스럽고,
박하선 님은 경성스캔들 때문에 이미지 괜찮고, 이솜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때문에 나름 관심있고.

이렇게 긍정의 감정으로 똘똘 뭉친 배우님들이시니,
어찌 안 볼 수 있으리라.

역시나 농밀한 연기는 정말 중요하다.
김갑수 아저씨와 배종옥 배우님의 호흡은...정말 최고였다.
특히 배종옥 님의 뭐랄까...강약 조절이라고 해야하나.

신파인 이야기를 배우의 연기의 힘으로 무마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옆에 할아버지도 울고,
앞에 처자도 울고,
나도 울고.
사실, 봐도 봐도 미치겠는 장면은 항상 같은 것 같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가 짐이 될까...함께 가자고 하는 장면.
그 장면은...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원작에 비해 좋다, 나쁘다...그런 평가는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조금은 더 아름답게 표현된 거 같았다.
조금은 더 극적으로.
서정적으로.
판타지도 좀 가미 되고.
인트로에서 보여준 '꽃'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예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특히나 마지막 묘비명.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어쩔 수 없이, 난 이 이야기가 좋은 가보다.





새벽 2시 51분.
생전 처음 와보는 건대 카페베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정말 오늘은 진정한 뻘짓의 승리자 인 듯 싶다.
감성적인 꽃 사진 따위 집어치워.
정말 저 꽃다발이 오늘 사람 여러번 잡았다.

내일 (아, 이미 오늘이 되었구나) 촬영을 나가야하는데,
소품으로 꽃다발이 필요할 듯 싶었다.
새벽부터 촬영이 시작되기 때문에,
꽃다발을 미리 사놓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일찍 사면 꽃이 시들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한 저녁 7시 정도!
꽃을 사러 돌아다니는데...도통 꽃집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한군데 발견한 곳은,
원하는 컨셉의 꽃이 아닐 뿐더러 너무 비쌌다.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오늘 새벽 4시까지 촬영을 나가려면,
잠자기도 글렀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꽃시장이 있다고 하니,
12시에 꽃을 사고 심야 영화를 한편 때린 다음에 촬영장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 얼마나 훌륭한 계획인가.
회사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해맑게, 핑크빛 앞날을 꿈꾸고 있었는데....
거의 역에 도착했을 때 쯤,
기껏 출력해놓은 문서를 빼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젠장.
뭐, 엄청 필수적인 사항은 아니니까...그냥 가자 마음을 먹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부터 꼬인 것일까.

밤 12시에 문을 여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꽃 시장은 내가 생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도매 시장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한군데 정도는 그래도, 뭔가 만들어 놓은 꽃다발을 팔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꽃다발까지는 무리라도 따로 포장을 해주는 곳이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한 것이다.
나의 엄청난 계산 착오.
정말 철저한 도매상.
너무 바빠 보여서 말 조차 걸기 어려운.

게다가 의상의 색상을 알 수 없어 어떤 색의 꽃을 골라야 할지도.
그래도 프러포즈 컨셉이니 장미꽃이 필요할 것 같아,
무난한 핑크빛 장미를 샀다.
(빨간 장미는 검은색 계열의 수트를 입으면 별로 색감이 예쁘지 않을 거 같아서)
근데, 포장을 안 해주고 신문지에 둘둘 말아주는 건 두째 치고, (이 부분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가시와 잎이 그대로.
아. 어쩌란 말인가.
정말 새벽 4시에 꽃 파는 집도 없고.
(일요일 7시에도 없었는데....)
고민을 하다가 조금 정돈이 되어 있는 이름 모를 꽃 한 단을 더 샀다.
내가 생각한 컨셉에는 안 맞는데.
자꾸만 내 팔에 가시를 박아대는 장미는 버려버릴까 생각했는데...
(차마 그 환경에서 환불은....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것도 할 짓은 못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아름다운 꽃인데...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는 것은,
정말 죄를 짓는 기분이어서.

결국, 난 전지 가위를 샀다.
우선 고터 한 구석에 터를 잡고, 가시와 잎들을 다 정리하기 시작했다.
(청소 아줌마 미안해요. 쓰레기통에 버리긴 했는데, 넘쳐 버렸어요.)
그리고 다시 올라가서 리본 등을 샀다.
대충 줄기를 리본으로 묶었는데....모양새가...참.....어설프기 짝이 없다.
아무도 돈 주고 샀다고 하면 안 믿을 거 같다.
아. 어쩐담.
원래도 손으로 뭐 만드는 거 정말 못하는 스타일인데,
내가 생각해도 헛웃음이 난다.

결국 이것 때문에 12시 50분에 보려고 했던 영화를 놓쳐버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 중...
시간이 너무 애매모호한 것 같아서, 촬영지로 이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좀 머니까 얼추 괜찮지 않을까.
젠장.
역시 새벽의 택시는 너무 빨라.
너무 빨리 와버려서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14,000원이나 주고 택시 타고 간 곳을,
다시 5,000원이나 주고 다시 나와 머물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
건대 카페베네다. 

이런 내가 웃기고도 또 어이없어서.
그렇게까지 멍청한 스타일은 아닌데,
한 순간의 판단 미스와 결단력 부족,
(사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고민을 조금 하긴 했었다.
중간에 내려서 머물다가 갈까.
목적지까지 가면 아무래도 있을 곳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버린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명확하게 보았으니...!
결론은...뭐지?

장미꽃은 시들어가고,
내 눈은 감겨오고,
시간은 3시 12분...
나는 30분 후에 다시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액땜이라 생각하자.
오늘 좋은 일들이 생기려고, 액땜한 거라고.
아,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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