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의 백수 생활.
오늘 나의 ....... 몇번째라고 말해야 할런지...
한 번 읊어보자.

첫번째는 10대 시절, 작가 관련 카페에 처녀작이라며 엉성하게 올려놓은 <약속>이라는 단막극.

그 다음은 동일 카페에 익명으로 올려 놓았던 기획의도 조차 쓰지 않았던 시놉시스인데,
카페 공동 창작 소재로 뽑힌 후 끝끝내 완성되지 못하여,
내 것도, 네 것도 아닌게 되었으니 생략이고.

두 번째는 대학교 시절, 과제로 제출한 <숨은 그림 찾기>인데, 요것도 사연이 좀 있다.
처음에 2부작 드라마로 기획해 결국 단막극으로 제출하고, 다음 학기 다른 교수님 수업에 희곡으로 바꿔 다시 냈었다.
희곡의 경우 고등학교 후배들에 의해 공연으로까지 이어졌고, 그 당시 극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많은 부분 수정을 하기도 했었다.
여하튼 드라마든 희곡이든 하나의 완성작으로 보아야 할 듯 한데,
문제는 지금 드라마 대본도, 희곡 원본도, 희곡 수정본도 그 어느 것 하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갖고 있지도 않은 것을 과연 내 습작 리스트에 넣어도 되는 것일까?
일단 넣자.

세 번째라고 불러야 하는 것도 좀 문제가 있다.
역시나 수업 과제로 썼는데, 이건 또 장르가 단편 소설이다. <열쇠>.
제출해서 그닥 좋은 성적은 받지 못했는데,
합평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평을 받아서 은근히 기분이 좋았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 문서 파일은 남아 있지 않으며, 출력본은 어딘가에 있는데 못 찾겠다.
크헉. 이걸 세 번째로 불러야 하는지 아닌지.
뭐, 일단 넣어줘 보자. 세번째로.

그리고 네 번째가, 공식적인 첫번째라고 할 수 있는 SBS 드라마 공모전에 제출한 작품.
당시에는 스스로가 단막극 정도의 시놉시스와 대본밖에 쓰지 못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16부작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2회 분량의 대본을 썼다는 것에 놀랐다.
게다가 어찌되었든 공모전에 제출을 하고
조금은 본격적으로 시작, 혹은 도전을 하게 되었으니까 의미가 깊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놉과 대본을 쓰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었다.
따로 회사를 다니며 새벽 3,4시까지 써 내려갔지만 피곤하기는커녕 행복했었다.
제출하는 것 하나에 의의를 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역시나 1차 불합격이라는 결과와 함께 스펙터클한 몇 가지의 사건들을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그 후 기획안을 제출할 기회가 생겼는데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아, 어떤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단막극 아이템에서 모티브만 차용해 다른 사람이 만들어 버린 이야기.
모티브는 나의 것이지만 그 외에는 내 것이 아니니까.
잡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다른 사람이 만든 이야기를 바탕으로
내가 새롭게 인물 구성 및 큰 이야기 줄기까지는 잡았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즐거웠던 글쓰기가 즐겁지 않았다.
결국은 백기 들고 투항. 나 못하겠소. 해버리고 말았다.
근데, 지금에 와서 솔직히 그 이야기가 아깝다.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 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내가 써도 되는 건지. 내가 쓰면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게 아닌지.
잘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 고등학교 후배들의 연극 공연 때문에 쓴 것은
이미 기획이 되어서 일부분만 써 달라고 요청이 왔기 때문에 내 작품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솔직히 100%의 마음을 담아 뜬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쓴 부분이 99.9% 이상 수정, 아니 재 창작되었을 때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새끼 발가락 하나 담궈놓고 자신이 썼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다섯 번째, (공식적으로 두번째) KBS 드라마 공모전에 제출한 단막극 <굿바이 로맨스>.
기획은 원대하였으나, 결국은 졸작.
작년인가, 재작년에 구상해서 기획안을 조금 쓰다가 한동안 정지 상태.
MBC 단막극 공모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쓰다 만 <굿바이 로맨스>를 꺼내 재 시작하였으나,
불행히 완성하지 못하고, 결국은 KBS 공모전에 맞춰 겨우,
억.지.로 완성해서 제출하였다.
용두사미 대본이다. 씬 넘버 10까지는 읽어줄만 한데, 나머지 부분들은 내가 봐도 재미가 없으니
누가 재밌다고 할텐가.
아이템이나 구상까지는 괜찮은데, 줄거리나 대사 흡입력이 엄청나게 딸린다.
결국 글을 잘 못 쓴다는 거겠지.

그리고 여섯 번째.... 아! 이 글을 쓴 처음으로 돌아왔다.
 
한달의 백수 생활.
오늘 나의 ....... 여섯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찝찝한 부분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아이템 및 구상에 대해서는 나름 만족한다.
하지만 당선될 확률은,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에 너무나 부끄럽고, 어쩜 자신감 없는 인간으로 비칠지도 모르지만,
0%이다.
노력하지 않았으므로.
5번의 습작으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몰라도.
약간의 재능과 약간의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재능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노력이 내게는 없다.
아니, 없었다.
재능의 부족함을 충족해줄 노력과 성실함이 내게는 필요하다.
그리고 공모전 도전은 그 노력의 일부분일 뿐인것이다.

지금까지 공모전은 (그래봤자 오늘 포함하여 3번일 뿐이지만)
인터넷 제출이었는데 MBC는 출력본을 우편 발송하는 것이었다.
90장 가량의 시놉시스와 대본을 출력해 대봉투에 담는데,
그 기분도 오묘했다.

어제 오빠에게 시놉시스를 보내줬는데,
우리 현실감각 100% + 알파의 우리 오라버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기획하는 사람이 만들고 싶고, 시청자가 보고 싶은 주제와 소재는 아닌 듯 싶다는 것이다.

인정, 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인정, 못 하겠다.

기획하는 사람도, 한번쯤은 그런 소재를 다루고 싶지 않을까?
시청자도 조금은,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지 않을까?

오늘 지하철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완전 우울한 드라마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되어 볼까?
사람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나게 만드는.
재미가 없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현실적이거나, 현실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그런 이야기여서.
아름답거나 기쁘거나 즐겁거나 재밌기만 한 건,
뭔가 심심하니까.

알고 있다.
사람들이 TV 앞에 앉는 건, 즐겁기 위해서라는 거.
그러니,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많이 어렵지만, 또 많이 즐겁다.

이제 2010년 방송국 3사의 드라마 공모전이 모두 끝났다.
KBS의 연속극, MBC의 단막극을 빼놓고는 그래도 모두 제출은 했으니,
이제 첫 걸음이다.
막상 그렇게 이번 년도 공모전이 끝났다고 하니,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백수가 될때,
회사에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그만뒀다.
일부는 진실이었고, 일부는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 말들 때문에, 중도 포기하고 싶을 때도 꿋꿋하게 써 내려갔다.

백수가 되어서,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순간에도, 31일까지는 드라마만 생각하자. 라면서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놨다.
24시간, 드라마 생각만 한 것도, 드라마만 쓴 것도 아니면서.
가증스럽게.

이제, 공모전을 마무리 한 순간.
이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와버린 것이다.
곰곰히 생각하자.
지금까지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말해왔지만,
뭔가 이제는 정말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오늘 몇 번이고, 내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괜찮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나는 괜찮아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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