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1 / 아트하우스 모모



 

칸 라이언즈 수상작 상영회. 9월이 되면 문득 문득 한번씩 떠오르곤 하는, 이제는 연례 행사가 되어버린 관람이다. 사실, 올해 9월은 너무 정신 없이 흘러갔기 때문에 못 보고 지나칠 줄 알았다. 8월 말쯤, “이제 곧 칸 국제광고제가 하겠구나. 챙겨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9월에는 잊은 듯 살았다. 그러다, 지난 주 5일까지 상영회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르고 지나치면 더 속상할 뻔 했는데, 이렇게 나에게 기회를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볼 수 있는 시간은 이번 주말뿐. 그 중에서도 오늘 토요일 밖에는.

 

시간표를 살펴보니 올해부터는 이름도 바뀌고, 상영 방법도 바뀌었다. 필름 부문 수상작으로 이뤄지는 A편과 인터넷 필름 및 크래프트 수상작으로 이뤄지는 B편으로 나뉘어 상영되는 것. 솔직히 A B의 명확한 차이도 모르겠고. 고민을 하다가 현장에 가서 결정을 하자 마음 먹었는데, 사실 조금 자신이 없었다. A편 상영이 11시였는데 사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다. 요즘 거의 잠귀신이 씌여서. 어쩌면 알면서도 못 보고 지나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알람 없이 7시에 기상. 결국 영화관으로 향했다. B편은 12 50분에 시작인데 3시에 연극 하나를 예매해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러닝 타임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2 20분에 끝난 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 그냥 11시 타임의 A편만 표를 샀다.

 

3년 전, 처음 우연히 칸 국제광고제를 봤을 때 그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웃기고 울릴 수 있다는 거. 감동으로 마음을 움직인다는 거. 그 기발하고 거침없는 아이디어. 나는 그렇게 광고에 매료되었다. 어찌 보면 나는 처음부터 광고에 어느 정도 환상이 있었다. 드라마는 드라마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광끼>를 보면서, 광고가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역할이 주어진다면, 아마도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다 여긴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환상으로만 갖고 있던 광고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게 칸 국제광고제였으니까, 당연히 특별한 의미로 남았을 수밖에 없다.

 

그 다음해 보게 된 칸 국제광고제는 처음만큼 짜릿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는 작품들이 전년도에 비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후 시네큐브의 운영사가 바뀌면서 칸 국제광고제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백두대간의 또 다른 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작년에 세 번째 칸 국제광고제를 보게 되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채, 그저 이제는 익숙한 습관처럼 찾게 되었는데 꽤나 재밌게 보았다.

 

그리고, 오늘. 네 번째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 페스티벌.(구 칸 국제광고제). 솔직히 이제 신선함은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광고도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약간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광고 컨셉도 그렇고, 공공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그렇고. 처음에 봤을 때는 엄청 놀랍고 재미있었는데, 여전히 의미는 있지만 더 이상 새롭지는 않다.  그게 참 안타까웠다. 뭐 공항에서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거 같은 경우, 좋기는 너무 좋았지만. 예전에서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군무를 추던 광고가 오버랩 되었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노래를 주문을 했나? 받았나? 했던 광고도 생각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노래를 불러주던 광고도 생각나고, 자동차인가 타이어 광고에서 악기를 쓰지 않고 합창단이 그 소리를 다 내던 것도 떠오르고. (근데 뭐 하나 명확하게 기억하는 게 없다. 이놈의 기억력. 이놈의 집중력)

 

가장 좋았던 것은 일본 이동통신회사인 도코모의 광고. 숲 속에 실로폰(?) 같은 목판 건반을 만들어 도미노처럼 아주 길고 길게 설치한다. 그 위를 굴러가는 나무공이 한 음, 한 음을 만들어내며 자연의 소리와 함께 아주 아름다운 연주를 탄생시킨다. 일본의 광고는 그런 실험정신(?)이 있는 것 같다. 첫 칸 국제광고제 때도 굉장히 인상 깊었던 일본 광고 중에 하나가 어떤 동아리에서 건전지로만 가는 비행기(건전지 광고였을 것이다. 아마도)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그려냈던 것이다. 그 과정은 제품을 팔기 위한 광고를 만들기 위한다는 것만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성을 움직이는 그 노력이 보이는, 게다가 그 아름답기까지 한 광고였다.

 

그리고 수치를 활용해서 의미 없는 것과 따뜻한 것들을 비교한 광고. 예를 들면, 무기 한 대를 만드는 것이면 몇 천 개의 봉제인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결과적으로는 코카콜라의 광고였는데, 수치를 통해서 약간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면서도 그걸 자신들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는 게 좋았다. 하지만 이 광고가 좋게 느껴진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아이들이 부르는 합창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적절한 따뜻함. 정말 짧은 시간에 승부를 봐야 하는 광고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정말 음악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 머리 속에 넣고 있다 또 점점 사라지고 잊혀지게 될까 인상 깊었던 것을 적어보자면 공익 광고 중, 유니세프에서 TV를 끄라는 광고. 꺼진 TV화면에 비친 가족의 단란하고 화목한 모습. 단순했지만 굉장히 의미 있었다.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뭐, 그런 마음이랄까. 그리고 부패 경찰, 거짓말쟁이 애인 등을 컨셉으로 안전함을 강조한 자동차 광고. 나 지금 무슨 대사할 거라면서 익숙한 클리셰들을 모두 모아 놓은 영상을 보여주고는 언제까지 똑 같은 걸 보고 있겠냐는 HBO 광고 등등.

 

요즘 머리가 나빠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관심과 주의력이 없어서 그런지. 보고 돌아서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방금 보고 나와 글을 적고 있으면서도 또 뭐가 있었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한숨이 나지만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한 장면이 있다면 그걸로 괜찮은 거 아닐까, 라는 위로의 말을 내게 던지며 내년 이때를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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