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는 2008년 Let the Right One in 영화를 틀어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버스. 그 버스에서의 기억. 그리고 내가 남겼던 글들이 생각나 지금이라도 당장 일기장을 꺼내오고 싶지만, 이 글을 다시 한번 써 내려간 후 찾아 볼 생각이다.

 

영화에 대한 강력한 잔향. 이 연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자, 불안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원작을 좋아하다 보면, 파생된 또 다른 형태의 작품에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난다. ‘난 어쩔 수 없이 이 작품이 좋다’라는 생각과 ‘어쩔 수 없이 원작이 더 좋아’라는 생각. 아! 가끔은 ‘어떻게 나의 작품을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 있지?’하는 생각도 들지만.

 

여.하.튼.

연극 <렛미인>을 보고 난 소감. 영화 <렛미인>이 그리워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최근 본 연극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공연이 올라온다고 했을 때, 유튜브로 스코틀랜드 작품을 찾아봤었다. 사실 영화의 인상이 너무나 강해서, 그 배경과 장소, 장면, 분위기를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해낼 수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었다. (아- 영화가 10분이 흘렀는데... 벌써부터 힘이 들기는 하다. 사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보고 있는 게 힘이 드는 영화. 이 우울한 분위기. 근데 이걸 무대에서 재연해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 전체 영상은 찾지 못하고 조각 영상만 봤는데, 무대와 몸짓(무브먼트)이 참 인상에 남았었다.

역시나, 레플리카 형식이라고 하더니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무대 역시 영상에서 본 것과 동일했다. 2층 객석에서 보니 더더욱 멋있는 느낌. 그리고 조명만으로 장소에 변화를 주는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형식이었다. 연극적인 연극. 그리고 몸짓(오래간만에 프로그램북을 사봤는데, 무브먼트 라는 표현으로 적혀 있었다)은 정말 최고!

그리고 원안이 좋다보니, 스토리 역시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매우 훌륭했다. 박시범 배우 무대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정말 잘하시는 듯. 그리고 주진모 배우님... 브라운관에서 본 게 전부이지만... 브라운관에서도 그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으니 무대에서는 오죽할까. 어떻게 보면 맹목적인 나의 경외감이지만 아- 정말 멋있다. 정말 대단하다. 정말 훌륭하다. 정말 매력적이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면 남녀주인공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지금 영화를 보면서 이 글을 쓰니까.... 어쩌면 내 기억 속에서 남녀 주인공인 오스카와 일라이의 모습이 조금씩 가공되어 새롭게 인식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늙지 않는 소녀 뱀파이어 역할을 맡은 박소담 배우는 드라마 <처음이라서>에서 처음 알게 됐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많이 좋아하게 됐고, 그래서 기대도 많이 했는데 솔직히 고백하건데... 연기 톤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피를 구하기 위해 도움을 청할 때의 목소리와 다른 목소리들이 다른 디테일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냥 일라이보다는 ‘박소담’이 더 많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부족하거나 못했다는 얘기 아님.) 주진모 배우 같은 경우에는 그 특유의 목소리는 어쩔 수 없지만 드라마에서는 보지 못한 연기였다. 그리고 오스카 역할을 맡은 남자 주인공. 나는 오스카의 창백한 피부와 하얀 머리카락이 너무나 인상 깊었나보다. 검은 머리카락의 남주인공을 받아드리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건데... 나는 오스카가 꽤나 우울하고 유약한 아이로 기억이 됐는데, 그는 너무나 천진 난만하고, 그래서 오히려 부족한 매력이 있고, 저런 아이가 왜 왕따를 당해야하나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적응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영화를 보니, 영화 속 오스카도 평범한 학생이기는 했다.) 그리고 아무리 가정 환경이 그러하다 해도 연극을 보면 오스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라이를 따라갈 만큼의 성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그리고 영화 속 아이들은 12살? 13살인데... 이들은 고등학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랄까? 애정 수위도 영화보다는 훨씬 셌던 것 같기도 하고. 영화 속 애들은 순수한 맛(?)이 있었는데... 하칸과 일라이의 관계 역시. 연극이 훨씬 더 강렬하고 자극적으로 표현돼서... 영화의 그 은근한 맛이 사라진 것 같다. 여하튼 연극을 감상하는데 살짜쿵 이런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난 이 작품이 좋았다.

 

내가 이 작품이 좋은 이유....

나는 ‘사랑’을 믿지도,

제대로 해본적도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나에게 그런 ‘사랑’이 뭔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처음 영화를 봤을 때도 그랬지만,

오스카와 일라이의 사랑보다는 일라이의 곁에 있던 하칸의 사랑이 더욱더 가슴이 아프고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

 

P.s

1. 영화 속에서도 수영장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 (열악한 CG때문이기도 했다) 그 장면을 어떻게 구현해 낼까 궁금했었다. 최대한 연극에 대한 정보를 보지 않고 작품을 보려고 했는데 인터미션 때 상세 페이지의 작품 정보를 읽다가 수영장에 대한 정보를 읽고야 말았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멋있지는 않았음.

2.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된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당시 영화 포스터가 너무 싫었다. 일라이를 괴수 소녀라고 표현한 카피라잇에 분노했었던 기억이 난다. - 정정- 그 포스터를 찾아보려고 하니까 소녀 괴수라고 표현했던 건 포스터가 아니라 기사였었다.

 

3. 오스카 아버지가 영화에서도 동성애자로 표현됐던가. (영화를 38분 정도 밖에 보지 않아서 기억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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