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봤던 영화들에 대해 짤막하게 메모를 해 두었던 것들이 있다.
외장하드에,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지만,
자꾸만 맛이 가는 전자기기에 언제 사라지질 모르는 두려움.
그냥, 끄적 끄적
이곳에 기록해놓으려 한다.



1. 블라인드(2007) / 눈 먼 사랑이 진정한 거라고?

 

감독: 타마르 반 덴 도프
출연 요런 셀데슬라흐츠, 할리나 레인

진정한 사랑은 눈이 멀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영화 설명 중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며,
TV에서 오늘의 명화(?)로 소개된 적이 있다는 말에 혹해서
보게 된 영화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슬프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눈이 멀어 약간의 광기와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된 남자.
그리고 흉측한 얼굴 때문에 자신을 숨기고 타인에 대한 방어기제로 가득한 여자.

여자는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며,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자 역시 눈이 안 보이는 남자로 인해 조금씩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은 남자가 각막 이식 수술을 결심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절절하다면 절절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 이지만
나는 특수한 상황에서 겪게 되는 사랑에 일종의 의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다시 말 그대로 눈 먼 사랑을 선택하는 남자의 행동이
내게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극단으로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랑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2. 미래를 걷는 소녀 - 도쿄걸(2009)



감독 코나카 카즈야
출연 카호, 아키모토 나오미

휴대폰을 통해 현재의 여자와 과거의 남자가 교신을 한다는 이야기.
독특한 설정 외에는 그저 평범한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이 독특한 설정마저 신선해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과거의 여자와 현재의 남자가 무전을 통해 교신을 한다는 설정이
우리나라의 영화 <동감>에서 나온 적이 있으니까.
물론 <미래를 걷는 소녀 - 동경 소녀>의 경우에는 <동감>보다 훨씬 더 격한 세월의 격차가 있고 판타지한 느낌도 강하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래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도 <동감>이 더 극적이지 않았나 싶다.

3.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영태(에이타) 때문에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흠. 잘생겼군 영태군.
 
영화 전반에 흐르는 밥딜런의 노래는
정말 영화가 끝날 때 쯤에는 함께 흥얼거리게 될지도.
신을 가두자.
한 번만 눈 감아달라고.

4. 굿바이 칠드런(1987)


감독 루이 말
출연 가스파스 마네스, 라파엘 페이토

한참을 넋 놓고 그렇게 멍하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먹먹함을 그들을 그려봤다.
담담해서 더 아팠고,
더 서글펐던 그 유년의 기억.
손 끝에 박혀 점이 되어 버린 가시처럼 그렇게.
그렇게.

5. 수면의 과학 (2005)


감독 미셸 공드리

흥미로웠다. 충분히. 과연 그는 미치광이일 뿐인가?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그 선에 서 있는 남자.

그 남자가 나와 같아서
자꾸만 자꾸만 나와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역시 흥미로워.
미셸 공드리!

사랑은 왜 꿈처럼 되지 않을까요?

6. 비카인드 리와인드 (2007)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잭 블랙, 모스 데프

미셸 공드리는 역시나 기발했다.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공드리’ 답기에는 너무나 대중적인 냄새가 난다고 해야할까?
(아니다. 이 말은 잘못된 것 같다. 나는 공드리를 잘 알지 못한다. 아직. 그리고 그는 <이터널 선샤인> 때도 충분이 대중적이었다.)

그저 나는 마지막 감동이 너무 따뜻해서,
너무 따뜻해서 그게 싫었던 것 같다.
너무 따뜻한 건 이상향인 것만 같아서,
오히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나는 너무 따뜻한 감동이 싫다.

7. 이터널 션사인 (2004)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꼭 한 번은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나도 모르게 자리매김한 <이터널 선샤인>!

처음에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노래방 배경으로 이 영화의 예고편을 접하게 되었다.
짐 캐리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나는 그 눈물 한 방울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 장면에서의 짐 캐리는 그 동안 내가 알던 짐 캐리가 아니었다.
그 눈물이 너무 아파보여서 견딜 수가 없다.
그 순간, <이터널 선샤인>은 꼭 봐야만 하는 영화가 되었고,
개봉과 함께 나는 극장으로 달려갔다.

무엇보다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다는 설정이 좋았다.
시간관계가 약간 복잡했긴 했지만,
그런 구성이 독특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일 년 후,
DVD를 빌려다 다시 보게 되었다.
두 번째로 보는 <이터널 선샤인>은 처음보다 훨씬 좋았다.
복잡했던 시간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없어
그들의 감정에 더 잘 이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 년 후,
어둠의 경로로 다시 <이터널 선샤인>을 보게 됬다.
세 번째로 보는 <이터널 선샤인>은 두 번째보다 훨씬 좋았다.
짐 캐리의 연기 변신에 묻혀 놓쳤던 케이트 윈슬렛이 보이기 시작했다.
케이트 윈슬렛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사랑의 정석인 것만 같았다.
서로의 다른 점에 끌리고,
그 모든 것을 이해하겠노라 다짐했지만,
결국은 서로의 다른 점에 질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하게 되고.

사랑이라는 게 그런 것이 아닐까?

꼭 이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느낀 때에,
압구정 스폰지 하우스에서 <미셸 공드리> 특별전을 했고,
다시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

8. 렛미인(2008)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출연 카레 헤레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영화가 끝난 후 한참동안 나를 괴롭힌 건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를 사랑하게 된 오스칼도,
외로운 인간 소년 오스칼을 사랑하게 된 이엘리도 아니었다. 살인 후 도망가던 아저씨의 뒷모습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데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분명히 맛있게 먹고, 먹고 난 후에도 배고픔을 느낄 정도로 소화에는 아무 이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속이 거북하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이 답답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핏빛 사랑.
그래서 해피엔딩이지만 새드엔딩인.
결국에는 비극일 수 밖에 없는.
그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던 소녀의 아빠로 지칭된
그 아저씨의 얼굴이 자꾸만 눈 앞에 어른거렸다.
소녀를 위해 살인을 하러 나가면서
소녀에게 오늘 밤만은 소년을 만나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소녀와 자신의 거주지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인 현장을 들켰을 때 자신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그 아저씨가.

염산으로 인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그 아저씨의 흉한 얼굴이
하나도 흉하지 않았다.
한 없이 안쓰럽고 또 안쓰러워서.

결국 소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떠난 그 아저씨의 모습이
나를 한 없이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게 먼 훗날, 소년 오스칼의 모습이 될 것을 알기에.
마지막 그들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 난 웃을 수가 없었다.

저 사랑은 비극이라고,
저런 사랑은 해서는 안된다고,
저건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저렇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9. 워낭소리 (2008)


감독 이충렬
출연 최원균, 이삼순, 최노인의 소

왜 내가 남의 소가 죽는 걸 보고 그리 서럽게 울어야하는 건지.
나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이유 하나로 이 다큐멘터리는 목적을 달성한 걸지도.

하지만 의심스러웠다.
그 진정성이.

내용의 문제가 아닌 형식의 문제!

10. 버터플라이 (2002)



감독 필립 뮬
출연 미셸 세로, 클레어 부아닉

영화 브로슈어를 봤을 때는 별로 땡기지 않았는데,
예고편을 보고 반해버렸다.
너무 귀여워서.
너무 예뻐서.

아기자기하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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