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9 / 아트하우스 모모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류현경과 안내상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었다는 것.

류현경과 안내상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는 사실.
그리고 영화제에 나왔던 작품들에 대한 이유 모를 믿음과 신뢰.
이렇게 허술하고도 엉성한 이유로 보고 싶다 생각한 영화였다.
 
<일루셔니스트>를 먼저 보고 나서,
<굿바이 보이>도 볼까 말까 고민을 했다.
영화 팜플렛을 보는데, 생각보다 꽤나 우울하고 어두운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소년의 얼굴,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였다는 노홍진 감독이
결국 이 영화를 예매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유쾌했다.
팜플렛만 보면 정말 암울할 것 같았는데.
그렇게 슬프거나, 비참하거나, 아프지만은 않았다.

가정사를 돌보기는 커녕, 선거철만 되면 바람이 들어서 살림살이를 거덜내면서도
큰소리 치는 아버지(안내상)
그리고 그런 아버지 곁을 떠나려고 짐을 싸들고, 매번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오는 어머니(김소희).
그런 아버지를 견딜 수 없어, 말끝마다 동생에게 '너희 아버지, 너희 아버지'하는 누나(류현경)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를, 누나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나, 진우.(연준석)

이 영화의 화자는 진우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기르던 개를 잡아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우의 시선으로부터 시작하는 영화.
사실, 이 영화에서 무엇에 집중해서 봐야 하는 지 잘 모르겠다.
뭐, 이것 저것 영화 평을 보면 폭력과 억압이 가득했던 80년대의 문제의식을 나열해 놓았으며,
아버지로 상징되는 무능하고 폭압적인 권력이 어둠의 중심이라는데...
솔직히 나는 그저 한 소년의 성장기에 주목했을 뿐이다.

그런 아버지라도 소년은 미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시대상을 배재하더라면 남자만들의 연대기 혹은 공감대일지는 몰라도,
소년은 누나와 달리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죽으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겠다고 호언 장담하며,
자신이 울거든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을 해달라던 누나는
길거리에서 객사한 아버지의 무덤 앞에 오열을 한다.
그 때 나지막이 읊조리는 동생의 나레이션은...다름 아닌, '욕'.
아, 이런 센스.

뭐, 이런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역시 그렇다.
매번 집을 나가지만 다시 돌아오는 어머니.
세 들어 사는 대학생의 기타로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며,
어머니와 데이트를 하던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은,
조금 손발이 오글거리기는 하나 솔직히 아름다웠다.
어머니 아버지의 잠자리를 옆에서 지켜보는 자식들의 상황도 꽤나 예쁘게(?) 만들어 놓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진우가 어머니를 돕기 위해 간 신문보급소에서 만나는 친구, 창근(김동영)과의 관계가 가장 흥미롭다.
진우는 무법자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창근을 통해 담배를 배우고, 배신을 배웠고, 의리를 배웠다.
하지만 그런 창근이 무너졌을 때. 
폭력에 무릅 꿇고 말았을 때, 진우는 말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창근의 멋진 모습이 만들어진 허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아니, 소설과 같은 허구라고 이야기했었나?
기억을 잃은, 지능을 잃은 창근을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듯 목욕탕에 데리고 가 씻겨주며,
환상과 현실은 절묘하게 뒤 섞인다.
트럭 뒤에 타고 이사를 가는 진우를 미친 듯이 따라오는 창근의 자전거.
그렇게 멀어지는 창근.
그렇게 멀어지는 Boy, 진우.

창근의 세계가 어떠했는지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독고다이 처럼 그렇게 홀로 살아갔을 뿐이다.
창근이 못된 놈들에게 맞은 것은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다 군인에 짓밟혀 사라져간 셋방에 살던 대학생과는 다른 이유였을 테니까.

진우는 자신을 구타하는 신문 보급소 사장의 모습이
그 여대생을 구타하던 군인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그 순간을 참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의리도 성숙도 아닌, 
그저 혼란과 광기였을 뿐이다.

한 소년의 성장은 그러했다.
무엇 하나 명확한 것은 없었다.
그저 그 시대를 살아냈을 뿐이고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정의를 위해 사는 어른이 되지도 못했고, 창근의 옛 모습처럼 자신만을 위해 독고다이 처럼 사는 어른도 되지 못했다.
그저 그 시대를 바라봤고,
그 시대를 잊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그 시대는 아팠다.
우리는 아픈 시대를 살았다.
그 시대를 살아낸 소년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저 이 사실만 생각하며 이 영화를 봤다.
그저 기억하는 것이, 온전한 자신의 몫인냥 말이다.

+)
붙임말로, 진우 역을 맡은 연준석 군도 연기를 생각 이상으로 잘 했지만
창근 역을 맡은 김동영 군이 요즘 계속 눈에 띤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죽은 진수 역으로 등장했는데,
짧은 등장이었지만, 이 드라마 자체가 좋아서 그런지 꽤나 인상 깊게 남았다.
그리고 챙겨 보지는 않지만 스쳐가듯 보는 <빅히트>에서도 반갑게 느껴지고.
피부 때문에ㅠㅠㅠ 그리 잘 생겼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꽤 매력있고, <굿바이 보이>에서는 연기를 정말 잘 했다.
한 번 기대해보고 싶을 그런 배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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