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51분.
생전 처음 와보는 건대 카페베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정말 오늘은 진정한 뻘짓의 승리자 인 듯 싶다.
감성적인 꽃 사진 따위 집어치워.
정말 저 꽃다발이 오늘 사람 여러번 잡았다.

내일 (아, 이미 오늘이 되었구나) 촬영을 나가야하는데,
소품으로 꽃다발이 필요할 듯 싶었다.
새벽부터 촬영이 시작되기 때문에,
꽃다발을 미리 사놓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일찍 사면 꽃이 시들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한 저녁 7시 정도!
꽃을 사러 돌아다니는데...도통 꽃집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한군데 발견한 곳은,
원하는 컨셉의 꽃이 아닐 뿐더러 너무 비쌌다.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오늘 새벽 4시까지 촬영을 나가려면,
잠자기도 글렀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꽃시장이 있다고 하니,
12시에 꽃을 사고 심야 영화를 한편 때린 다음에 촬영장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 얼마나 훌륭한 계획인가.
회사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해맑게, 핑크빛 앞날을 꿈꾸고 있었는데....
거의 역에 도착했을 때 쯤,
기껏 출력해놓은 문서를 빼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젠장.
뭐, 엄청 필수적인 사항은 아니니까...그냥 가자 마음을 먹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부터 꼬인 것일까.

밤 12시에 문을 여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꽃 시장은 내가 생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도매 시장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한군데 정도는 그래도, 뭔가 만들어 놓은 꽃다발을 팔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꽃다발까지는 무리라도 따로 포장을 해주는 곳이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한 것이다.
나의 엄청난 계산 착오.
정말 철저한 도매상.
너무 바빠 보여서 말 조차 걸기 어려운.

게다가 의상의 색상을 알 수 없어 어떤 색의 꽃을 골라야 할지도.
그래도 프러포즈 컨셉이니 장미꽃이 필요할 것 같아,
무난한 핑크빛 장미를 샀다.
(빨간 장미는 검은색 계열의 수트를 입으면 별로 색감이 예쁘지 않을 거 같아서)
근데, 포장을 안 해주고 신문지에 둘둘 말아주는 건 두째 치고, (이 부분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가시와 잎이 그대로.
아. 어쩌란 말인가.
정말 새벽 4시에 꽃 파는 집도 없고.
(일요일 7시에도 없었는데....)
고민을 하다가 조금 정돈이 되어 있는 이름 모를 꽃 한 단을 더 샀다.
내가 생각한 컨셉에는 안 맞는데.
자꾸만 내 팔에 가시를 박아대는 장미는 버려버릴까 생각했는데...
(차마 그 환경에서 환불은....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것도 할 짓은 못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아름다운 꽃인데...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는 것은,
정말 죄를 짓는 기분이어서.

결국, 난 전지 가위를 샀다.
우선 고터 한 구석에 터를 잡고, 가시와 잎들을 다 정리하기 시작했다.
(청소 아줌마 미안해요. 쓰레기통에 버리긴 했는데, 넘쳐 버렸어요.)
그리고 다시 올라가서 리본 등을 샀다.
대충 줄기를 리본으로 묶었는데....모양새가...참.....어설프기 짝이 없다.
아무도 돈 주고 샀다고 하면 안 믿을 거 같다.
아. 어쩐담.
원래도 손으로 뭐 만드는 거 정말 못하는 스타일인데,
내가 생각해도 헛웃음이 난다.

결국 이것 때문에 12시 50분에 보려고 했던 영화를 놓쳐버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 중...
시간이 너무 애매모호한 것 같아서, 촬영지로 이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좀 머니까 얼추 괜찮지 않을까.
젠장.
역시 새벽의 택시는 너무 빨라.
너무 빨리 와버려서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14,000원이나 주고 택시 타고 간 곳을,
다시 5,000원이나 주고 다시 나와 머물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
건대 카페베네다. 

이런 내가 웃기고도 또 어이없어서.
그렇게까지 멍청한 스타일은 아닌데,
한 순간의 판단 미스와 결단력 부족,
(사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고민을 조금 하긴 했었다.
중간에 내려서 머물다가 갈까.
목적지까지 가면 아무래도 있을 곳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버린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명확하게 보았으니...!
결론은...뭐지?

장미꽃은 시들어가고,
내 눈은 감겨오고,
시간은 3시 12분...
나는 30분 후에 다시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액땜이라 생각하자.
오늘 좋은 일들이 생기려고, 액땜한 거라고.
아,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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