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상황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꽃보다 할배> 다시 보기를 해서는 안 된다.
금전적인 압박 때문에 혹은 내 꿈 때문에,
혹은 정말 업무적인 일 때문에 해야할 일이 백만가지.
산더미의 회사 일이 쌓여 있고,
업무와 개인적인 일의 경계선에 있는 일도 두 가지.
그리고 내 꿈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도 두 세개.
게다가 정말 돈 때문에, 혹은 이력 때문에 맡게 된 일도 한 가지.
가장 급한 건 돈 때문에 하게 된 일.
엄마도 내가 돈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맡게 된 건 아닌지 매일 매일 걱정 어린 전화를 하실 정도이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그렇게 좋아하는 맥주도 끊고, 회사 일을 마친 뒤
개인적인 작업을 한지 이틀.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면서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는 압박을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약속된 일이 있고, 그 일을 연결해준 친구가 있는데 내 스스로 그 데드라인을 넘긴다는 게, 그것도 엄청나게 넘긴다는 게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일 같아서.
스스로의 능력이 없다고 증명하는 것 같아서.
혹은 좋지 못한 평가를 받게 될까봐 너무나 두려웠다.
돈 때문에 하게 된 일 때문에 (100% 돈 때문만은 아니고 경력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해야만 하는 일에 소홀해진다는 것도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새벽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꽃보다 할배>를 틀고야 말았다. 그것도 어제 사두었다가 먹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와 함께.
아- 오늘도 작업은 그렇게 날라가버렸고, 나는 또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구나.
근데 슬퍼야 하는데, <꽃보다 할배>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자꾸만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스물 여섯 살.
나의 배낭 여행. 그 장소, 그리고 시간, 그 곁에 있었던 친구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올라 웃음이 나다가도 슬며시 눈물이 차오른다.
참 행복했었던 그 기억들.

하지만 현재의 나는.
다시 한번 그때의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 달려가지 못하는,
아니, 달려갈 수 없는 내가 아프고 또 아파서.
그들이 부럽고 또 부러워서.

순재 할아버지는 정말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와 가장 비슷할 수도 있는 사람.
혹은 독불장군이라 불리웠던 내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일 수도.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직진 순재처럼, 나도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일분 일초가 너무 아까워서 무조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었는데.
그래서 잠시 쉬어가려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 하기도 했고,
그러다 또 혼자 떨어져 나와 있으면 그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내가 먹을 것도 챙겨먹고,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있구나 감사해하고.

근형 할아버지는 그저 멋있으시다.
그리 외형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정말 중후한 멋이 있는 듯!
일단 정말 잘 생기셨다. 그리고 정말 패션 센스도 너무 좋다. 눈에 보이는 중재자의 역할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남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낸다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그 위치에서 차고 넘치지도 않게 행동하는 모습이다.
 
신구 할아버지는 정말 귀여우시다.
할아버지에게 이런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푼수끼'가 있으신듯 싶은데...
그게 전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진심, 리얼, 백퍼... 귀여우신 거.
그리고 삶을, 인생을 즐기는 듯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자기 자신을 살며시 내려 놓을 줄 아는 모습이랄까.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따뜻한 사람일 거란 확신.

그리고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 백일섭 할아버지.
아직도 홍도야 울지마라...가 생각나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한 씬스틸러(?) 이긴 하셨던 것 같다.
정말 젊은 배우나 출연자였더라면 엄청난 안티를 생성했을 듯한 포스(?)인데...
단순히 백일섭 할아버지의 투정이나 심통이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인상이 좋다.
그리고 그 심통과 투정은 자기 자신조차 컨트롤 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니 말이다.
중간 중간 표정이 굳어있거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나갈 때 보이는 모습은... 방송에서 표현된 대로 떼쟁이 같기도 하지만,
기본적을 백일섭 할아버지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진심을 쉽게 의심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무한도전의 빠순이로서,
나 PD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본적이 없는데,
정말 기획력과 편집력은 훌륭한 것 같다.

나에게도 몇 년 전 이야기가 되어 버린,
유럽 여행의 한페이지를 다시금 꺼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때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금 나의 상황은 절대, 먼저 연락을 할 수가 없다. 그게 제일 속상함)
리마인드 웨딩처럼, 그 친구들과
다시 한번 똑같은 곳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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