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준익 감독과는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일까.
이준익 감독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다니는 <왕의 남자>라는 수식어.
나는 참 그 수식어가 무미건조하다.
<왕의 남자>에 나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기에.
그 영화를 보면서 솜털이 곤두서지도 않았고, 닭살이 돋을 정도의 전율을 느끼지도 못해다.
물론 그렇게 나의 감각을 자극하는 영화를 만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오히려 생각없이 봤었던 <즐거운 인생>의 경우에는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그 재미 역시 <소년 메리켄사쿠>라는 영화를 보게 된 이후 크게 반감되어버렸지만 말이다. - 훗날 기회가 된다면 다시 주저리 주저리 해보겠지만 비슷한 소개를 가지고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나 달랐고, 슬프게도, 혹은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소년 메리켄사쿠>까 훨씬더 자극이 강했다.)

그래서 이번 이준익 감독의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도 큰 관심과 기대는 없었다.
황정민과 차승원이라는 배우가 나온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을 뿐.



요즘 도통 영화를 보지 못했고,
영화에 관심도 사라져가고 있던 찰라,
그냥 이러면 안되겠다.
또 즐거움 하나가 사라지는구나 싶어서 무작정 영화관을 찾았다.

솔직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그냥 그냥 그냥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선택했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옆에 앉아있던 여자 두명 중 한 명이 말했다.

"재미는 있네. 근데,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100% 공감이다.
재미있는 부분들은 많다.
하지만 뭘 의미하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다.
감성을 자극하는 뭔가가 없다.

영화관에서 나와 리플렛을 집어들었다.
이런 카피가 적혀 있었다.

"왕은 백성을 버렸고, 백성은 왕을 버렸다. 누가 역적인가!"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져 명분없는 당파 싸움을 하고 있는,
묘하게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양반들의 모습.
그리고 나라를 버리고 자신의 안위만 살피는 왕.
(이 영화의 핵심이자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지만,
이렇게 말해버린다면 도대체 황정학(황정민)과 이몽학(차승원)은 뭐가 된단 말인가)
물론 이들은 역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려 했던
이몽학이 역적이 아니란 말이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친구를 짓밟고, 결국 백성에게 등을 돌려버린
이몽학은 역적이 아닌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어쩌면 영화는 야망이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도망가고 아무도 남지 않은 궁궐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이몽학의 눈빛을 바라본다면.
하지만 이것을 주제로 삼기에는 곁가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더군다나 견자(백성현)에게 꿈이 없기 때문에 결코 이몽학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말하는 백지.(한지혜)
너무나더 서럽게 울던 견자.
하지만 결국 이몽학은 견자의 칼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고 견자가 이몽학을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이몽학이 죽은 건 견자보다 약해서가 아니었다.
세상을 뒤엎고 왕이 되고자 했지만, 한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텅 빈 궁궐을 바라봤을 때,
이루고자 했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졌을 때,
이몽학은 스스로를 죽인 것이다.
더 이상 꿈 꿀 수없음을 알기에.

이정도 되면, 불평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어진다.
꿈을 꾸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꿈을 꾸되, 과하게 꾸지 말고 적당하게 꾸라는 거야?
라는 소리가.

게다가 정말 못마땅했던 것은 백지의 존재.
남성 판타지를 어떻게 해야 좋을런지.
왜 여자와 사랑이 빠지면 흥행 혹은 영화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백지의 역할을 난 정말 모르겠다.
소용돌이 치는 역사의 한 획 속에서도 사랑은 살아있다? 훗.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라.
백지는 남성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설정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첫 등장에서 견자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자신을 떠나려는 이몽학에게 키스 세례를 퍼붓고,
죽어가는 이몽학에게도 입을 맞추며,
신음(?) 가득 섞인 목소리로 이몽학의 귀에 속삭인다.

"꿈 속에서 만나"

뭐하자는 건지.

이건 뭐 불멸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
한 남자의 야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
도통 알수가 없으니.

이러니 검객 황정학과 이몽학의 대립은 볼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는 하였으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만들어 나가지는 못했다.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백성현이라는 배우.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마음에 든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연기도 100%는 아니지만 꽤 잘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이 영화를 한 남자아이의 성장 드라마 정도로 봐 준다면,
그럭저럭 볼만할런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자가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을 입 속에 맴돌게 했다.
 
견자라는 아이가 그 많은 왜놈들 속으로 뛰어 들어갔던 것은
어떤 공명심 때문도 아니었고, 애국심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그를 거기까지 이끌게 했을 뿐.
결국 꿈 없는 민초가 나라를 구한다는 것인지.
하지만 그게 나라를 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죽음인지는.....;;;;;;

글이 두서가 없는 것은
영화에 대한 내 단상들이 그리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자그마한 억지를 쓰며.

이만.


P.S 황정민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다ㅠ
      연기를 정말 잘 하더라.
      차승원도 잘 하긴 하더라. 
      차승원의 치아 분장이 마음에 들더라.
      배경(영상)도 괜찮더라.
      정말 이게 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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