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친구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10년 전 자신으로 부터 편지를 받았다는 것.
사연인즉슨,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전 지리 선생님으로부터 과제 하나를 받았다.
10년 후 자신에게 편지쓰기.
기억도 안나는 그 편지를 선생님은 10년 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11년이 지나 보내주신 것이다.
원래는 작년 12월에 보냈어야 했으나 조금 늦었다며, 2% 부족했지만 약속을 지켰다는 편지와 함께.
졸업 앨범 속 주소지로 보내주셨다면서,
만약 이사를 간 친구가 주위에 있다면 전에 살던 집을 한 번 찾아가보라는 멘트도 잊지 않으셨다고 한다.
나 역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엄마에게 예전에 살던 집으로 연락을 해보라고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고, 그대로 포기하기엔 아까웠다.
10년 전 내가 지금의 나에게 쓴 편지가.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점심 식사를 하고 왔는데, 회사 책상 위에 놓여있는 편지 봉투 하나.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이름이 명확하게 박혀 있는 봉투를 보면서,
나는 한 눈에 무엇인지, 뜯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어떻게 내게, 여기까지 전달이 되었을까 궁금증을 안고 개봉했다.
편지의 비밀은 지난 달 주소를 묻던 친구에게 있었다. 한 친구가 앞도 뒤도 없이 주소를 물어보길래,
나 역시 앞도 뒤도 없이 주소를 알려줬다.
내가 나에게 쓴 편지 뒤에는 "이거 보내려고 주소 물어봤어. 어쩌다가 이런 작업 하게 됐다. 보.고.싶.다."라는 친구의 글귀가.
정말 회사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걸 간직하고 보내준 선생님께도 고맙고, 또 그 선생님을 도와 이 작업을 하면서 나를 챙겨준 친구에게도 고맙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누구에게건 자랑하고 싶은 그런 마음.

사실, 대학교 때도 한번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강의 때 자신에게 썼던 편지가 한 일,이 년 뒤에 집에 도착한 것이.
하지만 10년이라니.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른 감정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펴보았다.
우선, 글씨가 이쁘더군. 고등학교 때는 편지 쓰는 것도 좋아하고, 노트 필기도 많이 하고. 손글씨를 쓸 일이 참 많았는데,
언제인가 부터 자판과 친해진 손은 연필이나 볼펜과는 담을 쌓기 시작했다.
당연히 글씨도 삐뚤빼뚤해질 수 밖에.
그리고 '방송국'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그러자 기뻤던 마음도 잠시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물론 그 뒤에 있는 앵커우먼에는....조금 손발이 오그라들 뿐 큰 마음의 동요는 없었지만
'방송국'이라는 세 글자는 참 아프더라.
사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아마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을텐데.
'방송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꿈'이니까.

그리고 '연극'이라는 단어에서 다시금 마음이 아파왔다.
내가 연극에 몸 담을 수 없는 가장 처절하고도 현실적인 이유.
나는 그래왔다.
13살, '연극 배우가 되면 어떨까' 라고 엄마에게 묻고, 스스로 '가난한 딴따라가 되고 싶지 않아'라고 대답했던 나였다.
17살, '연극 배우가 될꺼니?' 라고 묻는 선생님께, '연극은 그저 힘들고 지칠 때 기대고 싶은 안식처 같은 곳이에요.'라고 대답했던 나였다.
그런 나이기에, 나는 지금도 그 앞에서 머뭇 머뭇 망설이고 있는 거겠지.

그러다 '정치인'이라는 단어에서는 또 다시 헛웃음이 나와버렸고.
이 꿈 역시 깨진지는, 혹시 버린 지는 너무 오래되어서, 사실 오히려 담담했다.
이 편지를 쓰고 얼마 안 있어,
나의 꿈은 '정치인'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로 바뀌었으니까.

그리고 '베스트프렌드'에서는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도 그녀들이 여전히, 그대로 내 곁에 있어주고 있으니까.
아무리 '꿈'이 나를 상처 입히고, 내가 나를 상처 입혔어도,
'친구'는, '사람'은 내게 남아 있었으니까.
내가 원하는 모습 어디에도 다다르지 못했지만,
지금도 나는 주목 받지 못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느낌에 힘들어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만큼은 곁에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헛 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성인군자 같이 굴던, 어린 내 모습이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 어떤 통속적인 대사보다 더 가슴이 아리게 느껴지는 편지였다.
편지를 받고 행복해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다,
비참해서 스스로를 바라보다,
나는 다시 웃었다.

여전히 나는 17살 때처럼,
욕심에 상처 입고, 노력하지 않는 나로 인해 상처 입고, 재밌게 사는 게 아니라 견디며 살아가고 있고,
 경쟁 사회에서 스펙에 의해서만 평가되는 조금은 힘들고 짜증도 나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때가 있어 지금이 있듯이, 지금이 있어 미래가 있을 테니까.

과거의 내게 미안해지는 오늘,
미래의 내게 다시 한번 다짐한다.
미래의 내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람이 되겠다고.
꼭 그렇게 되겠다고. 

추신. 편지의 'P.s'는 첫 문장부터 대박이다. 
뭐가 그리 기분이 안 좋았는지.
디테일한 사건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알.겠.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나는 나니까.

'지껄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조건'을 주세요.  (0) 2011.05.29
비둘기 부리에 하트가 있네.  (0) 2011.05.28
홍콩은 없는 홍콩이야기 6  (0) 2011.05.25
홍콩은 없는 홍콩이야기 5  (0) 2011.05.25
홍콩은 없는 홍콩이야기 4  (0) 2011.05.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