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4. 18 / 서울극장

 

 

포스터를 보고 꽤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이상하게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른 영화들에게 조금씩 밀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차선이 되어 버린 영화. 그러다 얼마 전 친구가 이 영화에 대해 난 그런 영화가 좋아요. 슬프지 않고 잔잔하고.”라고 트위터에 적어 놓은 글을 읽고,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오프닝부터 너무 좋았다. 모든 게 지루한 듯, 표정을 잃은 한 남자(필립)가 조수석에 앉아 있다. 운전석에 앉은 흑인 남자(드리스)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높인다. 그런 그들의 뒤를 경찰차가 쫓아오고, 운전을 하던 남자는 내기를 건다. 그들을 따돌리는데 100유로. 하지만 붙잡히고, 남자는 다시 내기를 한다. 경찰들의 에스코트를 받는데 200유로.

 

결국 그들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게 되고, 무표정하기만 하던 조수석 남자의 얼굴에는 다시 표정이 생긴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운전을 할 때, 흐르며 그들이 신나게 따라 부르는 노래. ‘Earth, Wind & Fire’‘September’! 원래도 조금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그들이 부르는 모습과 잘 어울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가진 것은 돈밖에 없는 목 이하로는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는 전신 마비인 상위 1%의 귀족남, 필립과 그를 돌보게 된 가진 것이라고는 튼튼한 몸밖에 없는 하위 1% 무일푼 흑인 남자, 드리스의 우정을 다룬 영화. 감동적이고 잔잔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예상을 뒤엎고 신나는 오프닝에, 심하게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절대 지루하지 않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를 간호하겠다고 나서는 많은 지원자들을 뒤로 하고, 생활 보조금을 받기 위해 거절 사인을 받으러 온 무례한 드리스를 선택한 필립.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의 입장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드리스를, 다른 사람들은 위험한 인물이라며 멀리하라고 했지만 필립은 말한다. 나를 일반 사람처럼 대해줘서 좋다고.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전화기를 내미는, 그의 장애를 동정하지 않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드리스이기에배경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두 사람의 우정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심리적인 부분이나 감정적인 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돈은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필립. 그의 생일 파티 때, 깜짝 파티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친척들이 확인하기 위해는 오는 것일 뿐이라던 그의 말. 하지만 드리스가 있어서 그의 생일 파티는 특별해진다. 생일 파티는 또 이 영화에 음악이 잘 활용된 장면이다. 필립은 자신이 듣는 음악을 드리스에게 들려준다. 클래식 중에서 드리스가 좋아할 만한 빠른 템포의 곡들은. 드리스는 그 음악을 듣고 자신이 듣는 음악들을 필립에게 들려주며 춤을 춘다. 아마도 그 집안에서 이란 것은 금지된 행위였을 것이다. 누구 하나 추지 말라고 한 적도 없건만 필립에 대한 어설픈 배려로 누구도 쉽게 할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을 집안. 그 집안을 그렇게 드리스가 바꾼 것이다. 드리스의 춤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하는 집안 사람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필립. 나는 그 때 그 필립의 표정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활발하게 움직이는 다리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듯한 표정은 이내 행복한 미소로 바뀐다.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아플까.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시금 그 모습을 즐기며 행복해지기를 선택하는 그의 표정.

 

그리고 필립의 사랑을 도와주는 모습도 그렇다. 장애를 갖게 된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서 펜팔만 하며 다가가지 못하는 필립. 드리스는 그런 필립이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음대로 전화를 걸어서 바꿔주기도 하고. 그녀에게 사진을 보내야 할 때 장애인이 된 후 찍은 사진을 보내자는 드리스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사고 이전의 사진을 보내고, 결국 그녀 앞에 나서지 못하는 필립. 그런 필립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어서 참으로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런 필립과 드리스의 이야기 외에 필립의 딸과 드리스의 이야기나 드리스가 좋아하던 여 집사(?)와의 이야기 등 소소한 재미가 있는 영화였다. 특히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나 재미있었다. 필립이 하얀 배경에 빨간 물감이 튄 것 같은 작품을 비싼 돈에 사는 모습을 보고, 드리스가 그림을 그리고 그걸 필립이 자신의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서 파는 내용.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차이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그것보다 더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많이 웃었고. 극적이고 스펙터클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이야기. 거기에 음악이 함께 해 더더욱 행복한 영화였다.

 

영화의 마지막, 이 영화가 실화라는 자막과 함께 실제 필립과 드리스의 사진이 나온다. 실화이기에 더 감동적이라기 보다, 그냥 픽션이든 실화이든 세상에 곁에 저런 친구와 우정이 있다는 게 부럽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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