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장르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무용극? 청소년극? 실험극?
2016년인지 2018년인지 공연을 보고 왔던 지인이 극찬을 한 작품이었다.
그 지인 외에도 몇 명에게 괜찮다는 추천을 받았던 것 같다.
어렴풋이 기억을 하고 있다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하길래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티켓 오픈까지 챙겨서 보는 성향은 아닌지라 뒤늦게 예매하려고 하니까 매진 매진 매진.
한 2석 정도 남은 잔여석을 겨우 예매하여 공연을 보러 갔다.

 

사실 평이 너무 좋은 작품을 볼 때에는 가급적 사전 정보를 얻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느낌이 타인의 평가에 영향을 받을까 우려가 되기 때문이다.

 

역시나.
초반에는 왜? 왜 사람들이 이렇게 이 작품에 열광을 하는 거지?
의아함과 궁금함이 들었다.
원래도 무용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다른 창작 산실에서 보아온 무용극과 뭐가 다른 건지 잘 알수가 없었다.
아! 바닥을 비롯하여 3면이 모두 칠판 형태로 이뤄진 무대와 조명은 꽤나 마음에 들긴는 했지만.

 

 

여하튼!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었는데

역시 콘텐츠라는 것은 '한방'이 있어야 한다.
인간과 초파리의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어쨌든 대사가 있는 게 좋아ㅎㅎㅎ)

 

중간에 분위기가 한번 훅 바뀌는데...
와- 다른 공연장에서는 어떻게 연출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백성희장민호 극장과 딱 어울리는 등장과 관객참여형 연출. 음악과 딱 맞아 떨어지는 안무.

사실 지난 번 의정부음악극축제 때 이라는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 충격이 훨씬더 배가 되었을 텐데,
완전 새롭거나 센세이션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한국에서 보기 힘든 연출과 에너지는 맞았던 것 같다.
물론 너무 길기는 했지만.

 

관객참여형 무대가 끝나고 나니, 살짝 다시 지루해지는 감이.
스토리를 좋아하는 인간인지라
너무 추상적인 표현은 어렵게 느껴진다.
좋아서 더 아쉬웠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의미하는 바는 알겠지만 그 부분이 나에게는 잘 와 닿지는 않았다.

 

다만, 무대 위를 뛰어다는 배우? 무용수?들의 에너지.
그 부분은 최고.
그리고 진짜 커튼콜은.
아놔. 정말, 대애애애애박.
관객과 배우들이 하나가 되어 무대 위를 가득 채우는 열정.
아! 그리고 뭔가 그 모래처럼 먼지처럼, 가루처럼 날리는 연출.
그것도 좋았음.

 

여하튼,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지,
살게 하는 지.
큰 맥락상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디테일이 좀더 살았으면... 조금더 편안하게 쉽게 접근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 생각이 드는.
하지만 연출과 배우들의 열정이 너무 훌륭했던
그런 좋은 작품을 만난 하루 였다.

 

 

친구가 하도 비판에 비판을 해서,

얼마나 별로이길래 그런가 궁금해서 보게 된 영화.

사실 정지우 감독님의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기에...

라고 말하고 검색해보니 <은교> <이끼> <모던보이>... 다 영화관에서 보았다.

 

각설하고, 크게 감독님에 대한 호불호는 없고

김고은이라는 배우는 꽤 좋아하고,

정해인이라는 배우도 긍정적인 부분이 많고.

 

영화를 봐야 친구 말에 호응을 하던 반박을 하던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선택을 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멜로병 환자인 나에게는 꽤나 설레는 이야기 였다.

현우(정해인)의 전사, 현우와 수미(김고은)의 진도 나감, 수미 출판사 사장의 역할 등

조금 걸리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언제나 우연을 꿈꾸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로망으로 간직한 나에게는

그래도 울림이 많은 영화였다.

현우와 같은 특별한 전사가 꼭 필요했나 싶지만

수미의 삶도 평탄치만은 않지만

수미의 입에서 나오는 '후지다'라는 서술어에 그토록 눈물이 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굉장히 작은 부분이었지만,

수미의 대학교 친구와 취업 때문에 상담을 받고, '안정'이라 말한 '안전'을 택한 수미와

불안정을 택한 친구의 삶의 궤적이 눈에 밟혔고,

은자(김국희) 딸의 대사가 모든 관계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고,

나쁜 놈인 줄 알았고 나쁜 놈이었던 현우 친구가 주저앉아 펑펑 우는 장면이 참 아팠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을 놓치다>와 <건축학 개론>이 생각났고,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가 생각났다

 

아, 영화의 제목이나 영화 속 OST들이 수단이나 분위기로만 사용된 것 같은 느낌도

살짝 아쉬운 지점.

물론 그 음악 때문에 풋- 하고 웃어버린 순간도

가슴 뭉클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장점이었던 건가?

 

여하튼, 조금은 설레기도 했고

조금은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황당하게 후지지 않게 살아야지.

 

 

 

이 역시 친구네 서재에 꽂혀 있던 책.

고양이의 시선에서 이우일 만화가의 삶(?)을 바라본

그림과 짧은 글로 이루어진 글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내 고양이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의 일상을, 내 하루 하루를,

이라는 생각을 해볼 것이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고양이

새벽이가 많이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책이었다.

친구네 집에서 그저 시간을 떼우기 위해 선택한 책이었다.
고양이에 관한 글을 구상 중이기도 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책을 완독한지가 백만년은 되는 것 같다)

 

친구는 아마도 이 책이 십년도 훨씬 전 고양이를 키웠을 때,
혹은 키우던 고양이를 불가피한 사정으로 입양 보낸 후 사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 역시 고양이를 키웠던 입장에서
(나의 고양이는 현재 부모님이 사는 본가에서 거주중이다)
이 책이 좀더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프롤로그 문장부터 나를 좀 거슬리게 한다.

 

"서른여섯 살이 되고 보니 조금 멜랑콜리해지고 중녀에 들어선 것이 더 실감나면서
어느 정도 센티멘털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서른여성이....중년이라니.
뭐, 작가가 그렇다면 어쩔 수는 없지만 서른 여섯은 살짝 상처를 받았다.

 

여하튼, 이 책은 고양이를 싫어하던 강아지 파 작가 '피터 게더스'가
여자친구로부터 스코티시 폴드 고양이 한마리를 선물 받고,
'노튼'이라는 이름을 주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작가의 연애사, 가정사, 일, 가치와 사상 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엮어 나간다

 

처음에는 노튼 자랑이 너무나 심해서, 또 약간의 거슬림이.
사실 고백하자면 그 거슬림은 약간의 질투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고양이는 굉장히 소심하고, 겁이 많고, 자동차 공포증이 있다.
(자동차 공포증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5일 정도 탁묘를 보내고 난 후부터
극도로 자동차에 타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데 노튼은 호기심도 많고, 자동차는 물론 심지어 비행기도 잘 탄다.
그가 자신의 고양이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 이해가 되면서도,
우리 고양이가 생각나 질투가 났던 것 같다.

 

그러다 작가가 오랫동안 사귀었던 (고양이를 선물 했던) 여자친구로부터
"당신은 사랑이 뭔지 몰라"라는 말로 이별을 통보 받았을 때,
조금 통쾌한 기분이 들면서 점점 읽는 재미가 생겼다. (이 못된 마음은 뭐지?ㅎㅎ)

 

사실, 그냥 '고양이 한마리'에 대한 이야기였더라면
이 책이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내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이 작가에게는 출판사 편집장이라는 직업과 시나리오 작가이자 제작라는 직업과
작가라는 직업이 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것과
작가 지망생들에 대한 이야기 출판 편집이나 대필에 대한 이야기,
시나리오 집필에 대한 이야기 등이 다양하게 나와서 나의 호기심을 끊임 없이 자극했다.

(이쯤 되면 노튼이 부러운 건지, 아니면 작가의 삶이 부러운 건지 모르겠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이책은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를 거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자의식 강한 한 젊은 남자가 실연과 아버지의 죽음 등의 일을 겪으며
내면의 일, 인간관계에서 보다 성숙해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성숙의 방향을 이끄는 멘토는 바로 고양이이다"

 

라고 하는데, 100% 공감이다.


고작 고양이 한마리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을 수 있는가.
나 역시 그 지점을 경험한 사람으로,
그의 이야기에 시기와 질투도 했지만,
마음으로 함께 웃고 울을 수도 있었다.

 

보아 하니, 3부작으로
<프로방스에 간 고양이>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도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슬픈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노튼의 여정을 조금은 더 함께 하고 싶다.

 

 

 

뭔가가 보고 싶은데,

그냥 편안한 걸 보고 싶었다.

무언갈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감정의 큰 소비도 없이,

그냥 무난한 무언가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수상한 그녀>는

좋아하는 배우 심은경의 출연과 음악을 다룬다는 사실 때문에

극장에 가서 관람을 했던 영화였다.

한국 영화가 일본에서 리메이크가 되었다는 사실에 선택!

 

재밌는 건,

일본판을 보는데... 한국 영화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사실.

한국판과 일본판이 차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국판 <수상한 그녀>의 내용이 정말 생각나지 않았다.

아주 중요한 모티브들 몇 개만 생각나고,

어떤 관계였는지 어떤 전개였는지 어떤 결말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그 영화를 볼때 어떤 감정들을 느꼈었는지 감상 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에 카메오로 등장한 남자배우만 명확하게 기억날뿐.

 

아- 내가 한국판을 그리 인상 깊게 보지 않았구나.

일본판 역시, 비슷 했다.

사실 자식과 부모 관계는 좀더 끈끈하게 그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일본판 역시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 것 같다.

 

무난하고 소소한 재미가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크나큰 울림은 없었던.

 

다만, 영화를 보던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버렸다.

몇 달전 외할머니가 암 선고를 받으셨다.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지방에 사는 엄마가 서울에 올라와

외할머니의 병간호를 한다.

말기라서, 적극적인 치료를 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아픈 할머니를 바라보는 엄마를 바라보는 것이 참 힘들다.

다가오는 할머니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병마로 인한 고통에 가슴 아파하는 엄마의 모습에 내가 자꾸 눈물이 난다.

 

"늙고 나이를 먹으면 누구라도 아프지 말고 그냥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어."

 

가족 여행을 계획 중이었는데,

외할머니 때문에 취소를 하자는 전화를 끊고 나니

눈 앞에 이 영화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이 멈춰 버렸다.

 

영화보다 슬프고 아픈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인데,

영화처럼 인생이 판타지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판타지가 될 수 없으니까.

 

영화 자체에 대한 감상보다도

이런 저런 개인적인 생각이 든 영화였다 .

 

+

 

나중에 한국판 <수상한 그녀>의 감상평을 찾아보았는데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오래 오래 남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던 듯 싶다!"여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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