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8.10 13:44에 그 어딘가에 작성했던 글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남진우

1.

그 겨울 내 슬픈 꿈은 18세기 외투를 걸치고 몇닢 은전과 함께 외출하였다.
목조의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랑하지 않는 여인의 흰 살결, 파고드는
쾌감을 황혼까지 생각하였다. 때로 희미한 등불을 마주 앉아 남몰래 쓴 시를
태워버리고 아, 그 겨울 내 슬픈 꿈이 방황하던 거리,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그 숱한 만남과 이 작은 사랑의 불꽃을 나는 가슴에 안고
걷고 있었다.

2.

밤 열 시, 시계의 태엽을 감으며 그녀의 살속으로 한없이 하강하는 헝가리언
랍소디. 따스한 체온과 투명한 달빛이 적시는 밤 열 시의 고독. 머리맡에
펼쳐진 십이사도의 눈꺼풀에 주기도문이 잠시 머물다 간다.

3.

날개를 준비할 것 낢, 혹은 우리의 좌절에 대한 대명사. 솟아오름으로
가라앉는 변증법적 사랑의 이중성.

4.

가로등이 부풀어오른다. 흐느적거리는 밤 공기 사이로 킬킬대는 불빛의 리듬.
안개는 선술집 문 앞에 서성이고 바람은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다.
쉬잇 설레이는 잠의 음계를 밟고 내가 바다에 이르렀을 때, 보았다. 아득히
밀려오는 파도와 살섞으며 한 잎 두 잎 지워지는 뱃고동 소리, 조용히
모래톱에 속삭이는 잔물결을 깨우며 한 여인이 꽃을 낳는 것을.

5.

물결치는 시간의 베일을 헤치고 신선한 과일처럼 다디단 그대 입술은 그대
향기로운 육체는 깊은 혼수로부터 꿈을 길어오른다.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박수를 치며
젖은 불꽃의 옷을 벗으라 나의 하아프여

가만히 촛불을 켜고 기다리자, 누군가 휘파람을 불며 지중해의 녹색 문을
열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피어나는 연꽃 속에 눈뜨는 보석을 찾아.

6.

자정이 되면 그대와 함께 방문하는 러시아의 설해림. 모닥불 옆에 앉아
우리는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선박을 그 긴 항해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는군요. 밤안개가 걷히겠지요. 바람부는 해안 푸른 고요 속에, 목마른 자
홀로 남아 기도하는 자정의 해안 그 어둠 속에 눈은 내리고 내리고 유년의
마을 어디쯤 떠오르는 북두칠성. 지상의 모든 불빛이 고개 숙인다.

7.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아마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SBS TV 영화 러브스토리 중 '기억의 주인'이라는 단편 드라마였을 것이다.
그 드라마에서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두 가지가...
천상병 시인의 '귀천'과 바로 이 시이다.
맨 마지막 구절만 나왔는데...
그 구절이 너무 너무 좋아서....이 시를 찾아 헤메였다.
아직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너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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