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부터 울어버렸다. 기뻐서. 훗. 그랬다면. 그랬다면.
왠지 모르게 서러웠다. 아니, 왠지 모르게 라는 말은 거짓말. 이유 있는 서러움의 눈물이 펑펑 흘러내렸다.
고향 집에 가지 못하고 홀로 맞이하는 새해 첫 날.
섭섭함 따위는 없었다. 서울에서 홀로 첫 날을 맞이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지난 주에 내려가서 아빠 엄마 얼굴을 보기도 했고, 내일 친구들과 약속도 있고. 무엇보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엄마 아빠가 섭섭해 하실까, 아침에 잘 걸지 않던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새해 인사를 하려고. 평상시 거의 통화를 하지 않는 아빠와 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내 말이 나가기도 전에 아빠의 입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일 하느냐고 집에도 못 내려와."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비꼬는 듯한 말투.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느냐고 못 내려갔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저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었다. 내 일이 못 마땅하구나. 얼마 벌지도 못하는 일, 야근은 밥 먹듯이 시키면서도 야근 수당도 없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못 마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나왔다.

울면서 섭섭하다고 말하면서 웃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말했다. 뒤늦게 내 눈물에 당황하며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아빠의 덕담에 울면 웃으면서 아빠 보란 듯이 잘 될 거라고 말했다.

전화를 끝고 나자 더 큰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 그러면서도 내가 우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는 (안타까워서가 아니다. 아빠는 그냥 내가 우는 것을 싫어한다. 예전부터 아빠에게 꾸중을 들을 때 내가 울면 아빠는 운다면서 나를 더 크게 혼내고는 하셨다.) 아빠에게 울면서 짜증을 낸 건 아닌지 하면서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일을 하러 가면서 부재중으로 찍힌 전화를 봤다. 엄마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뭐라고 안 하더냐는 내 말에,엄마는 아빠가 나한테 혼났다면서 술을 드셨다고 했다.(물론 나때문에 마신 술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오늘 술을 마셔야하는 모임이 있으셨으니까.) 나는 엄마는....엄마만큼은 나를 이해해줄 줄 알았다. 아빠의 '아'다르고 '어'다른 말에 내가 그런 반응을 했다는 것을. 무뚝뚝한 아빠를 똑같이 바라온 엄마와 나였으니까. 이 세상 누구보다 친구같은 나의 엄마니까. 나는 엄마가
"니네 아빠가 원래 그렇게 무드가 없지 않느냐, 아빠를 한 두해 겪어보냐. 멋도 없고 그런 게 너의 아빠다"
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아빠가 틀린 말 한거 아니지. 빨간 날 일시키면서 돈도 안주고"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그리고 또 눈물이 흘렀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오늘의 근무도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회사는 나를 위해 최선을 배려를 해주었다. 오늘도 안 나가려면 안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일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상황 상황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다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명없는 나의 일은 엄마 아빠의 눈에는 하찮은 것이었다. 나는 노동착취를 당하는 미련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되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나왔다. 엄마 아빠가 나의 일을 이토록 못 마땅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는 지하철 벽을 바라보면서 울고 있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괜히 전화해서 울게 만들었다고. 대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느냐고 처음으로 새해 첫 날을 가족이 아닌 홀로 보내던 그 지난버린 어느날. 엄마는 12시가 넘은 시각, 하숙집 방에 앉아 쓸쓸히 홀로 보식각 종을 치는 모습을 TV로 바라보는 내게 전화를 걸어
"우리 딸 한 해동안 고생많았어"
라고 말해주던 사람이었다. 그 말이 너무 따뜻해서, 너무나 따뜻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따뜻함은 커녕 비참함 만이 가득했다. 알고 있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눈물이 났다. 울고 있는 내게 엄마는 밥은 챙겨먹었느냐고 물어왔다. 홀로 방에 앉아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고민했다. 햇반을 데워먹을까 라면을 끓여먹을까. 새해의 첫 끼니부터 라면이라니, 왠지 일년이 우울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빠의 전화를 받고 나서, 어차피 울음으로 시작한 한해 라면이 첫 끼니면 무엇이 어떠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다.

하지만 엄마의 물음에 나는 도저히 라면을 먹었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밥은 안 해먹는 걸 알기에 햇반을 먹었냐고 묻는 엄마에게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무슨 반찬과 먹었냐는 엄마의 말에 있는 반찬 없는 반찬을 모두 갖다 붙였다. 파래자반, 김, 계란후라이, 참치 그리고 김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빨갛에 부어버린 눈으로 마스카라가 덕지 덕지 붙은 눈으로 지하철을 탈 수 없는 나는 여전히 한참을 지하철 역 벽면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어쩌면 어쩌면 엄마 아빠에게 당당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초라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내 일을 하찮게 여기는 엄마 아빠에게 화가 난게 아니라, 내가 내 스스로가 내 일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작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내 스스로가 당당하다면, 나는 그런 엄마 아빠의 말에 상처 받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에게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부끄러움인가 보다. 엄마, 아빠에게. 그래서 그 부끄러움을 들켜버려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엄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일까. 과연. 나는 이렇게 괜찮다라는 말을 읊조리며 가다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길을 걷게 될까. 나는 행복하다. 라는 말을 주문이 아닌 진심으로 내뱉을 수 있을까. 오늘 나는 아마도 내가 상처받기 이전에 내 눈물로 부모님을 상처받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차마 전화를 걸지 못해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시키신 부모님. 내가 속상하고 섭섭했을 거라고 말하는 부모님. 그런 엄마 아빠.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 분들 앞에 서야하는 것일까. 이대로 가면 길이 있다고 길이 보일꺼라고 내가 그길을 잘 만들어 갈꺼라고, 그래서 결국 나는 꿈이라는 곳에 당도할 것이라고.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고. 현실이라고. 맥주한잔에 안주 삼아. 지껄여본다.
오늘도.
나는.
괜찮다고.
괜찮을꺼라고.
괜찮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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