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5 / 압구정 CGV

 

 

 

내가 미타니 코키 감독을 좋아하긴 좋아하나 보다. 우연히 트위터에서 미타니 코키 감독님의 신작 영화 <멋진 악몽> 유료 시사회 때 후카츠 에리 상과 미타니 코키 감독의 무대 인사가 있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사실 약속이 잡혀 있는 날이었는데, 순간 약속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좌석을 예약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실 지금까지 어떤 영화가 기다려져서 유료 시사회를 예매하는 일 따위는 없었는데.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라면 이벤트를 통해 시사회 3개쯤은 당첨되는 열의가 필요하다고 믿어왔다. 그런 내가무대 인사에 혹해서 유료 시사회라니. 미타니 코키 감독님이 <도모토 쿄다이>에 나와서 노래 부르는 모습만 보지 않았어도, 내가 그분을 좀 덜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타니 코키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매직아워>. 집에서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 뒤에 본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지금도 종종 꺼내보는 영화다. 그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뒤 <모두의 집> <더 우쵸우텐 호텔> 등 미타니 코키의 영화는 대부분 챙겨봤고, 한국에서 상연되는 연극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 등도 너무 재밌게 봤다. 특히나 <웃음의 대학>은 너무나 좋아해 영화로도 보고, 연극으로도 몇 번이나 봤다.

 

기본적으로 미타니 코키 감독의 시추에이션 코미디가 내 성향에 맞는다. 배경이 화려하진 않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도 좋고, 캐릭터도 마음에 들며, 정곡을 찌르는 타이밍 쥑이는 대사들은 정말 나를 쓰러지게 만든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코미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가능한 것도 부럽다. <신선조>라는 드라마를 살짝 봤었는데, 시대극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재미 있게 봤다.(물론 다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데 나중에 이 <신선조>의 각본도 미타니 코키 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좀 더 대단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 나의 애정도에 방점을 찍은 것은 위에서도 밝혔다시피 토크쇼 <도모토 쿄다이>에 게스트로 나왔을 때다. 음치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던 모습에 살짝 반해버리고 말았다.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가 길었는데, 다시 <멋진 악몽>으로 돌아가 보자면 영화가 시작되기 전 잠깐의 무대 인사가 있었다. 유료 시사회가 처음이었는데, 확실히 일반 시사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돈을 지불하고라도 먼저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이 미타니 코키 감독이나 후카츠 에리 상, 혹은 일본 영화의 팬이었다. (역시나 어쩔 수 없이 후카츠 에리 상의 팬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관객 사이에도 일종의 연대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들에게 꽃을 주기도 했고, 관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후카츠 에리 상은 정말 예쁘고, 천상 여배우라는 느낌이 들었다. 행동 하나하나도 어찌나 그렇게 조신하고 여성스러운지. 그리고 미타니 코키 감독은 상상 그대로 너무나 유쾌한 분이셨다. 미리 적어온 쪽지를 보면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데 자기도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단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도 한국말로 잠깐만을 외치더니 후카츠 에리 상 어깨에 손을 올리는데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나갈 때도통역에게 막 물어보더니 영화 재밌게 보라고 한국말로 한 마디를 덧붙이고 간다. 나도 모르게 나가는 감독님 뒷모습에 두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볼 수 있었다는 게 내게는 조금은 특별한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멋진 악몽>은 정말 초호화 군단의 출연이다. 후카츠 에리 상은 계속 언급을 했으니 넘어가고, 니시다 토시유키 아저씨. 나는 정말, 진짜, 진심으로 저 아저씨가 좋다. 미타니 코키 감독 작품을 보다가 알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정말 아저씨의 작품만 찾아서 봤을 정도. 사실 일본어를 잘 모르다 보니 연기를 잘 하는 지 못하는 지 잘 모르지만, 니시다 토시유키 아저씨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냥, 그분의 코미디 연기가 너무 따뜻하다. 웃긴데, 감동이 있다. 그 표정에서 보이는 익살스러움과 따뜻함의 공존. 이번에도 억울하게 죽은 패전무사 유령의 연기를 하는 아저씨가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보물 같은 배우, 아베 히로시. 워낙 유명한 배우인 건 알고 있었지만 좋아하게 된 건 <결혼 못하는 남자>. 근데 한 번 좋아하게 되니까, 애정이 쌓여서 그런가 볼수록 좋아진다. 이 영화 속에서도 어쩜 그리 쿨하신지. 뭐 그 외에도 쿠사나기 츠요시, 타케우치 유코 등등. (쿠사나기 츠요시가 나오는 장면마다 사람들이 하도 웃어서 조금 그랬다. 쿠사나기 츠요시는 정말 한국에서 이미지 메이킹이 잘 못된 듯하다.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카메오의 느낌으로 나온 분들도 대박. <매직 아워>의 사토 코이치나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카라사와 토시아키 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영화를 보기 전에 전단지를 보니 미타니 월드라는 표현이 나왔다. 정말 말 그대로 미타니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법정에 유령을 증인으로 세운다는 설정 자체가 얼마나 기발한가. 그리고 그 유령이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고,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중에 유령이 눈에 보이는 사람의 조건도 빵 터졌다. 나는 미타니 코키 감독이 좋은 이유가 심각해지지 않음이다. 어찌보면 너무 가벼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게 좋다. 다만 추리물은 아니었으나 진범이 밝혀지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진범을 밝혀내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유령과 사람이 갖게 되는 우정? 서로에게 용기를 얻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안아 주는 것. 이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허술한 게 살짝 아쉽긴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상황과 이야기로 승부를 보는 영화이다 보니 사실 넓디 넓은 스크린의 필수적인 필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극장에서 보는 미타니 코키 감독의 영화였다. 지금까지는 항상 다운로드 받아서 집에서 모니터로 시청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멋진 악몽>을 보면서, 오히려 그게 더 웃음을 자아내는데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며 웃는 재미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모니터로 보면 더 몰입을 했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 개봉하고 나면, 친구들이랑 한 번쯤 더 볼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잔뜩 나온데다가 OST도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는 영화니까. 미타니 코키 감독님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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