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6-7년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반이었으니까,
13살.
그리고 우린 지금 27살이라는 이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의 13살을 떠올려보았다.
담임 선생님의 이름도, 친구들의 이름도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의 생신을 맞아 내려간 본가.
6학년 때 썼던 일기들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스스로 쓴 일기가 아니라 검사 받기 위해 썼던 일기는,
손발 오글거림의 절정이었다.

그 일기 속의 13살의 나는,
순수하리만큼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사랑받고 싶어 어찌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내가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엄청난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난생 처음으로 해보았다.

누가 읽어도,
뻔히 보이는 욕심.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포장할 줄 알겠지만,
그 때의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1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다니.

그 전에는 그런 내 모습을 할말은 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선생님께 섭섭한 부분이 있으면,
이에 대해 일기장에 다 적는 그런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니, 그 모든 것은
자기 주장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꾸밀 줄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더욱이,
그때의 나는,
지금도 그러하듯이 여전히 자신감이 없다.
나는 나의 자신감 상실이 자의에 의해 뒤 늦은 청소년기에 형성된
후천적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였다.

발표하는 거 좋아하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이를 위해 마음 속으로 수백번 "할 수 있다"라는 주문을 되뇌이는 아이였다.

이렇게 회상을 하다 보니, 생각이 난다.
나를 외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라몀 나를 소개하던 내 자신이.

13살의 나는 많이 두려워했다.
미움 받는 것을.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그리고,
27살의 나는 여전히 그렇다.

많은 것이 두렵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욕심이 많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머뭇거리게 된다.

진심도, 진실도 퇴색되어 버려,
빛 자체를 잃어버린,
그래서 한숨밖에 남지 않은
황량한 마음.
어둠 속에서 별을 찾아보려 아무리 고개를 들어보아도,
어깨 결림 외에,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떤 삶을 살아나가야 할까.

에디슨의 유명하디 유명해,
식상한 그 말.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니,
한번 믿어볼까.

길을 잃었고,
길을 찾으려 한다.
무언가를 운명이라는 말로 포기해버리고,
무언가를 운명이라는 말로 결정해버리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망할 것이라는 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행복하다는 말로,
그렇게 바꿔서도 살 수는 있는 거잖아.

두려워하지 말자.
간절히,
두려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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