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1/백성희장민호극장
사실 드라마 작가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극작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문학 시험에 등장할 법한 그런 작품의 작가들을 제외하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극작가에 대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없다. (흠. 마음이 부족한 게 틀림없다. 좋아한다고 말만 하면서 알려고는 하지 않으니.) 그런 내가 극작가와 연출 때문에 선택하게 된 첫 번째 연극이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의 <주인이 오셨다>이다. (사실, 극작가 중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는 첫 번째는 아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보고 싶었던 작품은 사실 ‘정의신’ 작가의 것들인데, 사실 보고 싶어만 했지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아마 고연옥 작가의 인터뷰를 읽게 된 게 계기였던 것 같다. <주인이 오셨다>의 집필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연쇄살인범이 탄생하는 과정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담았다는 게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일전에 봤던 <내 심장을 쏴라>도 한 몫을 했다. 정유정 소설을 극화한 <내 심장을 쏴라>의 팜플렛에서 고연옥 작가(각색)와 김광보 연출이 콤비라는 글을 봤었다. 고연옥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김광보 연출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때문에 조금은 익숙했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모두 너무나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주인이 오셨다>에도 일말을 기대가 있었다.
너무 어둡지는 않을까. 너무 우울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예상 밖으로 재미있고, 웃기기 까지 하다는 트윗 리뷰들이 너무 많이 올라오는 것이다. 흠. 도대체 우울한 소재를 어떻게 녹여낸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막공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있어 또 서둘러 공연을 보러 갔다.
우선 백성희장민호 극장에 대해 살짝 언급을 하자면. 왜 그렇게 예쁘게 지어놓은 거야. 솔직히 정말 단순한 건물인데. 특별할 것 없는 모양인데 색을 정말 잘 쓴 것 같다. 서울역 뒤편에 자리 잡은 백성희장민호 극장과 국립극단 판은 건물 3개가 ‘ㄷ’자를 세워놓은 것처럼 생겼다. 그러니까, 입구로 들어가면 건물 하나가 저 멀리 중심을 딱 잡고 있고 그 양 옆으로 아까 말한 백성희장민호 극장과 소극장 판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세 개의 건물이 모두 빨간색인데 단순한 건물이 그 색상 하나만으로도 톡톡 튀는 느낌이 된 것이다.
사실 그 근처에서 약 5년이란 시간을 살았는데… 만약 내가 살았을 때 있었더라면 정말 많이 좋아하는 극장이 되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엉뚱한 곳에 극장이 있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한가지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방음이 좀 안 되는 것 같다.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데, 차 소리가 두어 번 들렸다. 아마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음향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극장에 대해 만족한 것만큼 공연도 만족스러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솔직히 공연은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연쇄살인범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사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드라마를 본 이후로 나를 사로잡고 있는 질문이 있다. “악은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그곳에서 요한의 대사 중 그런 부분이 나온다. “연쇄살인범이 나오면 왜 그의 어린 시절에 관심을 갖는 지 알아? 이유를 알아야 안심할 수 있거든. 알코올 홀릭에 폭력적인 아버지. 성적으로 문란한 어머니. 근데 아냐. 그건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언론이 과장하고 부풀린 소설 같은 거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모두 괴물이 되는 게 아니고, 정상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괴물도 아주 많거든. 즉, 우리 모두는 괴물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지.”
그 대사가 내 심장 깊은 곳에 박혔는지 악의 기원에 대해서 나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쇄살인범의 탄생을 탐욕스러운 할머니와 폭력적인 아버지, 그리고 다른 모습에 대한 편견으로 타인을 배척하고 이용하는 사회에 그 이유를 돌리는 <주인이 오셨다>가 나는 조금은 의문스러웠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기 이전이라면 당연히 이해하고, 같이 분노하고, 아파하고, 슬퍼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의문형이 되어버린다. 꼭 그렇다고 악이 탄생하는가. 그러한 악의 탄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어쩜 이 연극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은, 마지막 감옥에서 대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감옥에서 경찰이 주인공에게 던지는 그 말. “그 사실을 알고도 어떻게 널 미워할 수 있겠니.”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 밑에서 자라왔고,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세상의 냉대를 받아 왔고, 그래서 연쇄살인범이 되어버린 사람. 그런 사람을 쉽게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게 쉽게 용서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이 연극에서 정말 나쁜 사람은 아마도 주인공의 할머니일 것이다. 처음에는 힘 없는 흑인 여자를 거둬주는 마음 좋은 아주머니이지만 그녀를 부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결혼을 시키고, 그리고 말을 가르쳐주지 않음으로써 세상과 차단시켜 철저히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다면 그 할머니의 악은 어디서 온 것일까. 솔직히 이 연극을 보면서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연극을 보면서 <억울한 여자>와 <가정식 백반을 맛있게 먹는 법>도 생각이 좀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그래서 주위 사람을 속 터지게 만드는 <억울한 여자>. 그 여자를 보면서 과연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가, 정말 나쁜 건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여기서도 처음에는 남자 주인공이 <억울한 여자>의 주인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뭐 이야기하려는 바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실제 연극을 볼 때는 조금 생각이 났었다.
<가정식 백반을 맛있게 먹는 법>의 경우에는 그 긴장감에 있어서. 외로웠던, 가난했던, 그래서 쓸쓸했던, 사랑 받지 못했던 사람에게 베풀었던 의무적인 호감이 이후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하지만 그 상처가 어떻게 표출되는 지. 긴장감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게 표출되는 결과에 대해서는 <가정식 백반을 맛있게 먹는 법>이 좀더 내 취향에 맞았던 것 같다. 물론, 지향하는 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두 연극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는 게 올바르지는 않다.
연극은 리뷰들처럼 웃음 포인트가 꽤나 많다. 특히 연기들을 참 잘하시더라. 감정선도 좋고. 대사에서도 연기에서도 웃긴 부분들이 나와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많이 상쇄시킨다. 하지만 너무 의도적인 부분들은 오히려 반감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노숙자들이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부분은 솔직히 웃겨야 하는 거 같은데 웃기지가 않았다. 배우가 연기를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금은 더 스토리가 강조되고 실제를 반영한 무대장치를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이 연극은 최소한의 무대 장치를 사용해 식당과 가정집을 변경하고, 출연 배우들이 무대 뒤에 있는 게 아니라 무대 사방에 앉아 있는다. 시작할 때도 시작한다는 말도 없이 그냥 배우가 나온다. 뭐 그게 나쁜 건 아닌데, 정말 가정집이나 식당이 실제처럼 무대에 설치되고, 배우들도 안 보이는 곳이 있다가 나오고.. 좀더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강조된 연극이 되었으면 좀더 감정 이입도 쉽고, 조금은 또 다른 연극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이 연극에 대해서는 표현을 하는 게 참 어렵다. 좋다는 평의 리뷰들을 보며 내 안목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훌쩍이던 몇 명의 관객들에 비해 내 감정선이 메마른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고. 내 눈에 자신이 없는 것은 취향과 기호를 좋고 싫음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나는 비판에 대해 어떠한 근거나 대안책, 그리고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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