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할ㅠㅠ 또 지워졌다. 간만에 맘 먹고 리뷰 좀 쓸라고 하면, 임시저장도 못 해놓고 삭제... 삭제...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에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쓰자면!!!
(근데, 썼던 글 다시 쓰려면 정말 쓸 맛 안난다ㅠ)

보고 싶은 공연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명동예술극장에 올라오는 공연들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로의 웃음 가득한 공연에 비해서(물론 대학로 안에도 좋은 공연들이 많다. 일반화의 오류는 아님을 사전에 밝힌다 - 언제부터인가 글 쓰는 게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라오는 공연들이 진중하다고 해야 할까?
공연도 편식해대는... 그저 볼 줄만 알지 다양한 연극, 혹은 공연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나에게 좀더 넓은 세상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한창 연극을 보러다녔을 때 <템페스트> <노래하는 샤일록> 등을 보며, 셰익스피어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것도 <리어왕>을 보고 싶은 하나의 이유였다.
그리고... 장두이 배우. 실제로 그분의 무대를 뵌 적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나의 시선을 끄는 배우였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 게 왜 그분 사진이 2004년도 내 미니홈피에 있을까? 뭐, 떠오르는 건 영화 <교도소 월드컵>. 그리고 몇 개의 그 분의 기사들? 여하튼! 그분의 연기를 실제로 볼 수 있다면! 게다가 리어왕이라니. 넘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폭풍우. 무대에서 엄청난 물이 떨어진다는데 그게 너무 너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어떤 광경일까. 리어왕을 (어린이 책 혹은 축약본 외에 성인용으로 읽어본 적이 없는 가 같은데도...이놈의 무식) 떠올렸을 때 비바람과 폭풍우를 맞으며 하는 독백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는지, 너무 궁금한 것.

그렇게 놓치지 말아야 하는 생각으로 주시하고 있던 리어왕. 너무나 피곤한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아니면 놓칠 것 같다는 생각에 고고고!

뒤늦에 170분이라는 사실에 완전 깜짝 놀랐지만!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무대에도 불구하고 꽉 차있는 배우의 연기. 공연을 보는 내내... 배우들이 얼마나 연기하는 재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요 배역들, 아니, 왠만한 조연들도 다 매력이 있다. 심지어, 보다 보면 단역들도 몇 번 없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가 느껴졌다.

리어역을 맡은 장두이 배우님. 아-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분의 모노극 <춤추는 원숭이 빨간 피터>를 정말 정말 정말 보고 싶다. 아.... 정말 좋았다. 맏딸 거널리 역을 맡은 서주희 배우도. 솔직히 열거하고 싶은 배우가 너무 너무 많아서 다 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만 좀더 언급하자면... 광대 역에 이기돈 배우님. 나는 이분을 길거리에서 보거나 우연히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근데, 왜 무대 위에서 이 분은 알아보겠는 거지? 내가 배우를 좋아하게 되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는데... 이제 '몸짓'이 그 이유가 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울 지경이다. <오이디푸스>를 정말 재밌게 봤는데 (그러고보니 명동예술극장을 좋아하게 된 게 이 오이디푸스 때문인가 보다) 거기서 '새' 역할을 맡으신 분이다. 그 때도 배우들이 너무 훌륭해서 열거를 할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이 배우분은 기록을 해놓았다. 넘 매력적이셔서. 이번 광대 역할도 마찬가지! 넘 매력 넘쳐. 대사도 대사지만 몸짓이 좋은 거 같다. 이 분을 확인하고 싶어, 잘 사지도 않는 프로그램북도 구매. 반갑다. 이렇게 볼 때마다 인상에 남는 좋은 배우가 있다는 게.

그리고, 아까 말했던 폭풍우 장면도 대박!!!!! 진짜 장관이다. 단순한 무대로 표현해낸 연출에 박수를. 물소리 때문에 대사가 잘 안들리는 게(배우들 모두가 정말 대사 전달력이 좋았었다) 살짝 아쉬웠지만 그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공연을 본 것에 대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느낄 정도. 넘 넘 넘 좋았다.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의 글. 희곡을 정독하지 않은 입장으로서, 무대 만 보고 처음에는 '막장도 이런 막장이 어딨어?' 하는 느낌이었다. 리어왕이 너무 이해가 안 되기도 했지만... 뭐랄까. 발단, 전개 없이 너무 갈등에서 시작하는 기분? 리어왕이 납득이 되지 않고 어거지스럽다고 해야할까. 대사 하나 하나는 분명히 입이 떡벌어질 정도가 맞는데... 그냥 잘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공연을 보면 볼 수록 이입을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할 게 너무 많은 작품이었다. 세대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권력에 대한 부분까지.
간단하게 처음에는 그래서 죽을 때까지 부모는 자식한테 유산을 물려주면 안 된다는 매우 현실적인 생각을 하다가... 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 국민의 슬픔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내가, 비겁하고 또 비겁해 분노하는 것 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가급적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외면 하던 나를 오늘 이 공연이 계속 바늘처럼 꾹꾹 찔라댔다. 그래서 아팠으며, 슬펐다.
비극이로구나, 비극.
그렇게 공연도, 삶도 비극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같이 아파했다.

p.s 리어왕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서브 플롯인 백작과 두 형제의 이야기도 좋았다. 아니, 슬펐다. 그리고 진지하고 조금은 지루할 줄 알았는데 꽤 유머코드가 있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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