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썼다가 멈췄다, 썼다 멈췄다 반복했던,

내가 좋아했던 한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

 

# 첫번째종영 직후

 

<난폭한 로맨스>가 끝났다. 몇 번이고 이 드라마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다. 물론, 글 외에도 삶의 흥미가 되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드라마가 끝나고도 적어 내려가지 못하면, 그 드라마를 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그대로 잊혀지고 사라질까봐결국 이렇게 또 끄적끄적.

 

마니아층은 확보하였으나 시청률은 말아먹은 이 드라마를,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 시도는 좋았으나 어설펐다고 말하는 이 드라마를,

꽤나 긍정적인 기사를 내던 10아시아마저 끝내 터지지 않았던 적시타라고 평가했던 이 드라마를,

나는 어떻게 봤을까.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일단, 이시영이라는 배우를 조금은 좋아하게 된 것 같고.

어쩌면 나는 내가 아주 많이 어두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고.

천재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소름 끼칠 정도로 지독한 광기의 사랑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난폭한 로맨스>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니 로맨스 보다는 난폭한에 집중한, 그리고 미스터리에 집중되었던, 그러다 스릴러로 돌변해버린 이 드라마에 당황할 수밖에.

나는 이 드라마에서 난폭한 사랑 이야기보다도, 천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광기의 사랑이 참으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야구에 재능이 있는 박무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동수는 그의 재능을 지켜주고 싶어하며, 고기자는 (처음에) 그를 재능을 망가뜨리고 싶어한다.

그 양쪽의 감정이 모두 이해가 간다.

 

그리고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종희.

그런 종희를 바라보는 수영.

나는 수영이가 참 많이 아팠다. 동수는 솔직히 너무 성인군자 같았고.

수영은 예술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리고 어느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재능이 그 욕망을 충족할 수 없었던 경계인이었으니까.

사람들이 이런 관계 때문에 이 드라마에 곁가지가 너무 많다고 했지만, 나는 사람의 숨어 있는 재능에 대한 욕망과 열등감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가 신선했다.

왜 한국 드라마는 사랑이 중심이나 메인이 아니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마녀가 되어 버린 스토커의 사랑 역시, 용납할 수는 없었으나 이해할 수는 있었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어둠의 한 단면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 어둠이 현실화 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가 좋았고,

박연선 작가는 아마도 이제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 두 번째… 1-4회까지 보고 난 후….

 

시끌벅쩍, 소란스럽게 <난폭한 로맨스> 1-4

 

<난폭한 로맨스>라는 드라마에 이동욱과 이시영이 캐스팅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난폭한 로맨스> (이하 난로)가 어느 방송국에서 방영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심지어 그 두 사람의 조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동욱의 경우 <달콤한 인생> 때문에 좋아하는 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 반짝 타올랐다가 사라진 감정이었나 보다. 당시 <그 남자의 책 298>(정확하게는 기억 안 남)까지 봐 놓고. (물론 영화관에서 본 건 아니었지만) SBS에서 김선아랑 나온 건(, 지금 제목이 생각 조차 안 난다. 이런 젠장. 이 놈의 기억력. 찾아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냥 그렇다고 치자) 보지 않았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동욱이 나온다는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이시영은 더더욱 관심이 가지 않았다. 비호감까지는 아닌데, 아직 연기자로서의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아마추어 권투 대회 등으로 많은 안티 팬들의 마음을 돌리고, 조연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연기자로 역량을 키워나간 후 <포세이돈> 등에서 주연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우결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과연 두 사람이 이 드라마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게다가 <난폭한 로맨스>! 제목도 그다지 땡기지 않았고.

 

하지만 그랬던 내가 지금 1회부터 4회까지 꼬박꼬박 이 드라마를 챙겨보고 있다. 심지어 헤벌쭉 웃어가면서. 그 시작에는 박무열과 유은재라는 이름이 있었다. 광고 영상에서 박무열유은재라는 이름이 등장! , 박연선 작가님 작품이구나. 이 드라마 봐줘야 하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한 작가가 동일한 이름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 그냥, 괜시리 작가가 그 캐릭터와 이름에 애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러면 그 사람이 정말 드라마라는 픽션 속, 허구 속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마냥 느껴져서 캐릭터는 달라도 매번 반복되는 그 이름이 반갑다. <얼렁뚱당 흥신소>의 무열과 은재가 다시 환생한 것만 같아서. 특히나 무열이는 저번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도 등장했었고.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한 <난로>. 1회는 연출이 달라서 그런지 조금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효과음이 너무 난발하고 만화 같은 CG들도 등장. 캐릭터들도 조금씩 과장되었다는 느낌. 전작과 비교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고, 내가 <얼렁뚱땅 흥신소>에 있는 애정이 너무 심하다는 사실이 있지만 그래도 <얼렁뚱땅 흥신소>는 과장된 캐릭터가 현실과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냥 재기발랄하고 엉뚱하고 재밌다는 느낌. 그런데 <난폭한 로맨스>는 조금 무서웠다는 게 사실? 내가 야구를 안 좋아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팬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진짜 야구 하나 때문에 사람을 그렇게 미워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 이유로 만나자마자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이 솔직히 이해하기는 조금 힘들었다. 남녀 주인공의 성격도, 어쩌려고 저럴까. 싶을 정도로.

 

그런데 2회를 보고, 3회를 보고, 4회를 보는데. 보면 볼수록 좋아지는 느낌. 일단 1회에서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효과음은 많이 사라졌고, 캐릭터들은 점점 정당성을 얻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던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 자체가 참 그렇다.) 그들에게 조금씩 동화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니. 왠지 모르게 앞으로 재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세 번째종영 후 시간이 아주 아주 많이 흐른 지금

 

지금에 와서 기억에 남는 것은이희준이라는 배우.

이 드라마에서 발견한 후 그가 나온 단막극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가 나온 연극도 보러 갔다.(물론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얼렁뚱땅 흥신소>에서는 박희순이 복병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면…(물론 그 드라마는 모든 캐릭터가 다 좋기는 했다) <난폭한 로맨스>에서는 이희준이다.

그리고 캐릭터 상으로는 은재의 친구로 나오는 동아가 대박….

박연선 작가님의 작품 중 베스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획일화 된 드라마 시장에서 그래도 보물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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