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읽은 책이군.
써놓은 글들이 하도 허술해서 다시 올리기도 부끄러운데,
왠지 이 책은 기억하고 싶어서.




정말 너무나 마음에 드는 책이다.

세권이나 되는 책을 한 숨에 읽어 내려갔다..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

 

한권이 끝날 때마다..

다른 한 권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설레이게 했다..

훌륭한 문장력 보다도..

작가의 독특한 생각들이 나를 끌어당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낼 수 있었는지...

주인공인 쌍둥이들은 어떻게 보면..

너무 영악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고통을 잊기 위해..

서로의 뺨을 때리고..고통에 익숙해 지는 훈련을 한다..

밥을 굶으며...배고픔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지뢰를 밟고 쓰러진 아버지를 밟고 국경을 넘는다..

 

이 잔인한 이야기가 내 가슴에 와 박혔던 것은...

거짓이지만...거짓일 수 없는 우리의 삶 때문이 아닐까...

 

3부작인 이 책은..책 출판의 오랜 시간의 간격 때문이지..

내용에 있어 모순적인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만족스러웠고..

다시 한번 읽고 싶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했다.

―개자식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마녀의 새끼들! 망할 자식들!

또다른 사람들은 말했다.

―멍청이들! 부랑배들! 조무래기들! 고집불통들! 더러운 놈들! 돼지새들! 깡패! 썩어문들어질 놈들! 고얀 놈들! 악독한 놈들! 살인자의 종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귀가 윙윙거리, 눈이 따갑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우리는 더 이상 얼굴을 붉히거나 떨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상처 주는 이런 모욕적인 말들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우리는 부엌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런 말들을 되는 대로 지껄여댔다. 점점 심한 말을.

하나가 말한다.

―더러운 놈! 똥 같은 놈!

다른 하나가 말한다.

―얼간이! 추잡한 놈!

우리는 더 이상 할말이 생각나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게 될 때까 계속했다. 우리는 매일 30분씩 이런 식으로 훈련하고 나서 거리로 바람을 쐬러 나간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하도록 행동하고는, 우리가 정말 끄떡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옛날에 듣던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내 행복! 금쪽 같은 내 새끼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떠올릴 적마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니라 그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간직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훈련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작했. 우리는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난 너희를 사랑해. …난 영원히 너희를 떠나않을 거야. …난 너희만 사랑할 거야. …영원히. …너희가 내 인생의전부야. … 반복하다 보니 이런 말들도 차츰 그 의미를 잃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고통도 줄어들었다.

딱히 날릴 멘트는 없는 영화이구나.
소재와 연기는 좋았으나,
뭐랄까 기억 속에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작품.


- 2007/08/28 17:13에 작성한 글




요즘 <검은집> <1408> <기담>
'무섭다'라고 일컫어지는 영화를
너무 혼자서 봤다. 
그런데 왠지 <리턴>은 혼자 보고 싶지 않았다.
별로 이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갖은 압박과 회유를 번갈아가며
결국은 동정을 얻어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초반부는 
"음. 내가 이 영화를 왜 보러 오자고 했을까" 였다.
영화가 재미없거나 실망스러웠기보다는
뭐랄까.
나 역시 귀신영화는 아무 문제없이 볼수 있지만,
피가 흥건한 장면이라던지 청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민감해
피빛 오프닝이라던지
수술 장면은 거의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었다.
어찌나 기운이 빠지던지.
하지만 요즘은 이런 긴장감에서 오는 즐거움이 뭔지 알 것 같다.
(공포나 스릴러를 점점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나마 친구들과 함께 와서 다행이다."
혼자였더라면 정말 더욱 영화를 보는게 힘들었을 것이다.

일단 초반부, "수술 중 각성"이라는 소재 하나로만
이 영화는 먹고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에게는 흥미로웠고, 잘 알지못하는 부분이었으니까.
또한 실제로 영화를 통해 본 어린 아이의 수술 중 각성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지 느낄 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영화 중반으로 갈 수록 이 영화는 드라마의 힘과 스릴러의 힘을 잃는 듯 하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시놉시스를 보고 네명 중 누가 그 끔찍한 일을 껶은 아이였을까.
라는 궁금함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궁금함을 잘 포장해줘야했는데,
이 영화는 그러지는 못한 거 같다.

자신의 아내를 수술하고 살리지 못한 김명민의 고통.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나약함과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겪을 수밖에 없는 고뇌와 번민등이 김명민의 연기로 훌륭하게 소화 됐지만,
영화의 궁극적인 소재와는 유기적으로 얽혀있지 못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죽어가는 범인을 카메라가 오랫동안 응시하는 장면은 참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도.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의 어린 시절, 수술중 각성을 겪기 이전의
그 해맑았던 모습에서의 엔딩은.
뭔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P.S 나는야 김태우가 좋기는 한가보다^^

사실 꽤나 감동적으로 본 듯 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 2007/08/28 16:51에 작성한 글

많이 울었고,
그리고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왜 그렇게 마지막에서 눈물이 났는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
떠나간 사람들을 대신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장면은,
인생만큼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아보였는데,
그들은 분명 웃고 있었는데,
나는 웃으면서도 울어야만 했다.

이유 모를 눈물.
이유 있는 웃음.

인생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가장 어려운 단어인 제목처럼,
이 영화는 그냥.
그래. 인생이 이런거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해준다.

40~60년대까지 중국의 현대사 속에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
나는 인생이라는 것의 아이러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이 여덟글자를 가슴에 새긴다.


어디서 영상조차 구할 수 없는 드라마.
SBS 사이트에 가면 정말 저화질로 밖에 볼 수 없는 드라마.
내가 좋아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드라마.
서연의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2007/08/26 20:12에 작성한 글.



누구에게나 잊혀지지 않는 "내 인생의 드라마"들이 있다.
내 인생의 드라마 중에 하나인 "SBS 신화"
왜 그리 저 드라마를 좋아했을까.
그리고 아직까지도 왜 때때로 생각이 날까.
"꿈이 경계를 넘으면 야망이 된다"


남자 주인공이었던 최태하(정철)는 어머님의 목숨을 담보로 살아남았다.
그런 사람의 꿈이 어떻게 야망으로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를 알기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랑 마저도 버려버린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사랑 윤서연(김지수).
그녀는 태하의 어머니이자 연인이자 모든 것이었는데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을 쓰다듬어주는.
하지만 그녀마저도 꿈의 경계를 넘는 그를 멈춰세울 수는 없었다.
그녀. 
원래도 김지수를 좋아했지만 윤서연으로서의 김지수는 잊을 수가 없다.
고귀한 집의 딸에서 반역자의 딸로 전락해버려도 자존심만큼을 버리지 않았던 윤서연.
삶을 살아간다면 그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 받고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아가는 그녀.
하지만 정말 단지 복수였을까.


그리고 그런 그녀 곁에 오빠처럼 친구처럼 아빠처럼 지켜주는 대웅(김태우)
김태우 역시 좋아해서 그런지 가장 아파하고 안쓰러웠던 캐릭터였다.
좀 덜떨어져보이지만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어 뭔가에 몰두하면 밤이 새는 줄 몰랐던 그.
그래서 였을까. 좋아하게 된 서연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다.
친구를 밀고하면서까지도. 서연에 관해서라면 "틀린 문제를 계속 틀리는 학생처럼"
대웅과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대웅과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태하의 아내가 된 전미선(최강희).
지금의 최강희로는 생각할 수 없는 진한 화장. 조금 낯설게 보일진 몰라도 쏠쏠한 재미이다.
조신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의뭉스러운 면이 있었던 미선. 태하를 향한 사랑이 참 쓸쓸하다.

이 드라마의 사랑은 꽤나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다.
변함이 없으니까. 변함없이 한 사람만을 바라보니까. 그래서 모두들 목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태하는 야망때문에 버렸지만 서연만을 사랑했고,
서연은 야망때문에 자신을 버린 태하를 죽을만큼 미워하지만, 마지막까지도 그를 사랑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서연을 옆에서 항상 같은 시선으로 해바라기 한 대웅.
그런 대웅을 해바라기 한 친구 홍은(이유진), 태하를 해바라기한 미선까지도.
변하지 않는 사랑. 헷갈리지 않는 사랑. 그래서 아플지라도, 그래서 괴로울지라도,
그런 사랑이 좋다.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이유 중 또 하나는
무게감이다.
사랑과 복수라는 가장 기본적인 드라마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70~80년대 시대적 배경속에서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그 탄탄한 스토리에 고두심, 백일섭 등 중년 연기자의 능숙미까지 더해졌고,
음악까지도 잘 어우러졌다.
 (지금은 대스타가 된 권상우의 신인 모습도 볼수 있다_아하하^^;; 별 관심은 없지만)
아_ 이 드라마 정말 다시 보고 싶다.


내가 진심 사랑했던 뮤지컬.
그리고 아직도 사랑하는 뮤지컬.
그 때 당시 내가 처한 현실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참 많이 가슴이 먹먹해지는,
부러움의 눈물이 마구 마구 흐르던 공연이었다.



-2007/08/11 17:00에 작성한 글



당분간은 슬픈 수염의 기사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다.
인생은 그래, 돈키호테처럼 살아봐야하는 게 아닐까.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여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이룰 수 없는 꿈 中-

맨오브라만차를 보고 와서,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는 친구의 얘기에,
나도 이 공연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비싼 공연에는 벌벌 떠는 나이기에,
많이 고민이 되었는데,
할인된 가격으로 표를 구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공연장으로 고고씽~!!
나는 정성화, 윤공주, 권형진 캐스팅의 공연을 보게 됬었다.

뭐 나역시 조승우라는 배우를 많이 좋아하긴 하지만
티켓 전쟁 때문인지, 영화에 만족해버리는 습성때문인지
아예 일찍이 손을 들어 버려서 조승우 씨꺼를 보지 못하는 섭섭함은 없었다.
과소평가 받고 있는 배우로 정성화 씨를 언급한 기사를 봐서 그런지 
궁금함도 있었다.   

일단 시작부터 오케스트라 서곡이 웅장함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음악이 어찌나 좋던지.
그리고 지하감옥을 표현해놓은 무대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극이 진행됨과 함께 무대 활용도도 너무 좋았다.
주막을 만드는 것이나 풍차, 그리고 감옥문과 연결되는 다리(?) 등등.
특히 성당장면과 밤풍경, 해바라기 장면은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정성화 씨는 1막 첫부분에는 약간 목소리가 힘이없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1막 클라이막스로 갈수록, 아_ 너무 멋있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르반테스가 옥중에서
연극으로 보여주는 형식인데 늙은이인 돈키호테를 너무 잘 소화한 것 같다.
어정쩡하게 뒤로 빠진 엉덩이 하며, 목소리하며, 돈키호테를 잘 표현해준 거 같다.
그리고 윤공주 씨도 너무 알돈자에 너무나 잘 어울렸고, 산초를 맡은 권형준 씨.
이 분은 '내멋대로 해라'에서 나오셔서 내가 정말 좋아했던 분이었는데.
기분이 좋았다. 뮤지컬을 하시는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보게 되서.

이 공연이 너무 좋았던 이유는 모든 캐릭터들이 주조연을 넘나들어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막 주인으로 나온 최민철 씨('매직카페라이드'에서 그렇게 좋다고 해놓고,
사실 최민철 씨인지도 몰랐다라는 초보 관객 티를 빡빡 내고 있는 나;;;;)도 그렇고,
조카나 가정부도 그렇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왜 저런 미친 사람이랑 다니냐는 알돈자의 질문에
'그냥 좋아요'를 부르던 산초라는 캐릭터가 너무나 좋았다.
권형준 씨 마지막 돈키호테 죽는 장면에서 정말 눈물을 두두둑 떨어뜨리는데,
아_ 나 정말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 눈물과 콧물(?)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연이 내 마음을 울렸던 것은,
아마도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사로잡는 한 가지 단어
'꿈'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한 가지 단어
'꿈'

이상주의자라고 세르반테스를 비난하던 수감자에게
세르반테스는 말한다.
"이상 없이 살수 있는 용기가 내겐 없소"
그 말이 얼마나 내 가슴을 후벼파던지.
이룰 수 없는 꿈이라 할지라도 그 꿈을 안고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참, 돈키호테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장면의 연출기법은 정말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알돈자가 돈키호테에게 "날 짓밟고 가는 가는 건 참을 수 있으니 꿈꾸게 하지 좀 마"라는 대사.
꿈이 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거.
나 역시 느껴본 적 있는 감정이니까.
하지만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며 살아가야 한다는 거.
저렇게 돈키호테에게 퍼붓던 알돈자가 돈키호테가 평범한 늙은 노인으로 돌아왔을 때,
기사의 기억을 꿈이 아니었음을 일깨워준 것 처럼.
얼마나 행복한 죽음이란 말인가. 꿈꾸던 채로 죽을 수 있었던 것이.

마지막 장면.
죽었지만 죽지 않은 돈키호텔.
그리고 둘시아네가 된 알돈자.
그들처럼..
그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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