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7일 토요일 / 스폰지 하우스 광화문

 

 

 

 

왠지 모르게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좋았지만 포스터에 있는 두 명의 남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잘 생긴 남자와그닥 잘 생기지는 않은(?) 남자. 과연 둘 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남자는 누구일까?

 

두둥.

 

그닥 잘 생기지 않은 남자, 바로 모리야마 미라이다. 얼마 전에 본 <모테키>라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었는데, 갑자기 몰려온 인기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하며 동정 탈출에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절대 잘 생겨 보이지 않는 외모인데(순전히 내 기준에서!) 왠지 모르게마음에 들었다. 개성 있고, 연기도 잘하는 것 같고. 그런 그가 <세이지:육지의 물고기>의 포스터에 떡 하니 서 계시니, 나는 그저 이 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내용을 전혀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포스터나 영화 제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자체가 재미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원래 혼자 볼 생각이었는데, 영화를 보러 가는 길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화에 급 일행이 생겨버렸다. 친구도 그 영화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 우리는 그렇게 광화문 스폰지 하우스로 향했다.

 

영화는 업무에 쫓기며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40대 한 남자가 우연히 받아 든 기획서를 보고 20년 전 추억을 장소를 방문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40대 남자의 20년 전 모습이 바로 모리야마 미라이다. 취업 통지서를 받아 들고 출근 전에 자전거 여행을 떠난 그는 트럭에 부딪히며 치료를 받기 위해 ‘HOUSE 475’라는 바에 들르게 된다. (그 트럭 운전사-극중 이름 카즈오-가 또 <모테키>에서 친구로 나왔던 사람이어서 살짝 또 반가운 마음!) 우연히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혼 후 아이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가게 여주인 쇼코’. 그리고 과묵하지만 그곳을 찾는 단골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점장(?) 세이지(니시지마 히데토시다. 정말 잘 생겼다. 정말 눈이 즐거워지는 외모와몸매였다.) 처음 여행자를 이곳으로 안내한 트럭 운전사 카즈오. 밴드를 하는 친구들이나 쇼코를 짝사랑하는 남자, 눈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와 손녀까지.

 

사실, 영화는 생각만큼 지루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관에 와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집에서 봤다면분명큰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스킵을 했을 확률이 크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편집들과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하늘이나 자연의 영상들은 사실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나한테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줘서 아름답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으나 어찌 보면 어렵고 헷갈리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중간 중간 자연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관한 그런 영화라고 착각할 뻔하기도 했다. 특히나 차에 치어 죽은 멧돼지나 동물보호협회 사람들의 등장 때문에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상처와 위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와 여행자가 나누는 대사 중 그런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무심하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세이지는 무심하지 못하기에 절망에 가득 찬 거라고. 여주인인 쇼코가 세이지에 대해 말한다. 그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그래서 더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세이지는 육지에 올라와 죽음을 기다리는 물고기 같다고.

 

그래서 소녀 리츠코가 연쇄 살인범에게 부모님과 자신의 팔 한쪽을 잃어버렸을 때, 그래서 웃지도 않고 영혼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을 지을 때, 차마 병문안을 가지 못하는 세이지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으리라. 그랬던 그가 어쩔 수 없이 리츠코를 만나러 가서 그녀를 위로해준 방법.

 

솔직히 조금 많이 울었다. 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나는 뼈 아프게 이해가 갔다.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었을 테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붕대클럽>이 많이 생각이 났다. 위로에 대한 방법. <붕대클럽>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고, 눈을 가리고 학교를 가는 남자는 말한다. 타인의 고통을 정말로 이해해보고 싶다고. 아마, 세이지도 그랬을 것이다. 위로라는 것은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마음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성인이 된 리츠코가 영화의 시작을 장식한 40대 남자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리츠코는 말한다. 할아버지는 그 사건 이후로 신을 원망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신은 아직 살아있다고. 그녀의 신은 세이지였으니까.

 

‘HOUSE 475’의 단골들의 소소한 이야기 하나 하나도 내게는 일상처럼 느껴져서 참 좋았고. (특히나 한량처럼 사는 카즈오가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흠뻑 맞고 나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들에 비해 자신이 초라해진다고 말하는 장면은 많이 아팠다. 그리고 아내가 집을 비운 중년 선생님이 술에 취해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읊조리며 초라하게 웅크리고 잠이 드는 모습도. 나는 이 영화의 이런 세세한 부분이 참 좋았다.) 세이지가 갖고 있던 아픔이나 쇼코의 상처도,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갖고 있는 어둠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아무리 밝아보이는 사람도, 괜찮아 보이는 사람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위로, 위로, 위로.

 

언제부터 인가 위로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나. 그런 나에게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영화였다. !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이 이세야 유스케란다. 이름만 듣고 <허니와 클로버>에 나온 배우 맞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맞단다. 잘 생긴 사람이 영화도 잘 만드는군. 내가 영화를 보기 전날에 갑자기 한국에 와서 예정에도 없던 무대 인사를 하고 갔다는데,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든다.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언젠가 다시 한번 곰곰이 곱씹어보고 싶은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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