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렇게 히트를 치지는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티켓 파워가 그리 크지 않은 배우들을 보면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어차피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이상

어떻게 객석을 채우려는 건지, 라는 궁금함도 있었다.

예상처럼 티켓은 잘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러브레터>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공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나 큰 호기심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공연 매니아도 그럴 것이라 예측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부진한 티켓 판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이 작품의 티켓이 잘 안나가는 거 같아?"

"검증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게 우리 나라 창작 뮤지컬의 한계이다.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한국 창작 뮤지컬이긴 하니까.

주변에서 그리 좋지 못한 평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 기대치를 낮추고 이 공연을 보러 갔다.

 

하.지.만.

결론을 얘기하자면, 나의 감수성이랑은 맞았다.

일단 무대가 참 예쁘더라.

일본 특유의 감수성을 참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 하나 하나와 분위기가 참 좋았다.

예뻤다.

 

하.지.만 2

안무는 별로.

그리고,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안 본 관객이라면 따라가기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방이 없다.

임팩트는 조금 부족한 느낌.

노래도 드라마도. (그래도 좋은 노래가 많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막 2/3 지점부터 엄청 울기 시작함.

 

사실,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처음 봤던 중 3.

그때는 이 영화의 감수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얼마전 이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서, 다시 집중해서 봤는데...

역시나 16살에 보는 것과 31살에 보는 건 너무나 달랐다.

정말 좋았다.

가슴이 많이 아팠고, 장면 하나 하나가 절절히 이해가 갔다.

 

그래서 였을까.

마지막에 그냥 그들 모두에게 감정 이입을 해버리고 말았다.

후배의 연인인 와타나베 히로코를 사랑한, 그러면서 조난당한 후배를 두고 산을 내려와야만 했던 아키바도,

죽은 후지이 이츠키를 잊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그가 사랑했던 첫사랑의 그림자뿐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던 히로코도,

사랑인 줄 몰랐던 첫사랑의 열병에 쓰러져버린 여자 후지이 이츠키도,

그리고 이츠키를 사랑했으면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한, 결혼 반지를 사놓고도 히로코에게 프러포즈를 하지 못한 남자 후지이 이츠키도 다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식을 잃고, 손녀까지 잃고 싶지 않아 눈이 오는 거리를 40분 만에, 38분만에 달려간 할아버지도.

모두 다 가슴이 아팠다.

 

나한테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 드라마와 비슷한 가보다.

한 사람만 바라봐서 목이 아프고,

사랑이었어도 사랑인지를 모르는 그런 사랑.

 

조금씩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내 감성을 어루만지는 작품이었다.

원작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별로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반대로 원작이 너무 좋다보니까 무대 위에서의 장면 하나하나에 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시나, 하나가 너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아버리는 성격이다.

이번에 흥행에 실패한 듯 싶어(내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대로 묻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이다.

조금 더 다듬어서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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