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 2012년 8월 5일

 

 


급하게 예매를 했다.
그냥, 오늘은 아무일 없이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 조차 위선이고 가식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글프지만,
오늘은 내게 무대가, 연극이 간절했다.
당일 예매가 가능한 공연을 찾다가 <슬픈 대호>를 발견했다.
보고 싶었던 연극 중에 하나였다.

보고 싶었던 이유?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든다.
포스터도 마음에 든다.
'차이무'라는 극단.
아직 그 극단의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B언소> 때 알게 되었고, 관심이 생겼다.

<슬픈 대호>.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왜냐?
요즘 글을 잃어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씻다가... 문득 너무나 어이 없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알게 된 친구 하나가 부자란다.
그 친구를 알게 된 경로를 무시하고 인연을 이어가지 않더라도,
그 친구랑은 계속 연락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내 입밖으로 한 단어가 나왔다.
"미친년"

그러자...
내 스스로가 너무나 초라해지면서,
<슬픈 대호>가 생각났다.

<슬픈 대호>는 그런 연극이었다.
초라한 사람들의 초라한 연극.
요즘 '웃프다'라는 말을 읊조리게 되는 연극들이 꽤 있다.
<전명출 평전>도 그렇고.

<슬픈 대호>는 소시민.... 아니, 이건 소시민이라고도 말 못하겠다.
밑바닥 인생들이 어떻게 사회&정치&언론에 의해 매도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냥 그들은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심대호는.... 부모도 모르는 고아로, 그저 유부녀를 사랑했을 뿐인데,
그 댓가로 강도강간죄로 복역에 복역을 하게된다.
그는 다시 그녀를 만나서... 자기를 사랑했냐는 그 한마디를 물어보고 싶어....
정치인의 차를 망치로 부수고 인질극을 벌인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정치적인 음모로 매도되고, 심지어 남북 관계까지 건들이게 된다.

웃긴 일이지.

솔직히 나는 욕을 못하는데....(실제로 비속어를 쓸 줄 모른다는 예기다)
심대호의 입에서 나오는 욕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인생이란 원래 그렇게 X 같은 거니까.

그의 인질이 된 강대호의 인생도 그러하다.
심대호에게 그래도 부러운 강대호의 인생이,
강대호에게는 버겁기만 한 삶이니.
그것이 심대호의 말처럼 인생의 아.이.러.니.

너무 서글퍼서 웃다가... 울다가.
다행이었던 건 펑펑이 아니라 찔끔찔끔 울었다는 거.

이 연극.
솔직히 좋았던 게...
나는 일단 관객을 참여시키는 연극이 좋다.
어떻게 보면... 이 배우들... 어쩌자고 이렇게 막나갈까 할 정도로...
연기와 관객과의 대화를 구분할 수가 없다.
초반에는 솔직히 조금 심난하고... 산만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끝이 좋으면 다 좋으니.
배우들이 관객한테 끊임없이 말을 건다.

그리고 웃기다.
사투리와 서울말의 그 경계.
아- 배우분 연기 진짜 잘하시더라.
소주를 계속해서 먹는데, 진짜 궁금했다.
그거 진짜 소주일까.
배우 분이 입에 머금고 있던 소주를 내뿜었는데...
살짝 술 냄새가 났던 것 같기도 한데...
매 공연 그렇게 4홉짜리 소주 2병을 실제로 마시면...
이건 좀...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뒤에서 관람하던 관객은 계속 진짜 소주라고 하고.
솔직히... 엄청 궁금했다.

3인이 나오는 연극이었지만 굉장히 꽉 찬 느낌이 나는 연극이었다.
그리고 사회 풍자도 장난이 아니었고.
너무 진보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아서...(그 마저도 비판적인 시각은 유지되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대중을 어우르기에는 살짝 불편할 수도 있는 연극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 것만으로도 훌륭한 것 아닐까.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나 훌륭했고.
신파와 블랙 코미디와 사회 풍자를 어우르는 그 소시민적인, 아닌 밑바닥의 연극이
참으로 좋았다.

마지막으로,
특히나,
강대호가 강남 타워팰리스를 꿈꾸며....말을 하다가...
두 사람이 현실로 돌아오는 그 장면.
먹먹했다.
그 장면이 이 연극에서 가장 훌륭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장면.
갈데까지 가보자고 말을 하는 그들...
빌어먹을 공권력.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몸을 가득 채운 빨간 불빛들.
(이 연극, 전체적으로 조명 참 잘 썼다)
하지만 그들의 웃는 모습.

아마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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