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씨네큐브가 문을 닫았다. 이전부터 기사를 접했기 때문에, 계속 그 날을 신경 썼다. 엄청난 씨네큐브 마니아는 아니었지만, 기쁨이고 위안처였고, 놀이터였다. 문을 닫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지 가봐야지 생각했지만, 쉽게 발길이 가지 않았다.

 

마지막 날, 마지막 영화를 꼭 봐야지라는 야무진 꿈을 꿔봤으니 씨네큐브의 마지막 영화는낮 2시에 상영이었고 나는 결국 씨네큐브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결국은 나 역시 씨네큐브의 이름을 내리게 한, ...

 

영화를 좋아하는 척, 씨네큐브를 사랑한 척 이야기해봤자 나의 마음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내 바쁨에, 내 이기심에 고개 돌려버리는.

 

씨네큐브와의 첫 만남은 솔직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대학교 시절 어떤 모임에 나가면서 작은 영화관(나는 예술 영화관이라는 표현보다는 작은 영화관이라는 표현이 좋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조금씩 찾아가게 되었다.

 

혼자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남들과는 조금 다른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곳. 나는 그곳이 좋았다. 물론 <스틸 라이프>처럼 너무 어려운 영화도 있었지만, <우린 액션배우다>처럼 날 미치게 만든 영화도 있었다. 울고 웃으며, 감동하고, 외로워하다 그 외로움을 위로 받았다. 그곳에서.

 

씨네큐브를 추억하며, 내 일기장 속에 등장했던 씨네큐브와 영화를 이야기를 살짝 꺼내어 보았다.

 

<칸 국제 광고제 페스티벌 수상작>

 

2007년 처음으로 칸 광고제를 봤을 때만큼의 즐거움은 없었다.

시간이 날 이렇게 만든 것인가?

 

아니면 작품들이 전년도 보다 못한 것일까.

어떤 것이 진실이든 확실한 한가지는 난 2009년에도 이곳을 찾을 거라는 사실.

                                     
- 080927 일기 中 -

 

너무 속상하게도 나는, 아니 우리는 더 이상 씨네큐브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칸 국제 광고제 페스티벌 수상작을 상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일기장 속 이곳은 씨네큐브 한 곳일 뿐. 아마, 모모에서 페스티벌 수상작을 보게 된다면 더욱더 씨네큐브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굿바이 칠드런>

 

영화가 좋다.

난 왜 이제서야 이만큼 밖에 되지 못한 걸까.

예전에 내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면,

나는 간절함을 얻을 수 있었을까?

 

- 090105 일기 中 -

 

<세라핀>

 

잠이 오지 않는 밤.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꼭 되게 해다라고,

그렇게 된다면 물건이 되겠노라고.

미친듯이 하고 싶은 간절함은 아니었다.

그저 운명, 혹은 본능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었을 뿐.

커피 때문인지, 아니면 워낙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던 습관 때문인지, 혹은 인생에 대한 고민 때문이지 잠을 청하지 못했다.

결국 한 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 상태로 잠이 들면 또 두시나 다 되어야 일어날 것만 같아서, 그러면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 고민이 되었다.

은근히 될 것이라는 자신감은 아닌데,

그래서 붙일 수 있는 단어는 결국 운명?

무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평일의 조조 영화를 즐길 시간이 오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해야만 합격 전화를 받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영화관으로 향했다.

<세라핀>!

영화가 시작되기 10분 전.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난 직장을 갖게 되었다.

 

-  090612 일기 中

 

씨네큐브와의 첫 만남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마지막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6 12. 어느 회사에 지원을 하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날. 일기처럼 직장을 갖게 된다면 더 이상의 평일 조조영화를 경험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 찾았던 씨네큐브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상영관에 들어가 영화를 기다리며 난 합격 전화를 받았다.

 

씨네큐브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사실, 올 해에는 스폰지하우스(중앙)에서 더 많은 영화를 봤지만 작은 영화관의 시작은 씨네큐브였다. 씨네큐브를 기억하며. 그리고, 잊혀져 가고 있는 씨네콰논을 떠올리며, 그리고 사라질 압구정 스폰지하우스를 생각하며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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