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오셨다>를 예매하려다 <지하생활자들>과 묶여 있는 패키지 상품을 보게 되었다. 인간의 심리라는 게 참 얄궂은 구석이 있어서, 1+1이나 패키지를 보면 한번쯤은 눈이 돌아가게 된다. <주인이 오셨다>를 기대하는 많은 이들이 김광보, 고연옥 콤비의 전작인 <지하생활자들>을 높게 평가하고 하고 있었고, 그들의 또다른 작품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먼저 보게 된 <주인이 오셨다>가 기대와는 다르게 내게 애매모호한 작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실망까지는 아니었지만, 크나큰 감동이나 재미, 의미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지하생활자들>에 대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재미가 없으면 어쩌지?”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며, 기대치를 낮추고 극장을 찾았다. 공연장은 <주인이 오셨다>의 백성희장민호극장과 마주보고 있는 소극장 판이었다. 역시나 다시 봐도, 참 예쁜 극장이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자 무대와 객석의 구조가 마치 마당극처럼 되어 있었다. 특별히 단으로 되어 있는 무대도 아니고, 그저 무대를 빙 둘러 여러 가지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무대를 바라보며 ‘ㄷ’자를 세워놓은 듯한 구조로 객석이 있었다. 자유석이었기에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은 마치 풍물놀이를 하듯, 국악기를 연주하며 민요 같은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이 등장으로 시작한다. 공연은 나의 우려와 걱정을 비웃듯이 너무 좋았다.
사실 커다란 정보는 알지 못하고 봤는데,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한 여자가 말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자신을 찾아 떠난 길에서 그 여자는 뱀 사내를 만난다. 얼굴엘 뱀 비늘이 그려져 있는 한 남자. 그 남자는 다른 다는 이유로, 특별한 사람으로 인지되어 승승장구 하다 어느 날 모든 것의 허망함을 느끼고(?), 지하로 지하로 지하로 지하로 들어간다. 그는 높고 높을 것만을 바라보는 것에 지쳐서 땅 속으로 숨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신격화하고 의미를 부여해 또 그곳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려 한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던 사람이 잠든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 그리고 밝혀지는 그와 그녀의 관계.
사실, 어떻게 보면 <지하생활자들>은 꽤나 복잡한 연극이다. 꿈과 환상, 현실이 뒤섞여 있다. 시공간도 명확하지 않는다. 특별한 무대 없이 ‘버스정류장’ ‘지하’ 등의 단어 적혀 있는 깃발이 등장하면, 무대는 그 장소가 된다. 그런데 그게 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것 같다. 큰 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걸 구현하는데 있어서 적절히 신화와 환상, 그리고 현실을 이용해 표현했다는 것.
이 공연을 보면서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많이 생각났다. 연극과 음악극을 함께 보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봤던 <컨텍트>라는 공연도 생각이 났는데,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대사나 노래는 없고 대부분이 춤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 공연을 보면서 재미는 있었지만 왜 이걸 뮤지컬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무용극이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지하생활자들>을 보니 공연에 있어서 장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연은 풍자나 비판 등 사회적인 의미도 크다. 하지만 나는 그저 여자와 뱀비늘 사내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춰 기억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스토리 구성 상으로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은 등장처럼 노래를 부르며 줄지어 밖으로 나간다. 밖에서 계속 악기를 연주하며 일렬로 서서 관객들을 배웅하는데, 아. 너무 멋있었다. 나도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쉬운 것은, 고개 숙인 인사가 아니라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나왔어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철판이 안 된다. 흐흙. 국악과 연극의 절묘한 조화가 이뤄진, 우리 나라의 마당놀이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 그래서 국악이 참 좋다는 걸 깨닫게 해준,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지만 현실에 대한 풍장을 잃지 않는 스토리텔링이 참 좋았던, 좀 멋있는 공연이었다.
관객 열전
살짝, 공연과 상관없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보자면, 객석 왼쪽 면에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공연 시작 전, 극장 관계자들이 그 할머니와 이야기를 면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께 무언가를 설명해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한참을 이야기하던 직원은 직책이 더 높으신 분을 모시고 다시 와서 또 면담(?). 멀리 있었기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상하게 궁금하고 신경이 쓰였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티켓 없이 무작정 들어오셨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알 수 없는 밀담이 끝나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여자 주인공이 대사를 치기 시작하는데 그 할머니가 뜬금없이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누가 봐도 박수가 나올 타이밍도 아니었는데. 흐름이 끊긴 배우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공연을 이어나갔다. 배우의 지인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뭐 확인할 바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러던 할머니는 채 공연이 반이 지나가기 전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렇게 끄적이고 보니, 공연은 안 보고 꼭 할머니만 관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하.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정체가 너무나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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