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생활, 3개월 차.
정확하게 72일째.
나는 여전히 당당하면서도, 초라하다.

어제 부산에 다녀왔다.
(12시가 넘었으니, 엊그제가 맞는 표현이겠다.
뭐, 이건 중요하지 않을테고)
심야버스를 타고 다시 부산에서 서울까지, 4시간 반을 달려
아침 6시 집에 도착했고,
그대로 잠이 들어 오후 5시가 가까이 되어서 일어났다.

부재중으로 찍혀있는 오빠의 전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젯밤 아빠에게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내 휴대폰이 꺼져있다면서.

아마도 어제 부산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휴대폰을 꺼놓았을 때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아빠가 많이 걱정을 한다고 하며 오빠는 전화를 끊었다.
오빠에게 조차 부산에 다녀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정말,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자식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가슴이 조금 아파왔다.
백수로 사는 거.
스스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결국 부모님께 걱정을 끼친다면 그건 괜찮은게 아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많이 걱정을 하신다며.
어제 오빠에게 전화해서 굶고 사는 건 아니냐며.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아빠가 걱정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솔직히 눈물이 났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과 형제는 그토록 걱정을 하는데,
나는 나의 휴식을 맘껏 즐기며, 누리며 살고 있으니.

그 모순 앞에서,
더더욱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괴리감이 생겨났다.

엄마에게도 말했지만,
백수상태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 것이 참 쉽지 않다.
뭐랄까.
돈을 목적으로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은 얘가 돈은 있나, 굶지는 않나, 힘들어서 전화 했는데 차마 말하지 못하고 끊는 건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하니까.

잘 모르겠다.
정말 잘 모르겠다.

아니, 알 것 같다.
지금 나는 나를 위해서도,
부모님을 위해서도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든 내가 원하면 시작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뭐, 어떻게든 되겠지.
모든 건 괜찮을꺼야.

한가지.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는 자식이 되자.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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