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별 드라마를 실시간까지는 아니지만, 매주 챙겨보게 되다니!
내가 이정도까지의 일드 마니아(아직 마니아라는 표현을 써도 될지는 모르겠으나...ㅡ.ㅡ;;;)가 될지는 몰랐다.
무튼, 백수 생활은 나에게 일드 및 일본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져다 주었으니,
이상하게 백수만 되면 일드, 혹은 일본 영화에 빠진다.
할 일이 없으니, 2010년 4분기 드라마를 시작도 전에 살펴보고,
보고 싶은 리스트를 작성해보았다.

넉넉잡아 한 5개 정도가 나왔는데,
그 중 1순위는 역시나, 최근 빠져 있는 '카세 료'의 신작 드라마!
<케이조쿠 2:SPEC>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형사물이나 범죄물에는 별 흥미가 없다.
일단 대부분의 형사물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그거 자체가 별로 좋지 않다.
하지만, 카세 료가 나온다면!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 드라마 꽤나 흥미롭다.

케이조쿠 1을 보지 않는 나로서,
주위의 반응을 보면 1과 전혀 다른 느낌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일단, 형사물의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느낌이다.
과학적인 근거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정말 세상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특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오히려 얼마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먼 이전에 봤던 <오스트로스의 개>와
소재 면에서는 닮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카세료가 연기한 세부미 상은 본래 수사 1과의 엘리트이지만,
작전 투입 중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미해결 사건 특별 대책계인 미상부로 좌천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는게 토다 에리카가 맡은 토다 상이다.
토다 상은 아이큐 201의 소유자.
교자를 무지하게 좋아하고, 초능력(특수 능력)을 믿고 있으며, 사건 해결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즉흥적이고 생각없어 보이는 토다 상과, 상부들 앞에서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FM같은 남자, 세부미 상이 서로 알콩달콩(?)해 가면서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게 주된 이야기!

1회를 감상했을 때는,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에 다른 것에 대해서는 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더불어 오프닝과 음악이 미치도록 좋다는 것.
카세 료는 빡빡 머리도 미치도록 잘 어울린다는 것.

하지만 2회를 봤을 때,
처음에는 너무 토다 에리카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흠칫하고 있을 때,
생명은 어찌되었던 간에 소중하다고 내질러주는 카세 료.
짧은 순간이지만 미칠듯한 연기를 보는 순간,
아! 이게 요즘 유행하고 있는 '미친 존재감'이로구나.
좋다. 좋다. 좋다. 카세료 좋다. 우후훙.

그리고, 토다 에리카도 나쁘지 않다.
헝크러진 머리 하며, 그 멍한 표정이나, 흥미가 일었을 때의 모습.
토다 에리카는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기는 했으나,
별로 호불호가 없는 배우였다.
본 듯 하나, 어디에서 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한번 찾아보니, 제대로 보았고 기억도 선명한 것은 <유성의 인연>뿐.
<코드블루>는 드라마 자체를 보다가 중단했기 때문에 토다 에리카에 대한 기억이 전무,
<데스노트>의 경우에는 영화는 봤으나 남주인공에 대한 인상이 너무 깊어 토다 에리카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노부타 프로듀스>나 <꽃보다 남자 리턴즈>는 더더욱더, 기억이 안나고!
하지만, 이렇게 기억이 별로 없다는 게 어쩌면 더 좋게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노우에 마야나 호리키타 마키의 드라마는 이상하게 끌리지가 않는다)
무튼 토다 에리카의 역할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든다는 것!

그리고 한 명, 카미키 류노스케 군!
인상 깊어서 찾아보니 <너무 귀여워>에 나왔던 아역 배우이던데!
극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듯!

총에 맞아 죽을 뻔한 세부미 군(카세 료 분)을 두 번이나 살려주는 인물인 듯 한데,
과연 세부미 군에에게는 어떠한 능력(?)이 있길래,
죽기에는 아깝다는 건지.
무튼, 아직까지는 만족스러운 드라마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흥미롭기도 하고, 일단 카세 료가 있으니까.
우훙^^

지켜보자고!



P.S 어느 블로그에서 번역되어 있는 카세 료군의 인터뷰를 읽었다.
      <케이조쿠 2:SPEC>과 관련한.
      자신에게 왜 출연 의뢰가 온 건지 알지 못한다는 카세 료군.
      그리고 아직도 모르겠다는 그.
      자신의 배역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그가 좋다. 
      또 이렇게 고백으로 마무리가 되는군.
     


역시나 배우의 영향이 큰 작품이다.
만약 이치하라 하야토가 아니었다면...
물론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확률이 매우 크고, 시작했더라도 "이 드라마 뭔가요~" 정도의 느낌!!
뭐랄까! 우리나라 케이블 방송에서 나오는 조금 섹시코메디 드라마의 느낌이랄까?
가볍고 재밌지 않을까 해서 지하철에서 보려고 했는데... 웬걸? 어찌나 여자 몸을 훑어주시는지, 괜시리 지하철에서 민망해서 결국은 집어넣었다.
아직 동정남인 열쇠 수리공인 사루(이치하라 하야토)를 중심으로 미인이 등장, 위기에 처한 것을 총각딱지를 떼겠다는 일념 하나로 구하고 사건사고를 해결해 나간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심야 시간에 방송되었다는데... 어찌나 남자들의 여자 밝힘증에 대한 코믹하고도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뭐, 이치하라 하야토가 하니까 귀엽고 봐줄 수 있는 거지, 다른 남자가 그러면 완전 변태&진상이라고 그럴 듯!
그냥 이 드라마에서 건질 것은 이치하라 하야토, 그리고 소꿉친구! 엔딩 영상이랑 노래....
드라마 속에서 이치하라 하야토와 항상 함께 행동하는 3명의 소꿉친구들! 그 관계가 너무 좋다. 나는 확실히 이렇게 사람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좋은가보다!!!
원작은 만화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전체적인 스토리는 좀 허술하지만 (집나간 아버지 이야기) 에피소드는 나름 재미있다.
영화로도 나왔는데 찾을 수 있다면 보고 싶다!
결론은 이치하라 하야토의 목소리와 웃음, 눈물 연기가 참 좋다는 거.....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관람일 : 2010년 10월 7일
공연장 : 남산예술센터



아는 동생으로부터 온 문자 한통! <긴급초대! 오늘 8시 남산예술센터 연극 ‘내 심장을 쏴라’. 보실분 롸잇나우 문자>. 보고 싶던 연극이었다. 동명 책을 원작으로 하는데, 책 역시도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놓쳐버렸었다.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라는 단순한 줄거리만 알고 공연을 보러 갔다.

우선 친구를 만나 공연장으로 갔는데, 극장에 얽힌 옛 기억이 새록새록! 아마도 그 남산예술센터에서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장진 감독님을 뵈었었다. 장진 감독님이 <세일즈 맨의 죽음>이란 작품으로 서울예전 동문들과 함께 공연을 한 것이었는데, 공연 마지막 날 급하게 현장 티켓을 구해서 봤었다. 티켓을 사려고 현장에서 줄을 서 있었는데 장진 감독님이 옆으로 지나가셨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이지만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었다. 하긴 16살 때부터 좋아하던 감독님이었으니... 하지만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 상태였기 때문에 따라 갈수도 없었고, 따라가서도 별로 할말도 없고. 그곳에 멍하니. 하지만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난 후, 로비에서 잠시 감독님을 뵐 수 있었고, 사인도 받고 쪽지도 드리고. 조금은 잊고 있었는데. 장진 감독님도, 예전의 나도. 남산예술센터를 보며 그 순간이 조금은 그리워졌다.

티켓을 받고 리플렛을 하나 집어들고 친구 H양과 커피 한 잔을 하러 갔다. 그리고 리플렛을 살펴보니 이게 웬일? 남자 주인공이 김영민 님이신 것이다! 솔직히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심하게 문제가 있는 배우지만, 내게 있어 특별한 배우 김영민 님. 김영민 님의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04년인가, 한참 장영남 배우님께 빠져있을 때 영민 님과 <햄릿>이라는 작품을 했었다. 그 때 <햄릿>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민 님께 빠졌던 것 같다. 하지만 불행히도 가난한 대학생 신분으로 <햄릿>을 보지 못하고 넘어갔고, 영민 님은 아련한 그리움이 된 정도? 아하하. 그리고 또 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작품. <레인맨>. 영민 님이 또 그 배역을 맡았다는 걸 알고 보고 싶었지만 또 패스. 그 작품은 나중에 다른 배우의 캐스팅으로 보았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그리워하고 궁금증에만 휩싸여 있던 김영민 배우의 연기를 본다는 것에 이미 나는 조금 흥분 상태가 됐다고 할까?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고. 솔직히 미친놈 역할을 하는 김영민 배우는 충격 플러스 대박! 너무 연기를 잘 하시는 것이다. 젠틀하고
멋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미친 연기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튼튼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와 조화, 그리고 무대 활용과 연출! 이 세 가지가 모두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스토리는 감동과 웃음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인이 딱 좋아할 만한 가족애도 조금 건들이고 있었으며, 그리고 청춘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가 있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최근 들어 본 연극 중에 가장 많은 배우들이 등장한다.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연기들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대사가 많지 않는 조연들의 연기도 얼마나 훌륭하던지. (물론 한 명, 조금 거슬리는 분이 계시긴 했지만, 그 분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너무 훌륭한 연기였다.) 정말 솔로로 하는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던 정신병원의 커플 중 한이를 맡으신 분, 참 잘하시더라. 커플을 잃고 돌덩이가 되어 버린 그 이야기 속 에피소드도 마음에 들었고. 그리고 조연급으로 나온 배우 중 김용 역학을 맡은 정승길 님은 옛날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들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본 분이었다. 책임간호사 윤보라 역을 맡은 윤다경 님과 함께. 봤던 배우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까지. 너무 좋았다.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 한다고 느낄 때가 정신병원이 난리가 나거나 아니면 흥겹게 어우러져 즐길 때. 정말 개인적인 연기들도 좋았지만 전체적인 앙상블도 너무 훌륭했다. 또다른 남주인공 류승민 역을 맡은 이승주 님도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얼굴. 게다가 연기도 꽤나 괜찮았다.

드라마는 심각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재밌게 풀어간다. 수명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울한 청소부와 잠시 말다툼을 할 때, 그걸 어떻게 해결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의 용이님의 한 마디로 정리가 되어버린다. “사제지간에 싸우는 거 아니에요” (수명은 청소부에게 수학을 가르쳐줬다) 유쾌한 대사이지만, 또 그 긴장감이 고조된 분위기를 바꾸려면 배우의 연기가 중요한 대사인데, 너무 잘 해주었다.

무대는 꽤나 단순했다. 하지만 조명과 연출만으로 그 단순한 무대를 가득 채운 점이 또 훌륭했다. 내가 좋아하는 연극적인 재미라는 것이 있다. 바로 상상하게 만드는 것. 연극은 영화와 달리 대사나 연출로 ‘여기가 차안 입니다’라고 말하면 차안이 되고, ‘여기가 보트입니다’라고 말하면 보트가 된다. 조명만으로 차안을 만들고, 연기 만으로 물속을 만들어 낸다. 수명과 승민이 보트를 타고 갈 때, 수명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직접 손으로 날리는 승민. 미치는 줄 알았다. 정말.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장소. 정신병원, 신림책방, 수봉산, 유원지 등. 이런 걸 연극적으로 표현해낸 제작진에게 정말 큰 박수를. 그리고 그 것을 너무 훌륭하게 뒷받침 해준 배우들에게 박수를. 그리고 숨지도 말고, 견디지도 말고, 살자고 하는 주옥같은 이야기들.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어느 정도는 극적인 이야기였지만, 또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현실적일 수 있는 이야기들. 간만에 너무 재밌고 유쾌하고 즐거운 작품을 봤다. 극장을 나가는 발걸음을 너무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카세 료라는 배우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인가?
아니다. 그 이전부터 <인스턴트의 늪>이라는 영화에 관심이 있었다. 쿠도 칸쿠로가 나오기 때문이었나?
무튼 한참을 찾아도 발견할 수 없어서 못 봤는데, 얼마전에 발견! 감상 완료!

처음에는 그냥 어느 정도 엉뚱한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했고, 시작부터 휘몰아치는 여 주인공의 독백이며 화면 편집 구성하며, 이 영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편집장!
인생이 점점 빈곤해진다고 느껴지던 어느날, 여 주인공의 엄마가 그녀에게 갓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며 갓파를 잡으러 갔다가 연못에 빠져 혼수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 발견된 30년 전에 도난 당한 우체통. 그 안에는 자신의 엄마가 한 남자에게 보낸 편지가 들어있었고, 8살 때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친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편지를 보낸 자신의 친 아버지를 찾아 나서게 된 여 주인공. 그는 친 아버지로 여겨지는 남자를 만나며 골동품에 관심을 갖게 되고, 빈곤한 자신의 인생에 무언가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상식적이고 수수한 펑크 락 가수 가스, 바로 카세 료이다! (뭐, 이 영화 속에서는 카세 료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도, 카세 료라는 배우의 극대치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카세 료의 머리 스타일을 보는 재미?)

처음에는 그저 소소한 재미 뿐이었다. 여주인공이 큰 인형탈을 쓰고 창문에 서 있을 때 길을 걷다 그 광경을 보게 된 아저씨가 매번 그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자기 인생의 결정을 해 나가는 것. 그리고 텐션이 바닥을 치는 주인공에게 수도꼭지 하나로 기분을 업 시켜 주는 것도. 세면대에 물을 틀고 주스를 사러 가거나, 욕조에 물을 틀고 밥을 먹으러 가거나. 물이 넘지 않을 시간에 맞춰 오려고 서두르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엄마가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그녀에게 갓파를 보여주기 위해 갓파를 잡으려고 연못에 갔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도. 그런 엄마가 혼수상태에서 갑자기 심장박동이 멈췄을 때, 딸이 말한다. 아무렇지 않게, 놀라지도 않고, 담담하게. 죽은 척 장난치지 말라고. 그러자 엄마의 심장박동이 정말 뛰기 시작한다. 장난친 거 처럼. 그럼 딸은 말한다. 의식이 있는 게 맞다고. 이런 소소한 재미들이 좋다.

여주인공은 친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결국 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를 떠나보낸다. 그러면서 그가 남긴 집안대대로 내려오던 창고 열쇠를 돈을 주고 받게 된다. 그 창고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진귀한 보물이 아닌 그저 흙과 모래 뿐.

상실하기 보다 고민에 빠진 그녀는 그 흙과 모래가 이전에 늪을 말린 거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 모래를 자신이 살던 곳으로 옮겨온다. 그리고 그 모래에 물을 뿌려 인스턴트 늪을 만든다. 완성되었지만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여 주인공에게 가스가 말한다. 재밌었다고. 그 순간. 늪에서 일어난 일은? 볼 수 없는 것은 믿지 않던 그녀 앞에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존재가 등장한다. 늪에서 상상의 동물이 나올 때, 정말 최고의 결말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의 엉뚱함이라면,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 아닌가.



백수 생활, 3개월 차.
정확하게 72일째.
나는 여전히 당당하면서도, 초라하다.

어제 부산에 다녀왔다.
(12시가 넘었으니, 엊그제가 맞는 표현이겠다.
뭐, 이건 중요하지 않을테고)
심야버스를 타고 다시 부산에서 서울까지, 4시간 반을 달려
아침 6시 집에 도착했고,
그대로 잠이 들어 오후 5시가 가까이 되어서 일어났다.

부재중으로 찍혀있는 오빠의 전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젯밤 아빠에게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내 휴대폰이 꺼져있다면서.

아마도 어제 부산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휴대폰을 꺼놓았을 때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아빠가 많이 걱정을 한다고 하며 오빠는 전화를 끊었다.
오빠에게 조차 부산에 다녀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정말,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자식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가슴이 조금 아파왔다.
백수로 사는 거.
스스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결국 부모님께 걱정을 끼친다면 그건 괜찮은게 아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많이 걱정을 하신다며.
어제 오빠에게 전화해서 굶고 사는 건 아니냐며.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아빠가 걱정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솔직히 눈물이 났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과 형제는 그토록 걱정을 하는데,
나는 나의 휴식을 맘껏 즐기며, 누리며 살고 있으니.

그 모순 앞에서,
더더욱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괴리감이 생겨났다.

엄마에게도 말했지만,
백수상태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 것이 참 쉽지 않다.
뭐랄까.
돈을 목적으로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은 얘가 돈은 있나, 굶지는 않나, 힘들어서 전화 했는데 차마 말하지 못하고 끊는 건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하니까.

잘 모르겠다.
정말 잘 모르겠다.

아니, 알 것 같다.
지금 나는 나를 위해서도,
부모님을 위해서도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든 내가 원하면 시작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뭐, 어떻게든 되겠지.
모든 건 괜찮을꺼야.

한가지.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는 자식이 되자.
그렇게 살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