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책꽃이에는 단테의 신곡 1,2,3권이 나란히 꽂혀져 있다. 하지만 정말 열장 이상을 못 넘긴 거 같다. 어줍지도 않은 지적 허영 때문에, 언젠가 꼭 완독을 해보이겠다는 의지로 일단 사놓기는 했는데 진짜 읽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국립극장에서 <단테의 신곡>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시간도 없었고 돈도 없어서 딱히 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국립극장으로부터 온 메일링 서비스! 그게 문제였다. 전석 매진이라는 글귀와 함께 시야 방해석 오픈이라는 내용을 담은 메일. 막공을 사흘 앞둔 날이었다. 게다가 주말에는 본가에 내려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은 금요일 단 하루. 고민 고민을 하다가 질러버리고 말았다. 부모님께는 급한 일이 생겨 밤 차를 타고 가야갈 것 같다는 거짓말을 남긴 채.

회사 언니까지 꼬셔서 같이 갔는데... 이게 왠 걸. 솔직히 고백하건데 1막만 보고 나왔다. 사실 꽤 오랜 시간 밤을 새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일들이 많아서 컨디션이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졸다 깨다 졸다 깨다를 반복. 2막을 꾸역 꾸역 버티며 본다고 해도 사실.... 기억에 남길 자신이 없었다.

1막만 보고... 그것도 한 3분의 1정도를 졸아놓고 이런 글을 끄적이는 것도 굉장히 웃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대로 잊혀지는 것은 싫으니까. 무대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리고 이야기도 생각보다는 단순했다. 어떤 남자가 시인을 만나서 지옥을 여행하는 로드 무비(?)랄까. 확실히 책으로 읽을 때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는데... 무대 위에서 한번 해석된 이야기로 만나니 받아들이는 게 조금은 쉬웠던 것 같다. 다만... 너무 반복되는 에피소드 식(?) 구조에 조금 지루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 지옥을 경험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여지고, 주인공 남자와 시인이 갈등하고 또 다시 다니고. 정말 그 당시 나의 집중력 상황으로 모든 이야기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졸고 있던 와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몇 개가 있지만... 굳이 이곳에 일일이 나열하고 싶지는 않고... 한 가지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노래들. 단순한 연극은 아니었고, 중간 중간 노래가 나오는데... 어떨 땐 창 같기도 하고 어떨 땐 오페라 같기도 하다. 정말 복합 예술의 끝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그 부분은 참 마음에 들었는데... 아! 그리고 배우들이 자신의 몸으로 나무를 만들어 표현한 무대 같은 거.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거울 공주 평강이야기>의 아크로바틱이 생각이 나기도 했고.

예전에 <오이디푸스>를 너무 격하게 좋게 본 관계로... 한태숙 연출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 같은 게 생겨버렸다. 창극이었던 <장화 홍련>을 봤을 때도 그랬고. <안티고네>처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무리하게 시도 했는데... 멀쩡한 컨디션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주변에서 다 좋은 작품이라고 하면ㅠㅠㅠㅠ 왠지 모르게 나도 그런 감정을 느껴야 할 것 만 같은데... 이 작품은 그러지를 못해서... 내게 미완의 숙제처럼 남을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작품 얘기보다 곁가지 이야기가 더 많아서 왠지 쑥쓰럽긴 하지만... 뭐 나의 발자취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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