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씨네큐브가 문을 닫았다. 이전부터 기사를 접했기 때문에, 계속 그 날을 신경 썼다. 엄청난 씨네큐브 마니아는 아니었지만, 기쁨이고 위안처였고, 놀이터였다. 문을 닫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지 가봐야지 생각했지만, 쉽게 발길이 가지 않았다.

 

마지막 날, 마지막 영화를 꼭 봐야지라는 야무진 꿈을 꿔봤으니 씨네큐브의 마지막 영화는낮 2시에 상영이었고 나는 결국 씨네큐브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결국은 나 역시 씨네큐브의 이름을 내리게 한, ...

 

영화를 좋아하는 척, 씨네큐브를 사랑한 척 이야기해봤자 나의 마음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내 바쁨에, 내 이기심에 고개 돌려버리는.

 

씨네큐브와의 첫 만남은 솔직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대학교 시절 어떤 모임에 나가면서 작은 영화관(나는 예술 영화관이라는 표현보다는 작은 영화관이라는 표현이 좋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조금씩 찾아가게 되었다.

 

혼자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남들과는 조금 다른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곳. 나는 그곳이 좋았다. 물론 <스틸 라이프>처럼 너무 어려운 영화도 있었지만, <우린 액션배우다>처럼 날 미치게 만든 영화도 있었다. 울고 웃으며, 감동하고, 외로워하다 그 외로움을 위로 받았다. 그곳에서.

 

씨네큐브를 추억하며, 내 일기장 속에 등장했던 씨네큐브와 영화를 이야기를 살짝 꺼내어 보았다.

 

<칸 국제 광고제 페스티벌 수상작>

 

2007년 처음으로 칸 광고제를 봤을 때만큼의 즐거움은 없었다.

시간이 날 이렇게 만든 것인가?

 

아니면 작품들이 전년도 보다 못한 것일까.

어떤 것이 진실이든 확실한 한가지는 난 2009년에도 이곳을 찾을 거라는 사실.

                                     
- 080927 일기 中 -

 

너무 속상하게도 나는, 아니 우리는 더 이상 씨네큐브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칸 국제 광고제 페스티벌 수상작을 상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일기장 속 이곳은 씨네큐브 한 곳일 뿐. 아마, 모모에서 페스티벌 수상작을 보게 된다면 더욱더 씨네큐브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굿바이 칠드런>

 

영화가 좋다.

난 왜 이제서야 이만큼 밖에 되지 못한 걸까.

예전에 내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면,

나는 간절함을 얻을 수 있었을까?

 

- 090105 일기 中 -

 

<세라핀>

 

잠이 오지 않는 밤.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꼭 되게 해다라고,

그렇게 된다면 물건이 되겠노라고.

미친듯이 하고 싶은 간절함은 아니었다.

그저 운명, 혹은 본능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었을 뿐.

커피 때문인지, 아니면 워낙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던 습관 때문인지, 혹은 인생에 대한 고민 때문이지 잠을 청하지 못했다.

결국 한 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 상태로 잠이 들면 또 두시나 다 되어야 일어날 것만 같아서, 그러면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 고민이 되었다.

은근히 될 것이라는 자신감은 아닌데,

그래서 붙일 수 있는 단어는 결국 운명?

무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평일의 조조 영화를 즐길 시간이 오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해야만 합격 전화를 받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영화관으로 향했다.

<세라핀>!

영화가 시작되기 10분 전.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난 직장을 갖게 되었다.

 

-  090612 일기 中

 

씨네큐브와의 첫 만남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마지막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6 12. 어느 회사에 지원을 하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날. 일기처럼 직장을 갖게 된다면 더 이상의 평일 조조영화를 경험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 찾았던 씨네큐브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상영관에 들어가 영화를 기다리며 난 합격 전화를 받았다.

 

씨네큐브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사실, 올 해에는 스폰지하우스(중앙)에서 더 많은 영화를 봤지만 작은 영화관의 시작은 씨네큐브였다. 씨네큐브를 기억하며. 그리고, 잊혀져 가고 있는 씨네콰논을 떠올리며, 그리고 사라질 압구정 스폰지하우스를 생각하며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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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일: 2009년 7월 31

공연장: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영화 <드림걸즈>를 봤을 때 한동안 그 OST에 빠져있었다. 음악도 너무 좋았지만, 영화 자체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비욘세가 맡았던 디나 존스의 인생보다는 제니퍼 허드슨이 맡은 에피 화이트의 인생이, 그리고 에디 머피가 분했던 제임스 썬더 얼리가 너무나 좋았다.

 

에피 화이트에게 <family>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시 나는 많이 울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한 사람에게 강요되는 희생이, 너무나 싫었다. 그리고 지미얼리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며 바지를 벗어버리는 사고(?)를 칠 때 함께 환호했었다. 자신을 잃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지미가 너무 멋있어 보여서.

 

<드림걸즈>는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뮤지컬로 찾아온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도 우려와 걱적이 앞섰던 것은 내가 먼저 보았던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승우 등 스타 마케팅도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하기는 했다. 한국 배우들이 만드는 <드림걸즈>는 어떤 모습일런지. 그리고 한국과 외국의 합작품의 결과는 어떠한지. 기사 등 언론에서는 김승우 씨는 그나마 괜찮지만, 홍지민 씨에게 소울의 느낌을 많이 받지 못한다고 말했고, 무대에 대해서도 호평이 많았다.

 

내가 본 날의 캐스팅은 홍지민, 오만석 씨였다. 일단 <드림걸즈>가 이렇게 웃길지 몰랐다. 매우 재밌다. 엔터테인먼트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일단 오만석 씨의 노래는 실망스러웠다. 이는 나의 오만석이라는 배우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오만석이라는 배우를 개인적으로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만석 씨가 부르는 노래들을 실제로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부드러운 사랑노래들은 잘한다. 하지만 강한 노래들은 임팩트가 약했다. 매우 불안했다. 물론 최철민 씨도 매우 잘 부르지는 않았다. 최민철씨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우 매력적인데, 소울 음악을 부르려니 어울리지 않는다기보다는 민철 씨의 최대치가 발휘되지 않는다는 느낌. 어쩌면 좋아하니까 괜찮아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최민철 씨가 맡은 지미는 극의 웃음을 책임지고 있다. 공연의 분위기 메이커. 관객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그의 모습. 너무나 좋았다.

 



홍지민 씨는 정말 엄청난 성량이었다. 솔직히 노래는 잘 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단 본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좋았다. 무대 위에 서있는 그녀의 자신감이 객석에 있는 나에게 까지 전달되어 왔다. 그것은 굉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에게 압도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대는 LED로 는데, 역시나 화려했다. 하지만, 나는 그 화려함과 21세기스러운 느낌이 나는 좋지 않았다. 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20세기 사람이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LED로 표현되는 무대보다는 뭔가 사람 냄새가 나는 무대가 좋다. 덜 화려하다 하더라도.

 

무대에서 소울을 깎아먹은 느낌이랄까. 엔터테인먼트 적으로는 매우 즐겁고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말 밖에는 딱히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관람일: 2009 8 9

공연장: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좋은 공연을 보고 온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괜히 웃음이 난다. 기분이 마구 마구 좋아진다. 오늘 역시 그렇게 가슴이 설렜다. 요즘은 보는 것마다 대박이다.

 

연극 <39계단>. 꽤나 오래 전 역사 내에 붙어 있는 광고물을 보고 이 연극에 관심이 생겼다.(아마도 초연 때였던 것 같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연극화했다는 것과 코믹 스릴러라는 장르가 내 눈길을 끌었었다. 하지만 <39계단>을 보겠다는 것은 마음 뿐 그냥 그렇게 놓쳐버렸다.

 

그러다 다시금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볼 수 있는^^;;;; 나는야 가난한 워킹푸어족ㅠ 8 30일까지 공연이기에 더 이상 늦출 수 없었고, 결국 일요일 20% 할인과 사랑티켓 7,000원의 할인을 받아 관람을 하기로 결정했다.

 

보고 싶은 영화나 연극의 경우에는 사전 정보를 그리 많이 얻지 않는다. 그냥 보는 순간의 느낌을 믿으려고. 이 작품의 경우에도 그저 예매처에 기재되어 있는 정보만을 보았다. 네 명의 배우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소품 활용도가 최고라는 것들. 그리고 재밌다는 것.

 

일단,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 1막의 경우에는 최고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대사의 언어적인 재미도 훌륭했다. 또한 무대가 주는 재미 역시 놓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동안 연극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이러니에 빠져있었다. 연극이기 때문에 연극적일 수 밖에 없지만 그 연극적임이 마치 거짓과 같이 느껴졌었다. 연기를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그 순간, 관객은 그 무대 위의 세계로 흡입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연극을 보다가도 싸우는 장면들에서는 어느 정도의 맞춰져 있는 각본을 보게 되고 그 순간 사람들은 실소를 내뿜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연극이 갖는 한계점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었고, 나의 편협하고 얕은 지식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그런 나의 생각들이 후자의 이유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연극 <39계단>을 통해서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연극이라는 것을 일부만을 보고 살아왔는지, 연극에 대해서 얼마나 작은 세계를 맛보았는지, 얼마나 조금 밖에 작품들을 경험하지 못했는지, 오늘 처절하게 깨달았다.

 

<39계단>은 연극이 가지는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줬다. 연극적이라는 말이 갖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연극이 연극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현실세계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배경 없이 불가능한 것들, 그것들이 연극에서는 가능하다. 소품 하나, 대사 한 마디로 무대는 런던이 되었다가 스코틀랜드가 되었다가 기차가 되었다가 호텔이 될 수도 있다.

 

그걸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으면서도 완벽하게 표현하는 연극을 보지 못해서(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많은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극적이라는 단어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소품으로 몸으로, 연기로 연극적을 훌륭하게 수행해주었다. 이 작품은 4명의 배우가 39개의 배역을 소화해 낸다. (그 중에는 인간이 아닌 배역도 있다) 그리고 무대 위에 기차도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기발하게. 멀티맨 1 2는 쉴새없이 그들의 배역을 바꾸어 댄다. 무대 위에서 모자 하나 만으로도.

 

연극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할 그 모습에 사람들은 인위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연극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 역시 너무나 훌륭했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나 자동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몸으로 그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들이 너무나 좋았다.

 



삶이 지루해서 견딜 수 없는 37세 독신남! 리차드 해니. 그가 갑자기 어느 사건에 휘말리면서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누명을 벗고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떠난 길에서 해니는 미모의 여인 파멜라를 만나게 되는데

 

연극 <39계단>에는 서사가 있고, 로맨스가 있고, 유머가 있다. 1막에 비해 2막은 속도감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나, 그래도 초점을 스릴러가 아닌 로맨스에 맞춘다면 꽤나 흥미진진해진다. 연극이 이렇게 까지 스펙터클한 서사를 띌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정말 그야 말로 복합 장르.

 

연극을 다 보고 나서 프로그램 북을 읽으며 안 사실이지만, 이 연극은 히치콕의 영화 <39계단>을 연극화 시키는 과정을 다룬 연극이라고 한다. 연극에서 그런 장면들이 몇 장면 나왔지만 보면서도 나는 그저 연극이기에 가능한 장면들이구나 라고 생각했지, 연극화 시키는 과정 자체를 다룬 극중 극이라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었다. 아직도 (당연하지만)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간에 해니가 연설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소고기 수입에 관한 발언도 좋았지만, 이렇게 좋은 연극에 빈 자리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 솔직히 너무나 좋았다. 이렇게 좋은 연극.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 연극을.

 

나도 더 많은 연극을 보고 싶다. 마지막에 배우 사인회가 있었다. 사실 그런 거 조금 관심없는데 그냥, 받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에게 잘 봤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 그 말이, 연극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너무 좋은 연극이었습니다.

 

배우들이 누구 하나 부족한 사람 없이 자신들의 역을 너무나 훌륭하게 수행해주었다. 작품이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무대 활용도 역시 최고였다. 행복한 작품이었다.

 

지루한 일상, 외로워하던 해니의 첫 대사들. 요즘의 내 일상과 같아서. (지루하지는 않지만, 외로운) 살짝, 아주 살짝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해니가 그렇게 스펙터클한 사건을 만나서 헤쳐나갈 때, 나 역시도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해니가 사랑을 만났을 때, 나도 그렇게 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 그런 사족으로 이 기나긴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이틀동안 세 시간씩 밖에 자지 못했었다.
목이 아프더니 결국은 감기님이 찾아오셨다.
제안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PPT 실력이 영 꽝이었다.
그런 스스로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
내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을 타인에게 보여줘야한다는 것은.

さいあく

커피로 잠을 쫓고,
약으로 병을 쫓고,
어제 중복을 기념하며 먹은 치킨과 맥주로 우울함을 쫓고.

아직도 해야할 일은 산더미고,
목감기는 코감기로 넘어와 훌쩍거리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못하는 건 앞으로 나아지면 되는 거다.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내게는 가능성이 있다.
뻔뻔함으로 승부하라.
못하면 잘하게 될때까지 노력하면 되는 것이고,
그때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무기로
승부하면 되는 것이다.

자꾸만 자꾸만 나 다움을 잃어가고 있었다.
기죽어 있는 거,
걱정이 앞서 어쩔 줄 몰라하는 거,
그런 건 내가 아니다.

나답게 사는 것.
그게 나답게 사는 것이다.


自分らし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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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일시: 2009년 7월 11일(토)
공연장: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작: 사카테요지
연출: 김광보

지난달에 ‘히키코모리’라는 소재의 <다락방>이란 연극을 보러간 극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원제_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다. 두 개 모두 한 일본 작가의 작품이었다. 아르코예술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카테 요지 페스티벌. <다락방>을 매우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지뢰와 반전(反戰)을 이야기한다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그리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히키코모리’라는 사회 현상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끼면서도, ‘반전’이라는 소재에는 눈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전 웹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기사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배우 정규수 아저씨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재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거부감 보다 정규수에 대한 끌림이 더욱 강했고, 결국 나는 또 예매를 해버리고 말았다.


<다락방>에서의 무대(공간) 연출에도 깜짝 놀랐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무대 뒤로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직사각형의 모래밭(?)만 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모래밭은 때로는 이라크가 되었고, 때로는 일반 가정집이 되었다. 스크린에는 매 에피소드마다의 제목이 떠올랐다. <자이툰 부대 1> <가족 1> <보스 1> <의족 여자 1> 등으로.

각각의 에피소드는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다락방>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다락방> 만큼의 긴밀함은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초반에는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하여금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다. 감정 이입을 할 틈도 없었으며, 이야기가 진행될 만하면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연기에 있어서도 <다락방>의 배우들보다는 편차가 좀 있었던 것 같다. <다락방>의 경우에는 어느 배우가 특히 잘하고, 어느 배우가 특히 못한다는 느낌 없이 모두 잘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강렬한 포스를 풍기는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와 포스가 약한 배우가 존재했다.

그렇다고 연극이 재미가 없었냐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이 작품의 힘은 연극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나오는 것 같았다. 중반을 지나 에피소드들이 점점 하나의 줄기로 모아지면서, 배우들의 연기에 물이 오르면서 초반의 지루함과 약간의 불만족은 환희로 변하게 된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의족 여자>. <의족 여자>의 경우 반전, 지뢰를 소재로 한 로맨스물, 멜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의족 여자와 회장님의 경호를 위해 지뢰를 구해야만 하는 조폭의 사랑이야기. (어쩔 수 없이 반전, 혹은 지뢰에 대한 소재에는 처음부터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끝끝내 다른 측면에서 이 연극에 감동해버리고 말았다.)

<의족 여자>의 에피소드는 세 번으로 나누어 등장하는데, 매번 나올 때마다 달라지는 상황, 그리고 그 감정들. <의족 여자 1>은 그저, 여배우가 장영남을 닮았다는 생각만이 들었을 뿐이었다. 장영남 언니보다는 목소리가 좀 굵기는 했지만 웃음 소리는 매우 유사했다. 그래서 관심을 가졌는데 <의족 여자 2>에서부터 ‘장영남’이 아닌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뢰한테는 특별한 순간이 있어. 그걸 발견했어.
살아있는 존재와 죽은 존재가 이어지는 순간.
과거도 미래도 어쩌면, 그 순간 우주가 하나란 걸 깨닫지.

<의족 여자 2>은 지뢰 철거를 하러 다녀온 그녀와 조폭남의 두 번째 만남을 그리고 있다. 지뢰를 5천 개 제거할 때마다 철거대원이 한 명 씩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5천 명 중에 한 명이 되었다. 물론 죽지는 않았기에 그의 앞에 나타날 수 있었지만.

다신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는 ‘당신은 그럴 수 있냐’고 묻는다. 여자는 말한다. 그런 말로 마음을 흔들지 말라고, 쫓아가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냐면서. 팔도 다리도 없는 몸으로 막 기면서...

어찌 이런 대사를 들으면서 울지 않을 수 있을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내밀어지는 가짜 팔. 무대 위로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는 한 남자.

그들의 세 번째 만남은,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로부터 시작되다. 그녀는 거의 사이보그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그는 감싸 안는다. 감동 받아도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그녀를. 부끄러운데 부끄럽게 보일 줄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그녀를.

<의족 여자>는 정말 내용과 연기가 최고로 이뤄진 에피소드였다. 물론 지뢰와 반전을 소재로 하면서 침묵하는 아버지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가정에 대한 현실을 보여주면서, 묻지마 살인 등의 사회문제까지 건들여 준 <가족>도 좋았다. 

반전을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연극은 꽤나 좌파(이런 식의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부시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나온다거나, 고어를 열창(까지는 아니지만) 하기도 하고, (실명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일본의 작품을 한국 식으로 번안했기 때문에)의 이야기가 나올 땐 배우가 침을 뱉기도 한다.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는 작품. 모든 사람을 아우르기에는 힘든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민감한 사회적ㆍ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연극의 존재가 반갑기도 했다. 그 사회적ㆍ정치적 이슈를 바라보고 싶지 않아서 이 연극을 회피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조금은 반성될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뢰나 전쟁에 대한 것보다는 의족 여자에서의 사랑 이야기에 더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게 나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프로그램을 절대로 사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저번에 샀던 <다락방>의 프로그램의 내용이 너무 빈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또 프로그램을 사는 곳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되었다. 게다가 사카테 요지의 희곡집까지 눈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 이 고민과 번뇌란.

요즘 나의 형편으로는 돈 천원이 아쉬운 판인데,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은 프로그램과 희곡집을 모두 사고야 말았다. <다락방>의 경우에는 연출도 사카테 요지였으며, 작품도 일본을 배경으로 했다. 하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한국의 상황에 맞게 번안되었으며 (분명 일본을 배경으로 한 희곡이 한국의 실정과 이토록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도 일종의 놀라움이다) 연출도 한국인이 했다.

희곡집을 읽어본 결과 연출이 희곡에 비해 훨씬 재미있게 된 것 같다. 이라크 공항 에피소드 등에서 배우들의 여러 외국 사람의 연기를 하는 장면은 매우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도 좋았는데, 마지막 의족 여자의 대사는 희곡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 마지막 대사가 참 마음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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