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대학로를 강타한 연극이 한 편 있었다. 바로 <유도소년>. 입소문을 듣고 막차를 타려 해보았으나, 연일 매진 사례. 결국 보지 못했다. 궁금함에 결국 그 해 겨울, 서울에서 부평까지 가서 이 공연을 보게 됐다. (물론, 공연만을 위해 간 건 아니었고 겸사 겸사)
부평 극장에서는 2층에 맨 끝줄. 관람을 끝낸 후에는 물음표만 머리속에 둥둥! 물론 재밌고, 재밌지 않다 라는 이분법적 감상평으로 따지자면 '재밌다'이지만... 사실 감상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는 있으나 왜 사람들이 열광했는지까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청춘 스포츠 드라마에서 한 번쯤은 본 적있은 스토리, 응칠과 응사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배경과 소품, 음악들이 유행에 편승하려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웃음을 위한 작위적인 개그 코드들. (이렇게 열거하니 이 공연을 재밌게 봤는가 조차 의심스러울 수 있는데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재미가 없지 않다. 기대가 너무 높았을 뿐) 그래서 이 작품은 나에게 물음표로 남게 됐다. 대학로에서는 200석이 안 되는 작은 극장이었는데, 부평은 극장이 커서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은 거라고 스스로 원인을 규명하면서...

그래서 올해, 다시 아트원 씨어터 3관에서 공연을 올린다 했을 때 확인해보고 싶었다. 감동받지 못한 이유가 정말 극장 크기 때문이었는지.
그런데 정말 극장 때문이었나보다. 물음표는 어느새 느낌표가 되어 둥실 둥실 떠 다닌다. 너무 좋아!!!!!!! 너무 너무 재밌어!!! 진짜 대박!!!!!

솔직히 위에 언급한 통속적인 스토리, 향수 가득한 소재와 음악, 개그 코드가 바뀐 건 아니다. 그것들은 여전한데... 소극장에는 그 모든 것을 뒤덮는 배우가 있었다. 내가 왜 처음 소극장 연극을 좋아하게 됐었는지 생각난다. 배우와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배우의 숨결이 느껴져서. 관객을 무대 속으로 끌여들어와서.

배우의 땀과 열정, 호흡이 그대로 느껴지니 몰입이 더 잘 됐다. 사실 관객들 때문에도 너무 너무 재밌었다. 관객들 리액션이 장난 아니었음. 배우가 짝사랑에 가슴 아파할 때, 들려오는 탄식과 탄성. 진짜 같이 안타까워 해준다는 느낌이랄까.

청춘, 풋사랑, 열정에 관한 뻔하고 뻔한 얘기들이 가슴 팍에 팍!!!하고 꽂혀서 솔직히 조금은 눈물이 났다.

유도를 왜 하냐는 질문...
요셉이 술에 취해 경찬에게 하는 말들.
그 때 선배는 웃고 있었어요.
운동을 왜 하냐고 묻는 경찬에게 재밌으니까, 라고 말하는 민욱.

살짝 오글거릴 수 있는 말들이 어찌나 가슴을 후벼파던지.

그리고 화영의 '감정의 색깔'.
아- 최고의 대사이자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한 디테일한 심리묘사 ㅋㅋㅋㅋㅋ
진짜 좋았다. 봉구 설정도 그렇고.

그리고 우리의 박해수 배우님!!!!! 아아아아아- 넘 잘하신다! 첨에는 고등학생 역이라니... 내가 이입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걱정은 NO, NO, NO. 연기를 잘하면 다 커버가 되는구나 싶었다. 정연 배우 역시 나이와 살짝 안 맞아보이는 게 있었지만 그래도 그 털털함이 나쁘지는 않았고. 차용학 배우. 처음 본 게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였었나? 무튼 그 뒤로 간다 작품에서 종종 보았는데... 나한테는 참 매력적인 배우이다. 내가 배우 이름을 잘 못 외우는데 비교적 쉽게 외운 배우. 뭐- 이런 건 중요하지 않고. 이번에도 꽤 괜찮은 느낌이다.
그리고 오.의.식. 두둥!!!!!!! 얼마전 <로기수>에서도 참 좋았는데... <유도소년>에서는 거짓말 안 하고 미칠 듯 좋다!! 아, 연기에 감칠맛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 거라면! 하하하-. 배우들의 합도 너무 너무 좋구!

너무 너무 좋았다,
에서 끝났어야 하는데.
세번째 <유도소년> 관람.
바로 전에 너무 재밌게 봐서 실망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는데(간혹 그런 공연들이 있다) '실망'까지는 아닌데... 전만큼 좋지는 않았다. 하아- 하아-.
아쉬워. 남녀 주인공을 빼고는 캐스트가 다 바뀌었는데... 이전 캐스트에 비해서는 살짝 약한 느낌. 특히 두 명은 솔직히 불안 불안할 정도였다. 물론 이 공연을 처음 봤다면 엄청 재밌다고 했갰지만.

배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극장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이게 바로 연극이며 무대인 거 같다. 그래서 아쉬울 때도 있지만, 또 감명 받게 되며 계속해서 찾게 되는.
극장과 배우의 중요성을 느끼면서도, 살아숨쉬는 공연의 매력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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