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4. 18 / 성신여대CGV
개봉 전부터 보고 싶은 영화였다. 30대 초중반의 대리님께 “대리님 나이대가 보면 엄청 아른할 그런 영화래요.”라고 말했다가 맞을 뻔 한,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연령과는 무관하게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20대 후반인 내 친구들이 보고 와서도 “현재 남자친구랑은 절대 보러 가지 말 것’” “꼭 볼 것” 등의 평들을 쏟아냈다. 결국 볼 것이기 때문엔 친구들의 평이나 주변 리뷰들은 딱 그 정도 수위까지만 듣고 더 이상은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호평의 호평 일색만 듣다 마지막으로 “너무 과대평가된 부분이 있다. 기대만큼은 아니었다”라는 평을 보게 되었고, 기대치를 조금 낮춘 후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이 말했다. “조정석이 원래는 진짜 멋있거든.”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닌데.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봐.” “결론이 마음에 안 들어. 둘이 되야 하는 거 아니야?” 등. 하지만 나의 생각은? 들려오는 사람들의 의견을 전부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좋았다.’ 이다. 영화를 장르나 국가를 구분한다는 게 무의미하긴 하지만 일본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그 중에서도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 <러브레터>나 <무지개 여신>의 느낌이랄까.
미래의 이야기보다는 과거 이야기가 참 아련하면서도, 누군가에게 한번쯤은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사실 홍보 포인트나 카피를 참 잘 정한 것 같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면 첫사랑이 현재 사랑이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이루지 못한 ‘사랑’.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을까. 물론 무스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등 시대적인 배경 자체가 사람들을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여자인 서연도 아니고 승민에게 심하게 빙의 해버렸다. 특히나 과거의 승민.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 하나 고백하지 못하고, 진짜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뒤돌아서 가버린 그를 찌질하다고 했지만, 나는 사랑이 마음이 고백이 쉽지 않았던 그가 절절히 이해 갔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그런 사랑도 있는 거니까.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성인이 된 서연과 승민이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 엄태웅, 한가인이라는 배우는 힘을 빼고 연기를 한 것 같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굉장히 편하게 느껴졌다. 연기를 잘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말도 안 되는 이유이지만 한가인이 너무 예뻐서 살짝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한가인도 사람이긴 하지만 너무 예쁘다보니 뭐랄까. 이 영화의 현실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자연스럽고 평범한 것이 매력인 이 영화에서 한가인의 외모가 너무 빛이 났다. (이건 뭐, 칭찬인지 욕인지.)
배우들 모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잘 해주었지만, 역시나 여성인 나로서 워너비는 이제훈. 그 후줄근한 패션마저도 어찌나 멋있으시던지. 그리고 조정석은… 솔직히 <건축한 개론>에서만 봤다면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잔잔한 영화에서 웃음 코드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것에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튈 수밖에 없는 역할이니까 사실 특별히 더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더 킹 투 하츠>에서의 캐릭터와 상반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은 것 같다. <더 킹>에서는 너무 멋있으니까. 하하하.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결론이 좋았다. 그게 맞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냥 더 현실적인 것 같아서. 그래야 오히려 그들의 사랑이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화는 개개인의 소소한 감정을 건들임으로써 힘을 받는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된 정릉. 정릉 주민이 된지 반년을 향해 가고 있는데…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괜히 동네를 걸어보고 싶어졌고, 과거 누군가가 참 많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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