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부족하구나.



- 2005.07.29 01:49에 작성한 글




"세바스티앙 살가도 한국전- 흑백사진 속에서 발하는 빛"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전..이라는 글자가 내 눈에 와서 박힌 이유는 아마도 다큐 사진이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이 그렇다...
뭔가...예술이라는 것을 예술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사진 역시..아름다운 인물 또는 풍경을 담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사람의 향기를 담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세바스티앙 살가도'라는 이름 앞에 붙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나를 더욱 자극했다..
 
혼자서 사진전을 보기 위해  프레스센터 서울 갤러리를 찾았다.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된 사진전에서는 부유한 미국 등지와는 달리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삶,  세계의 노동자들, 이민 난민 망명자의 모습, 기아와 의료에 대해 볼 수 있었다..
 
작가가 말했다.
자신의 사진을 보고 단지 측은함만을 느끼지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난 가슴으로 그 사진들을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단지...무엇인가...머리로 그 사진을 봤던 것 같았다..
사진을 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랬고...
돌아서 생각해보는 지금에도..
나의 가슴은 뜨겁게 뛰지 못했다..
 
그건 그의 사진을 훌륭하지 못해서가 아닐것이다..
내가...내가...부족해서 이겠지..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단지..사진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우숩게도..
구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또한 단순히 멋스러움에 흑백사진에 취해보기도 했다..
이런 내가 너무나 부끄럽다....
 
무엇인가..진정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눈을 뜨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던 사진 속 아이의 눈이 생각난다....

좋아하는 단막 드라마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인 <외등>.
박범신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가 너무나 좋아서 소설을 읽었는데...
드라마가 더 좋았다.
물론, 소설이 별로였다기 보다는
소설은 좀 자극적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그 자극보다는 '순수'가 강조되었기 때문.


- 2005.06.02 20:03에 작성한 글




나를 위해 불을 밝혀주세요..

하얀 눈속에 그를 만났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태어난 그녀를 위해,
그녀를 다시 한번 태어나게 해 주기 위해 그는 눈이 되었습니다.
하얀 눈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눈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외등을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하얀 눈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름다운 영상과 슬픈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가 없었습니다.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드라마더군요.
아련한 첫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그리고 내면의 아픔까지도..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드라마에서 강조되었듯이..
그들의 입맞춤입니다.
그들의 가슴떨림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듯 합니다.
그리고..두번째는...낙인...
그들을 감싸고 있는 낙인...
빨갱이의 아들이었으며, 위안부의 딸이었던 그들의..
아픔이 너무나 가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모든 걸 가진듯 보이지만, 결국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떤 또 다른 남자.
드라마에서는 크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미비하게 느낄수있었던
자신의 이복 오빠를 사랑했던 또 다른 여자.

이들 네명의 아픔이 내 마음속에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내 마음을 잡아둡니다..

그녀를 위해 눈 속에서 눈이 된 남자.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된 여자.
자신의 딸이 그림을 그리기 좋은 손을 가졌다는 사실을 그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겠지요..

그들은 서로에게 어두운 밤,
길을 밝혀주는 서로의 외등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썼던 글들 중,
그나마 좀 쓸만한 것들을 옮기고 있다.
가급적 사진까지 그대로 옮기고 싶었는데...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박광정 아저씨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웬지,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 때의 포스터를 찾으려다,
지금도 이 공연이 다시 상연 중이며,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정상훈 님이 출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상훈 님 나올 때 한번 가서 봐야겠다!


- 2005.05.06 19:30에 작성한 글.





처음에 '귀여운 수컷들의 우정파헤치기'라는 포스터 문구에
여성인 내가 거부감을 갖거나 남자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힘들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극으로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언젠가 한번쯤 내가 경험해본 듯 한 이야기, 그리고 경험할 것 같은 이야기에
때로는 추억의 웃음이, 때로는 서글픔의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어쩌면 아트의 수현, 규태, 덕수는
남성들의 우정은 강하고 남자들은 리에 죽고 못산다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편견 때문에
자신의 맘 속에 응어리를 하나씩 만들어 놓고 말도 못 꺼낸채 쌓아만 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응어리가 풀리는 과정에서 나는 하나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마치 나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맥주처럼 말이다.

아트는 마치 맥주와 같았다.
그들은 연극 내내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를 받는다. 이는 어쩌면 가벼워보이는 맥주의 거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갈등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져 버릴 거품인 것이다.
규태가 수현에게 "난 너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었는데, 어느날 너는 더 이상 날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라고 절규할 때, 나는 가슴 한 구석에서 맥주의 쓴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흰 캔버스위에 그려진 스키타는 사람을 보고도,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말하던 수현의 모습에서 맥주의 쏴~함을 느끼며,
나의 모든 갈증은 해소되었다.

이 연극은 비단 남자들의 이야기만으로 국한 되지 않을 것이다.
타지에 나와 고향의 친구들과 점점 멀어져 가는 나에게 이 연극은 연극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점점 나 아닌 인간, 특히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준다고 믿었던 친구와 멀어진다는 느낌,
그리고 어쩌면 나 혼자 그 생각으로 가슴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나만의 목소리로 상대방을 외롭고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가.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하나가 된 세사람 처럼..
지금 현재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도 그대로....이길..
전화를 들어, 말을 건네본다.
"여보게 친구, 오늘 저녁 시원한 맥주 한 잔 어떤가?"

사실, 과제로 냈던 영화 감상문이었음.
아래 성실히 쓴 것만큼
인상 깊진 않았던 것이 진실.
브래드 피트의 뒷태를 제외하고는.



- 2004.06.25 19:47에 작성한 글.




이 영화를 볼 때 '트로이의 목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아킬레스의 약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스 신화를 읽어보지 못했다고, 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걱정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 영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을 위한, 인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아킬레스가 여사제에게 하는 말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신은 인간을 질투해." 그리고는 그 이유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죽음 앞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아킬레스의 말이 우리가 신보다 위대할 수는 없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인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인 역대 최강의 캐스팅? 아니면 "2억불의 제작비, 75,000명의 엑스트라, 200명의 기술자, 500명의 인부동원, 12,240평 넓이의 트로이 성, 12.192미터의 트로이 목마"등의 어마어마한 숫자 때문일까? 난 이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물 속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유사이래 인간은 늘 전쟁을 해왔다. 권력을 위해, 영광과 명예를 위해, 그리고 때로는 사랑을 위해"라는 시놉시스가 말해주듯이 그들의 인물구조는 아주 다양하면서도 대립적이다. 일단 권력과 야망에 노예처럼 사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오만하면서도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반면에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국가를 사랑하는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식을 죽인 아킬레스를 찾아가 아들의 시신을 찾기위해 그의 손에 입을 맞추는 왕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련스럽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느낄 수 가 있다. 이 두 왕의 극명한 성격의 대립이 우리가 이 영화에 재미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될 수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분명, 트로이의 왕자 핵토르와 미케네의 전사 아킬레스 일 것이다. 핵토르는 현명하며, 가족과 조국을 너무나 사랑한다. 아버지처럼 무조건적으로 신을 섬기지 않는 이성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군사들에게 자신의 여인과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그가 싸우는 이유는 단 두 가지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신의 동생 파리스를 위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이에 반에 타고난 전사 아킬레스의 전투 목적은 무엇인가. 전투를 위해 타고난 운명도 있었지만, 그는 후세에 길이 남을 이름을 위하여 싸움을 할 뿐이었다. 이 두 명의 대립은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힘이다. 하지만, 그 대립 속에서 아킬레스의 변화는 영화를 한 층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여사제를 만나고 난 후부터 변해가는 그의 마음. 그는 여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불멸의 전사이다. 인간이라 말하기에는 무언가 어색했던 그. 하지만 여사제를 만나면서 그는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인간이고 싶었던 마음을 들어낸다. 살상기계가 아닌 꿈속에서 자신이 죽인 그저 불쌍한 이름 없는 군사들의 손짓을 받아야하는 한 인간이고 싶었던 마음을 말이다. 영화를 보는 이들이 그 마음을 알기에 핵토르와의 결투를 피할 수 없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정말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권력의 노예 아가멤논, 부드러운 프리아모스, 사랑에는 정열적이지만 나약하고 비겁한 파리스, 그리고 핵토르와 아킬레스. 트로이의 목마를 생각해낸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영화의 마지막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핵토르, 아킬레스와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 같은 사람이 고대 그리스 시대에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에도 핵토르와 아킬레스가 있다는 것이다. 아가멤논과 프리아모스와 파리스 같은 사람과 함께 신이 될 수 는 없지만, 자신의 신념앞에 떳떳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말이다. 인간은 죽을 수 있기에 행복하다. 이게 '트로이'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시네마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0) 2011.01.10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  (0) 2011.01.10
[영화] <리턴>  (0) 2011.01.10
[영화] 인생 (Lifetimes, 活着, 1994)  (0) 2011.01.10
[영화] <1408>  (0) 2011.01.10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을 보고 서점에 들렀는데,
이 책이 생각났다.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그래서 찾아보니, 절판이란다.
인터넷으로 다시 검색해보니,
2002년에 <연애중독>으로 출간되어
2006년에 <러브홀릭>으로 재출간.
그리고 지금은 절판 혹은 품절.

문득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 2005.07.22 01:09에 작성한 글.




야마모토 후미호의 연애 중독
연애 중독..
세 사람의 추천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인 "연애 중독"처럼..
중독성이 강한 작품이라고...
빨간색 표지가 유난히 나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책 제목이 그렇고 그런 연애이야기일까봐...
일본 작가에 대한...
왠지 모를 망설임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은....
크게 만족스러움도 불만족스러움도 아니다...
책은 너무나 재미있었지만..
중독성은 단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운..
다른 사람의 비평에 대한 과감한 신뢰일 뿐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것은....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손을 너무 꽉 잡는다.

상대가 아파하는 것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이제 두번 다시 구의 손도 잡지 말자.
체념하기로 정한 것은 깨끗하게 체념하자.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과는 정말로 두 번 다시 만나말자.
내가 나를 배신하는 짓은 하지말자.
타인을 사랑할 바에는 차라리 나 자신을 사랑하자.

라는 구절 때문이다...
이 구절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그러나..
이 문장이 의미하던 결말을 나는
생각치도 못했고.....
주인공에 대해..
이해 내지는 동정심보다도.....
당혹스러움이 앞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