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기도
- 서정슬
제가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개미를 한 마리 죽인 일이 있어요
그 개미는 사람을 무는 놈이었어요
팔 다리를 따끔따끔 물길래
손가락으로 꼬옥 누른 거예요
제가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지렁이를 한 마리 죽인 일이 있어요
그 지렁이는 눈이 없는 장님이었어요
세수를 하다 보니 발밑에 있어
깜짝 놀라 밟아 버린 거예요
제가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귀뚜라미 다리 하나 뗀 일이 있어요
그놈은 방안이 운동장인 줄 알았나봐요
펄떡펄떡 뛰다가 앉아 있길래
가만히 뒷다리를 잡았더니 떨어졌어요
그보다 훨씬 전 아주 어릴 때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하느님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고통을 주셨을까요
왜 이런 괴로움을 받아야만 하는 걸까요
+ )
이 놈의 연상 작용을 어이해야 할런지요.
사람에게는 정말 잊혀지지 않는 책, 구절들이 있나보다.
개미를 손으로 꼬옥....눌러 죽일때마다,
이 동시가 생각이 난다.
오늘도 개미 두마리를 눌러 죽.이.다.가. 이 시가 생각이 났다.
그러자 이 시가 수록되어 있었던 시집이 떠올랐다.
연두색 동시집과 카세트 테이프로 이뤄졌던,
이름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10살, 크리스마스 때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선물.
매일 매일 듣고 따라하고, 동시 낭송 대회에 나가고....
학교 대표로 나갔다가 지역 예선에서 떨어지고. 후훗.
그러고 나니, 아직도 이 낭송시집이 있을지 너무 궁금해서 온 인터넷을 다 뒤지고 다녔다.
힘겹게 발견!
감회가 새롭다.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돌아보니
내 인생에 꽤나 많은 영향을 미친 책이 아닐까 싶다.
결국 목차에 있는 시를 다 찾아보기에 이르렀으니,
이 놈의 연상 작용.
무튼, <소녀의 기도>는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했던 시였다.
뭔가 너무 슬펐다.
소녀의 고통과 괴로움이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내게는 참, 서글프고 쓰라린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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