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영화를 잘 알아야 하고,

공연을 잘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던 우리 집에서,

영화관을 갈 줄 모르던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던 난,

'영화'라는 걸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토요명화에 열광했고,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며

친구들에게 영화를 추천해주고는 했다.

하지만, 나의 그러한 행동은 수박 겉핧기에 지나지 않았고

나는 제대로 된 영화광은 절대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나의 욕망은

나에게 이름 있는 영화 감독들에 대한 환상을 심기 시작했다.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등등의 감독들을 나는 그저 유명하다는 이유로 좋아했다.

 

하지만 스무살이 넘고 나서,

나는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찾기 시작했고

더 이상 나는 홍상수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서론이 길어진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때문이다.

<메멘토>가 유명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보지도 못했고,

그 영화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의 이름과 영화가 매칭 되기 시작한 것이,

<다크 나이트>

그리고 그를 좋아해야 하나? 라고 고민하기 시작한 게 <인셉션>

그리고 그를 정말 좋아하나> 라고 의심하기 시작한 게 <인터스텔라>.

 

솔직히 <다크 나이트>는 매우 좋았고,

<인셉션>은 매우 좋지는 않았으나 평상시 내가 생각하던 소재와 아주 많이 유사한 부분이 있어서 이래저래 생각이 많지 않았고,

<인터스텔라>는........ 이게 문제인데 솔직히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 와중에 보게 된 <덩케르크>

 

내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대한 내 감정을 정리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우선 결론만 얘기하자면, 유예.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좋았던 것 같다.

 

사실 드라마 스터디 등을 하면서 '국뽕'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했다.

내가 다양한 매체의 스토리들을 들으며 불편하거나 좋지 않았던 감정들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해주 단어였다.

<덩케르크>는 그런 지점을 참 영리하게 잘 다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한 애국심도, 과한 전우애도 없이,

'살아남기'를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

나는 그 '살아남기'가 참 아프고 좋다.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가 열심히 적었던 기억이 있는데,

메모가 모두 사라져서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내게는 열광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꽤 괜찮은 영화로 기억이 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추천을 해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으로.

 

살아남자.

살아남자.

살아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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