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정보 : 2007년 11월 3일~2008년 1월 26일 방송종료
출연진 : 오카다 준이치, 마키 요코, 츠츠미 신이치, 야마모토 케이

요즘 또 일드에 빠져가고 있다.
1회를 제외하고는 한 편당 50분을 넘지 않고, 게다가 11회면 끝나니까 일단 보기가 좋다.
그러나 예전만큼 푹 빠져들거나, 나를 미치게 만드는 드라마가 없었다.
자꾸만 스킵을 하면서 보고 싶고.
하지만, 오늘 스킵을 거의(완전히는 아니다) 하지 않고, 본 드라마가 있다.
바로 <SP-security police>!
왜 다운 받아 놓았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다운 받은지가 오래되었다.
형사물이나 탐정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이 드라마도 배경이 경시청인 듯 하여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1회를 스킵해가며 본 결과, 이거~ 이거~ 이거~
집중할만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회 부터 다시 시작!

우선, 소재 자체가 그냥 단순한 경찰의 이야기가 아닌,
국정에 관련된 국내외 VIP의 방패가 되는 경비부(?) Security Police에 대한 것으로, 조금 신선했다.

드라마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특수한 능력을 갖게된 오카다 준이치가 SP에 오면서 시작한다.
1회의 경우에는 그냥 단순하게 VIP의 방패가 되어 움직이는 벽으로,
 때로는 목숨을 희생해 그들을 막아야하는 기존 SP와 달리,
직접 범인을 사전 검거하는 이노우에(오카다 준이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같은 경찰 안에서도 무시받는 SP에 대한 다른 접근.
그 신선함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노우에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드라마는 스토리에 힘을 받는다.
이노우에는 어린 시절, 정치가가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꾸민 자자극 때문에 눈 앞에서 부모를 잃었다.
어린 이노우에를 안고 걱정하는 듯하면서 안도의 미소를 지은 그 정치가가 지금,
이노우에가 보호해야 하는 총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 여기서 갈등이 생기겠구나.
과연 이노우에가 복수를 하기 위해 SP를 선택한 것일까,
마지막 총리에게 테러가 생겼을 때, 이노우에는 총리를 보호할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 감정선이 아슬아슬 사람을 긴장시키는 게,
오랜만에 드라마에서 맛본 긴장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비극의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청소년이
SP의 계장으로 있는 오가타 상(츠즈미 신이치).
어린 시절 이노우에의 비극을 목격한 오카다상은
SP로서의 이노우에를 아끼고 지지해준다.
오카다가 이노우에를 아끼는 것이 처음에는
그게 그저 그 당시 사고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회는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줘서 좋다.
이노우에 군이 SP로 온 후로, 여러가지 테러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테러들을 이노우에 군은 훌륭하게 막아낸다.
그리고 오가타 상은 테러들에 맞서 좀더 SP가 강해지기를 원한다.
수사력을 확보하고 좀더 강력한 SP가 되어 테러를 저지하기를 바란다.

그랬던 오가타 상이 마지막 회에
테러리스트를 자극하여, VIP들의 일정을 알려줬던 인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쇼크.
그는 왜? 왜 그래야 했을까?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이노우에 군은 권력을 위해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총리를 보호한다.
몇 번을 마음 속으로 소리쳤다.
저런 놈은 죽어도 돼.
저런 놈을 보호한다는 거 말도 안 되잖아.
저런 놈을 보호해야만 하는 거야?
라고.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테러는 정당한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한 권력을 향한 테러라면 정당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래도 변하지 않는게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권력을 그대로 둔다면 그거는 정말 억울한 세상이라고.

그래서 상이 테러리스트를 자극한 인물인 것을 알았을 때는,
권력에 대한 대항으로 생각해서, 이거 이거 이거 대박인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오가타 상은 테러리스트에 대비할 수 있는 좀더 강력한 체제와 기반을 잡기 위해
그 일을 꾸민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소개나 다른 블로거들의 리뷰를 봐도, 우선은 이게 맞다.
좀더 SP 다운 경호 체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만든 작전이라는 게)
그렇다면 테러리스트에 대한 대항이라기 보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조직에 권력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자 나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중간 중간, SP에 대한 편견이나 대우를 보면서 분노했다.
자신의 목숨을 받쳐서라도 중요 인사들을 보호해야 하는 그들의 업무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 사건을 조작하거나 증인을 보호하고,
그 증인이 필요없게 되었을 때 바로 버리는 윗대가리들에 의해 정말 심하게 분노했다.
그런 사람들은 테러를 당해도 싸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이 바뀌지 않는 이상 SP들이 보호해야 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니까.

오가타 상은 과연,
권력에 대항하고 싶어 테러리스트들을 조작한 것일까?
아니면 SP가 좀더 강해져야한다는 생각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조작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 역시 SP가 권력을 갖기 위한 테러에 불과한 것 아닐까?

아마도 오가타 상은 SP가 테러에 대항할 수 있는 좀더 강력한 힘을 갖기를 위해 그런 일을 했을 것이다.
더불어 권력에 경고 하기 위해.
나는 이 두가지 모두를 위해서라고 밖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믿고 싶다.
영화판을 보고 싶은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생각할 게 많은 드라마이 관계로 꽤나 긴 이야기가 되었다.
가볍게  몇 마디 더 지껄여보자면,

첫째, 오카다 준이치.

처음 느낀 그대 모습은~~~~~!
쟈니스인 V6의 멤버.
느끼하지만 꽤나 잘생긴 얼굴로 유명.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은 활약.
이 정도였다.

내게는 뭔가 진지하고, 조용한 이미지였는데
단 두 편의 드라마로 완전 그 이미지가 깨져버리고 말았다.
<키사라즈 캐츠아이>와 <타이거앤드래곤>.
뭘 먼저 보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카다 준이치군 이런 모습이었어!!!! 하면서 엄청 놀랐던 것만 생각이 난다.
코믹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배우라니!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오카다 준이치군은
재미있고 유쾌한 캐릭터로만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수트를 입고, 현란한 액션을 보이는 SP요원 오카다 준이치가 왜 이리 멋져보이는 건지.
생각지 못했던 모습에 호감도가 업!!!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카다 준이치의 멋진 모습을 봤다는 것이 즐거운 드라마 였다.

두번째는 클래식

기본적으로 클래식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SP>에 쓰인 음악들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범죄(드라마 상에서는 테러이지만)라는 소재와 클래식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오죽하면 그래, 테러 장면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이 클래식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과 소재가 적절히 어우려져 독특한 SP만의 분위기를 형성했다.
고급스러운 음악과 영상들이,
꽤나 신경쓴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주어 기분이 좋았다.

간만에 기분 좋은 드라마를 보게 되어,
행복했다.


일본 배우가 땡기는 이유는 아마도
우선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람을 좋아하고 싶다는 이상한 성격과 욕망.
(그래서 나는 한국 배우 중에는 좋아했다가,
그 사람이 인기가 많아지면 관심히 사라지고는 한다. 예를 들면, 김남길 같은 경우?
강철중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비담으로 너무 큰 인기를 얻은 후, 관심이 급격히 하락 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 영화랑 드라마를 좋아하니까.
세번째는 영화랑 드라마에서 나오는 모습 외에는 잘 알지 못하니까
일본 문화 자체가 관심이 많거나 엄청나게 좋아하지 않으면 토크쇼나 이런 부분 까지 찾아보지 않으니까.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알 수 없다는 사실.
그냥 이미지나 연기 스타일만 좋아하게 되니까.
그렇게 좋아하게 되는 게 좋다.

그렇게 좋아하게 된 <카세 료>.



첨에 관심이 간 이유는 <흔히 있는 기적>이라는 일본 드라마 때문이었다.
한 남자와 여자가 지하철에 위태롭게 서 있는 중년의 남자를 바라본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 그 처음 만난 남녀는 그 중년의 남자를 향해 뛰어 든다.
중년 남자의 자살을 막기 위해.
그 남녀가 중년 남자의 자살을 예감한 이유는,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
그 힘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남녀가 사랑에 빠지며,
상처를 치유한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서, 다소 유약하고 자신감없고 의기소침한(?) 역으로 나오는 '카세 료'.

처음에는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을까?
어떻게 보면 잘 생긴 것 같고, 어떻게 보면 평범 이하인 듯 싶기도 하고.
그게 좋았다.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게.

그래서 찾아보니,
<중력 삐에로> <구구는 고양이다> 등, 내가 봤던 몇 편의 영화에 나온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나 최근에 봤던 <중력 삐에로>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잘 생긴 것도, 못 생긴 것도 아닌데 꽤나 매력이 있네. 라고.
그러고 보니 <구구는 고양이다>에서도 좋아했던 한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 속 남자가 '카세 료'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묘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갖고 있는 영화 중에서 그 사람이 나온 작품들이 꽤나 많은 것 같다.
배우 때문에 또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카세 료.
아직은 뭐,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엄청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지켜보고 싶은 배우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레슬링을 싫어한다.
그래서 무한도전이 레슬링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도,
그러던지 말던지, 이 정도의 수준이었다.
무한도전인까 보기는 하겠으나, 별로 흥미가 없다는 게 솔직한 진심.
그리고 실제적으로 지금까지 무한도전 레슬링 편은,
개.인.적으로 큰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논란이 불거지고 난 후, 지난 주.
무한 도전 레슬링 편이 조금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재미라는 표현보다는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
도니의 뇌진탕.
사람들은 방송의 안전불감증에 대해서 갑을논박을 벌이며,
무한도전을 비난하거나,
애정어린 걱정을 했다.

지난 주, 무한도전을 보면서 느낀 것은,
못해도 괜찮은 게 무한도전이라는 사실이었다.
완벽주의 아닌 완벽주의 성향을 조금 가지고 있는 나에게,
항상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신년 다이어트 내기에서 형도니가 졌더라면,
과연 형도니는 홍철이처럼 삭발을 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도 중 형도니를 가장 좋아하면서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 였다.

그런데 얼마전 세븐 특집에서 놀이동산에서
놀이 기구를 타는 촬영이 있었는데,
역시 형도니가 고소 공포증으로 인해서 중간에 빠지게 되었다.
이해 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솔직히 실망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지난 주, 레슬링 편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찮은이 형을 보면서,
사람에게는 각각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몫이 있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안된다고 나쁘거나 잘 못된 건 아니라는 것.
자신이 가능한 부분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무한도전이니까.

오늘 레전드 급일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기존 내가 매겨왔던 순위권 안에 들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역시 레슬링 이니까.

하지만 보고 있는데 죽을 것만 같았다.
자꾸만 눈물이 나서.
레슬링을 싫어하는 내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걸 알면서
가슴이 조마 조마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지금까지 보여줄 것과 보여주지 않을 것을 적절히 방송한 까닭일 것이다.
그리고 선수명이라고 할까,
웃음의 부분도 충분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연예인과 도니의 고통의 교차편집에 대해
억지 감동이라며, 감동을 짜아내기 위한 의도적인 편집과 자막이
오글오글하다고 했지만,
나는 반대다.

내가 지금까지 일 순위로 생각하고 있는 레인특집의 경우에도
마지막 그 비를 헤치고 일을 했던 스테프들과 출연진들의 이야기가
나를 감동시켰다.
메이킹 필름같은 그 장면들이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슬랩스틱, 몸 개그를 보면서 그냥 마음놓고 웃을 수 있게 만들어 준 방송.
몸으로 웃기는 것도, 고급스럽게 웃기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말해준 방송.
그리고 스태프의 모습을 가감없이 카메라에 담아준 방송.
그래서 더 이상 스태프가 카메라에 잡혔을 때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됐던 방송.
그런 방송이 내게는 무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레슬링 파이널의 편집도 좋았다.
그냥 무한도전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무대 밖에서 울어도 무대 위에서는 웃어야만 하는
피에로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골수팬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 안에서 받는 감동은,
나를 웃게 만들고 울게 만든다.
그들의 열정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도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래, 이렇게 열심히 걸어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래서.
괜.찮.다.

아무리 세상이 그들을 가식이라고 말하고, 연출이라고 말하고, 방송일 뿐이라고 말해도,
엄마가 나때문에 무한도전을 보려고 해도 재미가 없어서 볼 수 없다고 말해도,
나는.
무한도전이 좋다.
그들이 좋다.
그들의 모습이 좋다.


나를 키운 팔할의 힘은 언어 인가보다.
그 중에서도 입이라는 신체구조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말.
나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은 이렇게 회상한다.
신데렐라라는 어린이 동화책을 읽고 있으면,
'유리구두'라는 정확한 단어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지어내듯,
때.려.맞.추.는.아.이.

아버지라는 단어가 있으면
7살이 되어어서야 한글을 땠다던 오빠는
아버지를 라는 단어를 머리에 인식하고 정확하게 인지한 후, 입 밖으로 내었지만,
나는 글자의 모양만 보고,
아버지라는 단어겠거니 하며, 정답을 말해버리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답은 맞았다고 한다.

내가 특별하거나 똑똑했다고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나를 부모님은 헛 똑똑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나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이유를,
나는 것넘는 (맞춤법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이였기 때문에,
학원에서 배우고 난 후에는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부모의 판단은 지금와 생각해보니 100% 확실했다.

7살까지도 한글을 떼지 못했던 오빠는
초등학교에 입학자하자마자 선생님으로 부터 집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열심히 한다면 S대도 가능할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부터 부모님에 대한 오빠의 믿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착실하게 오빠는 모범생이 되었다.
공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빠를 떠올리면 기억에 남는 것이,
(물론 엄마의 이야기로 인해 재조작된 기억일 수도 있으나)
오빠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다.
착하고 성실하고, 공부도 잘하는 오빠는 누가봐도 리더의 자질이 충분했다.
하지만 오빠는 단 한번도 반장 등 감투를 쓰지 않다.

13살, 아마도 오빠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인가보다.
어느날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고 한다.
능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반장선거에서 기권을 해야 하느냐고.
그 당시 엄마 아빠는 대놓고는 아니었지만,
자식을 뒷받침해줄 능력이 안되는다고 은근히 이야기들을 흘렸던 것 같다.
자식이 학급 임원을 하면, 부모 역시 학부모 위원을 해야 하는 것이 그 당시의 정당한 이치 였으나,
부모님은 그걸 힘들어, 혹은 어려워 하셨고,
그건 고스란히 자식인 우리들한테도 느껴졌다.
그래서 항상 포기해야 하는 오빠가 그날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그 후 오빠가 임원을 했었는지 아닌지는 잘 기억에 나지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6학년 오빠는 처음이자 마지막 임원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빠는 정말 충실히 학교-집-농구 동아리(축구 였던 것 같기도)만 왔다 갔다 하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엄마는 오죽하면 그런 오빠의 학교 생활을 CCTV로 촬영하여 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전교 1등.
하지만 오빠는 SKY대에 가지 못했다.
수능에서 3개를 틀리고도.
하긴 오빠가 수능을 볼 당시 60명이 넘는 만점자가 나왔으니까.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국립대가 아니고서는 보낼 수 없다고 십 몇 년간을 말해오던
부모님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게 부모님의 마음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수를 해서 꼭 SKY에 가라고 말 할 수 있는 부모님도 아니었다.
오빠가 누구나 인정하는 대학교에 입학하길 바라는 부모님이었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그것을 오빠에게 요구할 만큼 강압적인 부모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원하는 게 거의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원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학과의 학교에 들어갔다.
수석 4년 장학생으로,
그것도 문과의 시험을 보고, 이과의 학부에.
오빠가 나에게 이과만 공부했던 물리 교과서를 구해 달라고 했던 일이 선하다.

하지만 나는 오빠와 달랐다.
처음 부터.
오빠가 전교 1등을 할때, 나는 고작 반에서 2~3등.
하지만 오빠를 질투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믿는 사람은 오빠,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은 나.
우리에게는 분명한 역할이 있었으므로.

내가 대학 입시를 치룰 때쯤.
(나에게 SKY를 꿈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사립대에 두 명을 가르치는 게 힘이 든다며,
오빠에게 군 입대를 권했다.
우리 집 특색이 그러하듯 완전 강요는 아니었지만,
듣는 사람이 완전 싸가지가 아니라면 신경 쓰일 정도로.
오빠는 결국 군에 입대를 하고,
나는....재수를 했다.

나의 재수.
내게도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그정도 밖에 수준과 머리를 가졌다.
(재수를 했을 때, 과탐을 빼고, 내 성적은 1년 전 고3때와 그대로 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우리 부모님은 알지 못하고 있다.
재수 시절의 내 성적은 나 이외에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오빠는, 오빠는 재수르 했다면
아마 우리 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원래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재수를 한다고 했을때,
당연하지 라고 말해준 우리 오빠.
오빠에게 어느날은 화가 나서 물었다.
왜 재수를 하지 않은 거냐고.
오빠가 대답했다.
장남으로서의 무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내가 누린 평화와 자유가 꼭 오빠의 족쇄를 빌미 삼아 얻어 낸 것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미안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오빠가 자신이 마음만 먹었다면
금전적인 어려움 없이도 재수 공부를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빠라면 재수 학원 내에서의 장학생도 무리 없이 해 냈을 테니까.
그래서 오빠가 집의 사정 때문에 재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가 없다.
오빠 역시 지금의 공부에 만족을 하고 있으니까.
오빠에게 지금도, 재수를 하지 않은 게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오빠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우리 오빠.

솔직히 이런 말을 지껄이려고 시작을 한 건 아니었었는데.
요 며칠 일본 드라마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러다 오늘 친구들을 만나 맥주 한 잔을 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 봤던 일본 드라마에 대해,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너무 많아,
핸드폰에 계속 메모를 했다.

나는 말이 좋은 가보다.
프리젠테이션, 임기응변, 사회.
다 자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받아주고,
들어줄 사람이겠지.

이런 말을 하려다,
엉뚱하게 오빠에 대한 이야기로 빠져버린 것은
아마도 오늘 설렁 설렁 봤던
<나의 여동생>이라는 일본 드라마 때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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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나카무라 요시히로
원작 : 이사카 코타로



하나가 좋으면 열이 좋다.
어쩔 수 없는 성향.
일전에도 포스팅한 적이 있지만,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
처음 그 책을 집어 들게 된 것은,
한참 일본 영황에 빠져 있을 때 보게 된 <스위트레인-사신의 정도>,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라커>때문이었다.
원작이 책인줄 모르고 봤는데, 서점에 가보니 주르륵 놓여 있는 것.
영화로 이미 본 것은 책의 감동이 떨어지는 관계로, <골든 슬럼버>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꽤나 만족스러웠고, 그래서 영화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이건 무.조.건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몹쓸 인터넷의 바다ㅠ
영화관에 가서 당당하게 보려고 했는데, 인터넷에서 발견해버렸다.
그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재생을 눌렀는데.....
흙흙. 보지 말 걸.
영화관에서 볼 걸.
많은 원작의 팬들이 영화화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나는 책을 읽은지 오래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좋.았.다.
아니, 말하고자 하는 게 좋으면 다 좋은 거다.
거대한 권력에 의해,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음모. 
그 안에서 평범한 주인공은 습관과 신뢰라는 인간 최대의 무기로,
복수나 진실 증명이 아닌 살아남기를 선택한다.
그게 너무 좋다.

도망가도 좋아.
아니, 도망가.
살아남는 것을 선택해.
그 선택의 옆에는 우리가 있을 거야.
참. 잘했어요.

따뜻한 온도와 추억.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인 듯 싶다.
뭐, 이건 책에서도 좋았던 부분이니,
영화적인 매력을 꼽아보자면....

연쇄살인범으로 나온 하마다 가쿠.
연쇄살인범이라는 캐릭터가 멋있는 건지,
아니면 그 배우가 독특한 것인지.
싱크로율은 100%였던 것 같다.
누군가 하고 찾아봤더니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라커>에 나놨던 인물.
꽤나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엔딩곡.
어쩜! 나는 계속 골든슬럼버만 나올 줄 알았다.
근데, 흘러나오는 노래.
처음에는 작품과 언발런스하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꽂혀버리고 말았다.





<행복한 아침 지루한 저녁식사>라는 곡인데,
뭔가 굉장하다는 느낌.
영화와도 잘 어울리고.
몇번을 반복해서 들었다. 
다시, 뭔가를 보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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