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썼던 글.
잘 쓴 글은 아니지만,
제목이 참 마음에 들어서 좋아했던 글이다.



여성은 꽃이 아니다

여성은 아름다움만을 존재의 목적으로 삼는 꽃이 아니다. 여성에게도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가치와 존엄성이 존재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단순히 여성을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구시대적인 사고가 입법을 추진하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얼마전 야당의 한 의원이 입법부 등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사 여기자를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법적인 제도의 미비와 위원회의 의지부족으로 징계를 미적거리고 있고, 몇 명 동료 의원들은 옹호론까지 펼치고 있다. 그 중 한 의원은 ‘봄의 유혹’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세상의 섭리이다.”라며 “노출을 즐기는 여성에 대해 남성들의 반응조차 용납할 수 없다면 이는 ‘가치관의 독점’”이라고 한탄했다. 또한 다른 의원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그 어떤 명확한 함의를 찾지 못한 채 군중심리를 타고 행위자의 인권과 소명을 무시하며 무조건적인 비판만을 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밝혔다.

성추행이 여성의 노출에 대한 어쩔수 없는 반응이라는 생각은 남성도 이성적 판단과 행동이 가능한 인간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흔히 일컫는 ‘성추행 또는 성희롱(섹슈얼 허래스먼트sexual harassment)’는 성폭력의 일종으로 상대가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 모두가 포함돼 있는데, 이에 대해 권력을 갖은 자들이 자신들의 소명과 권위만을 우선시한다면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명의 의원에 대한 질타로 끊날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남성우월적인 성 도덕에 대한 고찰로 바라봐야 한다. 후진성 성 인식 속에 피해자의 성 주권과 그들의 정신적 고통은 무시되고 제2ㆍ3의 고통이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이에 대해 사회 전체가 단호히 대응해 제도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이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다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성으로서, 국민으로서 감시자가 되자. 상처받은 여성들이 당당하게 말하고 일어설 수 있도록, 또한 상처받는 이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때로는 심판자가 될 때 여성의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 안정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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